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218화 (218/279)

38. 예고되지 않은 것 ( 3 )

한편, 단테가 향한 남부 마탑에선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한낮이지만 전장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끝없이 이어지는 일식의 풍경이었다. 새까만 그림자가 태양을 둥글게 파먹고 붉은 고리만을 남겨서, 평야는 어둠에 잠긴 채로 숨을 죽였다. 아지프의 남부 마탑이 군세를 강화하기 위해 펼친 마법진의 영향이었다. 황폐하게 솟은 마탑 위에서 앙상한 태양빛은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일렁거렸다.

"ㅡㅡㅡㅡㅡ!!!"

그 평야에 도열한 해골은 수천을 헤아렸다. 그들은 어깨를 맞대고 며칠이나 이 평원을 지키는 중이었다. 일식의 새빨간 햇볕이 어둠 속에서 일렁일 때마다, 투구를 쓴 해골 위로 붉은 음영이 번져서 흉하게 드러난 늑골까지 흘러내렸다.

두꺼운 쇠목줄을 찬 마골귀들은 이따금씩 불만에 찬 괴성을 내질렀고, 그 줄을 붙잡은 마술사들은 그 때마다 통제하려 애썼다. 아지프의 군세가 도열한 평원, 그 반대편은 텅 비어있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어느 순간, 마골귀들이 일제히 괴성을 내질렀다. 적의 접근을 직감하고 내지르는 괴성이었다. 마골귀를 달래려고 애쓰던 마술사들은, 마골귀를 따라 평원 너머를 바라보곤 숨을 들이켰다.

텅 비어 있던 평원 위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건 한 쌍의 남녀였다. 둘 모두 너무나 유명했기 때문에, 이렇게 먼발치에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금우궁의 주인 단테, 그리고 성녀 호노레 블뢰유. 두 사람이 틀림없었다.

"빌어먹을, 말 들어! 준비!"

철컥, 덜컹, 다급한 쇳소리와 함께 마골귀를 묶던 목줄이 일제히 풀려 바닥에 떨어졌다. 포박에서 풀려난 마골귀들은 두 발로 일어서 가슴을 두드려댔다. 높은 구릉에 멈춰선 단테는 가라앉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시작할까요."

블뢰유는 그런 단테의 옆얼굴을 바라보고, 결의에 찬 표정으로 머리에 꽂은 흰 꽃을 뽑아들었다. 어디선가 불어온 후덥지근한 바람에 풀린 머리가 길게 나부꼈다.

블뢰유는 가만히 꽃을 쳐들었다. 흰 꽃 너머로, 목줄을 풀고 일어서는 마골귀들과 손을 휘젓는 마술사들, 그리고 해골이 끝없이 들어찬 지평이 보였다. 블뢰유는 그 모습을 망막에 새기고, 꽃을 부여잡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음 순간, 당황한 신음과 외침이 전장 가득 퍼져나갔다.

"윽?"

"뭐, 뭐야!"

꽃잎이 금색으로 터지면서, 문자열을 이루고 하늘을 수놓았다. 새까만 하늘에 치솟은 금색의 문자열은 곧 거대한 원을 그리더니, 어둠을 걷어낼 정도로 휘황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광채에 마술사들은 눈을 가리고, 괴물들은 흥분해 날뛰었다. 합창하듯 수천 명의 목소리가 줄지어 터져나온 것은 그와 동시였다.

"그대에게 선고한다!"

어느새 평원 위로 모습을 드러낸 수천의 율사가 외치는 소리였다. 그 율사 한 명 한 명마다 집행관들이 칼을 받쳐들고 호위를 서고 있었다.

블뢰유가 흩뿌린 광채에 아지프의 마술사들이 당황하고 있을 때, 율사들은 각자 선고를 마치고 손을 높이 쳐들었다.

그러자 하늘에서 번쩍이는 금색 원으로부터 문자열이 쏟아져내려 아지프의 마술사들을 구속하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명이나 되는 마술사들이 입을 막히고 손을 묶여서 바닥에 쓰러졌다. 성녀의 권능으로 공간을 장악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모두 포격! 멈추지 마라!"

아지프도 손을 놓고만 있지는 않았다.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에 따라, 핏빛 빛무리가 얽히며 혈사포가 둥글게 터져나왔다.

지면을 파헤치며 돌진하던 혈사포는 그러나 보이지 않는 방어막에 틀어막혔다. 이것 또한 블뢰유가 펼쳐놓은 결계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저 금색의 마법진 아래서 라달라리아의 신관을 해치고자 하는 불법적인 위해는 크게 힘을 잃었고, 또 율사들은 약식으로도 정식 선고와 같은 힘을 낼 수 있었다. 마술을 방해하는 어둠으로 사방을 덮은 것은 이 성녀의 마술을 경계한 대비였으나, 현재까지는 아무런 효과도 없는 듯했다.

"어쩌죠? 포격이 효과가 없는데요!"

"제기랄, 어차피 이것도 오래가진 못한다! 덮쳐! 성녀를 덮쳐서 결계를 깨고 다시 빛을 꺼버려라!"

아지프의 지휘관이 명령을 내리자, 인골귀와 마골귀는 덜그럭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평원 전체를 북으로 두들기는 듯, 내달리는 소리와 진군 소리가 평원을 가득 메웠다. 이제 단테의 차례였다. 급격한 마력의 소모 때문에 어지러운 듯 휘청이는 블뢰유를 어깨로 받치고, 스릉, 예리한 검을 뽑아들었다.

"저를 덮친다는데요? 어쩌죠? 무서운데."

블뢰유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단테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대조적으로, 단테는 바늘 하나 찌를 구석 없어보이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절대로, 위험에 빠지게 하지 않겠습니다."

블뢰유의 두 뺨에 연분홍빛 홍조가 어렸다. 감추기 위해서인 듯, 그녀는 금우궁의 칼날을 슥 검지로 훑었다.

그녀의 하얀 손가락을 따라 금우궁의 칼날은 황금빛으로 물들어갔다. 율사가 자신의 집행자에게 주는 축복을 걸어준 것이었다.

답례로 가볍게 블뢰유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단테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섰다. 까마득하게 평원을 메우며 덮쳐오는 군세가 눈에 들어왔다.

단테는 검을 높이 쳐들었다. 스릉, 그에 맞추어 집행관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들기 시작했다. 율사들이 그 검에 축복을 걸어주었고, 수천 개의 검은 일제히 금빛으로 물들었다. 칼날의 숲이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광경은 장엄했다. 모두가 준비되었음을 확인한 단테는, 달려드는 적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검을 내리그었다.

와아아아! 우렁찬 함성이 터지며, 수천의 집행관들은 블뢰유를 지키기 위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머리 위에선 금빛의 마법진이 둥글게 회전하면서, 일식의 어둠을 걷어내고 휘황한 빛을 뿌렸다.

잠시 검을 내리그은 채로 서 있던 단테는 검을 수평으로 들고 뒤따라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금우궁의 끝에서 갑옷이 솟아나 단테의 몸을 빈틈없이 메꾸었다.

붉은 장식술을 꼬리처럼 휘날리며 질주했다. 순식간에, 모두를 추월해서 한 사람도 단테의 앞에 남지 않았다.

전장의 선두에서 커다란 돌망치를 든 마골귀가 자신을 맞이했다. 투구의 눈구멍으로 푸른 빛을 뿌리며,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일격으로 쪼개 쳐부쉈다. 쾅! 마골귀의 유해가 바닥에 쓰러지면서, 아스라한 함성이 또다시 솟아올랐다.

이 전쟁의 가장 격전지인 남부에서, 한참이나 치열하게 이어진 이 전투는 이렇게 그 시작을 알렸다.

*

전투는 라달라리아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이 곳이 제국의 영토 안인 한, 아지프의 마술사들은 블뢰유가 만들어낸 결게를 범할 수 없었다. 율사와 집행관들은 금빛 문자의 수호 아래서 일방적으로 전과를 올리고, 시간이 다 되어 결계가 허물어질 무렵 군을 물려 달아났다. 한바탕 박살난 아지프의 마술사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텅 빈 들판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

라달라리아의 숙영지, 낡은 지하감옥 앞에서 경비를 서던 위병이 깜짝 놀라 경례했다. 단테가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단테는 가볍게 손을 들어 경례를 받고 물었다. 어느새 떠오른 초승달이 그 얼굴을 싸늘하게 비추고 있었다.

"포로의 상태는 어떤가?"

낮의 전투에서, 가장 선봉에서 돌격한 단테는 양뗴 사이에 뛰어든 늑대처럼 적진을 휘젓고 또 쳐부쉈고, 놀라운 전과를 올렸다. 아지프의 고위 마술사를 대장기에 칭칭 동여맨 채로 생포해 돌아온 것이다. 격렬한 저항 끝에 정신을 잃은 그 마술사는 지금 이 지하감옥에 재갈을 물린 채로 갇혀 있었다.

"이따금씩 신음이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정신을 차린 듯합니다! 명하신 대로 무슨 말을 걸어오더라도 절대 접촉하지 않았습니다!"

"수고했네."

툭, 위병의 어깨를 짚고, 단테는 빗장을 끌러 지하감옥의 문을 열었다. 문 열리는 소리가 돌벽에 부딪혀 크게 메아리쳤다. 어두운 밤, 지하로 깊게 난 길은 생물의 식도처럼 깊고 어두웠다. 벽에 걸린 횃불을 집어 신기로 불을 일으키고, 단테는 성큼성큼 그 감옥 깊은 곳으로 걸어들어갔다. 이런 말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문을 닫고, 자네는 잠시 여기서 멀리 떨어져 있어 줬으면 좋겠군."

"알겠습니다!"

위병은 단테가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문을 굳게 닫았다. 혹시라도 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목제 계단은 나선형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끝에 다다를수록, 길고 찌르는 듯한 신음이 더 크게 들려왔다. 마침내 포로를 가둔 감옥에 도착한 단테는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울려 자신이 도착했음을 알렸다.

"쿨럭 ,커헉, 뭐하는 새끼야?"

칼과 수갑을 찬 채,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여자는 앙칼지게 말했다. 잿빛이 듬성듬성 섞인 금색 단발의 여자였다.

애꾸인 듯, 한쪽 눈이 촛점 없이 흐리멍덩했다. 단테는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횃불을 가까이 비추었다.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여자, 아지프의 고위 마술사는 기진맥진한 듯 바닥에 쓰러져서 경련하고 있었다. 단테가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푹, 머리를 바닥에 크게 쳐박았다.

"괜찮나?"

단테는 쭈그려앉아 여자의 목을 붙잡고 상태를 확인하려 했다. 여자가 독사처럼 움직인 것은 그와 동시였다, 갑자기 얼굴을 확 돌리더니, 검청색의 침을 단테에게 뱉으려 들었다.

아마도 독을 품고 있다가, 이 때를 노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그 회심의 일격은 허무하게 빗나갔다. 단테가 예상했다는 듯 목을 제껴 피해버린 것이다. 이윽고, 재빨리 여자의 입을 강제로 벌리고 쑥 손을 밀어넣었다.

"으아으아으...으그그그극!"

"악샤샤의 독 어금니. 의심병에 걸린 권력자들이 심복에게 박아놓는 물건이지. 당첨이군."

"끄아아아악!"

여자는 긴 비명을 내질렀다. 단테가 자신의 입 속을 더듬더니, 어금니를 뽑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유사시에 자살할 수 있도록, 피를 짓씹으면 독으로 바꾸어주는 마술이 걸려 있는 어금니였다. 정신을 차린 내내 계속 이걸로 독을 만들다가, 이렇게 자신을 심문하러 사람이 올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필 그 심문자가 단테라는 것이 그녀의 불행이었다.

"깨물지 마."

"으그극...으가악!"

"하지 말라니까."

혹시라도 남은 어금니나 독단이 없는지 조사하면서 단테는 싸늘하게 말했다. 여자는 입술로 피를 흘리며 어떻게든 단테의 손을 깨물려 했지만, 억센 팔에 붙잡힌 턱은 움직일 줄을 몰랐다.

"대단한 충성심이군. 학장이 심복으로 삼을 만해. 안 그런가, 레이첼?"

"뭐?"

여자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이 자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걸렸군. 단테는 기쁨을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엄하게 말했다.

"이미 우리는 믿을 만한 내부자에 의해, 학장과 너희 일당이 꾸미고 있던 끔찍한 계획을 대부분 입수했다. 마지막으로 정보를 교차검증하기 위해 굳이 너를 생포했을 뿐.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레이첼은 학장이 기른 심복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극비 중의 극비였다. 실험 중 사고로 임사체험을 하게 되고, 사망 처리되었던 자신을 학장이 빼돌려 구해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극비를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레이첼은 단테의 말을 거의 믿어버리고 말았다. 단테의 목소리에서 감도는 위압감이 한층 사실성을 더해주었다. 척, 칼을 들이대며 단테는 말을 이어갔다.

"네놈의 학장, 그리고 마리아 칼벨레인이 있는 곳을 말해라.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면, 너 하나는 살려서 수도원에 보내주지. 평생 속죄하면서 목숨은 부지할 수 있게 해 주겠다. 아니면, 이 어금니를 다시 물게 해주마. 알겠나?"

"마리아 칼벨레인... 그 년도 알고 있는 건가?"

"물론. 그 여자가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사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레이첼을 속여넘기기엔 충분한 대화였다. 레이첼은 고개를 푹 숙였다. 단테는 손에 든 어금니에서 풍겨오는 아릿한 독 냄새를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며, 싸늘하게 레이첼을 내려다보았다.

낮의 전투가 그렇게 격렬했는데도, 가장 중요한 학장은 모습읕 드러내지 않았다. 남부 마탑의 점령은 학장의 목을 쳐야만 끝나는 것이었기에, 단테는 무엇보다도 그 정보를 얻길 원했다. 레이첼은 망설였다. 그녀는 물론 아지프의 마술사 중에서는 가장 충성스러운 축에 속했지만, 그래도 역시 아지프였다. 이미 대세가 기울어버린 마당에 개죽음을 하고 싶진 않았다.

"어쩔 도리가 없군. 금우궁의 명예를 걸고, 그 약속은 지켜라."

"기꺼이."

한참이나 망설이던 레이첼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정보를 내어놓기 시작했다. 단테는 기쁘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어금니를 내던지며 레이첼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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