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221화 (221/279)

39. 예고되지 않은 것 ( 6 )

다시금 방 안에는 긴장감이 휘몰아쳤다.

아잘록의 의중이 읽히지 않았다. 아지프의 마술사는 이런 폐쇄적인 공간에서의 대인전에 극도로 약했다. 이 곳은 그에게 사지가 틀림없을 터였다.

그 자랑하던 괴물도 없이, 맨 손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오고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자세를 굳힌 채 긴장한 단테와는 대조적으로 아잘록은 태연하게 접근해왔다. 마치 자기 방을 걷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달빛이 안경을 하얗게 물들여서, 눈을 가리는 바람에 표정을 알아볼 수 없었다.

"죄인이라면 피차 마찬가지 아니겠나. 그보다, 용건을 처리하고 싶은데."

얼어붙은 분위기를 깨고 아잘록이 말했다. 언제든 그 얼굴에 검을 쳐박을 수 있도록, 단테는 칼끝을 예리하게 세우고 답했다.

"용건?"

"마리아 군은 내 성실한 제자이자 동료인데 말일세, 학장에 이어 자네들까지 부당하게 억류하려 하는군. 돌려받을 수 있겠나."

파티에서 사람을 데려가려는 듯 평온한 목소리였다. 단테는 차갑게 응수했다.

"안 돼. 넘겨줄 수 없다. 동료? 웃기는군."

"그럼 뭐라고 생각하나?"

단테는 아잘록을 노려보다 답했다.

"재료. 이 여자가 네 굴절된 야망을 위한 재료라는 건 이미 들었다."

아잘록이 괴이쩍은 국가를 세우기 위해 실험을 준비하고 있으며, 마리아는 그 실험을 위한 재료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 그것이 단테가 알고 있는 전부였고 이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이었다. 이 모호한 대답에는 더 정보를 끌어내려는 의도도 숨어 있었다.

"부정할 수 없군. 그래서 원하는 게 무엇인가?"

하지만 아잘록은 깨끗하게 인정했다.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는 대답이었다. 그는 여전히 뭐라 형용하기 힘든 미소를 베어문 채로 말을 걸어왔다.

"원하는 것?"

"마리아 군을 내가 돌려받으려면, 뭘 제시하면 되겠나?"

"네 목숨이라면 생각해보지."

말을 꺼내면서 단테는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난입 시점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 자의 난입은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었다. 애초에 자신들이 남부에 파견된 이유도 그것이었으니까. 이건 사실상의 선전포고였다.

"흠, 그런가. 곤란한데."

턱을 매만지면서, 아잘록은 학생에게 질문이라도 들은 것처럼 가볍게 중얼거렸다. 푸드득, 어깨를 가볍게 털자 그의 어깨에 앉아 있던 귀조가 날아올랐다. 그 후 아잘록의 행동은 단테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뒷짐을 진 채 무방비로, 목을 길게 뻗으면서, 단테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군. 약속은 지켜주게. 내 수급을 취하거든, 성도의 이름을 걸고 마리아 군은 무탈하게 보내주길 바라겠네."

"뭐?"

오히려 주춤한 것은 단테였다. 이 곳에 오기 전, 이미 이신 아이신고르에게서 길 아잘록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들었다. 아잘록은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몸일 터였다. 그러니 발을 절뚝거리며 다가오는 저 남자는, 진심으로 이 여자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생각이라는 뜻이었다. 단테는 으르렁거리듯 물었다. 블뢰유도 놀란 표정으로 아잘록을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속셈이냐."

"속셈이라니, 나는 그저 진보를 위할 뿐이라네."

어느새 아잘록은, 검을 내지르면 목젖을 꿰뚫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무너진 벽 틈새로 바람이 불어서 재가 흩날렸고, 천장의 샹들리에가 덜컹거리며 어지러운 흰 빛을 뿌렸다.

단테는 더 세게 검의 손잡이를 쥐어잡았다. 꺼끌꺼끌한 촉감이 땀과 함께 느껴졌다. 이런 식의 전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 이 공간에서, 단테는 스스로가 어쩐지 죄인처럼 느껴졌다. 여자를 인질로 잡고 적의 목숨을 협박하는 일을 자신이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한 적이 없었다. 그 사고에 도달하고서야 단테는 깨달았다. 자신은 망설이고 있었다.

"좋아."

쓰잘데기없는 나약함일 뿐이다. 단테는 이를 악물어 주저함을 몰아내고, 다른 손으로 검날을 훑었다. 심정의 동요를 반영하는 듯, 금우궁 위에서 신기는 폭풍우 치는 바다처럼 요동쳤다.

"쉽게는 죽지 않는 몸이라서 말일세. 깔끔하게 부탁하네."

심장을 두드리며 아잘록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마술사의 목숨을 확실히 끊으려면, 목과 심장을 동시에 부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이 자는 정말로, 자신의 조수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목숨을 바칠 생각인 듯싶었다. 정말로? 아지프의 마술사가? 그렇다면, 이 여자는 정말로 일개 실험의 재료가 맞는 것인가, 아니면.

"하압!"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잡념을 몰아내려는 듯, 크게 기합을 내지른 단테는 검을 높이 치켜들고 내려찍었다. 검에 맺힌 푸른 빛은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휘황하게 빛났다. 그 검풍은, 금방이라도 아잘록의 목을 쳐부수고 심장까지 쪼갤 것만 같았다. 푸슉! 큰 소리와 함께, 외마디 비명이 터졌다. 그러나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여자의 비명이었다.

"당신, 무슨?"

엉덩방아를 찧은 블뢰유의 하얗게 질린 신음이 터져나왔다. 망설임 때문에 단테의 주의가 흐트러진 틈을 타서, 아잘록을 밀치고 마리아가 대신 검격을 얻어맞은 것이었다. 블뢰유가 옆에서 지키고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어디서 그런 초인적인 힘이 생긴 것인지, 구속된 상태임에도 그녀는 블뢰유를 떨쳐내고 달려들었다.

"교수,님."

그리고, 그 대가는 그녀의 목숨이었다. 성도 8궁이 진심을 담아 휘두른 검에 갈려나간 등은, 깊숙이 베여 하얀 척추뼈가 드러나 있었다. 당장이라도 절명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어째서."

차가운 날씨였기 때문일까, 쏟아지는 더운 피를 따라 흰 김이 솟아올랐다. 무고한 피에 젖은 검을 든 채로, 단테는 망연히 중얼거렸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진 마리아는 아잘록의 가슴팍에 몸을 기대고 쌕쌕거리며 간신히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지프가, 어째서."

이 자들은 방금, 서로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려 들었다. 이것은 적어도 아지프에 한해서는, 일종의 기적이었다.

광적으로 유아론을 신봉하도록 교육받으며, 또 그래야만 남을 딛고 올라설 수 있는 아지프의 고위 마술사들 사이에서 이런 일은 없었다. 단테가 알기로는 그랬다. 단테와 블뢰유는 그 충격으로 잠시 멍하니 굳어 있었다. 그 동안, 마리아는 간신히 머리를 들어올리며, 유언을 꺼냈다.

"어, 때요."

피는 크게 튀었다. 아잘록의 뺨에도, 안경에도 묻었을 정도였다. 피에서 흘러나온 온기 때문에 안경에 김이 서려서, 아잘록의 표정은 이렇게 가까이서도 읽기 쉽지 않았다. 어딘가, 희미하게 아버지를 닮은 듯한 얼굴. 마리아는 미묘한 곡선을 그리는 그 입가의 주름을 응시하면서, 천천히 중얼거렸다.

"조금은, 달라졌나요?"

피냄새를 머금은 숨결이 하얗게 퍼져나가서, 아잘록의 목어림을 적셨다. 찢어질 듯한 등의 격통 사이로, 묵직한 감각이 느껴졌다. 아마 손일 터였다. 아잘록이 손을 내뻗어서, 등을 강하게 감싸안아 주고 있었다. 아, 마리아는 다시금 멍하니 중얼거렸다. 무의미한 신음을.

"미안하군."

"아..."

"정말 미안해."

두 손을 움켜쥔 채로 사시나무처럼 떨면서, 블뢰유는 그 광경을 눈에 새기고 있었다. 아잘록의 옆얼굴이 보이는 자리에 서 있던 블뢰유에게는 아잘록의 표정이 똑똑히 보였다. 그는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그저 평온할 뿐이었다. 가면 같은 엷은 미소를 베어문 채로, 아잘록은 입술을 움직이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되어서도 말일세, 자네한테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질 않는군."

"그런,가요."

마리아는 허탈한 듯한 웃음을 흘렸다. 블뢰유는 이해할 수 없는 혼돈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최소한 마리아의 내면에서, 어떤 감정이 회오리치고 있었을지 짐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인간이라면, 최소한 그 감정에 보답할 의무는 가지고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어째서 아잘록은 저런 말을 꺼내는 것인지, 블뢰유는 아연할 뿐이었다. 그 해답은 아잘록 스스로가 흘려주었다. 등의 벌어진 상처를 가려주려 하기라도 하는 듯, 더 강하게 마리아를 끌어안은 아잘록은 다시금 중얼거렸다.

"정말 미안해. 이런 때까지도, 거짓말 한 마디 해줄 수 없어서 말일세."

"아..."

그런가. 그런 몸이었기 때문인가. 어느새 다시금 아잘록의 어깨에 날아든 귀조의 왕, 세네터는 블뢰유를 보며 흉하게 입을 벌렸다. 까악대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이해했기 때문인지, 아잘록의 품에 안긴 마리아는, 힘없이 빙긋 웃고 중얼거렸다.

"당신 말대로, 인간의 운명이란, 참 잔인하군요..."

그걸로 끝이었다. 그 말과 엷은 미소를 남기고, 마리아는 눈을 감은 채 힘없이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는 눈을 뜨지 않았다.

"잔인하지. 잔인하고말고."

마치 잠든 사람을 들어올리는 것처럼, 아잘록은 그녀의 시신을 두 팔로 받쳐들었다. 피가 쏟아져 팔과 로브가 진홍색으로 물들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절뚝이며 걷기 시작했다. 마술사의 것치고 다부진 등 뒤로, 절뚝임 때문에 불균질한 피 발자국이 점점이 남았다.

침대에 다다른 아잘록은, 마리아를 침대에 내려놓았다. 한 쪽 무릎을 꿇어 이불을 그러쥐고, 그 위에 덮어주었다.

원래부터 핏기 없이 창백한 마리아였기 떄문일까, 그렇게 보니 영락없이 잠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기묘한 위압감 때문인지, 아니면 충격 때문인지. 단테는 아잘록이 그 모든 것을 마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정신을 다잡고 다시 칼을 쥐어잡은 건 아잘록이 마리아에게 이불을 덮어준 직후였다.

"네...그 빌어먹을 실험도, 이걸로 끝이다."

그 뒷목에 칼을 겨눈 채로, 단테는 씹어뱉듯이 말했다. 대조적으로, 무릎을 꿇은 채 뒤돌아보지 않는 아잘록은 여전히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험? 무슨 실험 말인가?"

"가족이 없는 국가를 만들기 위한 실험 말이다. 네놈은 미쳤다. 미쳐서 태어난 건지 태어나서 미친 건지는 모르겠지만, 네놈은 확실히 미쳤단 말이다. 감정을 느낄 수 없는 몸이라고 했지. 그게 네 광기가 낳을 비극의 변명은 되지 못한다. 넌 실패했어. 넌 여기서 죽는다. 그게 끝이다."

단테는 이신에게 들은 말을, 그리고 자신이 읽었던 아잘록의 수기를 되새기며 절규하듯 외쳤다. 그 말은 스스로에게 들려주려는 것처럼 들렸다.

아잘록은 목에 칼끝을 댄 채로, 가만히 그 말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칼날에 닿은 목덜미가 길게 베여 빨간 선이 생겼다. 그로부터 점점이 흘러내리던 핏방울은, 어지러운 곡선을 흔들리며 떨어졌다. 아잘록이 웃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가, 그런가..."

단테는 계속해서 말했다. 이 웃음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슬픔도, 등에서 느껴지는 애수도, 아마 연정이나 인간적인 정서에서 유래된 것은 아닐 터였다. 그저 저 여자가 실험의 재료여서, 그것을 잃은 슬픔에 가까울 것이다. 이런 말로 스스로를 다잡았다.

"네 불경한 실험도 여기서 끝이다. 저 여자가, 네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던 실험의 재료라는 것도.. 알고 있다. 저 여자를 죽인 건 네 광기다."

"그래. 그 실험은 끝났지."

그 말을 끝으로, 아잘록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샹들리에의 불빛을 따라, 등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완전히 일어선 아잘록은 단테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키가 컸다.

"할 필요도 없는... 부질없는 실험이었어."

그 말과 함께, 아잘록은 휙 고개를 돌렸다. 긴장된 표정으로 두 사람의 대치를 지켜보던 블뢰유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얼굴에서, 흰 안경 아래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리고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쾅!

굉음과 먼지가 피어오른 건 그와 동시였다. 아잘록이 서 있던 바닥이 무너지면서, 저 깊은 밑바닥으로 아잘록이 떨어져내렸기 때문이었다. 장례탑의 천장층, 그 바닥 절반을 파먹는 커다란 구멍이 솟아났다. 당황한 단테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그 구멍 깊은 곳으로부터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 정체는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산양을 닮은 두개골, 흰 뼈로 이루어진 괴물. 이신이 나누어준 그림에서 보았고, 또 학장의 모습에서 엿보았던 것. 헤카톤 케이레스가 장레탑의 바닥을 쳐부수며 솟아올랐던 것이었다.

"그럼 이제 해야 할 일을 해야겠지."

그 어깨에는, 길 아잘록이 서 있었다. 처음부터 이 탑의 저층에서 이 놈을 웅크리고 있도록 준비한 다음, 결정적인 때를 기다렸던 모양이었다. 싸움, 그런가. 싸움인가. 오히려 바라는 바였다. 이런 복잡한 난맥상보다는, 단테는 싸움을 원했다. 다시금 금우궁의 갑주와 투구를 뒤집어쓴 단테는 칼을 비껴들며 아잘록을 노려보았다.

아잘록의 얼굴에선 여전히, 한 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려 턱선을 따라 목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블뢰유는 복잡한 표정으로 그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잘록은 외알안경을 벗어서, 옷자락으로 뿌옇게 서린 김을 닦기 시작했다. 블뢰유는 짧은 탄식을 흘렸다.

"아."

아잘록의 눈은, 여전히 메말라 있었고 표정은 태연했다. 그는 울지 않았다. 저 눈물은, 마리아가 마지막으로 흘린 것이 묻어서 흘러내렸을 따름이었다. 어째서일까, 블뢰유에겐 아잘록의 그 태연함이 어떤 저주처럼 느껴졌다. 단테는 언제든 아잘록을 덮칠 수 있도록 몸을 짐승처럼 숙인 채로, 으르렁대며 물었다.

"해야 할 일?"

"새로운 실험의 시작 말일세."

슥, 안경을 쓰며 아잘록은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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