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226화 (226/279)

39. 예고되지 않은 것 ( 11 )

한 계단, 발걸음을 옮기며 그는 말했다.

"인간일세."

"뭐?"

"완전한 인간... 그래, 이 세상의 언어를 빌리자면, 초인의 외신일세."

무의미와 기만으로 가득한 이 세계에, 처음으로 진실된 것을 선물하겠다.

길 아잘록은 그렇게 덧붙였다. 그의 눈에선 푸른 불꽃이 이는 것처럼 보였다. 언제나 즐거운 듯했던, 그렇기에 소름끼쳤던 그의 목소리는 처음으로 어떤 감정을 품은 것처럼 들렸다.

"내가 만들어낼 이 신은 파편화된 인간의 자아를 빨아들여 하나로 합일할 것이고, 영원히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며, 어떠한 불안과 부조리도 품지 않을 게야. 이 세계의 유일한 주인으로 군림할 테다."

저 혀를 베어야 한다. 단테는 어떻게든 검을 뽑아내려 애썼다. 하지만, 몸은 여전히 말을 따라주지 않았다. 멀리서 헤카톤 케이레스가 울부짖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번식하지도 않을 것이며, 종양을 품지도 않을 테다. 이 세계의 유일한 생명으로 영원히 완전하고 또 무결할 걸세. 그리고 인간은, 모든 불안을 잊은 채... 그 위대한 자의 일부로서 함께 호흡하고 함께 영생할 게야."

다시 한 번 헤카톤 케이레스가 크게 울부짖었다. 어느새 길 아잘록은, 그 수염이 올올히 보일 정도로 가까이 접근해 있었다.

"그는 홀로 남았으므로, 미워하고 증오할 어떤 대상도 남지 않게 되었으므로.... 모든 죄도, 모든 다툼도, 모든 오해와 기만도... 없어질 테야."

노예가 되기 위해서 노예를 낳는 씨내림의 저주로부터 해방시켜주겠다.

아잘록은 예언자처럼 떠들었다. 마침내 단테의 눈 바로 앞에 도달한 그는, 손을 들어 저 멀리를 가리켰다. 그 손가락 끝에선 헤카톤 케이레스가 울부짖으며 무너진 탑을 두들기고 있었다.

"우리는 원래 모두 자그마한 벌레였다는 걸 알고 있나? 꿈틀대는 벌레가 뭉쳐 인간이 된 걸 진보라 불렀겠지. 같은 작업을 한 번 더 할 뿐일세."

"무슨..."

대답은 의외의 곳에서 나왔다. 아잘록이 품에 안은 마리아의 시체가, 설탕인형처럼 파스스 흩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녀의 손가락 끝부터 회색빛의 재로 변해가더니, 어딘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아잘록은 그런 마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미물이 모여 세포를 이루고 세포가 모여 인간을 이루듯이, 인간은 모여서 저 초인을 이루게 될 걸세."

단테는 고개를 들어 그 잿가루의 행방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부릅떴다. 사람이었던 잿가루는, 헤카톤 케이레스에게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황폐하게 드러난 그 해골 위에 내려앉아서, 잿빛의 살점을 이루어가고 있었다. 아라딘폴에서 레이븐사이드의 용병들을 빨아들여 그 골격을 이루었던 것처럼.

"이게 인류의 진보... 인간이 스스로의 운명의 주인이 될 유일한 방법이자, 내가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해답일세."

그 말을 마지막으로, 마리아는 완전히 잿가루로 흩어져서 사라져버렸다. 마리아 뿐만이 아니었다. 단테는 그제서야 이 세계에 이상할 정도로 쌓여 있는 잿가루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건 모두 인간의 살이었다. 인간의 살을, 화장하듯 태워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재들이 회오리치며, 헤카톤 케이레스, 그 유모 잃은 유골의 뼈 위로 모여들어 살점을 이루기 시작했다. 살이 붙은 헤카톤 케이레스는, 소름끼치게도, 정말로 인간을 닮아 있었다. 단테는 참지 못하고 소리질렀다.

"그러니까,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저 뼈다귀 위에 붙을 살점으로 만들겠다는 거냐! 너는!"

"그렇지."

"그리고 그 빌어먹을 괴물딱지에게 이 텅 빈 세상을 동산으로 선물하겠다고?"

"대강 비슷하군."

"너는! 너는 어쩔 생각이냐!"

그 말을 들은 아잘록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의 팔 끝이 재로 변해 흩날리기 시작한 것은, 그와 동시였다.

"나도 예외가 아닐세. 소망하자면, 주름살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군."

"완전히 미쳤군. 너한테 시체는 생물의 진보된 형태냐?"

"칭찬 고맙네. 자네는 어금니 정도가 되면 좋겠어."

단테의 몸이 재로 흩날리기 시작한 것은 그와 동시였다. 아니, 어쩌면 이전부터 흩날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단테는 그제서야 자신의 팔이 통째로 재로 변해 날아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칼을 뽑을 수 없었던 이유는 그것이었다. 몸부림치는 단테를 바라보며, 반쪽만 남은 길 아잘록의 얼굴은 재미있다는 듯 중얼거렸다.

"가는 길에 내 연구 성과 얘기나 좀 들어주지 않겠나.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가려니 입이 섭섭해서 말일세."

"닥쳐!"

그러나 아잘록은 멈추지 않았다. 껄껄 웃어제끼고는, 예전에 그랬듯 열띤 어조로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외신은 신의 절망한 형태일세. 그런데 세상에는 인간의 신조차 존재하지 않는데, 인간의 외신을 만들려니 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단 말일세. 한참이나 시행착오를 한 끝에 그 해답을 찾아냈지.

초인의 외신을 만들기 위해서는... 추형의 신, 데몬스폰의 육체와, 완전히 절망한 영웅의 영혼이 필요한데... 뼈대는 저기 저렇게 구했다네. 하늘의 도우심으로."

입으로 금우궁을 뺴어든 단테는, 목을 이용해 아잘록을 베어내려 덮쳐들었다. 그러나 아잘록은 휙 고개를 저어 피하곤,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추방된 것을 기회로 삼아, 절망한 영웅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온 세상을 헤매고 다녔지. 하지만 성좌였던 귀르겐조차 턱없이 모자라지 않겠나. 그래서 난처해하던 참이었는데... 자네 정도면 가능한 한 최선의 재료가 되어줄 것 같군. 내 앞에 나타나주어 고맙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단테의 몸은 완전히 잿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막 깨어난 헤카톤 케이레스의 괴성이 들려온 것은 그와 동시였다. 그 괴성은, 괴성의 끝자락은, 어딘가 막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를 닮아 있었다...

*

"커헉!"

환술에서 깨어난 것은 그와 동시였다. 단테는 뒤로 쓰러지며 검은 피를 토했다. 복부에서 엄청난 격통이 몰려왔다. 갈라아이의 쌍검중 작은 쪽이, 자신을 벌레 표본처럼 꿰뚫어 바닥에 메다꽂고 있었다.

"이, 개, 미친, 자식...!"

"아, 이제 정신을 차렸나. 자네와의 대화는 꽤 즐거웠다네."

피를 토하던 단테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아잘록은 이미 한참 전에 구속을 풀고, 헤카톤 케이레스의 어깨에서 내려와서, 저 멀리에 있었다. 블뢰유의 목을 붙잡은 채로.

"놔... 내려놔라!"

"자네는...분명히, 죽을 때,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기쁘게 죽겠다고 맹세했지?"

그의 외알 안경이 천장의 빛을 받아 새하얗게 빛났다. 그의 오른손에선 검푸른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막아야 해. 단테는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헤카톤 케이레스가 그의 몸을 짓밟은 채로 놔주지 않았다.

"내려,놔..."

"재미있는 실험이 되겠군. 정말로 그럴 수 있을까."

그 말과 함께, 아잘록은 자신의 오른손을 블뢰유의 심장에 쳐박았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듯 슥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영체였다. 영혼을 다루는 그의 솜씨대로, 블뢰유의 영혼을 물질화해 잡아 꺼낸 것이었다. 단테는 어쩐지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저게 부숴지면, 블뢰유는 죽음보다도 끔찍한 결말을 맞게 될 것이라는 것도.

"호오, 상당히 특이한 영혼인데. 어릴 때 누군가의 혼을 억지로 계승당한 모양이야. 어차피 놔둬도 십 년은 못 살고 죽었을 팔자였군."

"그 더러운 손 치워라, 이 빌어 쳐먹을!"

들썩, 헤카톤 케이레스의 발이 갑자기 움직였다. 배를 꿰뚫린 상태에서도, 그야말로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단테가 힘을 다해 발을 치워내고 몸을 일으킨 것이었다. 그 손에선 금우궁이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어떻게든 블뢰유를 구해 보려는 몸부림이었다.

"흠."

그러나 그 움직임은, 부질없었다. 몇 발자국도 내딛기 전에, 다시금 날아든 쌍검이 그의 등을 꿰뚫고 바닥에 메다꽂았다. 세너터는 그 모습을 보며 비웃듯 까악댔다. 아잘록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바닥에 엎드려 몸부림치는 단테의 앞으로 다가가서, 블뢰유의 영혼을 흔들었다.

"세네터, 이것을 조각내주었으면 좋겠군."

귀조의 왕은 그 청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부리를 벌려, 블뢰유의 영혼을 물고 씹어대기 시작했다. 단테의 동공은 절망으로 크게 수축되었다. 영혼이 완전히 부서져 탑에 흩뿌려졌을 때, 저 뒤에 멍하니 서 있던 블뢰유는 인형처럼 툭 쓰러졌다. 그 심장에선, 금빛의 문자가 새어나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단테는 그 뜻을 알고 있었다. 심장이 멈추었다는 뜻이었다.

"안, 돼..."

"어떤가."

칭찬해달라는 듯 머리를 들이미는 세너터를 쓰다듬으며, 아잘록은 미소띈 얼굴로 말했다.

"기쁘게 죽을 수 있겠나?"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단테의 입에서, 인간의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울부짖음이 터져나왔다. 그의 몸 전체가 새까맣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이것은 아잘록의 특기였다. 영혼을 타락시켜 괴물로, 자신의 하수인으로 변하게 만드는 것. 귀르겐에게 했던 것처럼, 단테를 극도로 절망하게 만들어 영혼을 끄집어내는 중이었다. 뻥 뚫린 단테의 심장에서 검게 뭉글거리는 무언가를 뽑아낸 아잘록은, 유심히 그걸 들여다보곤 중얼거렸다.

"이 정도인가. 귀르겐에 비하면 열 배는 나은 물건이지만... 이 정도로도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그 감정을 마쳤을 때, 단테는 이미 머리끝까지 검게 물들어 있었다. 금우궁으로 전개한 갑옷을 뒤집어쓴 채였다. 원래는 아름다운 빛깔을 뽐냈던 그 갑옷은, 지금은 시커먼 검붉은 빛으로 변해 있었다. 그 어두운 눈구멍은 아무런 표정도 전해주지 않았다.

"그럼 이제 나는 황도로 향해야겠군. 학장이 죽었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곤란하니, 자네는 이 탑을 지키고 있게나."

아잘록은 단테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렇게 말했다. 마치 자신의 하수인을 부리는 듯한 태도였다. 눈구멍 너머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단테는, 놀랍게도, 한 쪽 무릎을 꿇으며 응답했다.

완전히 그의 수중에 넘어갔다는 뜻이었다. 아잘록은 당연하다는 듯 그런 단테를 남기고 뒤돌아서서, 헤카톤 케이레스의 어깨에 올라탔다. 그렇게 둘은, 저 달빛 아래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블뢰유의 심장 문자가 전해준 기억은, 여기에서 끝났다.

*

기억의 재생이 끝났을 때, 장내는 싸늘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아이 씨..."

멍하니 앉아 있던 아이는,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훌쩍대는 다나의 흐느낌을 듣고도 반응하지 못했다.

그만큼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다나의 얼굴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스승의 죽음을, 저토록 참혹한 죽음을 목도했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아이는 간신히 몸을 추슬러 그런 다나의 등을 토닥이고, 고개를 돌려 앞을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어떤 난관이 오더라도, 씩 웃으며 예상했다는 듯 대비책을 꺼내주었던 륜이었다.

분명히, 이런 상황에도, 준비된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어쩌면 도피에 가까운 믿음이었지만, 그런 믿음에라도 기대야 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완전히..."

그러나, 눈 앞의 풍경은 그것을 부정했다. 륜 역시, 다나에 못지 않을 정도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 손에서 곰방대가 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완전히, 예고에, 실패했어."

피로 은은하게 물든 물그릇에 륜의 창백한 얼굴이 비쳤다. 그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일그러져 있었다.

"지금 다가온 멸망의 시나리오에서, 주 원인은... 정치적 내분도, 외신의 침략도 아니었어. 멸망의 원인은..."

길 아잘록.

그 7위계의 마술사가 불러온 혼돈, 제국의 위기, 정치적 파장 따위가 아니었다.

길 아잘록이라는 인간, 그 자체가 멸망의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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