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235화 (235/279)

41. 계승 ( 2 )

원시림은 늑대의 소굴이었다.

저렇게 거대하고 흉폭한 짐승들이 무리까지 지어 생활하고 있으니 적수가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숲 속 깊이 들어갈수록 늑대의 흔적은 더욱 더 진해졌다. 덤불마다 흰 털뭉치가 붙어 있었고, 뜯어먹다 만 노루며 멧돼지 따위가 어지럽게 늘어져 있었다. 검붉게 드러난 속살 위에선 파리와 날벌레가 앵앵댔다.

"윽."

점점 더 칙칙해져가는 수풀을 걷던 다나는 물컹, 무언가를 밟고 신음성을 흘렸다. 감촉으로 알 수 있었다. 잘려나가 널브러진 사람의 팔이었다. 다나는 몸서리치며 뒤로 물러섰지만, 아이는 웅크려 앉아서 그 시체를 여러모로 조사했다.

"이런 숲을 돌아다닐 복장은 아니군요. 숲 밖에서 사람을 습격해서 여기까지 물어온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이 늑대들은 숲 밖까지 사냥을 나서서, 길손을 습격하고 소굴에 저장하는 습성이 있는 모양이었다.

뒷받침하는 증거는 금세 찾을 수 있었다. 반쯤 부서진 수레를 발견한 것이었다. 죄수를 호송하는 차량이었다.

근처의 굵은 가지에는 죄수복을 입은 시체가 하반신을 잃은 채 걸려 있었다. 늑대 무리가 이 수레를 덮쳐 호송 인원을 잡아먹고, 수레는 여기까지 끌고 온 것 같았다. 코를 찌르는 악취를 견디고, 조사를 위해 아이가 수레 가까이 다가갔을 때였다.

"ㅡㅡㅡㅡㅡ!!!"

날카로운 울음과 함께 흰 늑대 한 마리가 뒤통수를 덮쳐왔다. 매복이었다. 기척을 완전히 죽인 습격이어서, 칼을 뽑을 틈조차 없었다.

아이는 급하게 팔꿈치로 주둥이를 후려쳤다. 뻑! 팔 전체에 둔중한 타격감이 전해졌다. 크게 나가떨어진 늑대는 한 바퀴 풀밭을 구르고 몸을 일으켰다. 녀석도 얻어맞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발톱이 뺨을 길게 긁어서, 오른뺨이 꽤나 쓰라렸다. 얼굴을 찡그리자 핏물이 볼을 따라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와라."

검을 뽑아들고 말했다. 놈은 원을 그리며 옆걸음질치고 있었다. 직각으로 팽팽하게 선 꼬리가 놈의 긴장을 전해주었다. 칼끝 너머로 그 노릿한 동공을 겨누며 아이는 돌격을 기다렸다. 서성이던 놈이 멈추고, 몸을 움츠렸다. 어떻게 보아도 달려들 것 같은 태세여서, 아이는 한 발을 뒤로 뺴고 반격을 준비했다.

"응?"

하지만 아니었다. 놈이 재빨리 뒤돌아 꽁무니를 빼기 시작한 것이었다. 첫 충돌로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걸 깨닫고, 싸우려는 흉내를 내다 틈을 보아 도망칠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다. 아이는 헛웃음을 흘리며 검을 집어넣었다. 보통 영악한 행동이 아니었다.

"따라가죠."

"굳이 따라가야 할까요?"

손수건을 들고 피를 닦아주려 다가오던 다나는, 아이가 성큼 발걸음을 옮기자 의외라는 듯 물었다.

"아마도 그냥 물러선 게 아닐 겁니다. 자기 동료를 부르러 간 거겠죠. 저 놈을 따라가면, 이 놈들의 본거지가 나올 거에요."

그리고 그 곳에, 이 환상을 걷어내고 다음 층으로 향하게 만들어줄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두 사람은 추적을 시작했다. 늑대가 남긴 흔적을 따라 숲 속 깊이 들어갈수록, 녹음은 무성해졌고 빛은 줄어들었다.

응달진 곳에서 괴이쩍은 버섯들이 자라고 있었고, 부서진 수레와 시체가 심심치 않게 발견되었다. 늑대들이 풀섶을 헤치는 발소리와 낮게 깔리는 울음도 이따금씩 들려왔다.

점점 더 놈들의 본거지로 다가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 수레, 마차, 그리고 시체는 전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도처에 널려 있었다. 몇 년은 묵은 듯 두껍게 매달린 거미줄을 칼로 쳐서 끊고, 좁아드는 마지막 길을 빠져나오자 드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찾았다."

일부러 불태운 것처럼 나무 한 그루 없이 탁 트여서, 주홍빛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는 공터였다. 이곳이 놈들의 본거지라도 되는지, 인간에게서 약탈해온 온갖 물건들과 하얀 백골이 담장처럼 쌓여서 공터를 둥글게 감싸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서, 아까 습격해왔던 그 늑대는 빛을 쬐는 중이었다. 아이가 한 발을 내딛자 몸을 돌려 이 곳을 바라보았다. 스릉, 칼을 뽑아들고, 아이는 천천히 그 늑대에게 다가갔다. 검 손잡이의 꺼끌꺼끌한 감촉이 오늘따라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르르, 늑대는 끓어오르는 소리를 내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아이가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뒤로 물러서던 늑대는, 어느 순간 멈춰서서 길게 울음을 내질렀다.

흰 털로 뒤덮인 목울대가 떨리는 게 그대로 보일 정도로 긴 울음이었다. 아이는 재빨리 달려들어 검을 크게 휘둘렀다.

가죽을 찢고 목줄기를 둥글게 관통한 검날은 빠져나오면서 뒤편의 비석에 피를 뿌렸다. 큰 덩치가 무색하게 늑대는 풀썩 쓰러졌다. 놈이 남긴 긴 울음만이 메아리치며 길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허무한데."

아이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싱거운 마무리였다. 그러나 그 중얼거림이 끝나기도 전, 커다란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방금 그 늑대가 남긴 것보다 몇 배는 더 커다란 울음소리였다. 이윽고, 무언가가 높은 곳에서 덮치듯 떨어져왔다.

아이는 급히 다나를 끌어안고 뒤로 물러섰다. 쿵! 두 사람이 몸을 피한 곳에 착지한 것은, 커다란 늑대였다. 지금까지 이 숲에서 보아왔던 늑대보다도 한층 더 거대했다.

"이 놈이 우두머리인가?"

명백했다. 몸뚱이가 집채만한 이 놈은, 온 몸의 털을 곤두세운 채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곳에서 졸개들이 먹이를 구해오길 기다리다가, 아까 그 놈의 울음소리를 듣고 모습을 보인 것이 틀림없었다.

아이는 천갈궁을 밀어넣고 레바테인을 불러내서, 가볍게 휘두르곤 양 손으로 맞잡았다. 우두머리 늑대는 한쪽 발로 바닥을 연신 쓸면서 때를 기다리다가, 달려들었다.

아이가 뛰어든 것도 동시였다. 빨간 혀뿌리가 보일 정도로 크게 벌어져 덮쳐오는 주둥이를 붙잡고, 펄쩍 뛰어올라 목덜미에 레바테인을 깊게 쑤셔넣었다. 뼈 깊숙이, 단단하게 검날을 쳐박은 느낌이 손 끝으로 전해졌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우두머리 늑대는 괴성을 내지르며 뛰기 시작했다. 목 옆에 매달린 아이를 떨어뜨리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순식간에 공터의 끝까지 내달린 늑대의 머리가 낡은 마차와 세게 충돌했다. 유리창이 깨지고 널빤지가 흩날렸다. 아이는 그 충격을 견디고, 레바테인의 손잡이를 더 세게 쥐어잡았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충돌에도 아이가 떨어지지 않자, 우두머리 늑대는 비스듬히 몸을 눕혀서 달리기 시작했다. 아이의 발이 쓸리면서 흙바닥에 닿아서, 검은 흙과 돌조각이 마구 튀었다.

이 거구에서, 그리고 속도에서 뿜어져나오는 힘은 보통이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튕겨나갈 것 같았다. 레바테인을 뽑아내려고 해도, 어찌나 깊이 쳐박혔는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늑대가 바위 옆을 스쳐지나갈 때, 아이는 결단을 내렸다. 이대로, 사과를 깎듯이 목을 베어버리자는 결심이었다.

"흡!"

검날에 신기를 가득 밀어넣고, 바위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뼛속 깊이 쳐박힌 채, 꿈쩍도 않던 레바테인은 그러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목뼈까지 통째로 베어낸 것이었다. 레바테인의 검붉은 칼날이 지나간 틈을 따라 더운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늑대는 발광하며 사방에 머리를, 몸뚱이를, 이빨을 부딪히고 난동을 부렸다. 그 여파로 박살난 바퀴가 다나에게 튀어서, 다나는 황급히 머리를 수그렸다. 그 와중에도 검날은 계속 전진해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 검은 목을 완전히 꿰뚫고 피를 뿌리며 하늘로 치솟았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단말마가 길게 울려퍼지고, 거대한 늑대의 머리는 피를 쏟으며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머리를 잃은 늑대의 몸은 기우뚱하더니, 곧 쿵 소리를 내며 힘없이 쓰러졌다. 돌조각과 흙먼지가 크게 솟아올랐다. 아이는 뺨에 튄 피를 소매로 슥 닦으면서 바닥으로 내려왔다.

'미숙했군. 나였으면 처음 찔러넣었을 때, 그 때 끝장냈을 거다.'

"참 대단하시네요."

뒤늦게 들려오는 선주의 말에 대꾸하며, 아이는 안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다나에게 다가갔다. 꽤나 무서울 만한 적이었는데도, 아이를 굳게 믿고 있었던 듯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둘이 뒤엉켜 싸우는 동안, 이 장소를 조사해 무언가를 발견해냈을 정도였다.

"저 너머에서 스승님의 것을 닮은 마력이 요동치는 걸 발견했어요. 가보죠."

다나는 아이의 손을 붙잡고 공터 너머의 샛길로 이끌었다. 백골과 잔해가 뒤섞여 만든 담장 사이에, 유심히 보지 않으면 놓칠 수밖에 없는 작은 길이 뚫려 있었다. 언제부터 쌓인 것일지도 모를 낙엽으로 덮여 있는 내리막길이었다. 조심히 내려가던 두 사람은, 곧 그 끝에 놓인 것을 발견하고 멈춰섰다.

"이건?"

그 끝에 있는 것은 반쯤 부서진 수레였다. 친숙한 모양이었다. 밥을 짓기 위한 화구가 설치되어 있었고, 손님을 받기 위한 이동식의 의자도 널브러져 있었다. 이건 다이너였다. 한때 다나가 몰면서, 음식을 팔던 그 노점이었다.

"여기, 여기서 느껴져요."

그 가장 큰 화구는, 뚜껑으로 덮여 있었다. 아이는 조용히 그 은색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쏟아져나오는 빛에 눈을 찡그렸다. 그 속에서는, 부정형의 무언가가 황금빛을 내뿜으며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스승님의 혼..."

틀림없었다. 농도나 세기로 보아, 전체는 아니고 일부. 부서진 블뢰유의 조각 중 하나가 틀림없었다. 다나는 홀린 듯 그 금빛의 무언가에 손을 가져다댔다. 계승을 위해서였다. 물이 종이를 만난 것처럼, 부정형으로 빛을 방사하던 혼은 움직임을 멈추고 빨려들어갔다. 마력의 급격한 이동에, 거센 돌풍이 일어나 다나의 분홍빛 앞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응?"

신비한 일이 일어났다. 혼을 중심으로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어떤 광경이 비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쩐지 알 수 있었다. 그건 기억이었다. 천 년 전의 블뢰유, 제국을 세운 파계 율사가, 이 장소에서 겪었던 기억. 아마도 마술이 풀려나가면서, 왜 이 기억이 최악의 기억 중 하나로 남았는지를 보여주는 모양이었다.

'윽...'

선주가 작은 신음을 흘렸지만, 넋이 나간 듯 그 기억을 들여다보던 아이는 눈치채지 못했다. 거기에는, 어째서 이 수레가 여기에 망가진 채 널브러지게 되었는지, 그 과정이 재생되고 있었다.

천 년전, 파계 율사는 이 북서 자치령을 헤매고 있었다.

아직 고위 마술사가 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가난하고 힘없는 채로 대륙을 유랑하는 신세였고, 이 다이너로 생활비를 벌며 호위도 없이 포교를 하는 신세였다.

그래서 이 곳을 헤매던 블뢰유는 저 늑대에게 수레째로 포획되고 말았고, 이 자리에서 한 끼 식사가 될 것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뭐야, 생존자가 있었나? 재수도 좋군."

그리고, 누군가가,

저 우두머리 늑대를 베어 죽여서,

구해주었다.

"이건 언제 만든 거냐? 답례로 받아가마."

기억 속에서, 늑대를 베어죽인 산발의 남자는 멋대로 다이너의 부서진 찬장에서 주먹밥을 꺼내곤 주저앉았다.

생긴 모습은 좀 달랐지만, 그 분위기로 알 수 있었다.

그건 선주였다.

저 금빛의 혼이 지나가는 길 뒤에서는, 절명한 늑대의 목에서 칼을 뽑고, 저벅저벅 블뢰유에게 걸어가는 선주의 모습이 재생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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