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250화 (250/279)

42. 행복 ( 7 ) 처음에 그것은 한 마리의 새처럼 보였다.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구름의 틈새에서 빠져나와, 어둑한 하늘에 밝은 궤적을 남기며 둥글게 맴돌았다. 봄을 맞은 제비처럼 힘차게 선회하던 그것은 이내 육안으로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아셀라이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건 천사였다. 아탕칼리의 천사가, 옷자락을 꼬리처럼 길게 나풀대며 뿔피리를 불고 있었다.

어두웠던 평원이 환하게 밝아왔다. 먹장구름의 틈새가 연이어 벌어지고, 둥글게 뚫린 수십 개의 틈새마다 세찬 빛이 비스듬히 쏟아졌다. 그 빛의 길을 밟으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천사들의 군대가.

은하수가 쏟아져내리는 듯했다. 은빛 사슬과 낫, 새장 따위를 움켜쥔 천사들 수천이 정연하게 간격을 맞추어 하늘길을 따라 걸어내려오고 있었다.

서쪽 연안부터 극동의 산맥까지, 모든 교구의 성직자들을 다 불러모아야만 이룰 수 있는 규모였다. 그들로부터 우박처럼 떨어져내리는 광휘에 눈이 멀어서, 들판의 괴물들은 팔을 들어 눈가를 가리고 신음을 흘렸다.

그 하늘의 군세 가운데서 유난히 밝게 빛나는 천사가 있었다. 그 손에 올라타 성호를 긋는 사람, 그 진지한 얼굴을, 아이는 이 자리에서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마레였다. 어제 말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저 하늘에서 함께하고 있었다.

아지프도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다시 한 번 시뻘건 빛이 황폐한 벌판 가득 점멸하며 포격을 준비했다. 그 포구가 이번에 노리는 것은 천사들이었다. 땅에 난잡하게 그어진 호와 선을 따라 붉은 빛이 달리고, 마법진 위에선 불길한 핏빛 광채가 아지랭이처럼 피어올랐다. 그 흉험한 불길은 금방이라도 치솟아 저 천사들을 꿰뚫고 격추시킬 것만 같았다.

"그대에게 선고한다!"

그러나 성난 외침이 그것을 가로막았다. 장례 미사의 찬송가처럼, 은은한 분노를 품은 낭랑한 목소리가 들판 가득 퍼졌다.

율사들의 합창이었다. 구름이 완전히 걷힌 자리에선 법문이 빛나고 있었다. 하늘의 천장을 덮는 뚜껑이라도 되는 것처럼, 저 높이 떠오른 수십만 자의 법문은 둥글게 맞물려 고리를 이루어 우아하게 회전했다.

율사들이 주문을 완성하자, 그 법문으로부터 금빛의 사슬이 쏟아져 아지프의 마술사들을 휘감았다. 동심원을 그리며 커져가던 붉은 빛은 유리처럼 산산히 부서지고, 마술사들은 사지를 결박당한 채 몸부림쳤다. 이제 더 이상 포격은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천사들의 존재감 넘치는 등장은, 방심을 유도해 이렇게 몰아붙이기 위한 포석이었다.

컨쿼러 뒤편에서 또 한 무리의 군대가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율사들과, 율사를 지키기 위해 짝지어 선 집행관들이었다.

하늘에 부유하는 저 금빛의 법문 아래서, 율사들이 내뱉는 선고의 힘은 몇 배나 강력하게 증폭되었다. 저 법문은 원래 성녀 호노레 블뢰유가 그려내던 것이었다.

그녀의 죽음과 함께 소멸한 줄 알았던 그 마술은, 지금 그 제자의 손에서 다시금 훌륭하게 완성되어 모두를 감싸안을 황홀한 빛을 뿌려대고 있었다.

군세의 전면에 나선 율사와 집행관의 무리, 그 선두에는 다나가 있었다. 품에는 블뢰유의 유품을 꼭 움켜쥔 채였다.

눈이 멀어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 텐데도 그 몸짓엔 흔들림이 없었고 표정은 의연했다. 그녀는 선두에서 당당하게 발을 내딛고, 높이 손을 들어올리며 외쳤다.

"악을 징치하기 위한 축복을!"

집행관들은 일제히 검을 뽑아들었다. 돋아난 창검의 숲에 율사들의 마술이 깃들고, 검날 역시 일제히 금빛으로 번쩍이기 시작했다.

한 줄기의 마술이 언덕을 타고 흘러들어 아셀라이의 검에도 휘감겼다. 나비검이 따뜻한 상아색으로 빛나며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다.

이 마술에는 치유의 힘이, 더러운 것을 정화하고 기운을 북돋는 힘이 담겨 있었다. 피와 오물로 범벅되었던 그녀의 얼굴이 씻은 듯 말끔하게 닦여가고, 머리칼은 윤기를 되찾아 부드럽게 물결쳤다. 넋을 잃은 듯, 언덕 아래에 집결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아셀라이는, 툭 이런 말을 던졌다.

"아, 그런가."

꿈을 꾸는 듯한 목소리였다.

"이것이, 진정한 십자군인가."

"아뇨. 아직 남았어요."

아이는 엷은 미소로 말했다. 그 때, 날카로운 괴성이 저 편에서 울려퍼졌다. 또 하나의 환골탑이 부서지고, 또 한 마리의 용골귀가 태어나 비명을 내지른 것이었다. 그것은 길따란 몸을 구불거리며 곧바로 아이와 아셀라이가 있는 언덕으로 날아들었다. 아가리를 벌려 톱니처럼 지저분한 이빨을 드러내고, 두 사람을 집어삼키려 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그러나 그 시도는 더 큰 아가리에 짓씹혀 좌절되었다. 벼락처럼 한 마리의 용이 뛰쳐나와서, 용골귀의 목을 물어뜯고 바닥에 쳐박은 것이었다.

용골귀의 목뼈는 단숨에 박살나 사방에 뼛조각을 흩뿌렸고, 잠시간의 무색한 발버둥 끝에 절명했다. 새롭게 덮쳐든 용은 여유롭게 입가에 남은 뼛조각을 씹으며, 푸른 불꽃을 콧김으로 흘렸다.

그 아름다운 묵빛의 몸뚱이는 서예가의 붓처럼 유려하게 꿈틀댔다. 그 용은 아이도, 아셀라이도 익히 알고 있는 용이었다.

천교룡 타스하. 카나기의 학장을 상징하는 용이, 구원군을 돕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 도착해 있었다. 타스하 뿐만이 아니었다.

숲과 그늘에 몸을 숨기고 있던 용들이 일제히 날아오르고, 불과 천둥을 내뿜어 아지프의 군세를 불태웠다. 카나기의 용군단이었다. 아이와 아셀라이를 힐끗 쳐다본 타스하는 휙 몸을 돌려 마술사 하나를 집어삼키고 포효를 토했다.

"먼저 재미 좀 봐야겠구나, 사제야."

타스하의 이마에는, 그 교목처럼 우거진 뿔을 붙잡고 선 레고르가 있었다. 아이의 곁을 스쳐지나가며 레고르는 이죽거리듯 말했다.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레고르는 타스하를 몰아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수십 마리를 헤아리는 용들이 그 맹렬한 상승을 뒤따랐다. 폭포가 거꾸로 치솟는 듯한 광경, 또 하나의 장관이었다. 아이는 멀어져가는 레고르를 올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저들도 왔습니다."

가장 비협조적이었던 카나기조차 가진 모든 전력을 몰아 싸움에 합류한 것이었다. 이것은, 어쩌면 오늘 이 들판에서 일어났던 모든 기적보다도 더 돌연한 기적일지도 몰랐다.

어느덧 노을은 완연히 저물었다. 지평에 매달린 황혼은 들녘의 저편으로 녹아내리며 눈부신 빛을 뿌렸다. 마지막 햇빛은 오렌지색으로 강렬했다. 검, 창, 사슬, 창살, 들판에 널린 금속들은, 최후의 햇살을 빨아들여 가지런히 반사했다. 그 수많은 각양각색의 빛 속에서, 아셀라이는 아이의 팔에 어깨를 기댄 채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평원을 죽 둘러보았다.

방금 전까지 죽음과 절망으로만 가득했던 평원. 그러나 지금 그 위에는, 가장 치열하고 순수한 열정이 가득 피어오르고 있었다.

처음 검을 잡던 날 꿈꾸었던, 누군가를 지키고 싶다는 소망.

그 긍지를 손에 쥔 자들의 군대가.

쉼없이 진군해온 그들은 어느새 아셀라이와 아이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그들이 내딛는 발걸음소리는 아셀라이의 귀에 어떤 행진곡보다도 감미롭게, 또 웅장하게 들렸다. 아셀라이는 힘차게 바닥에 꽂힌 나비검을 뽑아들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정신을 놓고 무너질 것만 같았지만, 지금은, 이 군세와 함께라면, 언제까지라도 싸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총원!"

우렁찬 목소리가 아셀라이의 귓전을 때렸다. 이 또한 익숙한 목소리였다. 나사렘에서 만났던 성기사, 올슨이 틀림없었다. 그는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목소리를 끌어모아서, 들판의 모두에게 무언가를 권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고되게 선봉을 지켜준 인마궁께 경의를!"

그리고 그는 검을 들어 심장 가까이에 댔다. 의례, 명예로운 자에게 바치는 성기사들의 의식이었다. 올슨은 다시금 소리쳤다.

"찬란한 인간의 의지에 경의를!"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제각각의 믿음으로, 세력으로 갈라져 도열한 수만 명이, 하나 된 듯 아셀라이를 향해 의례한 것이었다.

율사들도, 용병들도, 카나기의 무반들도, 예외 없이 자신의 검을 들어 심장에 포개었다. 아셀라이는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지난 백 년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 백 년, 아니 천 년을 살더라도, 다시는 보지 못할 풍경이었다.

"경의를."

넋을 잃은 듯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셀라이의 곁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렸다. 아이였다. 이 아름다운 소년 역시 맑은 미소를 지으며, 천갈궁을 들어 의례를 표하고 있었다. 아셀라이는 곧 자신이 이것을 받아주어야만 의식이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떨리는 손으로 검을 심장 가까이에 맞댔다. 참으로 오랜만에, 검날을 타고, 맥박이 충실한 떨림을 전해왔다.

그것이 신호였다.

"진격!"

누구에게서 터진 것인지도 모를 함성이 터지고, 군세는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 선봉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서로 질 수 없다는 듯, 석양을 등지고 언덕을 내달려 앞으로, 또 앞으로 전진해나갔다. 아셀라이는 어느새 전력을 다해 내달리고 있었다.

뺨을 매만지고 몸 속으로 스며든 찬 바람이, 계속해서 심장에 박차를 가하며 생명력을 보충해주었다. 흘깃 옆을 쳐다보았다.

자신의 바로 옆에선 아이가 달리고 있었다. 그 표정은 더없이 진지하면서도, 순수해 보였다. 자신의 표정도 저럴 것이라고, 저랬으면 좋다고 생각했다. 그저 올곧게 내달릴 수 있었으면, 말도 없이, 두 발로 대지를 박차며, 한 줄기의 바람이 된 것처럼, 마침내 어떤 두려움도 흔들림도 없이...

"ㅡㅡㅡㅡㅡㅡㅡㅡ!!!"

두개골을 덧대 만든 거대한 마골귀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집채만한 마골귀는 두 사람을 집어삼킬 정도로 기다란 그림자를 드리웠다. 하지만 아이는 멈추지 않았다. 달리던 경로에 삐죽 솟아난 요철을 밟고 뛰쳐올라, 허리힘을 가득 더해서, 그 두개골에 커다란 일격을 먹였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천갈궁의 예리한 검날은 정수리를 쳐부수고 훌륭하게 쳐박혔다. 비명이 울려퍼지고, 뼛조각이 휘날렸다. 마골귀의 머리는 깔끔하게 반으로 쪼개져, 좌우로 힘없이 굴러떨어졌다.

쿵! 두개골은 바닥에 부딪히며 굉음과 흙먼지를 일으켰다. 바로 다음 순간, 아셀라이의 나비검이 수백 개로 갈라져 예리하게 빛나며 흙먼지를 가르고 쏘아져나갔다.

피가 튀어오르고, 흙먼지 속에서 연이어 비명이 울려퍼졌다. 마골귀를 앞세워 매복하던 마술사들의 비명이었다. 먼지가 가라앉아 개인 공터에는, 수십 구의 시체와 커다란 마골귀의 잔해 하나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 공터 한 가운데에, 아셀라이와 아이는 등을 맞대고 섰다. 맞댄 등으로 서로의 온기가 전해져왔다. 수백 마리의 괴물이 두 사람을 둥글게 포위하고 있었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아셀라이는 그중 가장 커다란 용골귀를 검으로 지목하며, 호기롭게 외쳤다.

"와라!"

그 외침을 시작으로, 모든 것을 결정지을 싸움은 드디어 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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