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265화 (265/279)

44. 선택 ( 5 )

아이는 관 속에서 눈을 떴다.

그 때 보았던, 텅 빈 두 개의 관 중 하나에 들어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잿가루가 입안 가득 들어가 있었다. 좁았지만, 아이는 그 석관 안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의 자궁처럼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관 속에서 중얼거렸다.

"어머니..."

거의 들리지도 않을 희미한 중얼거림이었지만, 더욱 조용한 장례탑 내부였기에 크게 들린 모양이었다. 그 목소리를 듣고, 누군가가 석관의 뚜껑을 벌컥 열어젖혔다.

"뭐야, 일어나 있었군. 나오게. 승강기는 출발해야 한다네."

아이는 비틀거리며 관에서 빠져나왔다. 그러자,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승강기가 위로 치솟기 시작했다. 털썩 승강기에 주저앉은 아이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왜... 나는 그때, 죽지 못했을까요. 왜 그 사람들은, 저를 살렸을까요."

"무슨 말인가?"

"그냥, 이런 선택을 하느니... 그 때 죽는 편이. 모두에게 좋았을 텐데."

아잘록은 묘한 표정으로 아이를 들여다보았다. 어떤 떄를 말하는 것인지 짐작하기 힘들었다. 그만큼, 아이의 삶이란 죽음의 경계선을 밟고 건너온 것이기에.

"무언가, 고민하는 게 있나?"

"당신과 나눌 이야기는 아닙니다."

"섭섭하군. 나는 분명히, 자네를 위한 조력자인데 말일세. 보게, 이렇게 자네의 마음 속 깊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 사실은 증명 가능하지 않나."

"닥치세요."

하지만, 아잘록은 끈질기게 말을 걸어왔다. 또 이 치솟아오르는 승강기의 꿈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아잘록과 대화를 나누어야만 끝이 나는 모양이었다. 아이는 한숨을 내쉬고, 조그맣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요. 꼭, 죽여야만 한다고."

아잘록은 흥미롭게 륜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모든 말을 마친 아이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다시금 중얼거렸다.

"그녀는, 자애의 외신이니까. 사랑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서... 모략으로 세상을 구하려고, 육체를 받았으니까... 이해를, 하려고 해도."

"아니, 그녀는 인간일세."

어딘가 변명하는 듯란 아이의 말에, 아잘록은 딱 잘라 말했다. 아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아잘록과 눈을 맞추었다. 그러나, 아잘록의 눈은 이미 아이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열정으로 들끓고 있었다. 길 아잘록을 평생토록 사로잡아온, 그를 유일하게 흥분시킬 수 있는 열정. 학문에 대한 열정이었다.

"인간?"

"인간처럼 사고하고 인간처럼 불완전하다면, 신의 예지든 신의 지식이든, 그래. 아무리 훌륭한 도구를 가지고 있어도 그저 인간에 불과하지 않겠나."

아우렐리우스의 말과, 그리고 륜의 말과 닮아 있지만 달랐다. 그 전제에는 인간에 대한 비틀린 정의가 깔려 있었다. 아이는 물어보았다.

"당신의 인간에 대한 정의를 듣고 싶군요."

"글쎄. 나는 인간을 말이야. 사랑받고 싶어서 행동하는 생물이라고 생각한다네."

그 입에서는, 아잘록과는 평생 연이 없을 것 같은 단어가 튀어나왔다. 아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아잘록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아잘록은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이야기를 이어갈 뿐이었다.

"낭만이라도 기대하는가? 아쉽군. 저 정의에는 낭만적인 의미는 전혀 없다네."

"그럼, 뭐죠."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인간을 가정해보는 게 어떤가. 그래, 부모가 누군지조차 모르는, 완전히 격리된 인간 말일세."

아잘록은 승강기 위를 거닐면서 말을 시작했다.

"어떤 언어도 교육받지 못하고, 어떤 인간과도 접촉하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또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는. 무균실에 갇혀 배양된 인간을 가정해보잔 말이야. 그럼, 그 인간이란 그저 짐승과 다를 바가 없겠지."

아잘록의 말은 점점 더 빨라졌다.

"무엇이 그것을 인간의 상태로 끌어올리는가?"

중요한 것인지, 아잘록은 이 질문을 두 번 읊조렸다. 학구열에 빠졌을 때의 그의 버릇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사랑하고자 하는 본성일세. 그리고, 그 본성이 형태를 얻은 것이 바로, 국가지."

"국가?"

길 아잘록이 언젠가 국가에 대한 소고를 썼던 것이 떠올랐다. 아이는 분명히 그 소고를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지금 아잘록의 이 정의는, 그때의 그 이론과 연이 닿아 있는 듯했다.

"국가는 인간의 사랑하고자 하는 본성을 악랄하게 착취하고, 또 가학하며 스스로의 구조물을 쌓아가기 마련일세. 그것이 짐승을 인간으로 끌어올리는 게야."

그 때 했던 말의, 조금 더 자세한 판본이라고 보아도 좋았다. 그 관찰은 굉장히 생경한 것이었다. 마치 인간 아닌 어떤 이성적 존재자가 인간을 관찰하고 쓰는 것 같은 어조로, 아잘록은 말을 이어갔다.

"인간의 삶은 연기다. 무언가에게서 호감을 얻고, 사랑받고 싶기에 스스로를 연출하고 검열하지. 스스로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것이라는 것, 누군가에게는 호감을 살 것이라는 걸 의식 아래에서도 예리하게 계산하며 행동한다. 그 원리는 모든 인간 행동의 밑바닥에서, 강처럼 도도하게 또 끊기지 않으며 흐르고 있어."

그 작동은 떄로 무서울 정도일세. 아잘록은 중얼거렸다. 그의 말은 점점 더 거세고 빨라졌다.

"그 연기를 걷어내면 인간은 그저 자신의 방에 갇힌 채 외롭다고 짖어대는 짐승에 불과하단 말이야. 인간이 자아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저 스스로도 속여넘길 정도로 정교하게 조각해낸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에 불과하다. 그리고..."

아잘록은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았다. 거꾸로 뒤집은 무저갱처럼, 천장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한없이 고여 흘러내리는 어둠만이 보일 뿐이었다.

"국가는 그 '사랑을 주는 누군가'의 형상을 조각하고, 또 주입하지. 일종의, 사도매저키즘일세. 인간은 나약한 존재라서, 누군가가 그 '사랑을 줄 형상'을 조각하고 제시하고 이끌어주기를 기대하고 있어. 국가는 그 불완전한 존재자의 피학증에 응답하는 가학자일 뿐이야."

"가학증..."

아이는 잠시 중얼거렸다. 열띤 목소리였던 아잘록의 말은, 점점 더 차갑고 음울하게 식어갔다.

"인간의 모든 문화와 지성이라는 것은 이 욕구가 누적되고 누적된 끝에 형성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저주 같은 사랑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아직까지 이 본질에서 벗어난 이상적인 국가가 없었던 이유?"

아잘록은 조소하듯 자문자답했다.

"수천 수만 명은 되었을 제왕 중에 진정으로 긍휼한 자가 없어서도, 무욕한 자가 없어서도 아닐 터다. 그저 인간이 불완전하기에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자신은 그것이 될 수 있으리라 믿으며, 그 피학과 가학의 사슬에 발을 들이미는 순간..."

길게 회전해온 아잘록의 말은 드디어 최초의 통찰과 연결되었다. 아잘록은 발을 멈추고, 아이를 돌아보며 단언했다.

"그것은 신이었든, 정령이었든, 그 아닌 어떤 초상적인 것이었든. 그저 인간에 불과하지."

"그래서 륜이 인간이라고 하는 겁니까. 당신은 인간이라는 말을 참 부정적으로 쓰는군요."

"그래. 부정적이지. 그래서 나는 국가 없이도, 타자 없이도, 그 혼자뿐이라도... 그저 맑고 완벽한 초인을 만들고 싶었다..."

아잘록은 공허하게 중얼거렸다. 그 광증의 내용을 아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몸에 들러붙은 석관의 먼지를 털어내고, 아이는 씹어뱉듯이 말했다.

"당신 말에 반례가 있군요."

"반례?

"저요."

그 말에 아잘록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아이는 여전히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이 가정한 사람이 세계에 실존한다면, 그건 저일 겁니다. 저는 실험실에 갇혀서 태어났어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고, 어머니도 아버지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사랑받고 싶은 자아상도, 진정으로 소속된 국가도 없어요."

"호오."

"하지만 나는, 무엇이 옳은 일인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 말에 아잘록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더없이 흥미로운 말을 들었을 때 그가 짓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뭉개고 싶어서, 아이는 더 거세게 말했다.

"그 탑에서 막 나왔을 때도, 전장의 시궁창과 감옥을 헤매던 때에도, 내 이름조차 없었을 때에도. 나는 분명히 인간이었습니다."

"그런가. 그건 대단하군."

하지만 아잘록의 미소는 사라질 줄을 몰랐다. 오히려 기대감에 고양된 듯한 표정이었다. 그 마술사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말일세, 자네의 의지를 믿는 게 맞지 않겠나?"

"예?"

아잘록이 어떤 말을 꺼내는 것인지 금세 이해하지 못했다. 잠시 후에야 이해했다. 아잘록은, 아우렐리우스의 대안과 륜의 대안,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네의 삶은, 수없이 갈라지는 양갈래길 위에서 시작되었지. 언제나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양도의 난문과 마주해왔어. 그 때마다, 자네는 어떤 선택을 했었나?"

"아."

과연, 정신적 산파라는 말이 그냥 꺼낸 말은 아닌 듯싶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떤 대안이 아이의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둘 중 누구의 대안도 아닌, 아이의 대안이었다. 잠시 그 생각에 빠져 있던 아이는, 결함을 발견하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약해져서, 하루의 절반은 잠에 빠져 움직이지도..."

"내가 도와주겠네."

아잘록은 미소를 지으며 제안해왔다.

"자네가 잠에 빠져 있는 동안, 단순한 육체의 조작 정도는 내가 해줄 수 있다네."

륜을 습격했던 때의 사건에서 이미 증명된 사실이었다. 아이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아잘록을 쳐다보았다.

"무슨 헛소리죠. 결국 당신도, 이런 식으로 정신을 좀먹어 제 몸을 삼키려는 생각이었습니까?"

"그런 생각은 추호도 없지."

아잘록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부정했다. 그는 거짓말을 못 하는 몸이었다. 정말로, 선주처럼 몸을 차지하려 들 생각은 없다는 뜻이었다.

"자네가 싸움과 무관한 시간을 보낼 때에는, 내가 몸을 움직여 주겠네. 자네는 그저 싸움에 골몰하기만 하면 돼. 그럼, 자네의 대안은 충분히 실천 가능하겠지."

"그건..."

"맹세하지. 내가 자네의 몸을 조종하더라도, 자네의 의지에 반하는 행동은 단 하나도 하지 않겠네."

맞는 말이었다. 아이는 잠시 흐릿한 눈을 했다. 아잘록의 언어는 계속해서 아이가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만을 들려주고 있었다. 그만큼, 아이는 다나도, 마레도, 민중도. 누구도 죽이고 싶지 않았다. 이미 아이의 마음은 기울고 있었다.

"알 텐데. 나는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몸이라는 것을."

"그러면,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물어보게."

"왜 나를 도와주려는 겁니까? 당신의 계획을 무산시키고, 목숨을 앗아간 나를."

그 말에 아잘록은 기다렸다는 듯,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진보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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