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278화 (278/279)

46. 화해 ( 3 )

당돌한 선언과는 다르게, 도슨은 한참이나 입을 열지 않았다. 어떤 말로 말을 시작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 것 같았다. 머리를 긁적이던 그는 한숨을 푹 내쉬고 말했다.

"어떤 멍청하고 버릇없는 고아새끼 이야기인데."

그것이 도슨 본인을 가리킨다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도슨은 나지막한 어조로 말했다.

"뭐, 태어날 때는 당연히 고아가 아니었지만. 전쟁 때문에 부모를 잃은 고아새끼 이야기다. 그래, 전쟁 고아였어. 흔한 이야기지. 전쟁으로 집도 뭣도 없어진 애새끼들이 부랑아짓을 하면서 먹고 사는 거. 그런데, 그 고아는 조금 운이 좋았다. 어쩌다가, 좋은 사람한테 거두어졌어."

"그런,가요."

어쩐지 자신들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데가 있어서, 아이는 자그맣게 추임새를 넣었다.

"좋은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이었죠?"

거기에 힘을 얻었는지, 도슨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기나센에 사는 사람이었다."

그 말에 다나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미 빛을 잃어 탁한 유백색이 된 그녀의 눈동자가 드러났다.

"그 나라의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그 사람도 용병이었다. 그래, 용병. 전쟁에 몸을 파는 놈들. 그때의 나는 용병 따위가 날 거두어줄 거라고는 생각을 안 했어. 우리 부모님을 죽인 놈들도 용병이었거든."

어떤 예감 같은 것이, 다나의 등줄기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는 자그맣게 식은땀을 흘렸다. 제도에 있던 무렵, 그녀는 정보부를 동원해 무언가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분명히 이건 거짓말이다. 이 새끼는 좋은 사람인 척하는 개새끼고, 나를 노예로 팔아먹으려는 거다. 뭐, 그렇게 생각했지."

칼슨. 그 바보처럼 착했던 사람이 맡아 기르던 아이의 행방을.

"그래서 지갑을 훔쳐서 달아났다. 그리고, 병신같이 걸렸지."

그 종적은, 분명히, 북서 자치령에서 끊겼다.

"걸렸는데... 그런데, 용서해줬어."

다나는 아이의 어깨를 붙잡았다. 온 몸이 떨려서, 그렇지 않고서야 상체를 가눌 수조차 없었다. 도슨은 잠시 물끄러미 그런 다나를 쳐다보더니, 머리를 긁적이고 말을 이어갔다.

"이 아저씨, 용병인데 이래도 괜찮을까. 전쟁터를 누벼야 하는 사람이 이렇게 순진해서는, 언젠가 뒤통수를 맞아서 죽을 텐데. 그렇게 생각했지. 아무튼, 그렇게 나는 그 사람의 양자가 됐다."

아이는 자신의 몸에 전해지는 다나의 떨림을 느끼면서, 조용히 도슨에게 물어보았다.

"그 용병단의 이름을 물어도 괜찮을까요."

"레이븐사이드."

도슨은 즉답했다. 아. 다나는 짧게 탄식했다. 죄로부터는 도망칠 수 없는 것인가. 다나는 아이의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 사람은, 분명히, 모든 것을 알아서, 자신을 추궁하러, 단죄하러 온 것이 틀림없다. 그런 생각이 들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국 그 염려대로였다. 어느 날, 갑자기 전해들었어. 어떤 빌어먹을 자식들이 그 아저씨의 뒤통수를 쳐서 죽였다고."

"아...아."

다나의 신음을 무시하고, 도슨은 사납게 말을 이어갔다.

"그 길로 나는 기나센을 나왔다. 나와서, 세상을 떠돌았어. 복수가 목적이었다. 그 멍청한 아저씨를 위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복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거든."

"그 사람이, 미웠나요."

"그래, 죽도록 미웠다. 내가 있을 곳을 빼앗은 그 자식들이."

그렇게 말하는 도슨의 손에선 단검이 난로의 빛을 반사해 번쩍이고 있었다. 다나는 더 참지 못하고, 무너져내렸다. 정신없이 흐느끼며 사과했다. 자백이나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도슨은 물끄러미 그런 다나를 바라보다가, 의외의 행동을 했다.

"하지만, 젠장. 그만두기로 했어."

화로에 단검을 던져넣었던 것이었다. 단검은 화로 속에서 흔적도 없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 말에, 다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도슨의 흐릿한 형상이 검은 시야 속에서 어렴풋이 보였다. 그것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들어 버렸잖아. 너희 둘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얼마나 괴로웠는지, 그리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럼, 미워할 수가 없잖아."

"아..."

"세상을 위해서, 아주 강한 놈과 싸워야 하는 모양이지?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강한 놈이랑."

단검을 녹여버린 도슨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금 전까지의 대화를 엿듣고, 도슨이 갑자기 모든 것을 밝힌 이유는 이것이었다.

"그 전에 꼭 말해주고 싶었다. 그 고아새끼는, 이미 모든 걸 용서했다고. 그 멍청한 아저씨처럼."

"감사...합니다."

"그게 다다. 그럼."

다나의 인사를 뒤로 하고, 도슨은 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정말로 도슨의 용무는 그것이 다였던 모양이었다. 아이와 다나가 싸움 전에, 조금이라도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도록,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아이는 멍하니 도슨이 사라져간 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이는 자그맣게 신음을 흘렸다.

"그렇군요."

아이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서, 바닥에 떨어진 검에 손을 가져다댔다. 베루스였다. 벌써 오늘, 몇십 번이나 실패했던 일을 다시 시도했다. 검의 손잡이를 붙들고 힘을 불어넣은 것이었다. 베루스의 끝자락에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또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을 질책하던 아잘록의 목소리였다.

'이토록 많은 실패와, 실패와, 실패 밖엔 없었잖나?'

'무의미하지 않았나? 아무런 가치도 없지 않았나?'

지금까지 아이의 일부는 분명히 이 목소리에 굴복했다. 베루스는 그것을 눈치챘기에, 아이를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는 달랐다. 아이는 눈을 감고, 조용히, 하지만 단호하게 답했다.

"무의미하지 않았어요."

운명이라던가, 세계라던가.

그런 거창한 말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어보이는, 그저 철쭉이 아름답게 피는 것 하나만이 자랑인 이 마을에서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의미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작은 오두막에서도, 기적은 일어난다.

사람과 사람이 존재하는 곳에, 무의미한 것 따위는 없다.

'이 세상이 결국 부조리, 불통, 죄와 증오로 가득하다면, 그런 불완전한 다수의 종양이 버글대는 것보다는,'

'하나의 신이 영생함이 옳지 않겠는가.'

또 아잘록의 말이 들려왔다. 그의 사상을 집약한 것 같은 경구였다. 하지만, 아이는 검을 더 세게 쥐어잡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모르죠."

신은 완전하기 때문에 아무런 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고로 신들의 세계에는 용서가 없다. 속죄가 없다. 그저 홀로, 영원히 고독할 뿐이다.

"그렇지만."

사람은 신이 아니니까,

죄를 저지르고, 바보같은 짓을 하고, 서로 오해하고 싸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서로 용서할 수 있어요. 화해할 수 있어요."

다나가 놀란 듯 이 쪽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그 시선을 따라, 자신의 손에 든 베루스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팔을 휘감은 불길은, 하나도 뜨겁지 않았다. 검날 전체에서 넘실거리던 홍염은, 아이가 말을 마치자마자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렇게 불이 가라앉고 드러난 베루스는 완연히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아이에게는 가장 익숙한 검의 형상, 레바테인의 형상이었다.

그 검면에는 여섯 개의 글자가 빛나고 있었다.

"아하스 베루스."

당신은 스스로 신이 되기를 포기하고, 영원히 지상에 머무르셨다고 하셨지요. 아이는 그 여섯 글자를 보며 읊조렸다.

"사람의 아들. 불완전하지만, 서로 화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자들의 이름. 그것이 당신의 이름이었나요."

베루스. 그것의 진정한 힘은, 주인의 마음에 내재한 모든 것을 화해시키고, 서로 하나가 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었다.

지금 이 검은, 림을, 선주를, 륜을, 그리고 아이가 마음 속에 품어왔던, 사랑하는 모든 것들의 힘을 이어받아서, 드디어 그 진정한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아이는 레바테인과 똑같은 모습이 된 베루스를 집어들어서, 그 쇳내를 가득 들이마셨다. 베루스는 더 이상 불을 일으키지 않았다. 아이를 주인으로 인정한 것이었다. 그 익숙한 모습은, 아이에게 필요한 마지막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냥, 이 녀석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스스로를 용서하는 것을, 웃으며 살아가는 것을,

긍정할 용기를.

"너... 그건."

다나는 멍하니 아이와 베루스를 바라보고 중얼거렸다. 더 이상 아이의 표정에 불안이나,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아이는 부드럽게 웃으며, 다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자."

우리 둘이 시작한 장소로.

*두 사람은 손을 맞잡은 채 마을을 빠져나왔다.

올빼미가 음산하게 울어댔다. 삭풍이 빈 가지를 할퀴어 으스스한 소리를 흘렸다. 어둠에 가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다나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알집 가까이에 도착하고, 호수에 뛰어들고, 신전 앞에 설 때까지도 그랬다. 왜냐면, 함께였으니까.

아이가 갑자기 멈추었기에, 팔짱을 끼다시피 하고 걷던 다나도 멈추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윤곽을 찾아서, 다나는 아이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말했다.

"왜 그래?"

"아니, 오수가 흘러나오고 있어서."

지금 이 신전은, 다나가 말했던 것보다도 더욱 더 검게 물들어 있었다. 아이는 검은 오수와 살덩이가 뒤섞인 신전의 통로를 바라보며 의지를 다졌다. 저 너머에서, 그것은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지난날의 과오와 절망을 뭉쳐 태어난, 초인의 외신이. 아이는 심호흡을 하고 조심스럽게 발을 움직였다. 그렇게 신전의 입구에 막 들어섰을 때였다.

"잠깐."

다나가, 팔짱을 풀고 달려나가 아이의 앞을 가로막았다.

"왜 그래, 누나."

다나는 망설였다. 예전부터, 어쩌면 아주 옛날부터 준비한 얘기였지만, 꺼내기 쉽지 않았다. 한참이나 말을 고른 끝에, 다나는 이야기를 꺼냈다.

"네 힘에 대해서, 전부 들었어. 마술사를 죽여서 검으로 만드는 거라고 했었지?"

아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베루스의 힘을 되찾으면서, 아이는 림의 아나테마로서의 힘 역시 모두 되찾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직 하나가 남았다고, 그랬지."

그러고 보니, 가미온의 검은 아직 만들지 않았었다. 그 사실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다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예쁘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이미 이런 몸이 되어버려서, 싸울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까, 네 힘이 되어주고 싶어."

"누나."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다나는 그렇게 말하고, 지어보일 수 있는 가장 예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미소로 기억되고 싶었다.

"검이 되어서라도, 너와 싸우고 싶어. 심장을 찔러서, 검으로 만들어 줘. 그러면, 검으로라도 평생 함께 있을 수 있으면, 행복할 거야. 그러니까, 나로..."

온통 어둠으로 물든 다나의 세계에, 갑자기 온기가 피어올랐다. 무언가가 자신을 세게, 아주 강하게 끌어안은 것 같았다. 손을 내뻗어 그 온기에 화답했다. 등을 꼭, 아주 꼭 끌어안은 채로, 다나는 귓가에 들려오는 말을 들었다.

"누나."

"응...응?"

"심한 말을 해서 미안해. 그날 했던 말, 전부 진심이 아니었어."

아이의 속삭임이 귓가에서 들렸다. 강한 압력이 가슴 전체에 전해져왔다. 그 녀석은, 으스러지도록, 세게 자신을 끌어안아주었다.

"사랑하고 있어.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아..."

어쩐지 힘이 풀리는 걸 느꼈다. 행복했다. 이대로 사라져도, 정말로 하나의 여한도 남지 않을 만큼. 다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마주 세게 끌어안았다. 가슴으로 아이의 박동이 느껴졌다.

"혼자 이 세상을 헤매는 동안, 바보같은 짓을 잔뜩 했어. 내가, 너무 싫어졌던 적도 여러 번 있었어.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던 날도 많았어."

아이는 고해하듯 다나에게 말했다. 위로해주고 싶어서,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서, 다나는 그저 껴안은 손에 힘을 더할 뿐이었다. 입을 맞춰주고 싶었다. 더듬거리면서, 목을 붙잡고,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희미한 형체만이 보였다.

"동생을 도와주는 건 누나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지? 누나는 똑똑하니까, 나처럼 헤매지 않고 해낼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갑자기 시야가 맑아오는 것을 느꼈다. 다나는 잠시 꿈을 꾸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자신의 눈 앞 가득 보이는 이 천진한 미소는, 언제나 꿈에서 보아왔던 것이었으니까.

"이걸 가져가서, 세상을 도와줘."

갑자기 되찾은 시야. 그것으로 아이의 미소를 멍하니 올려다보던 다나는, 아이의 말에 따라 자신의 손에 들린 것을 바라보았다. 그 손에는 하얀 색과 분홍 색이 뒤섞인, 아름다운 장신구 같은 검이 들려 있었다.

아직 한 자루가 남은 것은, 가미온의 검만이 아니었다. 블로어, 용광, 그리고 아이가 만들 수 있는 세 번째 검이 남아 있었다. 블로어도, 용광도, 어떤 깨달음을 얻을 때마다 자신을 깎고 잘라서 만들었던 것이었다. 이 검은, 아이가 다나를 위해 만들어준 것이었다.

다나가, 행복했으면, 하고 바랬으니까.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래서 이 검은 치유의 힘을 담았다. 모든 영혼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내가 마지막의 마지막에서야 깨달은 걸, 모두가 잊지 않도록, 쭉 노력해줘."

언젠가의 꼬맹이는 절대로 지을 수 없었을 아름다운 미소로, 그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패배하지 않아. 절망할 수는 있어도, 절대로 패배하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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