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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2화 (3/270)

2화

‘낙원촌(樂園村).’

천일영은 낙원촌이라는 이름이 생소하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흔한 지명이지만 천일영은 낙원촌이라는 이름이 신경 쓰였고, 그 이름이 주는 느낌이 그리운 느낌도 아니고 싫은 느낌도 아니라는 것에 술을 한잔 더 들이켜게 만들었다.

막연하게 머릿속 깊은 곳에 박혀 있는 듯한 느낌이다.

“가서 확인해 보면 될 일이지.”

천일영이 가족들 앞에 나설 일은 없을 것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살아 있든 죽었든 상관이 없었고, 비참하게 살고 있다 해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 생각 역시 없었다.

다만 여동생인 천이영은 제대로 사람답게 살아 있기를 바랐다.

어릴 때의 기억이 자꾸만 떠올랐다.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으려 했고, 잠을 잘 때도 한번 잡은 손을 아침까지 꼭 쥐고 있던 여동생이었다.

천일영 역시 여동생이 너무도 소중하고 귀여워서 무척이나 아끼고 예뻐했다.

무덤덤해 보이는 천일영이었지만 사실 천일영은 여동생을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을 무척이나 기대했다.

아픔만 주었던 가족들이지만 어릴 때 천이영이 보여 준 마음은 그 모든 것들을 덮어 주었다.

오빠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여동생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 몸이 약했었는데.’

천일영이 팔려 가기 전날 밤, 열이 심하게 나고 울음을 그치지 않았던 동생의 이마에 물을 적신 천 조각을 올려 주며 천일영은 밤새 눈물을 닦아 주었었다.

밤사이 몸을 괴롭히는 열기에 한숨도 잠을 자지 못한 천이영은, 아침에 인신매매범에게 끌려가는 오라버니를 보자 아픈 몸으로 맨발인 채 뛰쳐나와 아버지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아무리 떼어 놓으려고 인신매매범들이 애써도, 작은 손의 핏줄이 다 터지도록 힘을 주고 천일영을 붙잡았다.

아버지가 날린 손에 코피가 터지고 눈이 찢어져 부어도 천이영은 매달리고, 또 매달렸다.

그러나 겨우 다섯 살의 여자아이다.

애타는 애원도 소용없이, 아버지의 모진 발길질에 얼굴을 수차례나 차이다 피투성이가 되어 정신을 잃었다.

여동생은 정신을 잃고도 오라버니를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천일영은 이를 악물고 스스로 여동생의 손을 떼어 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피투성이로 쓰러진 여동생을 아버지가 또다시 때릴 테니까.

더 이상 여동생의 아픈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천일영은 자신이 떨리는 손길로 떼어 내던 피투성이의 여동생 손이, 지금도 손마디에 각인된 듯 박혀 지워지지 않았다.

맑은 하늘에, 구름 몇 점이 그림자를 만드는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작은 어촌 마을이 나타났다.

점소이가 말한 이십 리가 거의 다 되어 갈 때쯤이었다.

‘낙원촌(樂園村).’

작은 판자때기에 누군가가 휘갈겨 쓴 글씨가 마을의 초입에 서 있다.

“이곳은…….”

천일영은 왜 낙원촌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은지 깨달았다.

빈민촌에서 살고 있던 일곱 살의 천일영은 글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어릴 때 본 낙원촌이라는 글자의 형태만 기억할 뿐이었다.

그 기억이 제법 선명했던 모양이다.

낙원촌이라고 쓰여 있는 판자를 본 이후 천일영의 기억이 하나씩 이어 맞춰지기 시작했다.

“이곳이로군.”

바람이 전해 주는 비릿한 바다 냄새.

소금기가 가득한 축축한 공기.

그리고 가난에 찌든 냄새.

33년 전과 비교해도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모든 사람들이 포기하고 절망한 채 살아가는 것도 예전과 그대로였다.

“나는 낙원이라 불리는 지옥에서 마교라 불리는 지옥으로 끌려갔던 거였나.”

천일영에게는 이곳이 지옥이었을 테지만 여동생이 있었기에 낙원이었다.

어릴 때부터 천이영은 가난한 생활에 어쩌다 먹을 것이라도 생기면 아버지 몰래 반을 떼어 천일영에게 주었었다.

아버지에게 들키는 것이 무서워서, 구석에 숨어 둘이 나눠 먹는 것이 행복이었다.

“제발 살아만 있어다오. 동생아.”

천일영은 천천히 쓰러져 가는 집들의 담벼락을 손으로 쓰다듬어 가며 기억을 되살려 냈다.

이곳 어딘가에 분명히 그가 살던 집이 있다.

천일영의 손이 집의 벽과 담벼락을 쓰다듬을 때마다, 그의 발이 더럽고 비린내 나는 좁은 길을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조금씩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가야 할 방향을 알려 주었다.

“이곳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분명히 내가 살던 집이 있다.”

천일영은 급해진 마음과는 달리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여동생이 어찌 되었는지,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 너무도 두렵고 떨렸다.

그러나 이내 천일영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 갔다.

집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33년 전의 그것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년아, 빨리 나오지 못해?”

“제발 살려 주세요. 엉엉엉. 제가 잘못했어요.”

“이 X벌 년이 어르신들 기다리는데, 뭐 하는 짓이여? 엉?”

“안 갈래요. 제발요. 제발 살려 주세요.”

“누가 죽인다고 하더냐. 이년아, 동네 창피하게 뭐 하는 짓이여?”

짝!

우는 아이의 뺨을 있는 힘껏 때리는 남자의 모습이 천일영의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

33년 전보다 머리카락에 흰머리가 가득하고 주름이 얼굴을 온통 뒤덮었지만 그 모습은 분명히 천일영의 아버지였다.

아버지라는 인간은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끌어내며 뒤에 서 있는 남자 두 명에게 아이를 건네주려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천일영의 눈이 뒤집어졌다.

‘이 짓을 아직도 하고 있단 말인가!’

“제가 뭐든지 다 할게요. 그러니까 제발 여기 있게 해 주세요. 흑흑.”

천일영의 눈이 우는 여자아이의 얼굴을 향했다.

아까는 산발이 되어 헝클어진 머리가 얼굴을 가려 알아보지 못했지만 지금 보니 분명히 5살쯤 된 여자아이의 모습으로, 어렸을 때 천일영을 그렇게도 따라다니던 동생 천이영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영이?”

천일영의 거친 심장 소리가 한순간에 가라앉으며 냉정해졌다.

분명 저 앞에서 얻어맞는 아이는 천이영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여동생일 리는 없었다.

‘이영이가 아이를 낳았구나. 분명히 내 조카다. 닮아도 너무나 닮았다. 그래서 더 예쁘구나.’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천일영은 33년 전의 자신이 생각나며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저 애비라는 놈이 자신의 손주까지 팔아넘기는 모습을 보고 천일영은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개 놈의 새끼가 아이를 또 팔아?’

파팍!

천일영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주먹이 아버지라는 인간의 얼굴에 꽂혔다.

퍼억!

“나 하나 가지고는 부족했냐? 이 새끼야!”

퍼억!

천일영의 주먹이 또다시 아버지라는 인간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커헉!”

순식간에 뒤로 날아간 천일영의 아버지는 그대로 기절을 했고, 천일영의 살기 어린 눈은 이내 아이를 사러 온 두 남자에게 돌아갔다.

“내 조카한테 무슨 짓이야, 이 새끼들아. 너넨 오늘 다 죽었어!”

천일영의 눈에서 시뻘건 안광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천일영의 신형이 다시 사라졌다.

적어도 인신매매범 이 인조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빠악! 빠악! 뻐억!

뻐억! 뻐억! 빠악!

“크헥!”

“쿨럭. 크헉!”

딱 죽지 않을 만큼, 아니 딱 기절하지 않을 만큼의 통증이 밀려 들어왔다.

인신매매를 하다 보면 온갖 사건에 휘말리기도 하는 법이다.

그 때문에 잦은 싸움도 마다 않고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온 그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서 신형이 사라지며 자신들에게 권(拳)을 날리는 사람은 분명 무림인이었다.

‘무, 무림인이다!’

‘아니. X팔, 낙원촌에 왜 무림인이 있어?’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밑바닥을 훑고 다니는 끝자락 인생의 인신매매범이라 할지라도 내공을 사용하는 무림인이 무섭다는 것은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현청의 포졸은 차라리 괜찮았다.

죽어라 도망가면 운이 좋을 경우 붙잡히지 않았으니 말이다.

“대협! 용서해 주십시오. 저희가 몰라뵙고 실수를 했습니다.”

“어이구. 대협님, 다시는 이런 짓 하지 않겠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시뻘건 안광을 토해 내던 천일영의 날카로운 눈매가 옆으로 천천히 돌아갔다.

제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지 않기를 바랐건만 시선의 끝에는 역시나 웅크리고 앉아 겁에 질린 얼굴로 눈물을 쏟아 내고 있는 이영이의 어린 시절의 모습 그대로의 아이가 있었다.

아이가, 조카가 보는 앞에서 사람을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천일영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 분노를 어디에 풀어야 할지 몰라서였다.

그나마 탈마의 경지에 올라 살심이 사라진 탓에 참을 수 있는 것이지 예전 같았으면 이미 천 갈래 조각으로 찢어 죽이고도 남았을 터다.

“하아…….”

또다시 피 맛에 물들었던 과거의 자신이 속삭인다.

살심이 없어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니라고.

허무하게 가슴 한쪽이 비어 있는 것은 사람을 죽여야만 채워진다고. 하지만 천일영은 이내 조용히 기운을 갈무리하기 시작했다.

살심을 그리워하는 목소리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았다.

단지 사람을 죽이는 감각이 온몸에 각인되어 있을 뿐, 전대의 천마처럼 그 살심에 빠져들지 않았다.

다만 버릇처럼 심장은 분노를 거두는 것이 불만인지 더욱 빨리 뛰며 외치듯 천일영의 온몸으로 계속 피를 내보냈다.

그리고 그것이 계속 손을 떨리게 만들었다.

살심은 없어졌지만 몸의 기억은 손에 피를 적시지 않자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이었다.

“꺼져라. 한 번만 더 이 근처에 나타나면 사지를 찢어 물고기 밥으로 던져 버리겠다.”

“가…… 감사합니다요. 대협님, 감사합니다. 다시는 이 근처에 얼씬도 않겠습니다요.”

“아이고. 그러믄입쇼.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인을 몰라본 죄가 큽니다요. 감사합니다.”

인신매매범 이 인조가 비명 소리와 함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쳐나갔다.

엎드려 빌던 자리에는 오줌을 지린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지만 인신매매범들은 앞섬도 쥐지 않고 오줌을 계속 지리는 채 뒤도 안 보고 달렸다.

목숨을 건지는 것이 창피한 것보다 훨씬 나은 일이다.

그리고 그때 천일영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 대협께서는 뉘신지요?”

천일영에게는 꿈에라도 다시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였다.

언제 정신을 차렸는지 아버지가 천일영에게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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