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신귀환기-3화 (4/270)

3화

귀를 거슬리게 만드는 부스럭 소리와 함께 천일영의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33년이나 지났건만 소름 끼치는 저 목소리는 그대로이다.

어렸을 때 윽박지르고 고함을 지르며 밤새 술주정을 하던 그 목소리는, 무림인이 낙원촌에 와 있는 것이 이상한지 가늘게 떨리며 조심스레 천일영의 몸을 핥듯이 감겨 왔다.

‘떨어? 자식과 손주를 팔아넘겨 그 돈으로 먹고산 놈이 제 목숨은 귀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무…… 무림인이 어째서 여기에 오신 겁니까. 무슨 일로 우리 집에 왔는지 모르겠으나…… 원한다면 다 가져가시오. 아, 아이도 필요하다면 가져가시고. 있는 거 다 드릴 테니 제,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시오…….”

“닥치십시오! 아직도 그렇게 사시는 겁니까!”

“대…… 대협님. 화를 부디 거두시오. 왜…… 화를…….”

“내가 누구인지 아직도 모른단 말입니까?”

“네? 대협님이 누구시길래…….”

“이런 새끼를 아비라고…….”

빠악! 빠악!

천일영은 혈도를 찍어 눌러 아비라는 작자를 쓰러뜨렸다.

알아볼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조금 사람 같아져 있기를 마음속 깊이 바랐었다.

자신은 상관없었지만 남아 있는 이영이를 위해서라도 그러길 바랐다.

그러나 모두 부질없는 기대일 뿐이고,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악귀는 악귀일 뿐이란 말인가.”

천일영이 아버지라는 인간의 혈도를 찍어 누른 탓에 적어도 이틀은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었다.

이것을 징치(懲治)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천일영은 더 이상 아버지와 관계가 이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훌쩍. 훌쩍. 으으으…… 훌쩍…….”

어릴 적 천이영과 똑같은 얼굴의 우는 아이.

비록 울고 있지만 어찌 사랑스럽지 않겠는가.

하지만 아이의 모습은 천일영의 마음을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 놓았다.

찢어지고 해어진 옷에, 온몸을 뒤덮고 있는 시커먼 때는 마치 개방의 방도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아니, 차라리 개방의 방도들이 더 깨끗할 지경이다.

얼마나 못 먹었는지 뼈대가 튀어나온 몸은 앙상하기 그지없었고, 몸을 지탱하는 다리는 힘없이 부러져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천일영은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일장 한 번이면 지금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천일영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눈길을 마주하자 치솟는 분노를 억눌렀다.

아니,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이 순간만큼은 탈마의 경지에 올라 살심이 사라진 것이 다행이었다.

“이름이 뭐니?”

“처…… 천혜령…… 이에요.”

겁에 질린 채 고개를 숙이고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혜령은 천일영의 말에 한참을 머뭇거리다 작은 목소리로 겨우 대답을 했다.

삼촌인 자신을 무서워하는 조카의 모습에 천일영은 안심이라도 시키려는 듯 자신도 모르게 혜령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이영이가 아이의 어머니라니.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구나.’

“혜령이구나. 참으로 예쁜 이름이구나.”

“아…… 아저씨는 누…… 누구…… 세요?”

“나는 혜령이의 삼촌이다.”

“삼촌? 삼촌이면 어…….”

“혜령이 어머니의 오빠란다.”

불안한 표정으로 천일영을 바라보던 혜령의 눈이 순식간에 커지며 다시 한번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시커먼 얼룩과, 무정한 아버지의 손때로 물들어 있는 벽을 가로질러 방문이 있는 곳으로 뛰기 시작했다.

“어…… 엄마! 엄마!”

방으로 달려가는 혜령의 모습에 천일영의 마음속에서 애써 외면하고 있던 불안감이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영이는 왜 아이가 팔려 가는 데 말리지 않고 있는 거지? 어머니는? 이영이의 남편은 어디에 있기에 아이가 팔려 가는 데도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이 없단 말이냐.’

천일영은 급히 몸을 일으켜 혜령을 따라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섰다.

벌컥!

끼이이이익.

혜령이 다 떨어져 나간 손잡이를 작은 손으로 억지로 잡아당기자 시커먼 어둠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방 안의 불길한 기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훅.

열린 방문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냄새에 천일영의 심장이 불안감으로 날뛰었다.

어찌 모르겠는가.

언제나 천일영의 근처를 머물고 맴돌던 냄새다.

‘사람의 몸에서 배어 나오는 죽음의 냄새!’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서 나오는 냄새는 한번 맡으면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 짙은 죽음의 냄새가 누구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인지 불행하게도 천일영은 바로 알아차렸다.

“이…… 이영아.”

손바닥으로도 가려질 만큼이나 작은 창문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빛줄기 하나가 누워 있는 여인의 이불 위를 흐릿하게 비추고, 햇살에 반사되는 수많은 먼지는 온통 방 안을 날아다니며 여인의 몸 위로 죽음을 쌓아 올리듯 내려앉았다.

“이…… 이영아? 나…… 오라버니다. 이영아, 들리니?”

불러도 대답이 없고, 혜령이가 어미의 손을 잡고 울음을 터뜨리는데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미동도 없는 여동생.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모두가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뿐인 여동생이 죽음의 문턱을 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천벌이다.

지난 세월 동안 천일영이 칼을 부수고, 활을 꺾고, 창을 끊는 동안 천이영이 아파하고 있었다.

또한 살심에 물든 마음으로 뼈를 박살 내고 근육을 도려내며 살을 찢는 동안 천이영이 죽어 가고 있었다.

모든 것은 그동안 차곡차곡 죄를 쌓아 온 천일영에게 하늘이 내린 벌인 것만 같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만들어 낸 어둠이 천일영의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천일영은 이를 악물고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기 시작했다.

이윽고 어둠을 거스르고 꺾은 천일영이 천이영이 누워 있는 이불 곁으로 다가간 순간.

“이…… 이럴 수가……!”

마를 대로 말라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여인.

이미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목내이(木乃伊)와 같이 변해 버린 여동생의 모습에 천일영의 입에서 또다시 울분과 함께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이 빌어먹을 놈의 아버지 놈이!”

이것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여동생의 모습이었다.

후회가 심장을 옥죄고 가슴을 짓뭉갰다.

천일영은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에 천이영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천이영의 손을 잡고 맥을 짚기 시작했다.

‘맥이 끊기기 직전이구나. 아니다. 사실은 이미 죽었어야 한다.’

자식을 걱정하는 어미의 마음 때문이었을까.

혜령을 걱정하는 마음이 이미 죽었어야 할 몸을 겨우 지탱하고 있는 듯했다.

혜령을 두고 죽을 수 없는 간절함이, 자신이 죽으면 혜령이 팔려 갈 것이라는 것을 아는 모성이 죽음을 버텨 내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곧 한계가 찾아올 것이었다.

죽음이라는 것은 늦출 수는 있어도 피할 수는 없는 법이다.

“죽게 둘 것 같으냐! 어떻게 만난 동생인데! 내가 너를 죽게 만들 것 같으냐!”

천일영은 기를 정순하게 가다듬고 손끝을 통해 천천히 내공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내공을 넣고 싶은 간절한 마음은 이내 천이영이 견디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는 냉정함으로 바뀌었고, 그동안 사람을 죽이는 데 쓰여 왔던 천일영의 손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손이 되어 가고 있었다.

“흐흡! 아으으으…….”

천일영의 손끝을 타고 기가 천천히 천이영의 몸 안으로 스며들자 죽어 가던 기도와 혈맥이 다시 살아 숨 쉬기 시작했다.

그리고 힘겹게 숨을 쉬던 천이영의 호흡이 조금씩 안정이 되며 천천히 눈이 떠졌다.

천이영은 깨어나지 못하고 긴 잠에 들기 전 마지막으로 했던 행동이 절박함으로 튀어나왔다.

눈을 뜨자마자 다급한 마음으로 힘겹게 손을 들고 허공을 휘저으며 혜령을 찾았다.

“이, 혜령아! 혜령아, 거기에 있니? 혜령아!”

깨어나자마자 딸을 찾는 목소리에 천일영의 옆에 앉아 울고 있던 혜령이 소리치며 제 엄마의 품으로 달려간다.

“엄마!”

“내 딸, 내 소중한 딸…… 무사한 거니? 할아버지가 못된 짓을 한 건 아니지?”

그렇게 말하며 다소 텅 빈 허공을 바라보는 천이영의 모습에 천일영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져 내렸다.

‘이럴 수가…… 이영이의 눈이……?’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 입가로는 한숨이 크게 쏟아져 나온다.

천이영의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시력까지 잃었단 말인가? 남편이라는 인간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기에 이 지경까지 되었단 말인가!

‘이 망할 놈이 결국!’

천일영이 가진 분노의 주체는 집 앞에 쓰러져 있는 아비에게로 향했다.

대체 얼마나 모진 고생을 했기에 눈까지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천일영은 속이 뒤집어지며 피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괜찮아! 엄마, 착한 아저씨…… 아니, 삼촌이 구해 줬어!?”

그사이, 반짝이는 눈이 된 혜령이 목소리를 높이고, 천이영은 으레 그렇듯 눈빛에 경계를 비쳤다.

“삼촌? 설마 혜령이를 데리러 온……?”

“아니, 아니다. 이영아…….”

더 긴 말을 해 주고 싶은데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는다.

마교에 입단한 이후 수십 년간 느껴 보지 못했던 절절한 감정이다.

“아아…….”

천일영의 입에서는 그저 긴 탄식만이 흘러나왔다.

“누…… 누구세요? 제발 제 아이만은 데려가지 말아 주세요. 무엇이든 할 테니…… 제발 부탁드려요. 제 아이만은…….”

“아이를 데리러 온 사람은 이미 내쫓았다. 혜령이는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하니 걱정하지 말거라.”

천일영은 목소리에서 어딘가 모를 그리움이 느껴졌다.

안심을 시키려고 하는 목소리.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이미 세월이 너무도 흘렀다.

삼십 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이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천이영은 뛰는 가슴을 움켜쥐고 마른침을 짜내 겨우 입을 열었다.

“그…… 그럴 리가 없죠?”

“미안하구나, 이영아.”

“그럴 리가 없어요. 오라버니는…….”

“나다, 이영아. 네 못난 오라버니다.”

“오라버니!?”

“늦게 와서 미안하구나.”

“오…… 오라버니? 정말로 오라버니인가요?”

혜령을 찾아 힘겹게 휘두르던 손은 다시 한번 천일영의 목소리가 나를 방향으로 허공을 갈랐다.

다급하고 간절한 손짓과 눈가에 맺히는 눈물을 타들어 가던 마음으로 바라보던 천일영이 허공을 맴도는 천이영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 댔다.

“살아 있었군요, 오라버니……. 살아 있었어요.”

“늦게 왔구나. 너무 늦게 왔구나.”

“정말로 내 오라버니군요. 다시 찾아와 주셨군요.”

“더 빨리 오지 못해서 미안하다.”

희고 탁하게 변해 버린 눈동자에서 눈물이 차올랐다.

세월의 야속함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힘들고 죽고 싶을 때 언제나 떠오르던 오라버니가 찾아와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천이영은 눈가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음을 지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어요.”

“죽는다는 말은 하지 말거라. 이제부터 내가 다 알아서 하마.”

“몸을 일으킬 수도, 앉는 것조차 할 수 없게 되어 버린 몸이에요. 혜령이가 마음에 걸려 죽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천이영의 눈꺼풀이 무게를 이기지 못해 힘겹다는 듯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기쁨도 잠시, 천일영이 넣어 준 내공만으로는 오랜 시간 고생과 병으로 갉아 먹힌 육신이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천일영의 얼굴을 만지던 손의 작은 온기도 서서히 차갑게 식어 가기 시작했다.

“혜령이를 부탁해요, 오라버니. 제 마지막 소원이에요.”

“이영아! 이영아!”

“이제는 미련 없이 눈을 감을 수 있겠…….”

툭.

천천히 감기던 천이영의 눈꺼풀이 내려앉음과 동시에 숨소리도 멈추었다.

작은 숨소리 하나가 꺼지자, 그것은 마치 세상이 끝난 것처럼 방 안을 정적으로 가득 채웠다.

“어…… 엄마! 엄마! 죽으면 안 돼. 엄마!”

혜령이 천이영의 숨이 끊어지는 것을 보며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한 맺힌 목소리가 포효하듯 울려 퍼지며 온 방 안을 가득 메우던 정적을 때려 부쉈다.

“안 된다! 이영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