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신귀환기-4화 (5/270)

4화

이것은 천벌이다.

천일영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이었다.

‘이제야 만났는데! 그동안 너무도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외면하며 살아왔기에 벌을 받는 것인가.’

식은땀을 흘리며 천일영은 천이영의 손을 잡고 원기를 불어 넣기 시작했다.

모든 기도가 막혀 있거나 쇠해져 있고 몸 안에 기운이 하나도 없음에 천일영은 또 한 번 이를 갈았다.

아비라는 인간은 아픈 천이영에게 그동안 아무것도 먹이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아마도 혜령이 구걸을 하며 겨우 얻은 얼마 안 되는 음식으로 겨우겨우 연명을 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어렸을 때 천일영과 천이영이 그랬던 것처럼.

‘이 개만도 못한 악귀 새끼!’

천일영의 손을 타고 원기가 천이영의 몸 안으로 스며들고 다시 기운이 돌기 시작하자, 천일영은 천이영의 입을 벌리고 숨을 불어 넣기 시작했다.

천이영의 몸과 입에서 나는 냄새는 죽음의 냄새를 넘어가는 지독한 냄새였다.

그것은 마치 버려진 육신이 썩어 들어가는 냄새와 다를 것이 없었다.

“아직은 안 된다, 이영아. 아직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살린다!”

“하아아아…….”

천이영의 입에서 갈라지고 쇳소리 나는 작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천일영은 그것만으로도 길고 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천이영의 호흡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이대로라면 다시 금방 숨이 꺼질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었기에 천일영은 급히 이불을 걷어 냈다.

그리고 그 순간 천일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욕을 내질렀다.

“이런 시X!”

목내이와 다를 것이 없는 여동생의 몸. 앙상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곳곳에 뼈마디가 보이고 살이라고는 가죽이라 할 만큼만이 겨우 들러붙어 있을 뿐, 도저히 사람의 몸이라고 부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숨을 쉬고 있었단 말이냐. 혜령이가 걱정되어 눈을 감지 못하고 있었단 말이냐!”

천일영은 천이영의 가슴 앞섬을 풀어 옷을 펼쳐 열었다.

‘기맥을 모조리 뚫고 막힌 혈도 빨리 뚫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천이영의 몸은 모든 기도와 혈이 막혀 있었다.

사실상 죽은 사람과 같은 몸이기에 천일영은 조심스럽게 온몸의 구석구석 가느다란 혈도까지 서서히 뚫기 시작했다.

조금만 실수해도 천이영의 목숨은 그대로 끊어질 것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여동생의 몸이다.

흘끔.

시선을 돌려 돌아본 곳에는 혜령이 눈물을 참으며 영문도 모른 채 겁에 질린 표정으로 천일영과 천이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고통에 가득 찬 눈에는 과연 천일영을 믿어도 좋을지에 대한 의심도 가득했다.

여기에서 실수를 했다가는 여동생과 조카 모두를 잃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안 되지. 절대로 그렇게 되어서는!’

천일영은 천이영의 심장 위에도 손을 올리고 기운을 넣었다.

세밀하게 조절된 기운이 온몸의 기도와 막혀 있는 혈도 사이를 타고 흘러 들어갔다.

천하제일의 무공을 가지고 다 한들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수는 없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여동생을 마지막으로 살릴 수 있는 기회였다.

‘그동안 사람을 죽이기만 했던 손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사람을 죽이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 돌아왔다. 이제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마교의 교주로 살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살던 곳으로 귀환했다.

모든 부귀영화와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자리를 거절했다.

그곳은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죽이라 명령하는 자리였기에 천일영은 자신이 있을 자리를 새로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 결심을 너무 늦게 한 탓일까.

너무 피에 물들어 피 냄새가 온몸에 배어 버린 것일까.

천일영의 손이 습관처럼 떨려 왔다.

사람을 살리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손. 오직 사람을 죽이기만 했던 손이다.

“닥치고 가만히 있어라. 망할 놈의 손!”

허탈한 마음에 손을 강제로 멈추며 천일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동안 사람이 아닌 살심에 휘둘리며 살아왔다.

그리고 탈마의 경지에 올라 다시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마음먹은 이곳에서, 자신의 여동생을 살리려는 이 순간까지 손이 떨리는 것에 놀랄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33년을 살아왔다.

살심이 없어져도 긴 시간 동안 배어 버린 몸의 기억은, 생사 앞에서 소중한 사람에게까지도 떨려 왔다.

‘이 지경이 되어 버릴 정도로 한심한 오라버니지만 이겨 낼 것이다. 그러니 너도 죽음에 절대로 지지 않겠다고 해다오!’

조금씩 불어 넣는 내공의 양이 많아지면서 천이영의 얼굴에 핏기가 돌기 시작했다.

움푹 파인 눈두덩이가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천일영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몸에 불어 넣은 내공은 정파의 무공으로 계산하면 일 개월 치의 내공.

더 이상 내공을 넣으면 천이영의 쇠약한 몸이 버티지를 못할 것이었다.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이제 다시 일어서는 것은 이영이가 해내야 하는 것이니…….’

꼬박 다섯 시진 동안 집중하며 치료에 매달렸던 천일영은 혈색이 돌아오는 천이영을 곱게 누이고 옆에 앉아서 간호하다 잠시 잠이 들었다.

오랜 시간 심력을 기울여 세밀하게 동생의 몸을 치료하다 보니 지친 탓이었다.

툭. 툭.

잠깐 잠이 든 천일영의 다리를 누군가가 더듬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익숙한 손길에 천일영은 웃음을 지었다.

“오리버니? 오라버니 맞나요?”

“깨었느냐. 말을 할 수 있겠느냐?”

“어떻게 제가 아직 이 방에 있는 건가요.”

“염라대왕의 얼굴을 볼 줄 알았는데 오라비가 있어서 놀랐느냐.”

“제가 아직 살아 있는 건가요?”

천이영의 눈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눈에 있는 혈도와 기도는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서 함부로 기운을 넣었다가는 다시는 볼 수 없는 눈이 될 것이었기에 천일영은 마음이 아프지만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며 포기해야 했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얼굴을 가까이 대 주세요.”

“……그래.”

천일영이 천이영의 손을 잡아 얼굴에 대자 다시 한번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천일영과 같이 천이영의 곁을 계속 지키다 지쳐 잠시 잠이 들었던 혜령이 어느새 깨었는지 퀭한 눈으로 달려와 천이영의 품에 안겼다.

“엄마! 엄마!”

“그래, 그래, 우리 딸. 우리 딸. 예쁘고 예쁜 우리 딸…….”

“죽지 마. 이…… 제 죽지 마.”

천이영이 숨을 거둘 때 터지는 눈물을 쏟아 내며 달려들던 혜령은 어머니를 다시 살리려고 노력을 하는 천일영을 보며 조용히 뒤로 물러나 밤새 지켜보기만 했었다.

어린 나이에 앞뒤 볼 것 없이 엄마 품에 안겨 들어 울기만 했어도 무엇 하나 이상하지 않았을 터인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생과 눈칫밥을 먹으며 살아왔는지 혜령은 영특하게도 눈물을 삼키며 천이영을 살리려는 천일영의 노력을 뒤에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제야, 천이영이 눈을 뜨고 웃음을 짓자 달려들어 그동안의 불안함과 억눌렀던 감정을 터뜨렸다.

얼마나 달려들어 안기고 싶었고, 울고 싶었을까.

어린 혜령의 마음을 알고 있는 천이영의 눈에도 마음에도 눈물이 흘렀다.

천이영은 ‘우리 딸’이라는 말만 반복할 뿐, 혜령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가여운 마음에 하고 싶은 말들이 눈물과 함께 자꾸 속으로 삼켜지기만 했다.

“우리 딸. 우리 딸. 우리 딸…….”

혜령도 천이영이 하고 싶을 말을 모를까.

다 안다는 듯 품에 안겨 그리웠던 엄마의 품에서 소리 죽여 울기만 한다.

그런 혜령의 모습을 안쓰럽고 미안한 눈으로 바라보던 천이영이 고개를 들어 천일영을 바라보았다.

예쁘고 총기가 돌며 반짝이던 검은색 눈동자는 이미 흰색으로 탁하게 변한 지 오래된 것 같았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오랜 시간 익숙해진 습관 때문인지 천일영을 바라보려는 천이영의 행동에 천일영은 천이영이 바라보는 곳으로 몸을 움직여 눈을 맞추었다.

“그동안 어디에 계셨던 거예요. 그렇게 많이 걱정했는데…… 죽기 전에 마지막 소원이 오라버니를 다시 한번 보고 혜령이를 맡기는 것이었는데…… 다시 눈 뜨기 전에는 이 모든 게 죽기 전에 꾸는 꿈이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많이 늦었구나. 이제는 한시도 곁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잠시 들른 게 아니라 아예 돌아오신 건가요?”

“……그래, 아예 돌아왔다.”

“참으로 먼 길을 돌아서 돌아오셨네요. 그래도 저를 잊지 않고 돌아오셨네요.”

“늦게 와서 미안하다.”

희고 탁하게 변해 버린 눈동자 사이로 다시 한번 눈물이 차오른다.

천이영은 그토록 걱정했던 오라버니가 보이지 않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보고 싶은 오라버니. 너무도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천이영은 억지로 몸을 일으켜 양손으로 천일영의 얼굴을 더듬었다.

손끝 사이사이로 천일영의 얼굴이 느껴지는 그 순간 천이영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며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다녀오셨어요, 오라버니.”

“……그래, 다녀왔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손.

비록 거칠어져 갈라진 뼈만 남은 손이라 할지라도 천이영의 손에는 온기가 가득했다.

결코 마교에서는 느껴 보지 못한 따뜻한 손이었다.

매일같이 꿈꿔 온 가족이다.

이제야 천일영도 피를 갈구하는 몸을 뒤로하고, 편안해진 마음으로 천이영의 손길에 안심하고 몸을 맡길 수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