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천마가 스스로 사라지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진 지도 벌써 며칠이다.
십만대산에 있는 천마신교의 사독마왕 가문의 문주 갈현평.
그는 잔에 채워진 술의 향이 날아가는 것을 보면서도 마시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마음 같아서는 여러 잔의 독한 술이 자신의 심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기를 바랐지만, 벌어진 일을 수습하고 생각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아 선뜻 술잔에 손을 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첫째 아들 갈운현이 아버지가 지나친 걱정에 빠져들었다고 생각하며 말을 건넸다.
“아버님. 아무리 탈마의 경지에 올랐다고는 하나, 겨우 한 명의 무인일 뿐입니다. 그리도 걱정을 하시는 게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천마신교가 힘을 합하면 한 사람을 처리하는 것은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 역시도 천마를 추적하는 데 힘을 보태겠습니다.”
“운현아, 너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갈현평은 마주 앉아 있는 첫째 아들 갈운현이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기어이 술잔을 집어 들었다.
나이가 서른이 다 되어 가는데, 곱게 키운 것이 독이 되었는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허튼소리를 하는 것이 못마땅하여, 마실까 말까 고민을 하던 술잔을 기어이 들게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운현아, 네 나이가 지금 몇이더냐.”
“올해로 스물아홉이 되었습니다.”
“그래, 네가 스물아홉의 나이에 무공의 성취가 일류 고수 끝자락이다. 내년쯤에 절정의 고수에 들어서겠지.”
“그렇습니다. 나이 서른에 절정의 고수라면 빠른 무공의 성취이지 않습니까. 저와 다른 육대 가문의 자제들도 탈마의 경지에 오를 때까지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탁.
갈현평의 손에 들려 있던 술잔이 크게 소리를 내며 탁자를 때리듯 놓였다. 그 소리가 갈운현의 말을 막아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네 나이 때 천마는 이미 초절정의 고수 끝자락이었다.”
“아버님. 천마가 무공에 천부적인 자질이 있다는 것은 저도 압니다. 그러나 저희도 그에 못지않게…….”
“그러니까 네놈들은 하나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버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육대 가문의 자식들은 모두 후기지수로 관리를 받으며 키워졌다. 노화순청(爐火純靑)의 경지에 오른 자들에게 벌모세수를 받아 가며 지금에 이른 것이지. 그러나 천마는 그렇지 못했다.”
“어째서입니까? 후기지수로서 관리를 받으며 천마의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었습니까?”
“천마는 천마신교의 사람이 아니라 7살 때 돈에 팔려 온 아이였다.”
“네!?”
갈운현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천마가 팔려 온 아이였다는 것도 충격이지만 천마신교가 아이를 돈 주고 사 오는 짓을 했다는 것에 더욱 큰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온갖 음모와 술수로 가득한 악독스러운 무림맹을 무너뜨리고, 온 천하에 천마신교의 교리를 알리는 중대한 사명을 가진 사람들로서 어찌 그런 짓을 했는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과거 천마신교에는 무명암살대(無名暗殺帶)라는 것이 있었다. 인신매매범들이 돈을 주고 사 오거나 납치해 온 아이들을 살수로 키워 내어 더러운 일을 도맡아 시키는 곳이었지. 그때 마교로 납치되거나 팔려 온 아이들의 수가 약 2만 명이다. 천마는 그중 한 명이었다.”
“아…… 아버님. 어찌 천마신교가 그런 악독한 짓을…….”
“악독? 네놈들은 중원이라는 곳에 나가 보지 않았으니 그런 속 편한 소리나 하는 것이다.”
쯧!
갈현평이 혀를 찼다.
천마신교가 숨겨 온 천마의 비밀을 접하고도 생각한다는 것이 고작 무명암살대가 아이들을 납치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것이라니 한심하다.
천마신교의 정점인 육대 가문의 자식으로 태어나 귀하게 자라나 철부지가 되어 버린 것인가.
더러운 일을 가까이하지 않고 노력도 없이 높은 지위에 올라 있으니 꺼내는 말마다 전부 허황된 소리들뿐이다.
정통 천마신교의 혈통을 지키기 위해 더러운 일만 처리하는 무명암살대를 만든 것인데,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 보면 그것이 오히려 천마신교의 무력을 약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갈현평은 아들의 꿈같은 소리를 듣는 것도 지쳐 남은 이야기까지 모두 내뱉기 시작했다.
“후기지수로 관리를 받지 않고도 스물다섯에 초절정 고수에 올랐다. 겨우 스물다섯이다.”
“그…… 그것은…….”
“게다가 천마의 또 한 가지 무서운 점이 무엇인지 아느냐. 천마는 상대편의 무공을 베끼는 능력이 있었다. 말 그대로 무공을 복사(複寫)하는 것이었지. 몇 번 초식을 나누면 상대편의 무공을 그대로 흡수했다.”
“아버님. 아무리 천마가 무공에 천부적인 자질이 있었다 해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찌 무공의 깊은 깨달음과 심오한 이치를 알아낼 수 있다는 말입니까?”
갈현평의 입술이 아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비틀렸다.
아무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실력을 높이 사고 다른 사람의 능력을 깎아내리는 것에는 어쩔 수 없이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철없는 생각.
그야말로 중원에 나서면 그날로 칼 맞아 죽기 좋은 생각이다.
“네 말대로 깊은 깨달음과 심오한 이치를 깨닫는 것은 불가능하지. 그러나 천마는 상대편의 무공이 그 어떤 무공이라고 할지라도 초식을 나누며 삼 할을 베껴 냈다. 그리고 상대편의 무공을 이해하면 오 할까지 복사를 해냈지.”
“겨우 오 할입니다. 오 할은 그야말로 껍데기만 훑는 것이 아닙니까?”
“정말로 그러하냐? 진정으로 너는 그렇게 생각하느냐?”
중원이라는 무림의 세상에는 수많은 무공이 존재한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무공뿐 아니라 사혈련과 천마신교의 무공,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새외무림(塞外武林)까지 더하면 그 수는 수백에 달할 정도다.
그 수많은 무공들을 칼을 맞대고 초식을 나누는 것만으로 베껴 내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갈운현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사실 이해를 못 할 수도 있다.
한 가지의 무공을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것이 잡스러운 여러 가지를 배우는 것보다 훨씬 옳고 좋은 방법임에는 분명하니까.
그러나 천마는 자신의 무공을 극한까지 끌어 올리고도 다른 무공을 베껴 내니 그것이야말로 무섭다는 말을 제외하고는 다른 것으로 표현할 길이 없는 것이었다.
“상대편이 네가 쓰는 무공의 오 할을 알고 있다는 것은 네가 두 번의 공격을 하면 상대는 그중 한 번을 알고 대응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정녕 모르느냐. 무려 두 번 중에 한 번이다.”
“그……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심오한 이치를 알지 못한다 해도 두 번 중에 한 번을 상대가 무엇을 할지 알고 있다면 그 싸움이 어찌 되겠느냐. 다른 무림인들은 오 할이 아니라 단 일 할만이라도 알게 되기를 얼마나 바라는지 알고는 있는 것이냐!”
갈현평의 노기 섞인 목소리가 갈운현의 귓가를 찢을 듯 때렸다.
철없는 마음이 진실의 모습을 알지 못하게 방해한다는 것 자체가 속 터지는 일이다.
하나의 문파와 일이 년씩 오랜 시간 칼을 마주하다 보면 누구나 일 할에서 이 할 정도는 그 무공을 알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무림인들은 숨겨 놓은 비기(祕機)가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고, 자신의 실력을 한두 수 정도 숨기는 것이 당연지사였다.
그런데 불과 몇 번 칼을 맞대면 그 무공을 이해하기 시작하고 오 할을 베껴 낸다.
이것은 비기(祕機)가 무엇인지 알지 못해도 비기를 사용하는 때를 예측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런 능력이라니, 그것은 무림의 역사를 전부 다 뒤져도 전례가 없을 지경이다.
“아버님, 그럼 천마는 진정 무공의 천재였다는 말입니까?”
“천재? 그럴 리가 있나. 천마…… 아니, 천일영 그자는 천재 따위가 아니라 괴물이다.”
갈현평은 자신도 모르게 양손에 난 땀을 닦아 내며 십 년하고도 이 년 전의 일에 대하여 입을 열었다.
십이 년 전.
지금에 와서야 이름 붙여진 귀주성(貴州省) 전투.
치열한 전쟁.
이때만큼 무림맹과 천마신교가 서로의 이름을 걸고 전력으로 부딪힌 적이 없었다.
무려 반년 동안 이어진 전쟁이었다.
정마대전이라는 말을 쓸 정도로 큰 전쟁은 아니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았다.
귀주성이라는 한정된 지역에서만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에 세간에는 무림맹과 천마신교가 다툼이 있었다는 정도로 인식하고 있을 뿐이었지, 실상은 무림맹과 천마신교의 모든 전력이 맞부딪힌 전쟁이었다.
발단은 천마신교에서 시작되었다.
광동성과 광서성의 경계에 있는 십만대산에서 밖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면 천마신교는 반드시 귀주성을 거쳐야 했다.
왜냐하면 귀주성을 거점으로 호남성까지 세력을 확장하여 장강의 수로를 손에 넣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장강의 수로가 어찌 천마신교만 중요하겠는가.
무림맹도 천마신교의 의도를 파악하고 전력을 귀주성으로 집결시켰다.
이 때문에 천마신교와 무림맹은 모든 무인을 동원하여 귀주성(貴州省)에서 맞붙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전쟁은 교착 상태(膠着狀態)였다.
서로의 힘이 비슷했던 것이었다.
서로 밀고 밀리기를 거듭하길 이 개월이 지나자 생각보다 길어지는 전쟁에 무인들이 눈에 보일 정도로 지쳐 갔다.
서로 휴식도 없이 맹공을 퍼부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때 서로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균형이 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독마왕님. 무림맹에서 소림사(少林寺)의 승려들과 무당파(武當派)의 도사들이 새롭게 참전하였습니다.”
“소림사는 명분을 빌미로 참전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기어이 끼어드는구나. 이제 참가하지 않은 문파는 종남파(終南派) 정도인가.”
비슷했다고 생각했던 힘의 균형이 서서히 깨지기 시작하며 무림맹은 조금씩 천마신교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무인의 질적인 수준이 더 높다고 생각했던 천마신교로서는 의외로 무림맹의 무인들의 수준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뿐만 아니라 양적인 부분에서도 무림맹에 크게 못 미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이었다.
“젠장, 수가 모자라면 그만큼 죽여서 균형을 맞추면 될 일이다. 내가 독으로 길을 열겠다.”
“사독마왕님, 부디 몸조심하시길.”
갈현평은 평생에 거쳐 만들어 온 독을 모조리 꺼내 들었다.
그 양만 해도 수만에 달하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독.
그것을 뿌려 전쟁의 향방을 바꿀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특히 사독마왕이 만든 독은 무색(無色), 무미(無味), 무취(無臭)로 사지를 녹여 죽게 만드는 것.
쉬이이이익.
검과 권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갑자기 새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며 무인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세간의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비겁하고 교활한 독을 사용하는 것.
그러나 그 효과를 알게 된다면 비웃던 사람들조차 입을 다물 것이었다.
그만큼 독은 적을 효율적으로 죽였다.
그러나 독은 독으로 제압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무림맹이 모를 리가 없었다.
사독마왕 갈현평이 독을 사용한 그 날 저녁, 무림맹은 즉시 사천당문(四川唐門)을 전장의 가장 앞에 세웠다.
그리고 서로가 독을 뿌리고 중화를 하며 싸우기를 이틀.
전장은 또다시 교착 상태에 빠졌다.
아니, 정확하게는 사천당문에게 사독마왕이 조금씩 밀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바로 사천당문의 만천화우(滿天花雨) 때문이었다.
쿵!
사독마왕의 분노가 탁자 위로 내리꽂혔다.
반으로 갈라진 탁자 위에 있던 지도는 이미 귀주성의 칠 할 이상이 무림맹의 손아귀에 떨어진 것이 표시되어 있었다.
이미 칠 할.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었다.
“큰일입니다, 사독마왕님.”
“무슨 일인데 이리도 큰 소리를 내느냐!”
“조…… 종남파가 합세를 하였습니다.”
“종남파가? 그것이 사실이냐. 이놈들, 전력을 아끼려고 그동안 종남파를 숨겨 두었었구나.”
“종남파뿐만이 아닙니다. 종남파가 앞장을 서고 그들을 사천당문이 호위하고 있습니다.”
“뭐…… 뭐라고?”
갈현평은 으스스한 기운이 뒷골을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밀리고 있는 전쟁인데, 손실이 거의 없는 종남파와 사천당문이 선두에 나서면 앞일이 어찌 될지 뻔히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