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신귀환기-8화 (9/270)

8화

‘뱀 같은 놈이다.’

갈현평은 무림맹의 군사(軍師)인 제갈현의 책략에 휘말린 것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떨궜다.

무림맹은 천마신교보다 훨씬 더 많은 무인이 있다는 이점을 이용해서 전력을 아끼고, 때가 되면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그 말은 그동안 천마신교가 전력을 전부 다 사용하지 않고 있는 무림맹에게조차 밀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상황을 어찌하면 좋겠소. 이대로라면 십만대산으로 돌아가는 것은커녕 천마신교 자체가 사라질 것이오.”

“애당초 숫자의 차이가 너무 컸소. 실제로 무인의 질은 우리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도 못했고.”

“후우……. 천마가 조금 더 힘을 썼더라면 이 지경까지는 되지 않았을 터인데…….”

“하아……. 사천당문이 독을 다루는 곳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만천화우 같은 대량 살상을 하는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소이까. 말이 좋아 종남파의 호위지 힘든 일은 종남파가 다 하고 공은 사천당문에서 집어먹겠다는 것 아니겠소. 이번 전쟁으로 사천당문은 새로 만든 무기들의 시험도 할 것이오. 우리를 상대로 말이오.”

회의실에 모인 육대 마왕들의 한숨 소리가 땅이 꺼질 정도로 울려 퍼졌다.

현대의 천마가 초절정 고수의 끝자락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해 정체되어 있는 것도 문제였지만, 천마가 습득한 무공 극살태마신공(劇殺台魔新功)이 살심을 날뛰게 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였다.

사람을 죽이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을 뿐 실제로 군사(軍師)인 마염지의 계략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혼탁해져 있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천마가 가는 지역은 천마의 무력으로 겨우 승리를 하기는 하지만 계략대로 움직이지 못하니 아군의 피해가 막심했다.

“방법이 없소. 이제는 이 정마대전을 어떻게 이기느냐가 문제가 아니오. 최대한 희생을 적게 하면서 발을 빼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그렇소. 이제는 얼마나 희생을 줄이느냐가 문제일 것이오. 얼른 이 전쟁을 끝내야 하지 않겠소.”

흑뇌마왕 마염지의 말에 독천마왕 서가흔이 반색을 하며 동의의 의사를 표현했다.

독천마왕 서가흔은 그동안 정마대전을 반대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전쟁을 마무리 짓자는 이야기에 그 누구보다 빨리 반응했다.

그러나 그 모습에 갈현평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정도(正道)를 외치는 서가흔이 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터다.

“이제는 모든 것을 다 내놔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숨겨 왔던 무명암살대를 참전시키고, 후방에 있던 천마신교 고위층의 자제들도 모조리 전쟁에 참여시킵시다.”

“무명암살대의 인원이 천 명이나 되니 이들로 무림맹을 막고, 고위층의 자제들은 후퇴를 돕게 하면 되겠구려.”

“좋은 생각이오. 무명암살대는 어차피 버리는 패. 이번 기회에 이용하고 정리합시다.”

“좋소이다. 그렇게 합시다.”

만장일치.

언제나 만나면 서로의 의견을 내세우느라 딱히 결론을 내지 못하는 육대 마왕의 회의가 이날만큼은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그만큼 지금의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갈현평은 고개를 숙인 채 씁쓸한 기분으로 침을 삼키며 침음을 내었다.

이번의 전쟁을 주도했던 사람.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이다.

반대했던 독천마왕이 앞으로 얻을 힘을 생각하니 쓰디쓴 침이 목울대를 계속 타고 흐르기만 했다.

일주일 후.

무명암살대가 모인 자리에서 독천마왕 서가흔이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갈현평의 눈에 띄었다.

‘저자가 천일영인가. 이야기로 들은 것보다도 잘생겼군.’

마치 유명한 화공이 그린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얼굴.

단정하고 깨끗한 얼굴이 마치 향시(鄕試)에 합격한 거인(擧人)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그만큼 무인보다는 문인에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저 얼굴로 정파 오대 가문의 귀부인이나 딸을 유혹하면 죄다 넘어오겠군. 저자가 스물다섯에 초절정의 고수에 올랐단 말이지.’

외모만 보아서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 누가 저 얼굴과 풍모를 보고 초절정의 고수라고 생각하겠는가.

그런데 서가흔이 자리를 떠나고 무명암살대만이 남아 있는 자리에, 외모만 보고 천일영이 초절정 고수라는 것을 모르고 나타난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이번에 첫 참전을 한 천마신교 육대 가문의 방계 혈족(傍系血族) 고위 가문의 자제들이었던 것이었다.

‘역시 근본도 없는 놈들이라 그런지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모양이군.’

차경철은 목에 힘을 주었다.

그야말로 마교의 육대 가문 중 가장 많은 권력을 쥐고 있는 파천마왕 가문의 방계 혈족 중에서도 가장 피가 많이 섞인 가문.

어머니가 파천마왕 패범휘의 여동생이다.

비록 어머니가 시집을 가면서 직계 혈족에서는 벗어났지만 그 근본을 따지면 혈통상 직계와 마찬가지.

그러다 보니 차경철이 말을 걸기도 전에 상대편이 먼저 고개를 숙이는 것이 예의인데 멀뚱하니 서 있는 무명암살대를 보니 심사가 뒤틀렸다.

“너희가 무명암살대인가? 숨겨진 비밀 집단이라고 해서 와 봤는데 별거 없군. 다들 귀주성에서 죽어 나가는 동안 너희는 뒤에서 편하게 암살이나 하고 있었다지?”

“저희는 그저 명령을 따를 뿐입니다.”

천일영의 오른편 곁에 있는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신경을 건드릴 만한 말인데도 고개부터 숙이는 것이 눈치가 빠른 인물이었다.

그 모습이 갈현평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분명 흑뇌마왕에게서 들었던 도현이라는 인물이 분명했다.

“너희 같은 살수들이 이런 큰 전쟁에서 뭘 하겠는가. 저 허여멀건 한 얼굴을 보니 딱 기생오라비인데? 무명암살대? 푸하하핫. 이름만 거창한 집단이 아닌가.”

“큭큭큭. 푸하하핫.”

차경철의 웃음소리에 주위에 모여 있던 다른 고위 가문의 자제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모두 비웃음과 깔보는 눈길이다.

특히 차경철의 눈길이 천일영을 보고 실소와 비슷한 비웃음을 흘렸다.

놀랄 만큼 단정한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이봐, 기생오라비. 너는 내가 특별히 가장 전방에 세워 주겠다. 뒷구멍에서 암살이나 하던 너희를 이런 큰 전쟁에서 공을 세울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에 감사하도록 하거라.”

“…….”

갈현평의 발길이 급하게 앞으로 나섰다.

차경철도 이제 초절정의 고수 초입.

이제 후퇴를 위한 중요한 작전을 진행해야 할 터인데 살수가 방계 혈족이라고는 하지만 고위 가문의 자제와 싸움이 벌어지면 좋을 것이 없을 터다. 하지만 그때.

“저희는 그저 미천한 살수. 명령에 따르는 것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본인의 입장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모양이구나. 푸하하핫.”

놀랍게도 천일영이 고개를 숙이고 차경철에게 존칭을 써 가며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곁에 서 있는 무명암살대의 다른 살수들 역시 빙글빙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갈현평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육대 마왕이라는 입장상 그가 원하는 결말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부터 퇴각을 위해 전장으로 이동할 것이다. 모두 준비가 되는 대로 자리를 뜨거라.”

“알겠습니다.”

한 시진 후.

서로가 마지막 일전을 예상하며 무림맹과 천마신교의 무인들이 대치하는 자리.

천마신교는 십만대산으로 후퇴하여 문을 굳건히 닫고 성공적인 퇴각을 바라는 한편, 무림맹은 끝까지 밀어붙여 천마신교를 뿌리까지 쓸어 버릴 생각이었다.

그야말로 전초제근(剪草除根)의 마음.

칠 일 동안 교묘하게 싸움을 피하고 조금씩 뒤로 물러서며 퇴각의 준비를 하고 있던 천마신교의 퇴로를 차단하려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다.

그렇게 서로가 공격할 기회를 보는 가운데, 가장 앞서 무림맹의 무인들을 바라보던 천일영의 입술이 살짝 움직였다.

“종남파는 처음이군.”

‘처음? 그것이 뭐가 어쨌다는 거지?’

작은 목소리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못 들을 리 없는 갈현평이다.

그러나 말은 들었어도 뜻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무공이라는 것은 더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이 이기는 것이 변하지 않는 진리다.

때문에 절정의 고수 같은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적의 무공이 어떤 문파인지는 중요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은 그렇지만도 않지. 젠장.’

무릇 무당파의 기세에 밀려 한동안 쇠락의 길을 걸었던 종남파이다.

그러나 현대의 종남파 장문인이 쇠락한 문파를 다시 일으켜 세워 이번 전쟁에 참가할 정도까지 키웠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맞다. 바로 장문인까지 이 전장의 가장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그동안 쇠락의 길에 들어서 대외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다가 다시 힘을 얻었으니 어찌 장문인이 그것을 대외에 널리 알리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저것이 종남파의 장문인인가. 생각보다 별거 없는데?”

“그렇군. 게다가 종남파가 가난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장문인이라는 사람이 들고 있는 검은 좀 너무하네.”

후방에 있어야 할 차경철이 십여 명의 고위 가문 자제들과 앞에 서 있었다.

공을 세워 이름을 알리기 위하여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었다.

나이 사십이 되기 전에 초절정의 고수가 되었으니 자신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갈현평이 보기에 이것은 자신이 아니라 자만이었다.

왜냐하면 실전 경험이 거의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너희들은 전쟁을 지켜보기나 하거라. 앞장서는 것은 무명암살대다.”

차경철과 고위 가문의 자제들이 하던 말은 이내 파천마왕 패범휘의 말에 집어 삼켜졌다.

마치 전설에서나 나오는 언령(言霊)의 권능(權能)에 따르는 것처럼 고위 가문의 자제들은 패범휘의 위압적 기운에 짓눌려졌다.

‘이놈 봐라…….’

다만 패범휘는 기운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천일영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자신의 위압적인 기운에 조금도 짓눌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감히 이 기운에 저항할 수 없거늘 저 젊은 살수는 자신에게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종남파의 장문인에게서 조금도 눈을 떼지 않았다.

쿠쿵. 쿠쿠쿠쿵!

그때였다.

화약이 터지는 듯한 거대한 소리와 함께 수만 개의 바늘과 같은 것이 하늘을 새카맣게 뒤덮었다.

“만천화우! 제길 사천당문이 선제공격을 하는 것이냐!”

그야말로 한 명의 마교인조차 살리지 않겠다는 듯한 숫자.

만천화우의 독침은 해를 가리고 땅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듯한 모양.

그러나 무명암살대의 도현이 만천화우를 확인하자 소리를 질렀다.

“모두 준비해 온 말가죽을 몸에 둘러라.”

“예!”

무명암살대 대원 세 명당 하나의 말가죽으로 몸을 둘러 만천화우의 독침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것을 본 차경철은 혀를 찼다.

저놈들은 이미 사천당문이 만천화우를 쓴다는 것을 알고 미리부터 준비를 해 온 것이었다.

초절정의 고수 정도 되면 독침을 피하는 것쯤 예사롭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제각각의 실력을 가진 무명암살대로서는 모두를 지킬 수 있는 방법으로 말가죽을 선택한 것이었다.

채챙. 채채챙. 채챙.

각기 전방에 서 있던 천마신교의 무인들이 만천화우의 공격을 쳐 내고 있는 동안, 파천마왕 패범휘는 자전탄기(紫電彈氣)로 자색의 막을 몸에 두르고 검을 뽑아 들었다.

이번 회차의 공격이 끝나면 즉시 진영을 가다듬고 선두에 서서 무림맹의 진형을 막아 낼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컥!”

“크헉”

수십 개가 동시에 터지는 만천화우의 숫자는 절망적으로 많았고, 고위 가문의 자제 둘이 독침에 당하여 피를 뿜고 쓰러졌다.

그리고 그것을 본 차경철의 눈에 경련이 일어났다.

“이런 개자식들이! 저놈들 당장 죽여 버리겠다! 나를 따라오거라!”

“네!”

차경철을 비롯한 고위 가문의 자제들이 일제히 만천화우를 뚫고 무림맹의 진형으로 신형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파천마왕 패범휘가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이런! 함정이다. 돌아오거라! 지금 가면 안 된다!”

그러나 눈이 뒤집힌 그들에게 그 소리가 전달이 될 일은 없었다. 아니, 듣고서도 못 들은 척을 할 것이었다.

“와아아아아아”

“돌아오라니까!”

차경철의 따라오라는 소리에 전황의 파악이 되지 않은 다른 무인들이 같이 신형을 날리기 시작했다.

패범휘가 몸을 날려 몇몇의 무인들의 뒷덜미를 잡아채기는 하였지만, 그도 역시 자전탄기를 믿고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는 법.

몇몇의 무인이 움직이자 그 뒤를 따라가는 무인들의 숫자가 늘기 시작했다.

언뜻 보아도 그 수가 거의 삼백이었다.

패범휘가 내공을 끌어 올려 고함을 질러도 만천화우가 터지는 소리와 무인들의 함성 소리에 파묻히자, 그제서야 만천화우를 첫 번째 공격하는 방법으로 쓰인 이유를 알아차렸다.

“당했다.”

다른 공격도 아닌 만천화우의 공격.

이렇게 될 것을 미리 상정하고 적을 끌어들이기 위하여 시작한 공격일 것이었다.

“이제는 끝인가!”

이제 천마신교가 무사히 퇴각을 하게 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모두 이곳에서 죽을 것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