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흘러내리는 식은땀이 청진의 눈썹을 지나 눈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비단 떨리는 것이 손뿐이랴.
청진은 손과 다리는 물론 자신의 심장조차 떨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심장은 뛰어야 정상이거늘 떨리다니, 청진으로서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종남의 무공을 알지 못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난 십여 년간 종남은 대외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내부적인 일에만 몰두했거늘 어디에서 검술을 보고 배웠단 말인가? 분명 어디에서 종남의 비급이라도 발견한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불가능한 일!’
종남파의 지난 십여 년은 암흑의 시기였다.
무당의 기세에 밀려 새로운 제자들의 수가 절망적일 정도로 적었고, 그것은 종남파의 재정과 명성을 갉아먹는 원인이 되었다.
때문에 종남의 무공이 세상에 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잊혀진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어찌 종남의 검술을 하나도 아니고 세 개나 사용한다는 말인가.
게다가 태을무형검이라고?
‘잠깐. 세 개의 무공? 지금 저 살수가 사용한 무공은 방금 내가 파천마왕을 상대로 사용한 것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무공을 단 한 번만 보고? 보았을 뿐이라는 말이 그런 의미였다는 말인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절대로 불가능해야만 한다. 아니라면…….’
청진의 발길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방금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나를 보고 따라 한 것이라고?
그것도 단 한 번만 보고?
청진은 자신의 떨리는 심장을 다시 한번 느끼자 자신도 모르게 허탈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머리는 아니라고 부정하면서도 몸은 맞다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허나 한 번 보았을 뿐이다. 한 번. 단 한 번뿐이란 말이다!’
청진은 검을 잡은 오른손에 다시 한번 힘을 주었다.
처음에는 당황하여 공포심을 느꼈지만 놈은 분명 겨우 흉내만 내는 것이다.
무공이란 것이 한번 본다고 따라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세상의 모든 문파는 의미가 없어진다.
청진은 그렇게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믿었다.
아니, 믿어야만 했다.
“놈! 그런 얕은수에 당할 종남의 무공이 아니다!”
카가가가각. 카강. 까카카카캉!
그러나 혹시 하는 마음에 태을무형검을 청진이 사용하자 마교의 살수는 자신의 입으로 말한 것처럼 정말로 태을무형검으로 맞부딪혀 왔다.
그것도 흉내가 아니라 정말로 종남의 무공이다.
눈에 익숙한 검로. 자신이 즐겨 사용하는 그 검로다.
‘진짜라고? 정말로 이놈이 단 한 번 내 검을 보고 무공을 복사해 낸 것이라고? 이것이 정녕 사람이라는 말이냐!’
피비빗. 피빗. 촤아아악!
몸에 늘어 가는 수많은 자상(刺傷).
그것은 자신의 무공을 상대편이 더욱 능숙하게 쓰고 있다는 말인가.
아니다.
어느 사이 눈치를 채기도 전에 마교의 살수는 종남의 무공과 섞어서 마교의 천강혈룡검법(天降血龍劍法)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종남의 무공과 마교의 천강혈룡검법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변환이 되어 청진조차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네놈! 정말로 단 한 번만 보고 무공을 복사해 냈다는 말이냐.”
“종남의 장문인께서는 무공은 열심히 수련하셨으나 머리를 쓰는 일은 얼마 안 하셨나 봅니다.”
“그것이 무슨 뜻이냐!”
“눈치를 채는 것이 너무 늦다는 말입니다.”
파바밧! 촤아아아악!
“커걱. 네…… 네놈!”
순식간에 청진의 양팔이 날아갔다.
무심한 듯 표정의 변화도 없이 종남의 무공을 사용하는 살수.
그가 순식간에 태을무형검의 검의 결을 바꾸어 청진의 익숙한 검로를 벗어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청진의 팔을 순식간에 날려 버린 것이었다.
보고도 당할 수밖에 없는 일격.
익숙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저놈은 분명 처음부터 그것을 노린 것이었다.
“장문인!”
“장문인을 보호하라!”
전방에서 검을 휘두르던 종남의 무인들이 일제히 청진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자신들을 여기까지 이끌어 온 장문인의 양팔이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것을 좇는 허망한 눈길. 믿어지지 않는다.
믿기지가 않는다.
천재라 불리는 그 장문인의 팔이 잘리다니.
종남의 고수들이 일제히 장문인이 있는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장문인!”
“몸을 피하십시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마교의 살수가 휘두르는 칼은 이미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양팔이 없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젠장. 더 높은 곳으로 너희를 끌어 올리려고 했건만…….”
청진은 이내 자신의 눈앞으로 날아오는 검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천재라 불렸던 자신을 여기까지 몰아붙인 살수.
지금 생각해 보니 이런 괴물 같은 무인과 칼을 맞대었음에도 이름조차 모른다.
“살수 놈! 이름만이라도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휘이익. 콰직!
청진의 머리가 허공에 떴다.
자신의 머리를 날려 버린 살수.
그러나 청진은 원망의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무인의 싸움이라는 것은 원래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지 않은가.
이미 종남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목숨을 묻어 둔 지 오래다.
‘자만으로 가득한 마음이 살수라고 하여 무시를 하였구나……. 저런 괴물인 줄도 모르고…….’
털썩.
그의 머리가 땅바닥을 구르고 몸이 피를 뿜으며 쓰러지자 종남의 무인들은 일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
팔이 잘린 장문인을 구하기 위해 달려오던 걸음은 허무한 죽음을 목도하자 이내 분노와 함께 마교의 살수에게로 그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네놈이! 어찌 우리 종남의 희망을 짓밟는다는 말이냐!”
“네놈! 용서치 못한다. 네놈을 죽여 버리겠다.”
다름 아닌 쓰러져 가는 종남파를 여기까지 끌어올린 장문인이다.
그간 얼마나 고생을 하였고, 힘없는 문파라 해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에도 고개를 숙여 가며 이를 악물고 여기까지 이끌었는가.
그 장문인의 목이 땅바닥을 구른다.
종남파 무인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고이고 떨어졌다.
“이 개 같은 놈이. 감히! 감히 네가 장문인을!”
보통 십여 명의 초절정 고수와 절정의 고수가 한자리에 모이면 겁에 질리거나 긴장을 하는 법이다.
게다가 상대는 모두 장문인이 쓰러진 것에 분노로 눈이 뒤집어진 상태였다.
그러나 살수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생각대로 한자리에 모여 주셨으니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요?”
“네놈! 그게 무슨 말이냐.”
“설마! 네놈 장문인을 죽이기 전에 일부러 팔을 잘라 우리가 이리 오도록 만든 것이냐! 정녕 그런 악독한 짓을 저지른 것이……!”
휙! 촤아아아악!
말을 채 끝마치지 못하고 종남의 고수 머리가 또다시 허공을 갈랐다.
순식간에 목을 베는 그 순간, 살인을 즐기는 자가 아니라면 누구나 사라져 가는 목숨과,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죄악감에 표정이 변하기 마련.
그러나 살수는 그들의 심정 따위 알 필요도, 깨달을 소용도 없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말을 꺼낸다.
“최대한 빨리 죽여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고통 없이 죽여 드린다는 말을 못 하겠군요.”
“뭐…… 뭐라? 이 미친놈이!”
멈칫.
그러나 종남의 고수들은 분노에 치를 떨면서도 선뜻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딱히 기운을 풍기지 않는데 어찌하여 몸이 움직이지 않는가.
조금 전 청진이 느꼈던 감정.
공포 때문이다.
보이지도 않는 칼날에 목을 날려 버리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서 있는 살수의 모습은 마치 수라(修羅)와 같았다.
깔끔하게 정돈된 단정한 얼굴.
그런데 어찌하여 수라처럼 보인단 말인가.
끓어오르는 복수의 감정마저 차갑게 식혀 버리는 천부자연(天賦自然)의 기운이라도 저 살수로부터 느끼는 것이란 말인가.
“젠장. 망할. 빌어먹을. 다들 일제히 공격해라. 저놈은 장문인의 원수다! 그것을 잊지 말거라.”
“네!”
종남의 초절정 고수 한 명이 온몸을 갉아먹는 공포심을 밀어내며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장문인이 죽었는데, 시신 하나 수습 못 하고 웅크리고 있는 것이 종남의 이름을 먹칠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분연히 일어선 것이었다.
그러나.
휙이익. 촤아악. 촤아아악. 카캉. 촤아아악!
“으악.”
“이런 개 놈의…… 크악!”
“커헉!”
잠시 공포에 질려 가만히 있는 것이 명줄을 아주 잠깐이라도 길게 해 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을 터다.
그것을 깨닫기까지는 불과 검줄기가 섬광을 내며 대여섯 번 긋는 시간이면 충분했다.
촤아아아악!
칼이 맞부딪히는 소리보다 살이 베이는 소리가 더 많다.
그만큼 악독하고 효율적인 공격이라는 말.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갈현평과 패범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특히나 도현의 비호를 받고 있는 패범휘는 신변이 어느 정도 안전해지자 천일영으로부터 눈길을 떼지 못했다.
‘무명암살대라고? 마염지가 키운다고 해서 어느 정도인가 했는데 이 정도였단 말인가. 대체 저놈은 무엇이냐. 저게 살수라고? 저놈이 고작 살수란 말이냐!’
한편 갈현평도 패범휘 못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지금 마교의 고수 열 명, 스무 명이 달려들어도 상대하기 힘든 종남의 무인들을 혼자 상대하고 있는 모습도 할 말을 잊게 했지만, 종남의 장문인을 상대로 펼친 무공은 두 눈으로 직접 보았어도 믿어야 할지 망설이게 될 정도였다.
‘이…… 이런 미친 일이 가능하다는 말이냐. 파천마왕이 싸우는 것을 보고 그사이에 베껴 냈다니……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구나.’
무림 역사와 중원 그 어디를 통틀어도 전례가 없는 일.
상대편의 무공을 베껴 낸다니, 이것이 가능하다면 그 위력은 실로 엄청날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패범휘와 갈현평의 심장을 쿵 하고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마교가 우리에서 키우는 것이 개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개가 아니었던 것이었다.
‘내가 전력을 다한다 해도 이길 수 있겠는가? 아니…… 불가능하다. 흑뇌마왕, 너는 도대체 저런 괴물을 어떻게 키워 낸 것이냐. 아니…… 아니다. 분명 저 괴물은 혼자서 자라난 것이다.’
패범휘는 자존심이 땅바닥에 곤두박질치는 기분이 들어도 천일영으로부터 눈을 떼지 못했다.
무공을 복제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삼아 모든 무공의 이치를 알아 갔을 것이었다.
그것이 25세의 나이에 초절정 고수의 길로 접어들게 만든 것일 터다.
채재쟁! 카아아앙.
“크흑…… 원수도 못 갚다니…….”
마지막 종남의 고수가 쓰러지자 천일영은 급히 고개를 돌려 도현을 찾았다.
“도현, 지금부터 방계 혈족 자제들을 구한다. 너는 계획대로 움직이면서 마왕님들을 보좌하거라.”
“네, 단주님.”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계획대로다.”
“네.”
천일영의 신형이 방계 혈통의 자제들이 있는 방향으로 급하게 사라졌다.
순간 빠르게 신형을 앞으로 내보내는 천일영의 모습을 보며 갈현평은 마음이 급해졌다.
방계 혈족의 자제들을 구하고 나면 그들을 쫓아간 나머지 삼백의 무인들은 어찌할 것인가.
무림맹의 손아귀에 죽임을 당한 자들이 많다 해도 아직 살아 있는 자들이 일백오십은 되어 보였다.
저들을 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