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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13화 (14/270)

13화

‘무조건 죽는다!’

내공이 있어도 상대가 되지 못한다.

아니, 천일영이 최상의 몸 상태라 할지라도 이 둘 앞에서는 두 수도 못 버티고 죽을 것이었다.

무림맹에서도 그 명성이 자자한 인물들.

과연 그 명성만큼이나 천량도사와 모세룡이 가지는 존재감은 천일영의 그릇으로도 헤아리기가 힘들 지경이다.

특히 모세룡은 남궁세가가 배출한 무림맹의 맹주 남궁강의 위세에 가려져 이름이 덜 알려졌을 뿐, 실상은 중원에서도 16대 고수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이제 끝인가. 하지만 내가 할 일은 전부 다 했다.’

천일영의 시선이 퇴각 진형으로 잠시 향했다.

그리고 무명암살대가 높은 곳에 지리적인 우위를 점하며 모든 진형을 갖추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진형을 다시 만들기에는 넉넉한 시간인 일각.

이 시간을 주기 위해 뼈와 살을 내어 주며 버틴 것도 무명암살대의 대원이 죽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마교의 사람들이 어찌 되든 내 밑에 있는 사람만큼은 지켜야 했으니까.

그러나 순간.

휘이이익. 카앙!

잠시의 틈도 놓치지 않는 신중한 성격의 모세룡은 천일영이 잠시 퇴각로를 바라보는 틈을 타 일검을 날렸다.

일격으로 마교의 살수를 죽이기 위해 날린 검.

허나 모세룡의 얼굴은 험악하게 구겨졌다.

믿기지 않게도 내공이 없어 막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일검이 막혔기 때문이다.

파가각!

겨우 막은 일검에 천일영이 지닌 검이 산산조각 나며 비산했다.

손잡이만 남은 검을 들고 시신의 산으로 피를 뿜으며 처박히는 마교의 살수를 바라보며 모세룡은 감탄을 토해 냈다.

“생각보다 대단한 놈이구나. 중원에서 이 검을 막을 수 있는 자가 열 명도 안 되거늘.”

“크윽…… 이제부터는 열한 명이겠군. 쿨럭, 우웨에에에엑!”

모세룡의 일검에 기도가 뒤틀리고 온몸이 비명을 지르며 천일영이 한 움큼의 피를 토한다.

충격이 얼마나 강했는지 천일영은 자신이 만든 시신의 산으로 몸이 박히며 뼈가 뒤틀리고 허벅지와 종아리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만큼 위력이 엄청난 일격.

검이 부서지며 힘이 흩어졌기에 살아남은 것이지, 검이 부서지지 않았다면 천일영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터다.

“운이 좋은 놈이군. 허나 두 번은 없다는 것을 네놈도 잘 알고 있겠지.”

“헉헉헉…… 과연 그럴까?”

“허세를 부리는구나. 네가 이곳을 벗어나지는 못할 터. 내 손에 죽게 되는 것이 자명함이다.”

“쿨럭, 쿨럭. 그래, 모세룡. 네 말대로 나는 죽게 되겠지.”

“죽을 자리를 알아본 모양이구나. 이곳이 네 묫자리다.”

슈우우욱!

서늘한 검강이 둘러진 모세룡의 검이 천일영의 몸 가운데를 향해 내질러진다.

반으로 육신이 쪼개어 무참히 죽어 간 무인들의 원한을 갚겠다는 의지다.

그 의지가 가득 담긴 일검.

분명 피할 수 없고 막을 수도 없다.

그러나 천일영은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검을 바라보았다.

천일영 역시 마지막까지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세워 서로가 충돌했다.

“마교의 살수 놈! 무간업화(無間業火)에서 네 죄를 태우며 영원히 고통받거라!”

“모세룡! 내가 죽기는 하나 결코 네 손에 죽지는 않을 것이다!”

천일영의 오른쪽 주먹이 모세룡의 검을 향해 날아간다.

누가 보아도 미친 짓.

어찌 주먹으로 검을 상대한다는 말인가.

하물며 내공도 없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밝은 흰색의 빛이 천일영의 오른손을 이끌었다.

허나 모세룡은 주먹을 쥐며 덤비는 천일영이 가소롭다는 듯이 비웃음을 머금었다.

“마지막 발악인 것이냐. 그 기개만큼은 칭찬해 주마!”

자신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오는 검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있던 천일영.

순간 눈에서 안광을 발하며 오른손의 주먹을 펼쳤다.

‘지금이다!’

“이건!”

“내 밑에 있는 놈들이 모두 살아서 퇴각할 때까지 내가 죽을 것 같은가! 모세룡!”

“이 개 같은 놈이!”

펼쳐진 천일영의 오른손에 있는 병 하나.

갈현평이 만들어 낸 무림 최강의 독. 화골명천(化骨命千)이다.

몸의 살과 뼈를 녹이는 화골산(化骨散) 독을 개량한 것으로 사람의 몸에 닿으면 전신을 녹이며 독무(毒霧)를 피워 내는 독.

천일영은 병을 든 채 장권을 검날을 향해 내질렀다.

챙그랑!

빠르게 날리던 검을 멈추려 했지만 무용지물.

천일영은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어 있는 힘을 다해 모세룡의 검에 병을 부딪쳤다.

퍼엉!

천일영의 신형이 독이 터지는 충격에 힘없이 뒤로 날아갔다.

이제 모든 일을 다 했다.

이것으로 천마신교의 퇴각 진형에 무림맹이 즉시 뛰어들지 못할 터.

슈아아아아아.

천일영의 발치 아래에 있던 무림맹 무인들의 시신들.

이 시신들은 이내 화골명천의 먹이가 되어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사방으로 독무를 퍼트렸다.

살수를 상대하기에 신중을 기했건만 자신의 실책으로 독무가 퍼져 주위에 있는 무인들이 피를 토하고 쓰러지자 모세룡은 화를 참지 못하고 기어이 일갈을 토한다.

“이 망할 살수 놈이 이걸 사용하기 위해 시신의 산을 쌓고 그 위에 올라 있었단 말이냐.”

허나 모세룡은 신중하기도 하지만 상황 판단이 빠른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눈에 기를 모으고 마교의 퇴각 진형을 잠시 살폈다.

주변을 잠식하고 있는 독무가 퍼지면 그 틈을 타서 마교의 병력이 다시 이곳으로 몰려올 가능성도 있었기에 한 번 더 살피는 것이었다.

‘파천마왕과 사독마왕은 아까와 똑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군. 역시 이 살수는 버리는 패였나.’

모세룡은 상황이 파악되자 즉시 천일영에게 신형을 날렸다.

또다시 무슨 짓을 하기 전에 숨통을 끊으려 하는 것.

살수의 습성을 잘 알고 있기에 지체할 시간이 없다.

그러나 천일영은 이미 움직일 수도 없는 몸이다.

다만 눈앞에 보이는 빛이 점점 커지며 육신을 전부 빨아들일 것만 같은 느낌.

그 느낌이 온통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 빛은 극마의 길로 가는 초입일까. 아니면 죽기 전에 느끼는 감각의 극한일까. 알고 싶었는데 이젠 글렀나.’

모세룡의 말도 들리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예민해진 감각으로 잘 들리고 있지만 천일영의 정신이 온통 빛에 집중해 있었다.

손을 대면 만져질 것만 같은 느낌.

또한 하나의 길처럼 느껴져 그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슈우우욱!

“으아아아아아합!”

분노의 일갈이 가득 담긴 모세룡의 검이 천일영의 목으로 날아왔다.

그것이 빛에 집중하면서도 온전히 몸으로 느껴진다.

마치 빛무리에 눈이 멀 것 같으면서도 또한 세상이 전부 다 보이는 것 같은 기묘함이다.

허나 천일영은 그 빛무리가 가르치는 대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몸을 피하는 길이 보이지만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검의 차가운 느낌이 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낄 무렵, 피가 목에서 튀며 신경에 닿는 것이 느껴질 때다.

“이 망할 단주! 여기 누워서 뭐 하고 있는 거요!”

카아아아앙!

순간 독무의 연기를 뚫고 도현이 튀어나와 모세룡의 검을 막아 낸다.

“크으으으윽!”

그러나 단 한 번이다.

도현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비명이 튀어나왔다.

절정의 고수인 도현의 몸으로는 모세룡의 검을 막기는 하나, 팔의 뼈와 근육이 터져 나가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도현은 이를 악물고 모세룡을 가로막았다.

“겨우 절정의 고수 놈이 낄 자리가 아니다. 허나 마왕 놈들은 살겠다고 살수 놈을 버리는데, 주인을 구하러 온 충정만큼은 인정해 주지. 같이 지옥으로 가게 해 주마.”

모세룡의 검이 순식간에 천일영과 도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도현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일검.

그 검이 공기를 찢는 소리를 낸다.

슈우욱!

그때, 순간 도현의 등 뒤에서 작은 손길 하나가 튀어 올라 삽시간에 날아오는 모세룡의 검 사이를 지나쳤다.

촤아아악!

“이런 미친! 누구냐!”

카강…….

순간 튀어나온 작은 손은 모세룡의 팔을 뱀처럼 파고들어 갈기갈기 찢고 검을 떨어뜨리게 만든다.

바로 명천마왕 소초련의 소수마공(素手魔功).

모세룡은 소초련이 중원에서 금나수의 일인자임을 잘 알고 있지만 이해가 가지 않은 이 상황에 잠시 당황했다.

‘내가 이리 쉽게 당하다니! 이게 도대체!’

당황해하는 것이 표정에 드러나는 모세룡.

그런 모세룡에게 소초련이 비릿한 비웃음을 지으며 작은 입을 연다.

“모용세가의 문주님은 아직도 자신이 독에 중독된 것을 모르는 모양이군요.”

“뭐…… 뭣이?”

주륵.

그때 모세룡의 입에서 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분명 천독불침의 경지에 올라 있거늘 독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었다.

화골명천은 원래 처음부터 천독불침을 가진 자까지 모두 중독시킬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니까.

문득 뒤를 돌아본 모세룡은 자신의 실책이 생각보다 컸음을 깨달았다.

피를 토하는 무림맹의 무인들 사이에 천량도사마저 운기행공을 하며 독을 배출시키는 모습이 보였다.

천량도사마저 저러한데, 본인인들 이 독을 감당할 수 있으랴.

“쿨럭, 쿠웨에에엑. 크윽,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으냐!”

“도망? 볼일이 끝났으니 돌아가는 것뿐입니다. 모용세가의 문주님께서는 앞으로 일 년 정도는 정양(靜養)을 하셔야겠지만요.”

모세룡은 자신이 속은 것임을 이제서야 직감했다.

파천마왕과 사독마왕이 자리를 지키게 하여 자신의 눈을 속이고, 그동안 전장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던 명천마왕으로 이 살수 놈을 구하려 한다는 것을.

“크으윽. 내 오늘 일은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명천마왕 소초련은 이미 모세룡으로부터 눈을 뗀 지 오래다.

독에 약해진 모세룡이나 천량도사의 목을 베어 공을 세우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하건만, 이미 소초련은 해야 할 일이 끝나자 계략대로 움직이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만큼 냉철한 인물.

차가운 얼굴의 소초련이 도현에게 눈짓을 한다.

“도현아, 단주의 몸을 잘 살피거라. 가자.”

“감사합니다, 명천마왕님.”

순간 세 명의 신형이 독무가 퍼지는 곳에서 사라졌다.

피를 토하는 모세룡과 천량도사.

그리고 무림맹의 무인들을 두고.

그날의 전투는 이렇듯 천일영의 공으로 천마신교가 큰 피해 없이 무사히 퇴각을 하며 끝을 맺었다.

갈현평의 말대로 무림맹은 지옥을 겪으며.

그리고 도현에게 들려져 돌아오는 길.

천일영은 죽음의 앞에서 바라본 빛무리를 여전히 바라보고 있었다.

* * *

타아아악.

이야기를 끝낸 갈현평이 거칠게 술잔을 탁자 위에 때리듯 올렸다.

갈현평의 이야기가 끝나자 갈운현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이 정도의 신위를 28세에 가졌다는 것은,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탈마는커녕 극마의 경지에도 오르지 못한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또한 갈운현은 조금 전 일류 고수의 무공으로 천하를 논했다는 것이 창피하여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을 지경이었다.

“천마님의 무공이 그 정도일 줄은…….”

“자신의 경지와 위치를 깨닫는 것도 무인의 중요한 소양(素養)이다. 이제 알았으면 나가서 일각이라도 더 무공을 연마하거라.”

“아…… 알겠습니다, 아버님.”

힘없이 밖으로 나서는 갈운현의 한껏 움츠러든 어깨가 또 한 번 갈현평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러나 이야기를 하던 중에 떠오른 또 하나의 생각이 마음속을 까맣게 태운 탓에 아들이 밖으로 나서기까지 갈현평은 입을 다물었다.

‘그때만 해도 몰랐다. 아무리 그때 공을 세우고 무공의 신위가 높아졌다고 하여도 천한 살수 출신이 천마의 자리에 오를 줄은. 내가 보는 눈이 없었던 것인지 상황을 알아보지 못한 것인지. 운현이한테 뭐라고 할 게 못 되는군.’

귀주성의 경험은 천일영이 극마의 경지에 오르는 발판이 되었다.

당장 극마의 경지를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그 경험이 그만큼이나 귀중했다는 말이다.

천일영은 귀주성의 경험 이후 실제로 3년 만에 극마의 경지에 올랐다.

‘소초련이 천일영의 뒤를 봐주고 패범휘가 생명의 은인이라는 이유로 아낌없는 지원을 했지. 하지만 분명 생명의 은인이기에 지원을 한 것만은 아니었다.’

소초련은 몰라도 패범휘는 천일영의 천재적인 무공에 대한 소질을 깨닫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천마신교가 보유하고 있는 무인들의 수가 무림맹에 한참을 미치지 못하지만, 반대로 무인의 질이 월등히 높다고 판단하여 진행한 귀주성 전투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무림맹 무인들의 질이 천마신교와 비교하여 떨어지지 않았다.

수가 월등히 많다는 사실도 변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가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초절정 고수보다 더 위의 경지에 오를 천일영과 같이 무재가 있는 사람을 지원해야 했다. 그래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천일영도 그것을 알면서도 그 지원을 받아들인 것인가. 살아남기 위해.’

이해관계가 일치하여 서로의 이득을 위해 움직인 것을 탓할 것은 못 된다.

갈현평이 패범휘와 천일영의 입장이었어도 분명 같은 선택을 했을 터. 허나.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무엇이 잘못되어 천일영이 천마신교를 떠난 것인가.’

그러나 갈현평은 술잔을 들어 올리며, 천일영이 떠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부정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천마신교라는 그릇으로는 천일영을 담아낼 수 없었던 게지. 천일영이라는 괴물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은 오직 천하뿐.’

그릇의 크기가 너무도 다르다.

갈현평은 술잔에 또 한 잔의 술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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