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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15화 (16/270)

15화

천일영이 지금 절실하게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무공을 사용할 줄 알면서 맡은바 임부를 완전하게 수행할 수 있고, 또한 절대 배신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은 많이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찾기 힘들다.

당장 항주에 널려 있는 무림 문파만 보아도 고작 삼류 무인이나 이류 무인 두어 명 보내 주고 은자 열 냥을 요구할 만큼 바가지를 씌울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 자들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것인가.

무공의 극의에 달한 지 벌써 몇 년.

일 갑자가 육십 년 치의 내공이다.

그러나 초절정의 고수라 하더라도 중원 백대 고수 정도는 되어야 일 갑자 정도의 내공을 가질 만큼 도달하기 힘든 경지이기도 했다.

허나 천일영에게는 이미 갑자라는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

천마심법(天魔心法)으로 전신의 혈도가 열리고 기운이 막히는 법이 없었으며, 자는 중에도 운기행공(運氣行功)이 가능했다.

탈마의 경지에 오른 이후 천일영은 사람의 몸을 원하는 대로 들여다볼 수 있고, 마음먹은 대로 고칠 수 있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조차 살려 내고, 사지가 잘려 나간 사람도 천일영이 손을 대면 죽음을 피할 수 있을 정도. 탈마의 경지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쨌다는 말인가.

‘결국 이영이의 눈은 고치지 못했지…….’

죽어 버린 지 오래된 천이영의 시신경.

메마르고 핏기가 하나도 없는 시신경은 조금만 기를 통하게 해도 부서졌고 바스러졌다.

끊겨 나가는 시신경을 기운으로 두르고 두 시진이 넘도록 기를 주입하며 살려 보려 했지만, 간절한 노력을 비웃듯 남은 시신경조차 무사하지 못할 상황이 되자 천일영은 눈을 질끈 감고 손을 떼었다.

선천진기와 가장 비슷한 기운조차 통하지 않는다.

시신경은 다른 신체의 부위와 달라서 더 이상 무모한 시도를 했다가는 영원히 시력을 잃을 것이었다.

그러나 천일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고칠 방법이 없지는 않았으니까.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하는 것이 문제로군.’

천이영의 눈을 낫게 하려면 영약이 필요했다.

만년설삼에 필적하는 영약이라면 천일영의 눈뿐만 아니라 기력이 쇠해진 몸 또한 모두 나을 터.

영약을 구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지만 자리를 비우면 아버지가 나타나 여동생과 조카에게 못된 짓을 할 것 같아 걱정이었던 중이다.

그러던 중에 시장에서 본 무당의 도사는 천일영에게 안성맞춤의 인물이었다.

‘무당의 도사라, 이번에는 네가 싫든 좋든 나에게 도움을 줘야겠다.’

때마침 차를 가지고 나온 객잔의 주인이 보인다.

천일영은 무당의 도사에 대하여 은근히 떠보았다.

잠시 전에 본 모습만으로도 그가 충분히 믿을 만한 사람인 것은 증명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심정으로 한 번 더 확인을 하기로 한 것. 다름 아닌 가족을 지키는 일이다.

“주인, 시장에서 조금 이상한 무인을 보았는데 혹시 아는 것이 있소?”

“시장에서 무인? 아, 월영을 이야기하는 모양이구려.”

“그 사람의 이름이 월영이오? 낡은 옷을 입고 있었고 검을 차고 있었소. 혹시 그 사람의 소문이라도 들은 것이 있으시오? 무공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또한 그 사람 됨됨이는 어떠한지 말이오. 신기한 사람이라 흥미가 생겨서 말이오.”

천일영은 짐짓 무공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침을 떼고 말을 이어 나간다.

이곳에서 천일영은 무공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한눈에 그의 경지를 알아봤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천일영이 보통의 무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니까.

“월영은 일 년 전쯤 이곳으로 흘러들어 온 무당의 도사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시장 상인들을 보호하고 일 년째 흑도 조직과 싸우는 중이지. 그런데 월영의 무공에 대하여는 어찌하여? 무공도 강한 손님께서 무슨 연유로 그것을 물어보는 것인지?”

“……!”

반박귀진(返縛歸眞).

무공이 극의에 달하게 되면 몸의 모든 기운이 갈무리되고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게 된다.

천일영은 극마의 경지에 이르러 환골탈태(換骨奪胎)를 거쳤고, 탈마의 경지에 올라 반로환동(反老換童)을 겪었다.

그리고 탈마의 경지에 오르며 또 한 가지 변화를 겪었으니 바로 반박귀진이다.

반박귀진으로 인해 그의 경지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무림에서 아무도 없을 터.

그런데 어찌 이 객잔의 주인이 그것을 알아본다는 말인가.

“제가 무공이 높다는 말을 어찌하십니까?”

“허허…… 내가 손님의 무공이 어떠한지 알지는 못하지. 사실은 기운도 느껴지지 않고. 다만 손님의 분위기나 눈빛.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는 높은 사람 특유의 분위기 같은 것이 있소. 게다가 언변(言辯) 역시 숨기려 하지만 패왕(霸王)의 자리에 오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느낌을 풍기기도 하고.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데, 패왕의 위엄이 있다는 말은 오직 단 한 가지만을……!”

순간 객잔 주인이 황급히 입을 닫았다.

말을 하던 중에 순간 머릿속을 스쳐 가는 위험한 생각.

분명 지금 객잔 주인의 머리에는 반박귀진이라는 말이 떠올라 있을 터다.

객잔 주인은 지금의 상황이 자칫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며 벌게진 얼굴로 황급히 말을 돌렸다.

“큼, 큼. 아무래도 이 노인네가 너무 넘겨짚은 모양이군. 늙으면 눈치가 없어지고 말이 많아지는 법이지. 이 노인네의 실언을 용서하시게.”

나이를 먹으면 그냥 늙는 것이 아니라 노괴(老怪)가 되는지,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때때로 알아차리며 난감하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의 객잔 주인이 딱 그러했다.

‘이거 너무 일찍 탄로가 난 건은 아닌가. 몇 번 말을 섞지도 않았건만 겨우 그 정도를 가지고 무공의 성취를 추측하다니 연륜이라고 하기에는 대단하군. 객잔을 하며 많은 사람을 보아 왔기 때문인가.’

천일영은 내심 객잔의 주인에게 감탄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객잔의 주인을 어찌해야 할지 고민에 잠겼다.

지금까지 보인 객잔 주인의 모습은 인품도 좋고 사람 또한 살뜰하게 챙기는 것이 성품 또한 나무랄 데가 없지만, 며칠 겪은 모습으로만 사람을 판단하기에는 이 세상이 너무도 거칠고 험난하여 그 속을 알 수 없는 법이다.

천일영은 잠시 객잔 주인의 표정에 드러나는 감정을 읽기 위해 안광을 빛냈다.

아주 작은 표정의 변화도 잡아내는 눈이다. 하지만.

“이것 좀 봐요. 이런 옷은 처음 입어 봐요. 너무 예뻐요. 감사합니다, 삼촌.”

혜령이 새 옷을 입고 활짝 웃으며 별채에서 천일영이 있는 객잔으로 들어섰다.

여러 가지 색이 섞인 귀여운 옷은 혜령에게 너무도 잘 어울렸다.

혜령의 깜찍한 모습에 넋이 나간 천일영이 잠시 객잔의 주인에게서 시선을 소홀히 하는 순간.

느닷없이 객잔의 주인에게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때를 기다렸다는 듯한 느낌이다.

순간 천일영은 조카에게서 급히 눈을 떼고 객잔 주인에게 금나수를 날렸다.

‘역시 이놈,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게 되어 목숨이 위험할까 아이를 인질로 잡으려는 것인가.’

즉시 천일영의 손길이 객잔의 주인에게 튀어 나가는 순간이다.

조카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공이 탄로 나는 것쯤 대수일까. 그러나.

“귀……! 귀엽구나! 어찌 이리 귀여울 수가!”

“헤헤…… 주인 할아버지, 이 옷 너무 예쁘죠.”

“아니다. 옷이 이쁜 게 아니라 그 옷을 입고 있는 네가 너무 귀엽구나.”

“헤헤헤. 할아버지 너무 그러시면 창피해요.”

“허허…… 창피할 게 무엇이냐. 항주 제일의 미인이 여기에 있구나.”

어이없게도 혜령을 안아 들고 귀여워하는 객잔 주인의 모습에 천일영은 잠시 자신의 갈 곳 잃은 손을 바라보았다.

‘저 망할 노괴가! 인질로 잡으려고 기운을 일으킨 게 아니라 내 조카가 너무 예뻐서 감정 조절이 안 되었던 것인가.’

슬그머니 갈 곳 잃은 손을 내려놓자니 어쩐지 조금은 쑥스러운 기분도 든다.

이곳은 이제 더 이상 살육으로 얼룩진 천마신교의 전쟁터가 아닐 터.

‘후우…….’

천일영은 잠시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객잔 주인이 아예 숙수에게 맛있는 것을 가져오라는 말까지 해 가며 혜령을 무릎 위에 앉히는 모습까지 보니, 아주 경계를 풀지는 않겠지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큼, 큼. 무슨 연유로 손님이 월영에 대하여 물어보는지는 몰라도 내가 보기에 월영은 쓸 만한 놈이지. 암, 그렇고말고. 푼돈이라도 어쩌다 손에 쥐면 그것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다 퍼 주고 정작 자신은 먹을 게 없어서 굶고 다니는 놈이오. 덕분에 나도 꽤나 공짜 밥을 그놈에게 주었지.”

“협(俠)을 아는 사람이다. 그런 말씀이오?”

“협? 아니오. 허허……. 그놈은 그렇게 거창한 이유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천성이 그런 놈이외다.”

충분하다.

이 정도까지 알아보고 또한 무당의 도사가 선행을 하는 모습까지 직접 보았다.

가족을 지키는 일을 맡기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인물.

천일영은 마음의 결정이 끝나자, 객잔의 주인이 조금 아까 기운을 일으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 일을 다시 기억해 냈다.

‘분명 혜령을 보고 감정 조절이 안 된 것도 있겠지만 조금의 기운을 더 흘렸지. 그것은 내가 자신을 죽이지 않을지 시험한 것인가. 여우 같은 짓을…….’

무공이 아무리 강해도 아직은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 연륜이다.

연륜이라는 것은 딱 살아온 세월만큼만 쌓이는 것이니까.

그러나 객잔 주인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할 만큼 머리가 나쁜 천일영이 아니다.

“주인, 잠시 나갔다 오겠소.”

“오늘 많이 바쁘시구려. 그래, 월영을 만나러 가시는 게요?”

‘이 망할 노괴 놈이 또…….’

객잔 주인이 지금의 껄끄러운 상황을 알면서도 왜 굳이 월영을 만나러 가는지에 질문을 하는 것인가.

분명 이 객잔 주인은 천마신교의 교주라든가, 혹은 무공의 신위에 대해서 알지는 못한다.

그저 보통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만 직감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위험해지는 것을 감안하고 굳이 끼어드는 이유는 오직 하나뿐이다.

자신이 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은 것이다.

즉 객잔 주인은 자신의 무공이 높은 성취를 이루어 냈음에도 불구하고 천일영이 그보다 더 높은 무공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한 것.

이럴 때는 호의를 적당히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문제가 적다.

천일영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소. 그 월영이라는 무인을 만나러 가는 것이오.”

“어디에 사는지 알고는 계시고? 내 사람을 붙여 주겠소. 월영이 사는 곳은 위험한 곳이라.”

“그렇게 해 주면 고맙겠소.”

기감을 통해서 이미 월영이라는 무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할 리 없을 터.

그것을 또한 객잔 주인도 모르지 않을 터다.

그러나 객잔 주인이 위험한 곳이니 사람을 붙여 주겠다는 말은 ‘나는 손님의 무공을 모릅니다.’라는 의미를 전하고 싶은 것이다.

“건청 있느냐. 여기 손님분을 월영에게 모셔다드려라.”

“네? 월영이요? 왜 월영한테…….”

“가는 길이 험하니 잘 모시거라.”

“네.”

점소이가 앞장을 서며 안내를 시작했다.

한편 천일영은 조금은 머리가 아픈 것을 느끼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러니 머리 나쁜 무인들은 일단 주먹부터 휘두르고 보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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