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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16화 (17/270)

16화

점소이가 객잔 주인에게 이야기를 듣고는 부리나케 앞장섰다.

그런데 점소이의 표정이 떨떠름한 것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내심 뭔가가 있다는 것을 직감한 천일영은 점소이의 곁에 붙어 조용히 말을 꺼냈다.

“뭔가 문제라도 있는 얼굴이군.”

“월영이라는 무인이 좀 이상한 사람이라서 말입니다.”

“이상한 사람인가? 객잔 주인의 말과는 차이가 있네만?”

“무공 실력도 좋고 시장 사람들을 돕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무뢰배들이 사는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의뢰비를 과하게 받는 걸로도 유명합니다.”

“무뢰배 소굴?”

“항주 외곽에 있는 곳입니다.”

무뢰배 소굴에 살고 있는 무당의 도사라니, 꽤나 재미있는 이야기다.

이것을 핑계로 객잔 주인이 건청이라는 이 점소이를 붙여 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허나 월영이 의뢰비를 과하게 받는 것은 이미 예상한 바다.

그가 그 돈을 어디에 쓸지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월영도 재미있지만 이 점소이도 만만치 않게 재미있군.’

점소이의 발걸음에 이상함이 있다는 것을 못 알아볼 천일영이 아니다.

객잔 안에 있을 때와는 달리 밖에서 걷는 점소이의 발걸음에는 보법이 섞여 있는 듯 보이는 것을 천일영은 순식간에 눈치챘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더니 역시나 무인이었군.’

천일영은 눈으로 통하는 기맥을 열고 점소이의 몸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오랜 시간 극음태마신공의 살심 때문에 빠르게 극마의 경지로 들기 위해 노력했던 천일영이다.

때문에 무공을 수도 없이 연구하고 스스로 익혔는데, 이때의 버릇으로 극마의 경지에 오르고 난 이후 천일영은 다른 무인들의 몸을 들여다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폐해진 단전. 상당한 고수였군.’

최소 절정의 경지였다.

도기가 몸 안에 남아 있고, 풍기는 특이한 기운은 종남파의 것이었다.

점소이가 이제 불과 삼십 대 초중반인 것을 감안한다면 실로 엄청난 무공의 성취.

이름난 오대 가문의 자제들이 어릴 적부터 벌모세수를 받아 가며 후기지수로서 관리를 받아야 가능할 정도의 성취를, 몰락하여 위세가 떨어진 종남파에서 이루어 낸 것이다.

한편 점소이가 종남파의 무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천일영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긁었다.

‘왠지 미안하군. 예전에 종남파의 장문인을 내가 죽였으니, 이후 고생을 많이 했겠구나.’

십이 년 전 종남파의 장문인 청진이 귀주성 전투에서 천일영에게 목숨을 잃은 이후, 종남파는 또다시 기나긴 침묵에 들어섰다.

청진이 힘들게 세운 종남의 위세는 하루아침에 몰락했고, 귀주성 전투에서 워낙에 많은 종남의 고수들이 죽었기에, 새로운 장문인이 될 도사도 뽑지 못해 한동안 풍랑에 휩쓸려 나가는 나룻배 같은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리고 기나긴 침체기는 지금도 여전했다.

‘객잔의 주인과 이 점소이만으로도 자리를 비우는 데 문제가 없을 터. 하지만…….’

행패를 부리려고 찾아올지 모를 아버지라면, 이 점소이만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것이었다.

그러나 항주 외곽으로 가는 천일영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상품대가 무너진 때로부터 계속 울고 있을 당과 가게의 여주인을 생각하자니 오히려 발걸음은 더욱 빨라지기만 했다.

* * *

항주 외곽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에서 날카로운 시선이 날아든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무뢰배들이 하나, 둘씩 천일영의 곁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들이 보기에 천일영은 길을 잃고 외곽으로 흘러들어 온 먹잇감이고, 그들의 빈 주머니를 채워 주는 고마운 존재였으니까.

그중 덩치가 크고 험악하게 생긴 남자 하나가 천일영의 앞을 가로막았다.

“돈은 물론이고 입고 있는 옷까지 모두 벗어. 싸구려 흑의지만 팔면 돈은 되니까.”

술 냄새를 풍기며 단도를 꺼내 든 남자는 능숙하게 천일영을 압박하고 나섰다.

하루 이틀 해 본 솜씨가 아니다.

천일영을 협박하는 이 덩치 큰 남자는 무공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기골이 장대하고 커다란 덩치만큼이나 힘을 쓰는지, 그의 주변으로 둥글게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천일영을 감쌌다.

이 사람이 항주 외곽 입구 패거리의 두목이라는 뜻이다.

“속옷은 봐줄 테니 칼침 맞기 전에 빨리 벗어라. 아니면 그 곱상한 얼굴에 줄이 갈 테니.”

“푸하하핫. 형님, 속옷은 봐주는 게 아니라 팔지 못하니까 그냥 두는 거 아니요.”

“낄낄낄. 팔 수 있으면 네가 빼앗아 보든가.”

그때였다.

휘이이이잉.

어디에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은 천일영의 곁을 부드럽게 지나쳐 기분 좋게 떠들어 대는 무뢰배들 사이로 흘러갔다.

그리고 따스한 열기를 가진 바람이 서서히 무뢰배들의 몸을 휘어 감는다.

조용히 불어온 바람이 어느새 무뢰배들의 몸을 모두 감싸자, 그때까지 따스했던 바람이 갑자기 차갑게 식으며 날카로운 기운을 매섭게 풍겼다.

빡. 빡. 빠바박!

찌를 듯 차가운 기운을 풍기던 바람은 순식간에 수십 마리의 뱀처럼 갈라지며 무뢰배들의 목을 찢을 듯 때려 댄다.

한편 무뢰배들은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어찌 된 영문인지 알지도 못하고 비명과 함께 피를 토해 냈다.

“컥.”

“크악.”

“쿠헥.”

그중에서 두목으로 보이는 무뢰배는 천일영이 특별히 세 번의 바람을 더 보냈다.

그 충격으로 폐부까지 뒤집어 놓으려는 것으로, 죽지는 않지만 아마 일 년이 지나도 완전히 몸을 회복하기는 힘들 터.

죄 없는 사람들의 돈을 뜯어 술이나 마시는 인간에게는 자비를 베풀 이유는 없다.

“커흑…… 쿠에에에엑.”

툭.

피를 토하던 두목이 이내 정신을 잃었다.

그러나 두목과 무뢰배들이 쓰러진 이후 오히려 뒤에서 더 큰 소란이 일기 시작한다.

이곳은 모든 거주민이 전부 무뢰배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저 일춘파 두목이 왜 쓰러지는 거지? 아무 일도 없는데. 어쨌든 이제 우리가 털면 되나? 으흐흐흐흐.”

아마 지금 일어난 일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말로 이상한 일이긴 할 것이었다.

순식간에 십여 명의 사람들이 피를 토하며 일제히 쓰러졌으니 말이다.

그러나 멀리서 바라보던 또 다른 무뢰배 오십여 명에게는 기회다.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쓰러지자, 힘이 부족해 먹이를 빼앗긴 나머지 무뢰배들이 천일영을 덮치기 위해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때 점소이가 급히 뛰어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돈을 내놓고, 옷을 벗으라더니 갑자기 쓰러지는군.”

“공자님, 그것이 말이 됩니까?”

“집단 식중독(食中毒)인 듯하네. 뭔가 잘못 먹었겠지.”

“네에?”

“집단 식중독(食中毒)이다.”

그때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점소이의 뒤로 다가오던 무뢰배들이 슬그머니 등을 돌리고 도망가는 것이 천일영의 눈에 띄었다.

몇몇은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는 집 안으로 도망가듯 튀어 들어가는 것이, 점소이와 얼굴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도 날 듯한 얼굴이다.

“이보게, 점소이. 다들 자네 얼굴을 보고 도망을 가는군.”

“이곳에 왔을 때 강도를 당할 뻔하여 때려 준 적이 있을 뿐입니다.”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이었네.”

“저놈들이 너무 약골인 겁니다. 그나저나 아무 일도 없으신 거 맞죠?”

점소이는 언뜻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었지만, 딱히 공자의 모습을 보니 뭔가를 하지는 않은 듯 보인다.

무공을 사용 못 하는 사람이니 말이다.

허나 무뢰배 소굴의 초입부터 이러한데 안으로 들어설수록 어떠하겠는가.

방금도 위험했지만 안쪽으로 들어설수록 무뢰배의 질이 점점 안 좋아지고, 비록 삼류이기는 하나 무공을 사용할 수 있는 자들도 나타난다.

안으로 접어들수록 점소이의 눈길도 길을 따라서 차츰 매서워졌다.

그리고 이내 도착한 월영의 집.

“저 앞집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다 쓰러져 가는 집이군. 낙원촌에 있는 집도 저것보다는 나을 것 같네.”

“의뢰비를 너무 과하게 취하여 받으니 일이 없어 저러고 사는 것이라는 말도 있고. 아무튼 종잡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만나 보면 알 일이지. 수고했네.”

천일영이 소매에 손을 넣어 돈을 꺼내려 하자 점소이가 한 발 뒤로 빼며 손사래를 친다.

전에 받은 은자가 너무 많아 사양을 하는가 했지만, 사실은 이런 이상한 사람을 소개해 주고 돈을 받는 것이 양심에 찔리는 일.

대신 점소이는 발걸음을 뒤로 물러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저는 여기에 있을 테니 만나 보고 오십시오.”

“허허…… 나는 자네가 생각하는 만큼 약골은 아닐세.”

다 쓰러져 가는 집이었다.

그러나 사람 사는 곳이라고 툇마루가 있는 마당은 제법 운치도 있어 보였고, 나무 세 그루에는 열매도 제법 맺혀 있었다.

하지만 마당에는 제법 많은 양의 피가 흘렀는지 검붉게 변한 흔적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듯 도드라져 보이는 핏자국은 일부러 보라는 듯 지우지 않고 방치된 상태.

아마도 경고의 의미일 터다.

‘역시 기인(奇人)이라고 해야 하나.’

사람이 마당으로 들어서는 것을 모를 리 없을 터.

허나 월영은 툇마루에 다리를 꼬고 누운 채 눈을 감고 있다.

그가 느끼기에 아무런 무공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자 경계할 대상은 아니라고 판단한 듯한데, 이 모습을 보니 확실했다.

분명 이 무당의 도사는 의뢰비에 폭리를 취하여 사람들이 찾지 않아 가난한 것이 아니라 저 기이한 행동 때문에 배를 곯는다는 것을 말이다.

“무당의 도사 월영에게 의뢰를 할 것이 있어 찾아왔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겠는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둘째로 하고, 첫째는 내가 아주 비싸다는 것부터 알아야 할 것이오.”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다. 허나 그만큼의 실력도 있다고 하더군.”

“무슨 일인지 말이나 꺼내 보시오.”

“사람을 지키는 일이다. 내 가족으로 여자 한 명과 아이 한 명을 지키는 일이지. 삼 일 정도의 의뢰다.”

“…….”

눈을 감은 채 누워서 뭔가를 생각하는 듯 눈알을 굴리고 있던 몸이 서서히 일어난다.

허나 몸을 일으킨 그 모습은 삐쩍 마른 꼴이 사람이 맞나 싶다.

또한 옷차림은 어떠한가.

가까이에서 보니 시장에서 본 모습은 차라리 나은 편이다.

해지고 꿰맨 자국이 문제가 아니라 옷감의 원형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지경.

그러나 눈빛만큼은 예사롭지 않은 것이 천일영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고집 있고 뚝심 있는 눈.

응당 무인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눈이지만, 돈에 무공을 파는 세상에서 천일영도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굳센 눈이다.

“기한이 길었다면 거절했을 것이나 삼 일이라면 괜찮을 듯하오. 보수는 은자 이십…….”

“어허!”

순간 천일영이 월영의 말을 가로막는다.

그리고는 짐짓 돈이 들어 있는 주머니를 은근히 앞으로 내세웠다.

“내 가족을 지키는 일인데 보수는 후히 줄 것이다.”

“……?”

월영이 잠시 눈을 끔벅이며 눈앞의 공자를 바라보았다.

분명 은자 이십 냥을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제대로 듣지도 않고 말을 가로막다니?

게다가 저 돈이 들어 있는 주머니는 왜 보인다는 말인가.

사람을 삼 일 지키는 데 은자 이십 냥이면 충분히 큰 금액이다.

아니, 솔직히 바가지가 아닌가.

“그…… 비싸다는 말이라면 다른 곳을 찾아보시는 게 좋을 듯하오.”

“내 가족을 지키는 일이라 하지 않았는가. 소중한 것을 지키는 데 큰돈이 들어도 아깝지 않다.”

“어허…… 이거 참. 그럼 은자 오십…….”

“분명 무당의 도사는 고명하다고 들었는데 은자 오십 냥이라니. 내가 너무 자네를 크게 평가한 모양이군.”

“그럼 금화 한 냥이라도 줄 것이오? 말도 안 되는 소리……!”

탁.

순간 월영의 눈앞에 놓인 금화 한 냥.

툇마루에 놓인 반짝이는 금화에 월영은 잠시 얼떨떨한 기분을 금치 못했다.

게다가 금화는 오늘 태어나서 처음으로 실물을 보는 것이다.

‘이거 진짜 금화? 이 공자가 미친 것이 아닌가.’

철전 다섯 냥에 소면이 한 그릇이고, 동전 30개면 한 가족이 한 달을 먹고 산다.

동전이 100개가 되어야 은자가 한 냥이고, 은자가 100개가 되어야 금화가 한 냥이다.

그런데 이런 큰돈을 서슴없이 내놓는다니.

“내일 아침까지 일월 객잔으로 오거라.”

“일월 객잔? 그곳으로 가면 되는 것이오?”

“그렇다. 내일 아침 해가 뜰 때 오면 되겠군.”

“아…… 알겠소.”

등을 돌리고 밖으로 나서려던 공자가 잠시 걸음을 멈춘다.

월영은 그 모습을 보며 역시 하고 생각한다.

너무 많은 금액을 지불했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 돈을 무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혹시 우리 조카가 좋아하는 당과를 사 주고 싶은데 잘 아는 곳이 없는가.”

“당과? 아!”

순간 뭔가를 깨닫는 표정을 지으며 천일영과 금화를 번갈아 바라보는 월영.

당과 가게의 상품대는 물론이고 이 돈이면 어려운 시장 상인들을 도울 길이 수십 가지나 그의 눈앞에 그려진다.

‘이제야 그걸 생각한 것이냐, 이 멍충아.’

천일영은 월영이 급히 신을 신고 뛰어나가는 것을 보며 한숨과 웃음을 동시에 지었다.

이제 내일 월영이 오면 황산으로 마음 편히 떠날 수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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