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신귀환기-17화 (18/270)

17화

늦은 밤.

한 명의 신형이 어두운 수풀을 헤치며 급히 달리고 있다.

깊은 부상을 당한 듯 한눈에도 비틀거리는 것이 보일 정도.

그러나 신형은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하아, 하아. 젠장, 여기에서 죽을 수는!”

어깨와 허리에 난 깊은 상처에서 심장이 뛸 때마다 피가 뿜어져 나와 풀숲에 흔적을 남길 때마다, 도망치는 신형은 이리저리 길을 비틀어 흔적을 끊으려 애쓰지만 소용없는 일.

뒤에서는 사냥개 몇 마리가 애써 끊어 내는 흔적을 이어 가며 뒤를 쫓고 있었다.

“아무리 도망가려 해도 이곳을 빠져나가지는 못한다. 그러니 항복하거라. 그리하면 고통스럽게 죽이지는 않겠다고 약속하마.”

핏핏핏!

그러나 항복하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빠른 속도로 쏘아 올려지는 화살.

“망할 놈들, 항상 말하고 행동이 다른 놈들이야.”

어둠 속의 신형은 화살을 피하기 위해 큰 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몸을 옮겼다.

경공술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기력이 다하고 이미 온몸의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더 빨리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죽을 수는 없다. 네놈들을 죽일 때까지 나는 죽을 수 없다.”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말과는 달리 이미 죽음이 목전이다.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기 위해 힘겹게 몸을 비틀어 가며 뛰어든 나무들의 숲.

그 뒤로 수십 개의 화살이 박혀 오는 것을 소리가 알려 준다.

탁. 타탁. 타다닥.

애써 다친 몸을 비틀어 가며 몸을 날린 나무숲은 생각대로 화살을 막아 준다.

그러나 어둠을 달리고 있는 신형은 알지 못했다.

그것이 추적자들에 의해서 길이 조작되고 있다는 것을.

그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쏴아아아아아아…….

거대한 폭포가 눈앞에 떨어지는 땅의 끝으로 몰렸다.

아득한 높이의 벼랑 끝.

그것이 의도된 것이라는 깨달은 후에는 너무 늦었다.

깊은 상처가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을까.

신형은 뒤를 돌아 자신을 추적해 온 무인들에게 칼을 꺼내 들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는 것 같구나. 어디 덤벼 보거…… 크으으윽!”

피이이잇. 푸확.

힘겹게 연 입에서 나온 말이 끝나기도 전, 화살이 날아와 가슴에 박히며 몸을 뒤로 밀어냈다.

신형은 이를 악물고 버티려 했건만 또 다른 화살이 날아와 어깨며 다리에 박혀 들었다.

피이이잇. 피잇. 피피핏.

“크으으으아악!”

버티려 했지만 화살의 밀어내는 힘이, 버티는 다리의 힘을 넘어선 지 오래.

신형은 이윽고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채 벼랑으로 떨어져 내린다.

그리고 신형이 절벽으로 떨어지자 이내 모습을 드러내는 십여 명의 무인들.

그들의 발치에는 길 안내를 잘했다고 칭찬받기를 원하는 사냥개가 혀를 내밀고 헉헉거린다.

“잘했구나, 기특한 것들. 이따가 오랜만에 고기를 먹여 주마. 그러니 저 시체를 찾아오거라. 자, 가거라.”

훤칠하게 큰 키에 제법 호쾌한 인상의 남자가 사냥개의 등을 때리며 또다시 명령을 내리자, 사냥개들은 일제히 산길을 돌아 벼랑 아래로 뛰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훈련을 받은 사냥개들.

오래 뛰어도 지치지 않고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도 능숙하다.

무림에서도 이런 개들을 키우는 것은 막대한 재력이 있어야 가능하거늘, 이 남자는 무려 다섯 마리가 넘는 개를 동반하고 있었다.

“감히 내 구역인 이 황산에서 헛짓거리를 하는 놈이 있구나. 시체는 찾거든 잘 다져서 개들한테 먹이로 주거라.”

“네.”

깊은 상처와 화살을 여러 군데 맞았다.

살아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남자는 알아서 시신을 가져올 개들을 뒤로하고 자신의 거처로 발길을 옮겼다.

기분 좋게 마시다가 나왔는데 생각보다 일찍 끝이 났다.

이제부터는 돌아가서 남은 술을 즐기기만 하면 될 터다.

* * *

“월영아.”

“네, 공자님.”

“점소이와 단옥, 그리고 객잔 주인을 제외한 그 누구도 접근시키지 말거라. 길면 삼 일 정도 걸릴 것이다.”

“네.”

하루 사이에 월영은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다. 분명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데, 어쩐지 말을 놓기가 쉽지 않다.

금전이 무기가 되는 재력가여서 그런 것인가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자신의 성격을 잘 아는 월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이유보다는 어쩐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위엄이 있어서 고개를 자꾸 숙이게 되는 느낌이다.

“그럼 다녀오지.”

하루빨리 여동생의 눈을 고치려는 생각에 천일영이 검 한 자루와 간단한 봇짐 하나만을 들고 빠르게 객잔을 나서자 점소이가 급히 달려와 붙잡는다.

점소이가 보기에 이 세상 물정 모르는 공자가 딱 죽으려고 나가는 꼴이다.

“그러시고 가시게요? 밖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십니까?”

점소이가 만두와 육포를 비롯하여 이것저것을 봇짐에 챙겨 넣었다.

무공이라고는 하나도 익히지 않은 사람이 겁도 없는지, 표국의 호위조차 없이 먼 길을 다녀온다고 하니 점소이의 걱정이 태산과 같았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본 객잔 주인이 혀를 차며 한마디 하고 나섰다.

“그렇게 안 챙겨도 안 죽는다. 강호 초출을 나가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쑤셔 넣어!”

“하지만…… 노숙이라도 하게 되면…….”

“걱정 안 해도 저 손님이 죽을 일은 없다.”

“그걸 주인어른이 어찌 아십니까요!”

“안 죽는다면 안 죽어, 이놈아!”

객잔 주인의 야박한 잔소리를 한 귀로 흘린 점소이의 손길이 더욱 빨라진다.

산적을 만나 도망을 가도 밥은 굶지 않을 테고, 날씨가 변덕을 부려 노숙을 해도 배는 곯지 않을 것이다.

그뿐인가.

들짐승 때문에 고생을 해도 먹이를 던져 주고 도망을 갈 수도 있을 터다.

“표국의 사람을 만나면 웃돈을 줘서라도 같이 다니십시오.”

“그러지.”

걱정을 하는 팔자가 따로 있는가 보다.

절정의 고수까지 다다랐던 사람이 무슨 걱정이 그리 많은지 점소이는 마을 어귀까지 따라나서 배웅을 하고도, 길을 가는 천일영의 등 뒤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덕분에 천일영은 천지일축공(天池一縮功)을 쓰지도 못한 채 한참을 걸어야 했다.

“이제야 들어갔군.”

천일영의 다리가 지면을 박찼다.

항주에서 황산까지는 700리. 보통은 육 일에서 칠 일을 걸어야 도착할 수 있을 거리다.

그러나 천일영이 직접 만든 천지일축공(天池一縮功)을 쓰면 두 시진도 안 되어 도착할 수 있었다.

천지일축공(天池一縮功)은 빠르게 마교와 멀어지기 위하여 천마신교를 나오기 전에 급히 만든 무공이었다.

하지만 이치에 어긋나는 무공이기도 했다.

무공이란 무릇 사람의 내공을 기반으로 소모량을 계산하여 만들어야 하지만, 천지일축공(天池一縮功)은 무한에 가까운 천일영의 내공 때문에 효율이라는 것을 무시하고 만든 무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빠르기만큼은 천하제일. 중원에서 따라올 무공이 없었다.

‘내력 소모가 심하고 몸에 부담이 많이 걸려서 나 말고 쓸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

파앙!

천지일축공(天池一縮功)을 사용하며 주변의 풍경이 빠르게 흐르자, 물결처럼 흐르는 풍경이 떠올리기 싫은 과거의 기억을 수면 위로 띄운다.

천일영이 천마가 되기 전, 무명암살대의 단주가 되기도 이전부터 도현을 제외하고 가장 친하게 지낸 사람이 있었다.

천일영이 직접 친우(親友)라 부르는 인물.

그는 천일영보다 열두 살이나 많았지만 언제나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고, 귀주성 전투로 유명해지기 전부터 마왕이라는 이름값도 무시한 채 언제나 천일영을 먼저 만나러 왔던 사람이다.

바로 독천마왕 서가흔.

그러나 일 년 전, 그는 황산에서 술 한잔하자는 약속을 하고는 삼 일 뒤에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독살이었다.

서가흔의 죽음은 여러 가지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독을 다루는 마왕이 독에 살해당했다는 것은 천마신교로서는 일단 숨기고 봐야 할 문제였다.

천마신교의 독을 다루는 수준이 무림맹의 사천당문(四川唐門)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을 공표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몇몇 마왕들이 선두에 서서 사건을 덮는 것에만 신경을 썼지.’

명천마왕 소초련을 제외한 나머지 마왕들은 모두 천일영이 범인을 잡고자 벌이는 조사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

마왕들은 범인을 잡는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서가흔이 죽은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들의 모든 신경은 천마신교의 위상이 떨어지지 않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러나 범인은 결국 잡혔다.

비록 형식적인 조사였지만 그래도 범인을 찾아내기는 했다.

서가흔의 오랜 시녀였던 여자다.

무려 이십오 년이나 서가흔을 모신 그녀가 단독으로 일을 저질렀다.

그러나 그 시녀는 천일영이 만나 보기도 전에 자결을 했다.

너무나도 작위적인 일이었다.

이후 천일영이 추가로 조사를 명령하자 소초련을 제외한 나머지 마왕들은 일심동체(一心同體)라도 되는 듯 범인이 죽었다는 명분을 내세워 협조조차 거부했다.

알면서도 당한다는 것이 바로 딱 서가흔의 죽음에 대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서가흔의 죽음은 그대로 묻혀 버렸다.

슬펐다.

매일 가슴을 치고 찢어지는 마음을 견뎌야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천일영은 매일같이 술로 허전한 마음을 달래며, 서가흔의 딸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연통(煙筒)조차 넣지 않고 살아왔었다.

그래서 황산으로 발걸음을 하기 꺼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

영약도 구해야 하지만 술 한잔하자던 오래전의 약속도 이제는 지킬 때가 되었다.

멀리 황산의 산자락이 보이기 시작하자, 천일영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잠시 접었다.

이곳에 천일영이 원하는 영약이 있었다.

그것도 천일영이 가져가 주기를 바라듯 고이 모셔져 있을 것이었다.

* * *

황산은 천하의 명산이자 명승지였다.

수많은 시인들이 황산을 찬양하는 시를 짓고, 이름 높은 화공들은 절경으로 이름 높은 산자락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담아내고자 전국에서 부푼 꿈을 안고 모여들었다.

그러나 이름 높은 황산에는 기밀로 취급되어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모습이 있었으니, 바로 넓은 산맥 속에 숨어 있는 수많은 영약들을 캐고 보관하는 약재 창고가 그것이었다.

무림의 삼대 세력이 하나의 영약이라도 더 찾아내기 위하여 싸움을 벌였고, 보이지 않는 깊은 산속에서는 매일같이 피와 살이 튀었다.

그러나 황산의 초입은 수많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평온한 모습이었다.

“혹 화조주(花調酒)가 있는가?”

“화조주(花調酒)는 없고 향설주(香雪酒)는 있습니다요. 화조주(花調酒)는 아마 이곳에서는 구하시기 힘들 겁니다.”

“그런가. 그럼 향설주(香雪酒)로 2병 주게.”

“다른 것은 필요 없으십니까요?”

“고노육(古老肉)이 있다면 부탁하지.”

술과 안주를 들고 천일영은 황산의 입구에서 깊은 산속으로 이어지는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황산은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는 거친 산맥이다.

때문에 안휘성(安徽省)은 황산을 근거지로 하는 부용검파(芙蓉劍派)에 해마다 금화 30냥을 주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을 통제했다.

이는 해마다 절경에 홀려 산속으로 들어가 죽는 수천 명의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다.

“이 이상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산짐승에게 잡아먹히거나 길을 잃고 죽습니다.”

부용검파(芙蓉劍派)의 이류 무인 하나가 천일영을 막아섰다.

그러나 순간 눈앞에 있는 사람의 신형이 흔들리더니.

휙!

그 자리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본 무인은 오금을 지릴 정도로 놀라 뒤로 자빠졌다.

“으…… 으힉!”

부용검파(芙蓉劍派)의 이류 무인은 기절할 듯 놀라 쓰러진 땅바닥에서 눈만 끔뻑였다.

분명 사람이 있었던 자리에는 휘몰아치는 바람만이 남아 있었다.

바람이 남아 있다는 것은 그 자리에 뭐가 분명히 있기는 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분명…… 사…… 사람 같았는데 귀…… 귀신이었나? 근데 귀신이 술병은 왜 들고 있어?”

해가 어스름이 비껴가며 황산을 붉게 물들였다. 귀신이 나타날 시간이었다.

그리고 붉은 노을이 달빛에 자리를 물려 주면 황산은 어둠에 잠길 것이었고, 술병 두 개를 들고 있었던 귀신은 마음껏 황산을 돌아다닐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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