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황산의 봉우리로 오르는 길. 아니, 사실은 길이랄 것도 없다.
기암괴석(奇巖怪石)이 연이어 위로 솟구쳐, 길을 만들 수도 없고 사람의 발길이 들어서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황산의 깊숙한 곳이다.
그 깊은 산자락 안에서도 가장 특별한 곳이 있었으니, 가장 높은 봉우리 중에서도 세 번째 위치한 곳에 천하제일이라 할 만큼의 신비경(神秘境)이 있다고 서가흔이 말했었다.
타타타탓. 타타탓.
빠르게 산을 오르는 천일영.
그 모습이 마치 비상하는 매와 같다.
천지일축공이다.
천지일축공은 지면을 강하게 박차야 하기 때문에 평지에서만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건 아니었다.
천지일축공은 평지뿐만 아니라 수풀이나 산까지 모두 사용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탈마의 경지에 오르며 몸 안에서 흐르는 기를 조절하는 것뿐만 아니라 몸 밖으로도 기를 원하는 대로 운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처음 천지일축공을 만들었을 때에는 지면을 박차는 힘이 너무 강해 땅이 움푹 파이고 천지가 뒤흔들리는 소리가 났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발이 지면을 스치기만 해도 이미 빠르게 이동을 할 수 있다.
소리조차 내지 않고 두 시진에 칠백 리를 갈 수 있는 경지.
그러나.
‘확실히 천지일축공은 나중에 조금 더 손을 보아야겠군. 아마 이보다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터.’
순식간에 박찬 지면을 뒤로하고 어느새 천일영은 독천마왕 서가흔과 약속을 했던 자리로 이끌려 갔다.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기암괴석의 봉우리는 그야말로 신비경의 경치를 보여 주기에 한 치의 과장도 없는 모습.
그러나 그 웅장하고 장엄한 경치는 슬프게만 보인다.
주르르륵.
약속의 장소에서 향설주(香雪酒)가 천일영의 손길을 타고 황산의 아래로 흘러 떨어진다.
향설주가 천일영의 마음을 대신 말이라도 하는 듯, 맑은 술 방울이 마치 눈물처럼 산자락 아래도 흩어져 나갔다.
침통한 얼굴.
흐르는 술만큼이나 마음도 후회에 떠밀려 내려간다.
씁쓸한 마음. 허망한 후회.
또한 서가흔의 딸에게 떠난다는 말도 없이 천마신교를 나왔다.
어쩌면 서가흔의 죽음을 겪은 이후, 그동안 애써 외면해 왔던 사람의 생명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듯하다.
가까운 사람이 죽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기에.
때문에 천이영이 죽음을 목전에 두었을 때 더욱 간절했을 테고, 서가흔의 죽음이 겹쳐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다시는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구나.’
한 병의 술이 후회와 함께 황산의 산줄기를 타고 모두 흘러내린 후.
천일영은 두 번째의 술병을 열기 위해 들어 올렸다.
한 병은 친우를 위해.
또 한 병은 자신을 위해 가져온 술이다.
그러나 천일영은 술병을 열기 위해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5리쯤 떨어진 황산의 깊은 곳.
순간 그곳에서 기감에 걸린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해괴하다.
‘사람인가? 다 죽어 가고 있는지 기가 희미하게 느껴지는 데다가 주변에 개들이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것이 심상치 않구나. 들개에게 공격이라도 당한 것 같군.’
모르는 사람이라 하여도 살아 있는 자가 들개에게 뜯어 먹히는 것을 알고도 모른 척한다는 것은 너무도 불편한 일.
꿈에라도 한 번쯤 나올 법한 끔찍한 일이다.
게다가 친우인 서가흔과의 약속이 남아 있는 자리.
이곳에서 또 다른 사람의 죽음을 외면하는 것도 불편함에 한몫 더한다.
“미안하다, 서가흔. 남은 술은 나중에 마셔야 할 것 같구나.”
파아앙!
천일영은 급히 신형을 날렸다.
기암괴석과 산자락을 그대로 관통하는 경공술.
단 한 번도 지면을 밟지 않고 한 번에 날아갈 만큼의 힘을 발에 싣고 땅을 박찼다.
허나 그만큼의 힘과 내공을 싣고 땅을 박찼으면 분명 산봉우리가 산산조각이 나고 박살이 나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
그러나 천일영이 땅을 박차고 튀어 나간 곳은 풀 한 포기 흔들림도 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서가흔과의 약속이 자리 잡고 있는 대지. 어찌 소중히 여기지 않으랴.
“5리 정도 떨어져 있는 거리다. 그러나 눈 다섯 번 감았다가 뜰 시간이면 도착한다.”
주변을 도는 개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기감으로 느낀 천일영은 허리에 찬 무극지검을 꺼내 들었다.
* * *
“끄으으으윽. 하아, 하아. 이렇게 죽는…… 것인가…….”
어젯밤 맞은 화살이 몸을 밀어내는 순간, 마지막 힘을 쥐어짜 지면을 박차고 몸을 벼랑 아래로 날렸다.
황산의 지리를 비교적 잘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
왜냐하면 지면의 옆에는 물줄기가 흐르고 있어 그곳으로 몸을 던지면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대로 떨어졌다면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지금쯤 수박이 터지듯 온통 뇌수를 뿌리며 죽어 있을 터.
‘폭포의 물살에 떨어진 이후 남은 기를 모아 출혈을 막기는 했지만…….’
이후에는 기력이 모두 다하여 움직이지 못한 채 물살에 몸을 맡기고 여기까지 흘러 내려왔다.
꼬박 하루 동안이다.
차가운 물이 체온을 떨어뜨려 피가 도는 속도를 느리게 만들어 준 덕분에 아직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있지만, 움직이지 못해 물살에 몸을 맡긴 덕에 또다시 사냥개에게 추격을 허용해 버리고 말았다.
마침 물가로 쓰러진 나무에 몸이 걸려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수면 위로 떠오른 아주 작은 몸의 부위만으로도 개들이 냄새를 맡고 다시 따라온 것이었다.
“망할……. 개들은 물가에 들어서면 냄새를 못 맡는다고 하던데 다 거짓말인가.”
개와 들짐승들이 물가로 들어서면 이후부터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 것은 분명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 개들은 사람의 냄새와 피 냄새를 맡으며 따라오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천리미향(千里迷香).
추적향이다.
그것이 어제 맞은 화살에 발라져 있었고, 개들은 그 냄새를 맡고 추격을 하도록 길들여져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냥개의 주인이 어젯밤 남은 술을 마시러 마음 편히 돌아간 것이었다.
알아서 사냥해 올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정작 화살에 맞은 당사자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였으니 물살에 떠밀려 내려와서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개들이 쫓아온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크르르르릉.
사냥감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개의 눈빛이 살기로 가득하다.
이미 죽음이 목전.
어젯밤 그토록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친 것도 전부 허사다.
이미 사냥개 다섯 마리가 쓰러진 나무 위로 올라와서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이제 사냥개의 튼튼한 도약 한 번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젠장……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여기에서 죽을 수는 없는데…….”
크르르르릉. 컹. 컹. 컹.
머리 위 일 척 거리에서 개가 붉은 눈을 빛내며 짖는다.
게다가 다섯 마리 모두 턱을 뒤덮을 정도로 침을 흘리고 있는 상태.
꼬박 하루 동안 자신을 추적해 왔으니 얼마나 배가 고플 것인가.
눈물이 흘러내렸다.
슬퍼할 만큼의 기력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눈물이 나왔다.
억울하고 부당한 일에 복수를 하기 위해 배우고 있던 무공도 그만두고 왔는데 이런 꼴이다.
“사람에게 죽었으면 그나마 덜 억울했을지도. 최후가 개 먹이라니. 크극. 푸하하핫.”
실성한 듯 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그 소리가 사냥개들을 자극한 듯, 자신을 노려보던 다섯 마리의 사냥개가 갑자기 달려들기 시작한다.
무인의 코앞에서 달려드는 거대한 사냥개의 아가리가 벌어지며 이빨이 바로 눈앞에 보였다.
사냥개의 입에서 나는 썩은 내가 코를 찌를 듯 파고드는 것도.
질끈.
도저히 눈을 뜨고 있을 용기가 나지 않아 눈을 감았다.
사냥개가 자신의 얼굴을 뜯어 먹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볼 용기도 도저히 나지 않았다.
사냥개의 입에서 흐르는 침이 얼굴에 떨어지고, 이내 이빨이 얼굴을 마구 찔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살점이 마구잡이로 떨어져 나간다.
콰직. 우적. 우적. 콰지지직.
“으윽…… 크으으윽. 크아아아악!”
개에게 뜯어 먹히는 것이 너무도 억울하여 비명을 참으려 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다.
너무도 고통스럽다. 하지만 왜일까.
개한테 뜯어 먹히는 순간 눈을 감은 그 앞에는 어렸을 때 행복하게 살았던 화전(火田)마을이 떠올랐다.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을 때였다. 울지 않으려 했지만 눈물이 난다.
하지만 무인은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순간 눈을 뜨지 않을 수 없었다.
쿠우우우우우우우우웅.
갑자기 지축(地軸)이 흔들리는 듯 거대한 소리가 천지를 울리듯 퍼져 나간다.
마치 정천이지(頂天履地)라도 되는 듯한 크나큰 충격.
하늘에서 무엇인가가 빛처럼 곧장 땅으로 내리박히며, 거대한 바위를 쪼개고 주변의 자갈들을 하늘로 비산시켰다.
컹컹컹! 컹컹!
바위가 쪼개지며 나는 뿌연 돌가루의 연기가 사방을 가로막고 주변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그 소리에 사냥개들이 일제히 소리가 난 방향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개들도 무엇인가 위험을 직감한 듯 미친 듯이 짖기 시작한다.
“들개인 줄 알았더니 사람이 키우는 개인가.”
뿌연 돌가루의 연기 사이로 드러나는 모습. 놀랍게도 하늘에서 내리꽂힌 것의 정체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가 걸어 나오는 길을 따라 돌가루 연기가 마치 태풍의 바람에 떠밀려 가듯 자취를 감춘다.
난생처음 보는 믿기지 않는 광경.
‘황산에 살고 있는 신선인가?!’
그러나 놀란 것이 비단 죽어 가는 무인만은 아닌 듯하다.
사냥개들도 미친 듯 짖어 대며 하늘에서 떨어진 신형으로 달려갔다.
컹컹컹. 크르르르릉.
사냥개들은 놀랍게도 바로 달려드는 대신 조금의 거리를 두고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짐승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행동.
개들은 천천히 거리를 압박하며 둥글게 진형을 유지하듯 발걸음을 옮겼다.
그만큼 훈련을 잘 받은 개들이다.
“사람을 공격하게 길들여진 개라.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악취미구나. 짐승은 짐승을 사냥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법. 그것을 강제로 뒤틀었으니 너희는 별계(別界)의 생물과 마찬가지일 터다. 이제 그만 죽도록 하거라.”
휘이익!
깨갱. 깨개객. 커…… 깽. 깨갱깽!
퍼퍽. 퍼퍼퍽. 퍼버벅.
단 한 번의 섬광.
오묘한 빛을 발하는 검이 가로로 휘둘러지자 사냥개들은 각각의 위치에 떨어져 있었음에도 한 번에 모두 베어졌다.
단 한 번의 검인데, 신기하게도 사냥개들의 사지가 수십 조각으로 잘려 터져 나간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제는 눈마저 침침해져도, 그 화려하면서도 간결한, 아름다운 검의 움직임이 한눈에 박혀 들어왔다.
저런 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아마도 저것이 말로만 듣던 초절정의 고수인 모양이다.
무인은 아름다움에 취해 천일영의 검결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살게 된 건가. 하지만…….’
물가에 떠 있는 무인은 순간 살았다는 안도보다, 얼굴을 파고든 사냥개의 이빨 때문에 너덜너덜해진 얼굴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끼며 죽음을 직감했다.
무공을 배우던 시절에도 자신만큼 심하게 다친 사람을 제아무리 초절정의 고수라 할지도 낫게 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단순히 상처가 깊은 것 때문이 아니다.
차가운 물 속에 몸이 잠겨 있지만 펄펄 끓는 듯 피어 나오는 열기.
검에 다친 자상과 화살에 찔린 깊은 상처는 이미 곪기 시작했다.
차가운 물줄기가 곪는 시간을 조금 늦춰 줬을 뿐 이미 상처는 썩어 들어간 지 오래다.
게다가 반이나 뜯어 먹힌 얼굴.
이미 돌이킬 수 없다.
“심하게 다쳤구나.”
“구햐 주서성 가…… 괌사하니다. 대혀님.”
사냥개에게 뜯어 먹힌 입 때문에 발음이 새어 나간다.
미칠 듯한 통증이 엄습했지만 생명의 은인이다.
무인은 잇몸이 전부 다 드러난 채 애써 제대로 말하기 위해 노력했다.
목숨을 구해 준 은인에게 마지막 인사 정도는 제대로 하고 싶었기 때문에.
촤아악.
물에서 건져 올리는 손길이 부드럽다.
다친 곳이 잘못되었을까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이 느껴진다.
이렇게 무공이 강한 사람인데도 나 같은 사람을 신경 써 주는 것이 세간에서 보아 왔던 그렇고 그런 무인들과는 격이 다르달까.
하지만 어쩐지 아쉽다.
조금 더 말이라도 해 보고 싶건만 아까 고맙다고 말한 것이 마지막일 듯하다.
“죽기 직전이구나. 잠시 편히 자도록 하거라. 내가 혼신의 힘을 다해서 너를 고칠 터이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죽기 전에 안심시키는 소리일까. 끝까지 다정한 사람이네.’
무인은 눈을 감았다.
자신이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고,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눈앞의 무인이 자신의 혈도를 짚어 깊은 잠에 빠지게 된 것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