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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21화 (22/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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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콰과과광!

사혈련의 영약 채집 창고 문이 터져 날아가며, 문의 형상을 이루고 있던 나무들이 수천 조각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진다.

마치 벽력탄이라도 터진 듯한 충격과 소리.

그 소리는 일부러 천일영이 황산에 있는 사혈련 놈들을 깨우기 위해 장권 한 번으로 문을 박살 낸 소리다.

그리고 천일영의 예상대로 탁문일을 비롯한 이백여 명의 사혈련 무인들이 새벽잠을 설치고 뛰쳐나왔다.

“어떤 미친놈이 감히 이곳을 노리는 것이냐.”

탁문일이 흉신(凶神)의 기운을 올리며 내공이 가득 담긴 일갈을 터뜨린다.

그러나.

“네놈이 장로 탁문일인가.”

슈우욱욱.

콰아아앙!

순식간에 나무 분진 사이를 뚫고 날아 나온 천일영의 신형이 탁문일의 명치에 장권을 때려 박으며 살을 가르고 피부를 뚫는다.

탁문일은 자신이 장권을 맞은 것을 느끼기도 전에 엄청난 공력에 의해 신형이 뒤로 튀어 날아갔다.

뚜두두두두두둑! 뚜두둑!

콰아아앙!

장권의 충격이 온몸을 비틀고, 뼈가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영약 채집 창고 안에 선명하게 울려 퍼진다.

그것은 인간의 몸에 있는 갈비뼈 24개가 전부 부러져 폐부로 들이박히는 소름 끼치는 소리.

온몸이 비틀린 탁문일의 신형이 땅바닥을 수차례 튕겨 나간 후 담벼락을 반쯤 뚫고 처박히며 피를 토했다.

그리고 공간을 지배하며 탁문일의 기운을 밀어내는 살신(煞神)의 기운이 온통 사혈련의 무인들을 짓누르기 시작한다.

“모두 꿇어라.”

단 한마디.

그 말 한마디에 사혈련의 무인들은 마치 온몸이 속박된 것처럼 무릎을 꿇었다.

무공의 높고 낮음을 떠나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기운이 온몸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으니, 일부 이류 무인들은 오줌을 지리는 사람까지 나올 정도다.

“영기의 땅에서 가져간 영약이 있을 것이다. 가져오거라.”

“네…… 넵. 알겠습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거부할 수 없다.

그리고 이내 떨리는 손으로 창고 안에서 들고나온 나무 상자 세 개.

그 안에 영기의 흙과 함께 만년 하수오 2개와 만년 삼 2개, 그리고 천년 삼 세 뿌리가 나뉘어 들어 있다.

“이것은 너희 가족이 지켜 온 것이 아니냐. 원래부터 네 것이니 가져가도록 하거라.”

“감사합니다, 대협님. 또 한 번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미련 없이 금채홍에게 영약을 넘기는 천일영.

그 손길에 조금의 아쉬움도 묻어나지 않는 것을 본 금채홍이 속으로 남몰래 미소를 짓는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이 눈앞의 대협에게 기울고 있는 것을 마음속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영기의 땅에서 채취한 영약 말고 나머지도 가지고 오너라.”

“네, 대인. 가져오겠습니다.”

순간 금채홍의 눈이 끔벅거린다.

영기의 땅에서 키워진 영약을 찾아 주기 위하여 온 것이 아니란 말인가?

그러고 보니 아까 도둑질이라고 말했던 것이?

“이것뿐이더냐.”

“화…… 황산의 영약이 씨가 말랐습니다.”

백 년 삼 세 뿌리와 오십 년 영지버섯이 전부.

그러나 뒤에 귀중하게 들려진 또 하나의 나무상자를 열자 하수오가 들어 있다.

분명 천년쯤 된 하수오. 순간 천일영의 눈에 난감함이 떠오른다.

“하수오만 내놓고 나머지는 가지고 가거라.”

천일영은 천년 하수오 하나만을 들고 나머지는 사혈련의 무인에게 돌려준다.

이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여동생의 눈을 고칠 수 있을 터.

그러나 확신까지는 아니었기에 천일영은 무림맹의 영약 채집 창고까지 털까 고민을 하다 고개를 저었다.

분명 천마신교의 영약 채집 창고를 제외한 사혈련과 무림맹의 영약 창고를 털어 버리게 되면, 천마신교가 한 짓으로 오해를 받아 자칫 정마대전의 불씨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천일영 본인이 천마신교 천마였기도 하고.

“어쩔 수 없는 노릇인가. 약재는 이것으로 되었다 하고……. 남은 일은 저 사냥개들이겠구나.”

천일영의 눈이 사냥개 이십여 마리가 들어 있는 짐승 우리로 향한다.

그간 여덟 마리나 되는 사냥개들을 죽였지만, 아직 독 이빨을 드러내는 사냥개들이 남아 있었다.

놈들은 천일영의 눈빛에 죽음을 직감했는지 짐승 우리가 부서질 정도로 날뛰기 시작한다.

“가엽지만 이미 피 맛을 아는 너희들이 살아갈 곳은 없구나. 이제는 개가 아닌 괴물이거늘.”

슈욱. 푸푹.

깨갱. 깨앵. 깨개갱.

짐승의 우리 안으로 들어가는 칼날.

천일영은 조용히 십여 마리의 개들을 최대한 고통스럽지 않게 죽음으로 인도했다.

그러나 숨기려 해도 떠오르는 침통한 표정.

개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러나 비통한 마음 뒤에, 뒤에서 떨고 있는 또 다른 사냥개들을 보자 안도의 화색이 돈다.

“너희는 아직 피 맛을 알지 못하는 게냐.”

끼잉. 끼잉. 끼잉.

천일영이 구석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개들에게 다가간다.

아직 훈련이 끝나지 않은 사냥개들.

사람의 피와 살의 맛을 알지 못하는 어린 개들이다.

천일영은 부드러운 손길로 개들을 쓰다듬었다.

“밖에 나가서 자유롭게 살거라.”

컹컹. 컹컹컹.

마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듯, 십여 마리의 개들이 우리를 떠나 파편 조각만을 남긴 정문으로 달려 나갔다.

여태 자유를 막아 오던 두 개의 문이 모두 열린 지금, 개들에게는 진정한 자유의 길이 보였을 터.

그러나.

크르르르릉.

다른 개들이 있던 우리보다 두 배는 큰 철로 만든 상자.

쇠창살이 빼곡히 가로막혀 있는 곳에서 살기가 가득한 눈빛이 낮은 울음소리와 함께 밖의 세상을 뚫을 듯 노려본다.

보통의 짐승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흉악한 기운.

그러나 천일영은 개의치 않고 무극지검으로 쇠창살을 갈라 버리고 짐승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네 녀석, 아픈 게냐.”

크르르릉. 컹컹!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듯한 낮은 울음소리.

그것은 짐승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로서의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 모습이다.

수없는 상처와 둔기로 맞은 자국들.

그렇게 되기까지 이 짐승은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천일영이 가까이 다가가자 왜인지 이 짐승은 고개를 안으로 말며 조용해진다.

“길들여지지 않자 때린 것이냐.”

스윽.

천일영이 손을 대자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어 간다.

털에 뭉쳐 있던 핏덩이가 서서히 사라지고, 둔기에 짓무른 살들이 아물며 빠르게 고통이 사라지자 거대한 짐승이 갑자기 혀를 내밀고 천일영의 손을 핥기 시작했다.

“허허, 녀석.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데 어찌하여 여기까지 잡혀 왔느냐.”

컹컹. 컹컹.

천일영의 손을 핥던 짐승이 소리 높여 짖는다.

모두 물어 죽일 것만 같던 눈도 이제는 제법 부드러워져서 살기가 풀린 듯 보인다.

“이 짐승은 무엇입니까? 황산에서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음…… 늑대(랑(狼))이구나. 몸집이 다른 녀석들보다도 훨씬 큰 것을 보니 아마 무리의 우두머리였겠지. 그런데 이 녀석 몸이 회색이어야 하는데 흰색이 더 많구나.”

“잘못 태어난 것일까요.”

“세상에 잘못 태어난 것은 없다. 잘못 살아가는 것은 있을지라도.”

천일영이 몸을 일으키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늑대도 눈을 빛내며 같이 일어선다.

마치 따라오겠다는 듯.

아무에게도 길들여지지 않고, 그 어떤 존재 앞에서라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짐승이 천일영 앞에서는 마치 갓 태어난 순한 강아지처럼 머리를 다리에 비비며 응석을 부린다.

“강한 자보다는 현명한 사람을 따른다고 하는데, 어찌하여 나를 따르는 것이냐.”

“아까 대협님께서 길이 들지 않은 개들을 살려 주는 것을 보고 현명한 분이라고 판단한 것은 아닐까요?”

“내가 현명하다? 이상한 녀석이구나. 그러나 따르겠다고 하면 내치지 않는다. 따라오거라.”

컹컹.

거대한 늑대는 잠시 탁문일의 쓰러진 신형을 바라보다가 천일영의 뒤를 따랐다.

그 위세와 기운은 무공을 배운 사혈련의 무인조차 소름 끼쳐 할 만큼이다.

“채홍아, 사혈련의 장로 탁문일도 네 원수다. 어찌하겠느냐. 아직 숨이 붙어 있다.”

“저자는 곧 죽을 것입니다. 이미 제 복수는 끝났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남은 이백의 무인들은 어찌하겠느냐.”

순간 사혈련의 영약 채집 창고에 또 한 번의 정적이 찾아온다.

이제부터는 그녀의 말 한마디에 자신들의 목숨이 달려 있는 것.

그들은 더욱 머리를 조아리며 긴 침묵을 애써 견뎠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명령에 따랐을 뿐. 그것이 죽어야 하는 이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그래, 알았다. 그럼 가도록 하자.”

“네.”

그때, 천일영을 따르던 늑대가 갑자기 자리에 멈춘다.

천일영이 그냥 밖으로 나가는 것을 확인한 순간, 천일영의 손에 잠시 머리를 비비고 쓰러져 있는 탁문일의 신형으로 몸을 날린다.

크르르릉. 콰직!

턱을 벌리고 거대한 이빨을 탁문일의 목에 박아 넣고, 이내 힘을 주어 목을 뜯어내 버린다.

마치 거친 본능이 사냥감을 찢어 해체하는 듯한 모습.

투두둑. 찌이익.

“끄으으윽…….”

겨우 버티고 있던 목숨.

천일영이 마무리를 하지 않고 몸을 돌리자 늑대는 자신의 복수를 분명히, 그리고 차분히 실행하여 꺼져 가던 탁문일의 목숨을 끊어 냈다.

짐승마저 용서할 수 없을 만큼 지은 악행과 죄. 딱 그에 어울리는 최후다.

“그냥 발길을 돌리지 못할 만큼이나 고통을 당했던 것이냐.”

그러나 이내 늑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일영의 곁으로 돌아와 조용히 따르기 시작했다.

피 흘리는 이빨을 드러내며, 두려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백의 사혈련 무인들을 벌레를 보는 눈길로 관심도 없다는 듯이.

* * *

불탄 마을의 모습은 생각보다 더 비참한 법이다.

금채홍의 고향 마을.

이곳에서 금채홍은 자신의 친구 복청의 아내에게 영약을 건넸다.

복청의 아내 문목화.

그녀가 바로 금채홍에게 편지로 마을에 있었던 참상을 알린 사람이다.

“영약을 찾아왔다. 그러나 내 힘이 아니라 옆에 계신 대협님께서 찾아 주셨다.”

“감사합니다, 대협님. 이 은혜 평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고개를 깊숙이 숙이는 문목화의 얼굴에 눈물이 맺힌다.

남편과 마을 사람들이 모두 죽은 자리.

모든 것이 불타 풀 한 포기 남지 않는 땅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 땅은 이제 피로 물들어 영기가 사라졌습니다. 저는 이것을 가지고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합니다.”

“위험한 세상이다. 아녀자의 몸으로 깊은 산속 영기의 땅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을 터다.”

“비밀입니다만 대협님에게 숨길 것은 없겠지요. 사실 저희는 영기의 땅을 알아보고 영약을 키우는 힘을 가진 일족입니다. 화전을 일구는 것은 생활을 위해 하는 일일 뿐, 저희가 살아가는 본 목적은 영약을 지키는 것이랍니다. 땅은 이미 찾아 놓았습니다.”

“에?”

문목화의 말에 오히려 금채홍이 놀란 눈을 한다.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다.

“채홍이는 어린 나이에 무공으로 큰일을 하기 위하여 떠났으니 말하지 말라고 아버님께서 말씀했었다. 너는 이제 우리와는 다른 길을 갈 것이니 뒤는 맡기고 너의 길을 가면 된다.”

“어디로 갈지 정한 거야?”

“청해로 간다. 그곳에는 곤륜파가 있고 또한 신선이 가까이 있으니 영기가 가득하다.”

문목화는 눈웃음을 지으며 상자를 열고 만년 하수오 하나와 만년 삼 하나를 담아 천일영에게 건넸다.

“만년 삼은 대협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한 저와 마을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만년 하수오는 어째서 주는 것이냐?”

“만년 하수오는 대협께서 가지고 계신 천년 하수오와 바꿔 주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드린 것입니다.”

“천년 하수오와? 내가 천년 하수오를 가지고 있는 것은 어찌 아느냐.”

“저희 일족은 영약의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만년 하수오는 약의 힘이 속으로 모여 더 이상 씨를 뿌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천년 하수오는 아직 영기와 약의 힘이 모이지 않아서 씨를 뿌릴 수 있답니다. 제가 필요한 것은 천년 하수오입니다. 대협님께서 그 귀중한 천년 하수오를 제게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 만년 하수오를 교환의 대가로 하려는데, 어떠신지요.”

“그렇군. 오히려 내가 고맙다. 꼭 필요하던 영약이다.”

“감사합니다, 대협님.”

문목화는 이내 인사를 하고 급히 길을 떠났다.

영기의 흙이 영약을 보호해 주기는 하겠지만 청해성까지는 몇 개월이나 걸리는 길.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떠나야 할 터다.

그녀의 뒷모습에 금채홍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몸조심해. 나중에 내가 찾아갈게.”

“그래, 기다리고 있을게.”

다음을 약속하며 헤어지는 두 사람의 모습.

그 모습을 보니 천일영도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서가흔과의 약속.

아직 황산에서 같이 술 한잔하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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