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이번 일은 오래 하면서 돈을 뜯읍세.”
“핑계가 좋지 않은가? 근방에 좋은 나무가 없어 멀리에서 구해 와야 하니 공사가 늦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껄껄껄.”
“길어지는 공사 기간 만큼 하는 일 없이 매일 일당은 꼬박꼬박 챙길 수 있고? 으하하핫.”
관도의 제일 끝에 있는 객잔이 새롭게 공사를 시작했다.
뱃사람으로 벌어들이는 돈보다 이쪽이 돈을 더 많이 준다고 하니, 항주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원래 있던 객잔을 허문 것이 어제의 일이다.
항주가 나무 부족에 시달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몇 년 전 황실에서 항주의 항구(港口)를 새롭게 재정비하고 군함(艦艇)과 판목선(板木船)을 만드는 조선소(造船所)를 만든 이후 인근의 질 좋은 나무는 씨가 마른 지 오래였다.
때문에 새로 장원을 짓는 사람들은 웃돈을 주고 멀리에서 나무를 사 오는데, 그나마도 시간이 오래 걸려 항주에서는 나무 구하기가 금을 구하는 것만큼 어려웠다.
그 때문에 일을 하는 사람들은 길어지는 공사 기간 내내 적게 일을 하며 많은 돈을 받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헉!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저…… 저것이 다 나무란 말이여?”
눈앞에 산처럼 쌓여 있는 나무들을 보며 사람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항주 제일의 목수라 불리는 장평택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눈이 휘둥그레지기는 마찬가지였다.
“분명 어제까지 아무것도 없었는데…….”
며칠 전.
잘생긴 공자 하나가 커다란 화선지 몇 장을 들고 장평택을 찾아왔었다.
절강성 제일의 목수라는 명성만큼 자잘한 공사에 손을 대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최고 실력의 목수이지만, 나무가 부족하여 일거리가 없던 참에 찾아온 사람인지라 혹시 하는 마음으로 종이를 천천히 훑어보던 장평택은 이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처음에는 젊은 공자의 그림 실력에 놀랐다.
얼마나 그림을 잘 그리는지 세세히 설계도를 만든 것이, 한눈에 지으려는 건물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이것을 정말로 지으려 한다는 말인가? 이 공자가 미친 것은 아닌지…….’
그림에 그려진 내용은 이러했다.
첫 번째 그림은 10층 호화 전각이었다.
넓이가 30장에 달하는 거대한 팔각 전각이었고, 1층부터 5층까지는 호화 객실, 그리고 6층부터 10층까지가 객잔이었다.
보통의 객잔과는 구조가 반대였다.
보통은 객잔이 아래층이고 객실이 위층이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그림은 10층 호화 전각 옆에 짓는 길이 50장, 높이 5층의 객잔이었다.
이곳은 1층과 2층이 객잔이고 4층까지 객실이었다.
또한 5층은 차를 마시는 고급 다루로 구색까지 잘 맞춰 놓았다.
10층 전각의 5층부터 10층이 객잔인데 또 객잔을 두는 것이 이상했지만, 장평택은 방처럼 만들어진 구조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체 손님이나 다른 손님과 섞이기 싫은 사람이 사용하는 곳이었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구조가 호화롭기 그지없는데 설계도에는 일반 객잔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것이 일반 객잔이라면 전국의 객잔은 다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세 번째 그림은 10층 객잔과 5층 객잔 뒤에 산을 마주 보고 만드는 7채의 호화 별채였다.
산을 마주 보는 풍광과 연못까지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장평택은 자칫 실소를 보일 뻔했다.
이 정도의 건축이라면 자신의 명성에 걸맞는 대공사가 될 테지만, 이 건물에 들어가는 나무의 양은 이 년 동안 구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이 공사는 불가능하오.’
‘이유를 물어도 되겠는가?’
‘나무 때문이오. 항주에서는 물길조차 황실에서 만드는 배에 사용할 나무를 나르느라 산길을 이용해야 하오. 그런데 중심축이 되는 목재는 10장이 넘는 큰 나무를 한 번에 자른 것이 필요하지요. 십 층 전각을 지탱하는 나무를 나르는 데 시간이 너무 걸리오.’
‘나무만 구하면 되는가?’
‘허허…… 말귀를 못 알아듣는구려. 바로 그 부분이 불가능하다는 게요. 만약에 그것이 가능하다면 이 건축은 내가 하겠소.’
그리고 지금에 와서 눈앞의 믿을 수 없는 광경.
장평택은 결국 일을 받아들였다.
어제 철거가 끝났다 하여 나와 보니 산처럼 나무가 쌓여 있는 것을 보고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어 버릴 지경이다.
그것도 모두 깨끗하게 잘린 나무가 쌓여 있으니 장평택은 얼떨떨하여 말을 이어 가지 못했다.
“이 정도면 일을 시작하는 데 문제없겠는가?”
“그…… 그렇소. 하지만…… 이것을 대체 어디에서…….”
“나무가 모자라면 말하게. 다음날 또 구해 오지.”
장평택은 처음에는 산처럼 쌓여 있는 나무 때문에 놀랐지만, 일을 하는 도중 건청이라는 이름의 남자 때문에 또 한 번 놀랐다.
그가 십여 장이나 되는 나무를 혼자 들고 나르기 때문이었다.
힘깨나 쓰는 장정들이 십여 명씩 들러붙어도 옮기기 힘든 나무를 혼자서 옮기고, 또한 장평택이 말하는 대로 나무를 잘라 내기까지 하니 공사가 그 속도를 더할 수밖에 없었다.
그뿐인가.
검은색 무복을 입고 검을 휘두르는 또 한 명의 사람.
금채홍이라는 이 사람이 7장에서 8장이나 되는 나무를 잘라 내고 옮기는 것은 물론, 주축이 되는 나무를 땅에 박고 균형을 잡아 주는 일까지 한다.
건청과 금채홍이 나서서 일을 하니 그 효과가 열 배 이상은 될 터.
그러나 금채홍과 건청이 나서서 일을 주도하니, 수월하게 일을 할 수 있겠다며 좋아했던 인부들은 하늘이 노랗게 보일 때까지 죽을 지경으로 일에 매달렸다.
“나 죽네, 나 죽어.”
“돈을 선불로 받았으니 도망도 못 가고, 참으로 미칠 노릇일세.”
“말도 말게. 저 건청이라는 사람이 나서서 일을 하니 잠시도 쉬지를 못하겠네.”
인부들은 점심을 먹으며 건청과 금채홍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천천히 일을 하라고 하고 싶었지만, 십여 장의 나무를 혼자 옮기는 사람과 7장에 이르는 나무 기둥을 혼자서 땅에 박아 버리는 사람에게 감히 허튼소리를 할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속으로 이를 갈며 노려보기만 하는 것이었다.
“건청아, 몸 상태는 괜찮으냐. 단전은 잘 안착되었고?”
“네, 주인어른께서 살려 주신 단전이 엄청납니다. 전보다 훨씬 좋습니다.”
“주인어른이라는 호칭은 조금 그렇구나. 그냥 전처럼 공자라고 부르거라.”
“그래도 되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공자님.”
만년 하수오의 반을 천이영에게 사용하고, 남은 반을 건청에게 주었던 것은 내공을 담을 수 있는 단전의 그릇을 크게 만들려 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먹은 것이 그 귀하고도 귀한 만년 하수오라는 것을 알게 된 건청도 은혜를 갚기 위하여 죽을힘으로 일을 했다.
사방에서 인부들의 곡소리가 들려도 건청은 절대 일을 멈추지 않았다.
천일영은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여동생과 혜령의 건강에 많은 신경을 썼다.
앞으로 여주인이 될 여동생이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조카였다.
또한 천이영이 비록 만년 하수오의 기운을 몸에 담았어도 천일영이 보기에 한참을 모자랐다.
때문에 천일영은 밤마다 천이영과 혜령에게 벌모세수(伐毛洗髓)를 해 주었다.
뼈를 새롭게 다듬고 골수를 씻어 주는 반골세수(返骨洗髓)와 상한 피부를 걷어 내고 새살이 돋아 나오도록 만드는 박피벌모(剝皮伐毛). 그리고 혈도와 기도, 모든 몸속의 이물질과 노폐물을 거두어 내는 벌모세수(伐毛洗髓)까지.
오대 가문의 자제라 할지라도, 벌모세수 하나 받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탈마의 경지에 이른 천일영은 세 가지 모두 전부 여동생과 조카에게 해 줄 수 있었고, 모두 끝나면 환골탈태라 해도 좋을 만큼 변해 있을 것이었다.
이것은 천일영이 늦게 여동생을 찾아와 고생을 시킨 것에 대한 사죄였다.
그리고 조카와 함께 앞으로 병 없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했다.
“빨리 객잔을 완성시키면 이영이가 더 좋아할 것이다. 나무하러 가야겠군.”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오자 천일영은 무극지검을 허리에 차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만년한철로 만든 천마의 검 무극지검은 나무하는 데 딱 안성맞춤이었다.
* * *
“그래서, 용모파기(容貌疤記)를 돌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까?”
십만대산의 천마신교 총 본산에서 흑뇌마왕 마염지의 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육대 마왕이 모여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는 자리에서 생긴 일이었다.
“우리 모두 흑뇌마왕과 같은 심정이오. 그러나 용모파기를 돌리면 우리 천마신교의 치부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밖에 더하겠소. 게다가 탈마의 경지에 올라 있는 천마를 무슨 수로 잡아 온다는 말이오.”
“허나 만약 천마가 헛된 마음을 품어 무림맹 같은 곳과 손을 잡으면 어찌할 것이오. 그것은 우리 천마신교가 멸문지화(滅門之禍) 당하게 되는 일이 될 것임을 생각하지 않아 보셨소?”
“그럴 일은 없을 것이오.”
흑뇌마왕 마염지의 말을 듣고 있던 사독마왕 갈현평이 손을 내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명나라의 모든 지역이 상세히 표기된 지도 앞에선 갈현평은 천일영이 몸을 숨겼을 것이라 짐작되는 곳을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들여다보았다.
“원한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깊은 것입니다. 천마의 자리에 오르기 전 천일영이 무명암살대의 단장으로 있을 때요. 그때까지 그가 얼마나 많은 무림맹의 사람들을 죽였다고 생각하십니까? 또한 불과 십이 년 전에 있었던 귀주성 전투를 잊으신 것입니까?”
“크…… 크흠…….”
“흑뇌마왕께서 극살태마신공까지 가르쳐 가며 천마에게 그토록 많은 살인을 명하지만 않았다면 지금쯤 여기에 계실지도 모르겠소. 또한 정마대전을 그토록 밀어붙이지 않았어도…….”
“사독마왕께서는 지금 저를 탓하시는 겁니까!”
흑뇌마왕 마염지의 노기가 방 안을 찌를 듯 덮쳐 왔다.
그러나 사독마왕 갈현평은 마염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말을 멈추지 않았다.
책사(策士)인 마염지의 무공보다 갈현평의 무공이 더 강한 이유도 있었지만, 다른 마왕들 역시 마염지의 도를 넘은 행동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흑뇌마왕의 말에 따라 천마가 살인을 해 왔으나 지금에 와서 보면 바뀐 게 무엇이오. 천마신교가 무림맹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도 아니잖소? 오히려 무림맹에 천마신교에 대한 원한만을 더 쌓아 왔을 뿐이오. 그걸 모르지는 않지 않소?”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소.”
마염지가 노기를 거두자 갈현평 역시 표정을 풀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원흉이라 할 수 있는 마염지를 실각시키고 싶었지만 육대 가문에 얽힌 힘의 구도가 그리 간단치만은 않았기에 갈현평도 한 수 물러 준 것이었다.
“천마가 없어진 것을 알면 오히려 사혈련에서 찾으려 애쓸 것입니다. 천마는 사혈련과 상당한 인연을 가지고 있었소. 이것을 사혈련이 알게 되면 어찌하겠소? 당연히 회유를 하려 하겠지요.”
“크흠, 그것만큼은 피해야 할 일인 것은 분명하긴 하오.”
“사혈련의 눈까지 속이려면 대외적으로는 천마가 다시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고 하고 일 년 뒤에 주화입마로 죽었다고 발표합시다. 창피함도 모면하고, 또한 회유도 막을 수 있을 것이오.”
“아…… 알겠소.”
마염지가 한 수 무르자 이내 회의가 종료되었다.
그러나 사독마왕 갈현평은 다른 마왕들이 돌아간 이후에도 마염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회의 중에는 내가 말이 좀 과했소. 나 역시 흑뇌마왕의 입장을 모르는 것이 아니오. 이대로 물러나는 것도 억울하니 사냥개를 푸는 것이 어떻겠소?”
“사냥개? 사냥개라 한다면 바로 그…….”
“그렇소. 바로 그 사냥개 말이오.”
마염지의 얼굴에 음험한 기운이 떠올랐다. 그것은 갈현평도 마찬가지였다.
“사냥개가 집안에 오랫동안 있으면 주인의 허물을 알아차리고 무는 법이오. 그러니 사냥개를 밖으로 내보냅시다. 천마를 찾는다는 구실로 말이오.”
“허허…… 사독마왕은 책사인 나보다 더하시구려. 천마도 찾고 무는 개도 내보내고!”
흑뇌마왕 마염지와 사독마왕 갈현평의 의지가 일치했다.
그것은 바로 죽은 독천마왕 서가흔의 자리를 물려받은 딸 서하린을 내보내겠다는 말이었다.
서하린은 아버지의 죽음을 파헤치고 있었으니, 뒤가 찔리는 마염지와 갈현평은 서로를 싫어하면서도 손을 잡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회의 동안 단 한마디의 입을 열고 있지 않던 명천마왕 소초련.
그녀는 밖으로 나서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 천마와 사이가 좋았던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의 마왕들이 무엇인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한 실체를 알지는 못하지만, 그것이 장래 천마신교와 지금은 길을 떠난 천일영에게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것쯤 충분히 예상하고도 남음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소초련은 급히 도현을 찾아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