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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26화 (27/270)

26화

객잔의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천일영은 식구들을 챙기는 데 여념이 없었다.

객잔을 부순 이후 인근에 큰 장원을 빌려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고, 또한 가족과 거두어들인 사람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운동도 만들어서 모두가 아침이면 마당에 모여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배운 동작을 했다.

사실 이것은 무공인지 무용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 이상한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많은 문파의 장점을 파악했던 천일영이 무려 구파일방 중 다섯 곳과 오대 세가 두 군데의 무공을 합쳐, 단기간에 많은 내공을 얻을 수 있고, 건강과 젊음을 오래 유지시켜 주도록 만든 것이었다.

“후우…….”

깊은숨을 내뱉으며 땀을 흘리는 천이영과 혜령, 그리고 건청과 금채홍까지.

건청과 금채홍은 처음에는 의아한 마음이 가득한 채 시작한 것이지만 한 달이 지난 후 상당한 양의 내공이 모이는 것을 느끼고는 지금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있었다.

이런 간단한 동작만으로도 이만큼의 내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세상의 모든 무인들이 쫓아와서 가르쳐 달라고 매달릴 정도다.

그 때문인지 천이영과 혜령, 그리고 단옥도 건강은 물론 그 미모가 한층 물이 오르고 있었다.

“식사하십시오.”

아침의 운동이 끝날 때쯤에는 숙수가 만든 아침밥이 만들어져 있다.

아침밥을 다 먹을 때쯤이면 어김없이 집을 나선 단옥이 장원에 도착을 한다.

그러면 단옥과 숙수가 뒤를 이어 운동을 한다.

숙수는 이 운동을 하는 사이에 자신의 고질병인 허리가 완전히 나아 있었다.

이때부터 건청과 금채홍은 천일영과 차를 마시며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과 문제점에 대해서 상세히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공자님,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말해 보거라.”

“월영이 하는 짓을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매일같이 나타나서는 이것저것 일을 해 놓고는 슬그머니 없어집니다.”

“전에 황산을 다녀올 때 삼 일만 일하고 금화 한 냥을 준 적이 있다. 그 많은 돈을 받고 그것만 일을 한 것이 미안한 것이지. 월영 나름대로 신경을 써 주고 있는 것이니 모른 척하거라.”

“그냥 돈을 많이 받아 미안해서 도와준다고 말하면 될 것을 말입니다.”

“타고난 성품이 그런 것 아니겠느냐. 허나 보기 드물게 좋은 놈이구나.”

어제까지 친구였던 사람이 다음날 웃는 얼굴로 술에 독을 타는 곳이 무림이다.

또한 무공의 호승심을 위해 스승의 목숨을 끊어 낸 후 비급을 탈취하고, 돈에 무공을 팔 때에는 더 많은 돈을 위해 자신의 고용주를 죽이는 일도 빈번한 것이 중원이다.

세상은. 무림과 중원은 그렇게 혹독하고 잔인하다.

그런데 금화 한 냥을 받은 것이 미안해서 몰래 일을 도우러 오는 월영이다.

천일영은 월영이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

‘욕심이 나는구나. 천하를 논하기보다 이런 사람들과 소소하게 살아가고 싶었거늘.’

건청이 이야기를 하기도 전부터 천일영은 월영이 하는 짓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월영은 검기를 쓰는 능력이 워낙에 탁월해 나무를 자르고 이어 붙이는 것이 영락없이 목수라고 해도 믿을 지경이다.

또한 무공을 사용해 검으로 자른 돌의 단면이 예사롭지 않고, 글자는 마치 정으로 쪼개어 새긴 것처럼 말끔할 정도의 실력이다.

그러나 월영의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일류 고수치고 검을 쓰는 능력만을 본다면 절정 고수보다 더하구나. 깨달음을 얻지 못한 채 일류 고수에서 머문 시간이 오래된 게지. 정체가 너무 길다.’

같은 일류 고수에서는 아마 현재 무림에서 월영을 당해 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월영은 같은 일류 고수에게는 긴장을 하지 않고, 반대로 절정의 고수를 보면 바로 자신이 이기지 못한다고 포기를 하는 것이었다.

‘필요한 것은 절박함인가.’

월영에게 깨달음을 주는 것이 옳은 일인지 잠시 망설였지만 악독함이 가득한 무림에서 월영은 착한 성품으로 오래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천일영은 마음을 굳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협에 가까운 성품을 가진 사람이 일찍 죽은 것은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공사가 끝나면 나에게 꽤나 힘든 꼴을 당하겠구나, 월영아.’

죽을 고비를 넘겨야 월영은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것이었다.

* * *

해가 지고 밤이 되면 건청과 금채홍은 천일영에게 무공의 지도를 받았다.

금채홍과 건청이 고개를 숙이고 간청을 하여 이루어진 일이다.

그러나 딱히 그렇게 간청을 하지 않아도 자신이 거두어들인 사람이기에 처음부터 천일영은 건청과 금채홍에게 무공을 가르칠 생각이었다.

그러나 무공을 쉽게 가르칠 생각 또한 없었다.

“헉헉헉, 아이고…….”

“사…… 사람…… 살려…… 헉헉헉.”

금채홍과 건청이 바닥에 대자(大字)로 누워 차오르는 숨을 참지 못하고 토할 듯 가쁜 호흡을 내뱉고 있다.

오랜 시간 무공을 연마해 온 두 사람이지만 지금은 밤하늘이 노랗게 보이는 착각이 들 지경.

“겨우 이 정도에 뻗어 버린 것이냐. 둘이 같이 공격을 했는데 반 다경은커녕 눈 세 번 깜박일 시간도 못 버텼다.”

“흐억, 흐억. 대협님, 일단 살려 주십시오.”

“죽인다고 한 기억은 없구나. 게다가 너희들이 하자고 한 수련이 아니냐. 어서 일어나거라.”

금채홍이 부들거리는 손을 진정시키려 애써 보지만 검을 다시 쥐는 것도 쉽지 않다.

대협은 그저 자신들의 검을 받아 내기만 했을 뿐.

그런데 어째서 정작 공격을 한 사람의 팔이 끊어질 듯 아프고, 손가락이 잘려 나가는 듯한 통증을 느끼는 것인가.

‘내공이 느껴지지도 않는데 어째서? 게다가 대협님은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으셨다.’

비척거리는 금채홍의 곁에서 건청도 후들거리는 다리를 지탱하기 위해 검을 땅에 꽂고 겨우 일어선다.

건청 자신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무림에 나가면 죽기 좋은 실력이구나. 내 제자가 된 너희들이 죽는 것은 용납하지 못한다. 혹독하게 가르칠 것인데 따라올 수 있겠느냐.”

“네.”

“죽는 한이 있어도 따라가겠습니다.”

비척거리는 몸과는 달리 눈빛과 목소리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날이 서 있는 두 사람.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천일영도 오랜만에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건청은 오랜 시간 무공에서 손을 떼어 기의 흐름이 나쁘고 외공도 많이 약해져 있구나. 그리고 채홍이는…….”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 말하려는 천일영 앞에서 금채홍의 눈이 빛난다.

금채홍은 자신이 그동안 수련해 왔던 아미파의 검술보다 더 높은 경지의 무공을 수련할 수 있다는 기대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채홍이는…… 음…….”

그런데 자신이 가장 믿고 따르는 대협이 말을 해 주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자신의 무재가 형편없어서?

아니면 더 이상 상승의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아미파에서 성장이 느리기로 유명했던 금채홍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진다.

내공이 잘 모이지 않아서 수없는 고생을 해 왔다.

그런데 대협조차도 아미파에서 수련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말을 아끼고 있었다.

“채홍아, 너는 앞으로 대협이라고 부르지 말고 공자라고 부르거라. 나는 대협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이 못 된다.”

“네? 하지만……. 아니, 그게 아니라 대…… 아니, 공자님? 저에게는 아무런 해 주실 말씀이 없습니까?”

“……쉬거라.”

천일영이 무극지검을 검집에 꽂고 자리를 떠나는 것을 금채홍의 젖은 눈길이 따라간다.

모자란 자신의 무재에 대협조차 고개를 돌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금채홍의 눈물이 뺨을 적셨다.

그날 늦은 밤.

천일영은 빌린 장원에서 제법 큰 방을 금채홍에게 내어 주었었다.

그리고 모두가 잠든 늦은 시각, 그 방문이 조용히 열리며 천일영이 들어섰다.

“고롱…… 고로롱…….”

낮에는 공사를 하고 밤에는 무공을 연마하는 덕에 무척이나 피곤했는지 금채홍은 드러난 배를 벅벅 긁고 코를 고롱거리며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잠이 들기 전에 한참을 울었는지 눈물 자국이 배어 있고, 눈도 많이 부어 있다.

그 모습을 천일영은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만, 채홍이 너는 그 이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구나.’

황산에서 죽어 가는 금채홍의 몸을 고칠 당시, 천일영은 금채홍의 몸이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었다.

온몸의 기도와 혈맥이 이상하게 꼬여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절맥증(絶脈症)은 아니다. 그런데 여자인데도 극양의 기운이 훨씬 더 많다. 가슴이 자라지 않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겠지. 게다가 혈도가 막히고 양의 기운이 한군데로 몰리는구나.’

이런 몸으로 무공을 연마해 왔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일 터다.

몸에 극양의 기운이 있으니 무공의 성취가 빠를 것 같지만 금채홍의 경우는 그 반대다.

기운이 쌓이기만 하고 밖으로 배출이 되지 않으며, 그 기운을 사용할 수도 없다.

또한 혈도가 수십 군데 막혀 있어서 내공이 쌓이는 것조차 힘든 몸.

그러나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몸이 이렇게 된 것이 선천적인 것인지 아니면 후천적으로 누군가가 몸이 이렇게 되도록 만든 것인지 알 수가 없구나. 몸이 이렇게 되어 버린 원류(源流)가 너무 오래되어 일의 근원(根源)을 찾아낼 수가 없다. 하지만 선천적일 수도 있는데 왜 이렇게 마음에 걸리는 것인지…….’

혈도가 막혀 있는 부분이 고의로 그렇게 만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니라면 이렇게 절묘하게 기운만이 쌓이고 응축되어 하나의 양기 덩어리처럼 몸이 변해 가지는 않을 터.

자신의 몸 상태를 알지 못하는 금채홍은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노력하며 무공을 익혔을 것이었다.

이런 몸으로 무공을 익혀 사혈련의 탁영일을 베어 버리는 경지까지 올랐다.

그것이 천일영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일단은 잘못된 것을 바로 돌리는 것부터 시작이다. 이것이 해 주고 싶은 말이었지만 차마 말을 할 수 없었구나.’

천일영은 선천진기와 가장 비슷한 성질의 기운을 조용히 모았다.

그리고 그 기운은 실의 형태가 되어, 천일영의 손가락 사이에서 금빛을 빛내며 형태를 드러냈다.

이것은 천일영이 극마의 경지에 오를 때부터 사용할 수 있는 기의 운용이었다.

즉 몸 안의 기를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 밖으로 꺼낼 수 있는 것이다.

스으으윽.

천일영의 손길을 따라 만들어진 수십 개의 금빛 실이 금채홍의 몸 안으로 스며 들어간다.

그리고 각각의 실은 잘못된 기도에 매듭을 짓고 길을 막아서며, 한편으로 죽어 있는 혈도에 자리를 잡고 기운을 넣어 주었다.

또한 극양의 기운이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고, 잘못된 자리마다 매듭을 묶어 정상적인 몸이 되도록 만들었다.

천일영이 금채홍의 몸 안에 넣어 준 선천진기의 금빛 실은 무인의 300년 삶에 달하는 양의 기운.

이것이 앞으로 금채홍의 몸을 지켜 줄 것이었다.

“으으으음…….”

갑자기 몸이 편해졌다고 느껴졌는지 금채홍의 고롱거리던 코골이가 멈추고 편안한 호흡이 지속된다.

앞으로 모든 혈도가 깨어나고, 그 혈도로 호흡까지 할 수 있게 되는 경지까지 간다면 더 이상 금빛 실은 필요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천일영은 자신을 믿고 따라와 준 금채홍을 위해 넉넉한 양의 기운을 넣었다.

“잘 자거라.”

천일영은 금채홍의 눈에 남은 눈물 자국을 손끝으로 지워 냈다.

땀에 젖은 이마도 조용히 손바닥으로 물기를 지워 버렸다.

더 이상 울며 자신의 무재를 탓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편안하게 잠든 얼굴.

천일영이 방으로 나서며 금채홍에게 말을 남긴다.

그것을 비록 금채홍이 듣지 못할지라도, 꼭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 테니까.

“내일부터는 네가 듣고 싶은 말을 해 주마.”

금채홍의 방문이 조용히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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