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절강성 제일의 목수 장평택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젊은 공자의 주문이 너무도 턱없기 때문이다.
5층 객잔 뒤로 7채의 별채를 만드는 데 그 호화롭기가 턱없이 지나칠 정도.
조경(造景)을 새롭게 하고 산을 타고 흐르는 연못까지 새롭게 만들어야 할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산은 있는 그대로가 자연스럽고 좋은 것이 아닌가?’
그러나 공자의 주문은 산에서 흐르는 맑고 깨끗한 산수(山水)를 별채까지 가져오는 것이었다.
수로(水路)를 만들어 별채 앞 연못까지 연결하여 물이 정체되지 않고 물고기들이 언제나 깨끗한 물에서 지내며, 그곳에 발을 담그고 술을 마실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물고기와 같이 술을 마신다니, 참 꿈같은 말이다.
별채의 내부도 마찬가지다.
향목(香木)을 따로 구해 와 실내를 감싸고, 그 향이 은은하게 배어드는 공간이라니 장평택으로서도 생전 처음 해 보는 공사다.
화려함이 이미 황실의 궁전을 넘어서고 있었다.
“공자, 이 별채가 지어지면 하룻밤 묵는 데 얼마나 하는 것이오?”
“은자 열 냥 정도 생각하고 있다.”
“은자 열 냥? 그 큰돈을 낼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시오? 이 공사를 하는 데 내가 받는 돈이 금화 두 냥이오. 그 큰돈으로도 한 달도 채 못 묵는다는 말이오.”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에게는 큰 금액이 아니다.”
“허허…….”
‘미친놈.’
‘허허’ 하는 실없는 웃음 뒤에 하고 싶었던 미친놈이라는 말을, 장평택은 속으로 조용히 되뇌었다.
기루도 아닌 객잔을 10층으로 짓는 것도 미친 짓. 그 옆에 따로 일반 객잔을 5층으로 짓는 것은 더 미친 짓이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하루에 은자 열 냥이나 되는 별채?
이것이야말로 천하제일의 미친놈이 할 만한 짓이다.
‘하지만 돈이 있으니까 입으로 꺼내어 말을 할 수는 없는 법이지.’
근질거리는 입을 숨기고 속으로 오만 가지 생각을 하며 욕을 하고 있는 장평택의 옆에서 천일영이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그러나 장평택의 생각과는 달리 천일영은 철저한 계산 아래 객잔의 설계를 했다.
황산에 가 보고 느낀 것이지만, 산은 아래에서 보는 것보다 정상에서 보는 것이 더욱 절경이다.
그러니 해마다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절경을 보기 위해 황산을 오르다 죽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눈앞에는 넘실거리는 바다가 있다. 당연하지만 위에서 보는 것이 넓게 보이고 훨씬 절경이다.
또한 5층의 객잔을 따로 만드는 이유는 10층 객잔은 호화 객잔이고, 5층 객잔은 일반 객잔이었기 때문이다.
10층 객잔은 하루에 은자 1냥을 받을 만큼 고급 객잔이었지만 5층 객잔은 하루에 동전 2냥을 받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내부는 다른 객잔의 별채보다도 호화로웠다.
금액은 싸지만 객실을 호화롭게 만든다는 음흉한 속셈이 숨어 있는 것이었다.
또한 별채는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작업.
목수 장평택이 이해를 못 하는 것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별채이기 때문이다.
소소하게 사치를 하지 않고 살아온 천일영이지만, 천마로 있을 때 그가 원하지 않아도 좋은 곳으로의 초대는 얼마든지 받았었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별채를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말 그대로 천마나 사혈련의 천주, 혹은 전국 십대 상단의 주인쯤 되는 자가 묵는 방이 지금 만드는 별채의 기준이었다.
“산을 타고 흐르는 수로와 연못은 오늘 밤 안으로 팔 것이다. 내일부터 장 목수가 연못을 조경하고 다리를 만드는 것을 기대하지.”
“아니, 공자가 보여 준 설계도를 보면 수로와 연못이 얼마나 큰 공사인데 그것을 오늘 하룻밤에 만든다는 말이오?”
“별거 아닌 일이다.”
장평택은 공자의 허황된 말에 눈만 끔뻑이다 문득 머릿속에 하나의 사건이 떠올랐다.
‘하룻밤 사이에 나무도 산만큼이나 쌓는데, 땅을 파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을까?’
이렇듯 빠르게 진전되는 공사를 눈앞에 두고 보니 장평택의 의욕에 불이 붙는다.
나무 부족으로 한동안 대공사는 해 보지 못했다.
그런데 원하는 것을 말만 하면 다음 날 준비되어 있고, 온갖 근심 걱정이 있어야 할 공사판이 일사천리로 움직인다.
어찌 의욕이 생기지 않겠는가.
장평택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했다.
“그럼 수로를 파고 나머지 이야기는 내일 하도록 하지.”
“그러십시다.”
공자의 뒷모습을 보며 장평택은 생각했다.
잘해 봐야 스물 중반이나 되었을 법한 사람.
그런데 이 공사에 드는 돈이 금화 백 냥은 될 터다.
땅값과 앞으로 객잔 안에 채워 넣어야 할 집기까지 생각하면 총공사비가 금화 백오십 냥은 우스울 지경.
금화가 백 냥 정도만 해도 전국 이십대 상단에서나 굴릴 수 있는 돈인데 이러한 막대한 금액을 고작 객잔 하나에 퍼붓는다.
이런 금액을 들여서 공자는 무엇을 만들려는 것인가.
그냥 단순히 미쳐서?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지만 가만히 보니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긴 하군.”
점차 시간이 지나자 장평택은 공자가 만드는 객잔이 무엇인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아주 허황되지만은 않은 일이다.
모두가 꿈꾸는 상상 속의 객잔.
이것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자 장평택은 꿈틀거리는 열의를 느꼈다.
“나도 미쳐 가는 모양이군. 내가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구나. 조경을 하는 사람도 부르고 할 일이 많다.”
장평택은 양팔을 걷어붙이고, 공자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뛰기 시작했다.
* * *
장평택 목수가 열일을 하며 객잔의 공사가 절반쯤 진행이 되었을 때.
정작 객잔의 주인이 되어야 할 천이영이 문제를 일으켰다.
벌모세수의 효과가 너무 컸던 탓에, 변해 버린 모습을 이상하게 여기고 방 안에 틀어박혀 버린 것이다.
천이영은 누가 보아도 눈을 떼지 못할 만큼의 미인으로 변모해 있었다.
박피벌모(剝皮伐毛)는 힘든 생활로 검게 변한 피부를 백옥과 같이 바꿔 주었고, 반골세수(返骨洗髓)로 뼈대는 가늘면서도 강하기가 만년한철과 같아졌다.
그뿐인가.
임독양맥과 생사현관까지 타통되었다.
그러나 천이영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가난에 찌들고 병에 걸렸던 모습과는 달리 면경(面鏡)을 보아도 자신의 얼굴이 아닌 다른 사람의 얼굴이 있으니까.
또 하나.
기이했다.
피부가 변하고 건강이 좋아진 것도 이상한데 주름이 없어지고 젊어져서 삼십 대 후반에 접어든 자신이 이십 대의 모습으로 변했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늙은 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런데 자신은 반대로 젊어진 것이다.
“아직도 혼란스러운 것이냐? 전에 먹은 약의 효과가 나온 것뿐이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변한다는 것은 들어 본 적도 없는 일이에요.”
그야말로 두문불출(杜門不出).
하루에 딱 한 번.
아침에 운동을 하러 나오는 것을 제외하면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운동도 담벼락이 높게 가려져 밖에서 보이지 않으니 나오는 것일 뿐이다.
‘오랫동안 고생을 했으니 이 상황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대로는 안 되겠구나. 조금 일찍 보여 주는 게 좋겠군.’
변해 버린 외모 때문에 혼란해하지만 심성은 그대로인 천이영이다.
고집스럽지만 선한 성품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똑같다.
돈에 여유가 생겼다고 해서 그것이 천이영을 바꾸지는 못한 것이다.
천일영은 천이영의 그 마음에 기대 보기로 생각했다.
“나가자. 너에게 보여 줄 것이 있다.”
“오…… 오라버니, 밖에 나가는 것은…….”
“바보 같구나. 이렇게 예뻐졌는데 무엇이 무서운 것이냐.”
“변했다고 사…… 사람들이 또 저를 보고 손가락질할 것 같아요!”
천일영은 낙원촌에서 천이영을 데리고 나올 때 사람들이 손가락질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천이영의 마음속에서 잊혀지지 않고 깊숙이 박혀 있는 모양이다.
그 정도의 욕설과 모멸을 당했으니 잊혀지지 않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그렇다 해도 천일영은 멈추지 않았다.
“일단 나가자.”
“꺅! 오라버니!”
천일영의 손에 마지못해 밖으로 나온 천이영은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천으로 꽁꽁 싸맨다.
그러곤 눈만 내놓고 땅바닥만을 응시한 채 걷는다.
그러나 천일영은 여동생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천을 모른 척했다.
변하지 않은 고운 심성의 천이영이라면 이제 곧 스스로 얼굴을 싸맨 천을 벗을 것이었기 때문에.
* * *
변화가 계속되는 동안 천이영은 임시로 빌린 장원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오직 혜령과 단옥, 그리고 건청과 금채홍만을 만났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밖의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도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런 천이영의 눈앞에 십 층 전각과 화려한 오 층의 전각이 보이자, 난생처음 보는 화려하고도 웅장한 모습에 입이 떡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 여기가 전에 묵었던 객잔이 있던 곳이 맞나요? 오라버니?”
“네가 나오지 않는 동안 이만큼이나 변했구나.”
“이렇게나 크고 아름다운지는 몰랐어요.”
믿기지 않는 광경을 목도한 천이영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건물.
아직 완성까지는 멀었지만 화려한 그 모습에 천이영은 압도당했다.
“이 객잔을 오라버니가 하시는 건가요? 세상에…… 믿어지지 않네요.”
“나는 이 객잔을 운영할 생각이 없다.”
“오라버니? 운영하지도 않을 객잔을 만드신 건가요?”
“나는 안 한다. 이 객잔의 주인이 너다.”
“네에?”
천에 쌓인 얼굴이지만 천일영은 여동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이는 듯하다.
분명 장평택 목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터.
‘하나뿐인 여동생이 오라버니가 미쳤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아픈걸.’
얼굴을 싸맨 눈이 휘둥그레지며 빠질 것만 같다.
평생 허드렛일만을 하던 자신이 이 커다란 객잔을 운영한다니 아무래도 오라버니가 미친 것 같다.
객잔을 망하게 할 것이 아니라면, 천이영 자신이 객잔을 운영하겠다고 말해도 오라버니 되는 사람으로서 말려야 정상이 아닌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오라버니.”
“일단 이리로 와 보거라. 마저 보고 결정을 해도 늦지 않다.”
“그 무엇을 보아도 제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천이영이다.
그러나 천이영은 그곳에서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장면을 목도했다.
“이…… 이것이 도대체 무슨…….”
장정들이 땀을 흘려 가며 일하는 틈바구니에서 작은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허드렛일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천이영이 가까이 다가가 아이의 손을 꼭 붙잡는다.
“아이야, 이 힘든 곳에서 무엇을 하는 것이니?”
“배…… 배가 고파서 밥을 얻으러 왔는데 저기 공자님이 그럼 하루 일할 때마다 동전 세 냥씩을 주신다고 했어요.
그리고 점심하고 저녁도 배가 터지도록 먹어도 된다고 했고요.”
땟국물과 콧물로 온 얼굴이 뒤덮인 아이가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진정으로 행복해 보이는 얼굴.
그 모습을 본 천이영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 작은 손으로…….”
자신이 어렸을 때 모습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혜령의 모습이기도 하다.
빈민촌의 어린아이들은 배가 고파도 일을 시켜 주는 곳이 없다.
힘이 약한 아이들은 도움이 안 되기 때문.
그래서 아이들은 구걸을 하거나 심하면 음식을 훔쳐 먹으며 연명을 해야만 했다.
그런 아이들을 가엽게 여겨 공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돈도 주고 밥까지 따로 챙겨 주며 오라버니가 데리고 있었다.
“그래…… 아이야, 힘들지는 않고? 내가 또 뭔가 해 줄 것은 없니?”
“괜찮아요. 일도 힘들지 않고 밥도 많이 먹어서 너무 좋아요. 게다가 동전을 세 냥씩이나 주셔서 이걸로 동생들 밥걱정을 안 해도 되는걸요.”
“훌쩍. 흐윽.”
결국 천이영은 눈물을 터트렸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감싼 천을 풀어 아이의 콧물을 닦아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아이는 천이영의 얼굴을 보고는 얼마나 놀랐는지 입을 떡 벌리고 닫을 줄을 몰랐다.
“내…… 내가 그리도 이상해 보이니?”
“이…… 이상한 게 아니고요. 혹시 선녀님이세요?”
“선녀?”
“엄마가 살아 계셨을 때 말씀해 주셨는데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이래요.”
“선녀님은 나 같은 것보다 훨씬 예쁘시단다. 아이야, 어머니는 언제 돌아가셨니?”
“병으로…… 작년에 돌아가셨어요.”
천이영은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씻지 못하고 빨지 못한 몸과 옷에서 찌를 듯한 악취가 풍겨 나왔지만 개의치 않는다.
분명 이 아이는 아버지도 없이 동생들을 보살피며 살고 있을 것이었다.
약 한번을 쓰지 못하고 죽었을 어머니에 대한 슬픔도, 배고픔에 우는 동생들을 위하여 가슴 한 켠에 묻어 버렸을 것이었다.
이제 겨우 일곱 살쯤 된 아이다.
“힘든 일이 있으면 꼭 나에게 말하렴. 알겠지?”
“네!”
천이영은 아이가 일터로 돌아간 이후에도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몇이나 되는 아이들이 마른 몸을 열심히 움직이며 어른들의 발걸음을 쫓으려 애쓰는 모습이 더 눈물을 그치지 못하게 한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며 혜령의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이영아, 객잔을 운영하며 버는 돈으로 꼭 우리만 잘살 필요는 없다.”
“그러네요, 오라버니.”
“버는 돈은 네 마음대로 하거라. 네가 주인이니까.”
천이영은 우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버니가 자신에게 객잔을 주는 이유를 이제서야 알았다.
외모가 어떻든 그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은 일.
기이하고 괴상하면 또 어떠한가.
자신이 항주 제일의 미인이라는 것을 아직도 눈치채지 못한 천이영은 객잔을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