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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28화 (29/270)

28화

한 달 뒤.

객잔의 문을 열기 위한 준비는 차질이 없었으나, 천이영이 원하는 것을 챙기다 보니 개점(開店) 일자가 점점 미루어지고 있었다.

천이영이 개점 준비를 도맡아 하며 가장 신경을 쓴 것 두 가지가 있었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천이영이 가장 신경을 쓰는 그 첫 번째는 음식이었다.

객잔이 크고 넓어진 만큼 새로운 숙수 몇을 더 고용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겉만 번지르르하고 음식은 그저 그런 객잔이 되고 싶지 않았던 천이영은 이름난 숙수를 모시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특히 항주를 대표하는 원조(元祖) 음식인 동파육(東坡肉)과 규화계(叫花鷄)는 워낙 유명한 객잔들이 많았던 터라, 그곳을 능가하는 숙수를 구하는 데 많은 애를 먹었다.

화려함과 아름다운 객잔의 모습으로 눈을 속이고, 음식의 질이 떨어진다면 그것은 천이영의 성격에 그냥 넘어가지 못할 일.

때문에 숙수를 모두 구한 지금도 더욱 실력이 좋은 숙수를 더 모시기 위해 발품을 아끼지 않으며 천이영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천이영이 가장 신경 쓰는 그 두 번째는 일하는 사람의 자질이었다.

빨리 개점시키기 위해 아무에게나 일을 맡길 수는 있었다.

그러나 한번 온 객잔의 손님이 다시 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한 법.

이 일은 건청과 단옥이 제격이었다.

오랜 시간 점소이를 하며 사람 보는 눈이 있었기 때문이다.

건청과 단옥은 일을 하겠다며 찾아온 수백의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 보고, 발품을 팔아 사는 곳까지 찾아가 평판을 알아보았다.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지, 아이들에게 배불리 먹이지는 못해도 좋은 어머니와 아버지인지, 동네 사람들의 평가는 어떠한지까지.

그 과정에서 거짓말을 하다 들통난 사람만 이백이 넘어갔고, 있지도 않은 처자식을 팔아먹은 사람들이 오십을 넘어섰다. 허나.

“이번에는 저희와 일을 하지 못하게 되어 안타깝습니다.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으니 식사비라도 하시지요.”

천이영은 거짓말을 일삼은 자들에게조차 철전 10냥을 주며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했다.

그들도 장래 객잔의 손님이고, 거짓말이 탄로 나 앙심을 품은 자들이 나쁜 소문을 내지 못하게 하려는 천이영의 묘책이었다.

그러나 순조롭게 진행되던 사람을 뽑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일을 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에 섞여 흑도 패거리인 삼천흑룡의 단원들이 하나씩 나타났다.

무엇을 목적으로 일을 하겠다고 찾아온 것인지 의중이 파악되지는 않지만 분명 그냥 지나칠 일은 아닐 터.

건청과 단옥은 이 일만큼은 천이영에게 알리지 않고 천일영에게 고했다.

“삼천흑룡이라……. 분명 시장에서 당과 가게 여주인을 팔아먹으려 했던 패거리군. 그놈들이 객잔에 섞여 들어오려고 한다는 것이냐.”

“네, 조금씩 나눠서 일자리를 찾는 척하지만, 그 수가 이미 이십입니다.”

“아무래도 월영이 시장을 꽉 쥐고 있으니 돈줄이 막혀 이곳을 노리고 있는 모양이다. 건청아, 그놈들 중에서 딱 한 놈만 뽑도록 하거라.”

“네? 일부러 말입니까?”

“의중이 무엇인지 파악이나 해 보지. 그리고 채홍아.”

“네, 공자님.”

“너는 삼천흑룡이 어떤 조직인지 알아 오거라.”

“지금 즉시 알아 오겠습니다.”

“조심하거라.”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총총걸음으로 나서는 금채홍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흐뭇하다.

몸 안의 잘못된 기도를 바로 고치고, 선천진기에 가까운 기운을 넣으니 금채홍의 기량이 무서울 정도로 발전했다.

이제 이 정도의 일은 금채홍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일.

‘삼천흑룡이라. 꽤나 거창한 이름이구나. 하지만 이름과는 달리 상위 조직이 뒤를 봐주는 작은 조직일 터. 이런 놈들은 뒤를 봐주는 놈들에게 상납금을 내야 하니 언제나 돈에 굶주려 있지.’

먹기 좋은 떡밥을 눈앞에서 흔들면 물지 않을 물고기는 없다.

그리고 천일영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떡밥이 있었다.

별채에 들어가는 고가의 물건.

금자가 왔다 갔다 하는 은수저와 도자기, 그리고 유명한 화공들이 그린 그림들이다.

모두 구매하는 데 금화가 30냥이 넘게 들어간 물건인 만큼, 일부러 채용한 흑도에게 이 정보를 흘리면 알아서 놈들이 나타날 터다.

‘꽤나 귀찮은 일이다. 원래라면 찾아가서 다 때려눕히고 현청에 넘기고 싶다만…….’

말 그대로 쉽게 해결할 길이 있는데 굳이 어렵게 돌아가는 이유는 개방이 객잔에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지금은 밥을 얻어먹기 좋은 객잔 정도로 점찍어 둔 모양이지만, 큰돈이 들어간 객잔인 만큼 궁금한 것도 많을 터.

이럴 때 눈에 띄는 짓을 하면 개방의 시선이 한순간에 몰릴 터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사 개월 동안 채홍이의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이번 기회에 한번 볼까.”

비명이 터져 나오는 혹독한 수련을 매일같이 계속해온 지 사 개월.

천일영은 특히 정상의 몸을 되찾은 금채홍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다름 아닌 탈마의 경지에 오른 자신이 가르친 것이니까.

* * *

삼천흑룡.

금채홍이 알아 온 정보에 따르면 총단원 수 80명의 제법 큰 조직이다.

단주가 흑도로는 드물게 일류 고수의 실력을 가지고 있어서 크게 성장한 조직이고, 단주의 무공 때문에 현청에서도 쉽게 건드리지 못한다고 했던가.

그 위세가 제법 이름이 드높다.

그러나 그래 봐야 흑도는 흑도일 뿐.

금화 삼십 냥의 떡밥을 거절하지 못하고 덥석 물었다.

특히나 돈줄이 막힌 삼천흑룡은 이 떡밥이 더욱 거대하게 보였을 터.

정보를 흘린 지 불과 하루밖에 안 되었는데 체면도 집어 던지고 흑도 팔십 명 전원이 별채가 있는 자리에 나타났다.

실패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심지어 삼천흑룡의 단주까지 모습을 보인다.

그들은 여러 개의 나무 상자에 담겨 있는 귀중품을 바라보며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었다.

“하루 만에 나타나다니 꽤나 급했던 모양이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공자님, 건청 오라버니 대신 제가 나서도 되겠습니까?”

“그동안 채홍이 네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보고 싶구나.”

“에헤헤…… 공자님 덕분에 몸이 정말로 가볍고 좋습니다. 내공도 많이 늘었고요.”

아무런 언질을 주지 않았지만 금채홍은 자신의 몸이 변하게 된 것이 천일영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죽어 가던 몸을 고칠 정도의 사람이라면 주변에 단 한 사람, 천일영뿐이었으니까.

“그럼 마음대로 날뛰겠습니다.”

“좋을 대로 하거라.”

천일영의 허락이 떨어지자 금채홍의 몸이 화살과 같이 튀어 나간다.

그 신위가 천일영의 눈에도 아름다우면서 위험해 보일 정도.

자신의 제자여서 그렇게 보이는지는 몰라도 만족스러운 금채홍의 모습이다.

휘이이익.

미끄러지듯 경공술로 흑도 앞에 나선 금채홍은 잔뜩 힘을 주며 흑도들에게 외쳤다.

지금은 그 무엇보다 천일영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기 때문에 목소리에도 많은 신경을 쓰는 그녀다.

“죽어서 현청으로 가겠느냐. 아니면 포기하고 항복을 할 것이냐.”

“뭐여? 이 여자는? 눈앞에 이 많은 사람들이 안 보이느냐. 죽고 싶으냐! 계집!”

“음…… 역시 그냥 패고 보는 게 나았나?”

씁쓸한 표정의 금채홍이 금룡참월하검을 뽑는다.

망할 놈들이다.

멋있어 보이고 싶었는데 다 글렀다.

스르르릉.

고운 손길을 따라 뿜어져 나오는 서슬 퍼런 예기가 사방으로 뻗는다.

그러자 이제서야 긴장을 하는 흑도들.

그들이 아무리 무공을 모르거나 기껏해야 삼류 무일이라 할지라도 저 검이 평범하지 않은 것만은 알 것 같다.

특히 삼천흑룡 단주의 눈에 불길함이 스쳐 지나갔다.

“젠장. 덮쳐라. 저년을 죽여 버려!”

단주의 명령에 일제히 검을 뽑아 들고 몸을 날리는 팔십의 흑도들.

그들은 단주의 명령대로 합을 맞추는 연습을 했는지 일사불란하게 금채홍을 향해 검을 찔러 들어왔다. 그러나.

서걱. 서걱. 스으으걱.

분명 검과 검이 닿으면 날카로운 금속음이 들려야 정상이거늘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눈앞에서 깨끗하게 잘려 나가는 자신의 검을 믿을 수 없는 눈으로 바라보는 흑도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삼천흑룡의 단주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게 뭐여?”

“거…… 검이 잘려?”

그때 금채홍이 금룡참월하검을 들고 검면을 혀로 핥으며 살기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흑도들이 보기에 무공의 경지와 요상한 검도 오금을 지릴 지경이지만, 무엇보다 검면을 핥는 여인의 모습이 제정신이 아닌 듯 보인다.

그때 떨고 있는 흑도들의 머리 위로 금채홍의 목소리가 저승사자처럼 내려앉았다.

“자…… 그럼 이제 모두 죽어야지?”

“으…… 으힉!”

“미…… 미친년!”

이미 금채홍의 모습에 다리를 후들거리며 도망을 가려는 자들도 나온다.

그러나 금채홍은 그들이 다른 생각을 품기 전에 검을 날렸다.

퍼억. 파악. 뻐어억!

우득. 우드득. 까두두둑.

“으악.”

“사…… 사람 살려!”

“아아아악!”

개점이 멀지 않은 객잔에 피를 뿌리면 안 된다는 것쯤 금채홍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전에 천일영이 하던 것처럼 검의 면으로 흑도들의 뼈를 송두리째 부숴 버리고 있는 것. 그런데.

‘뭐지? 이 감각은?’

이것이 하다 보니 정말로 재미있다.

그동안 쌓인 게 너무 많았는데 왠지 속이 후련해지는 기분이었다.

금채홍은 그 기분에 취해 더욱 검을 빠르게 휘두르며 흑도들을 쓰러트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춤을 추듯 통쾌한 기분에 검을 휘두른 지 반 다경.

이미 삼천흑룡의 팔십 명은 온몸이 으스러진 채 바닥을 기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삼천흑룡의 단주. 그가 검을 들어 올리며 눈을 빛낸다.

그러나 단주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것이 있겠는가.

금채홍은 이미 월영과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 경지다.

매일같이 술과 여자, 그리고 고기에 찌들어 수련도 제대로 하지 않은 삼천흑룡의 단주는 이미 상대가 되지 않는다.

스걱!

삼천흑룡의 단주가 눈 한번 깜박이기도 전에 금채홍의 검이 눈앞에 있는 검을 잘라 버렸다.

그리고 또다시 빛을 발하며 그 흉악한 모습을 드러내는 금룡참월하검의 검면.

그것을 바라보는 삼천흑룡 단주의 입에 경련이 일어난다.

“으으으…… 이런 X부럴…….”

빠악. 빠아아악. 뻐어어억.

“으악. 으헉. 아아악!”

뼈가 부러지며 폐부를 찌르는 통증에 참을 수 없는 비명이 터져 나온다.

그러나 눈앞의 미친 여자는 검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마치 미칠 듯한 쾌감에 빠져 있는 듯 광희에 젖은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빠아악. 뻐어어억. 스아아악!

순간 금채홍은 멈칫했다.

빠악이 아니라 스아아악? 이게 무슨 소리지?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옆을 돌아보는 순간, 금채홍은 그 자리에서 돌이 된 것처럼 굳어 버렸다.

“아…….”

고가의 물품들이 들어 있는 나무 상자.

너무 흥분을 해서 검을 뒤로 빼는 방향에 나무 상자가 있는 것을 잊고는 하나를 금룡참월하검으로 베어 버렸다.

안에 든 물건이 모르긴 해도 금화 다섯 냥은 할 것이다.

금채홍은 새파래진 얼굴로 늘어진 삼천흑룡 단주를 집어 던지고 천일영의 앞에서 고개를 땅바닥에 처박았다.

“고…… 공자님, 제가 흥분해서 나무 상자를 베어 버렸습니다. 제가 평생을 일해서 다 갚겠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갚기는 뭘 갚느냐, 이 얼간이가!”

꾸우우우웅!

천일영의 주먹이 금채홍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그 충격이 눈앞의 공자를 다섯 명으로 보이게 만들 정도.

“으…… 으하하하합. 아…… 아아아악!”

터지는 속에 내공을 실어 때린 꿀밤.

금채홍이 머리를 부여잡고 눈물을 질끔거리며 땅바닥에서 꿈틀거린다.

그 모습이 마치 뱀이 이리저리 몸을 뒤집으며 발버둥을 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아등바등거리며 땅바닥을 기는 그 모습이 얼마나 웃긴지 순간 천일영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지어진다.

“푸훗, 이 망할 녀석.”

이거 아무래도 큰일이다.

바보같이 커다란 사고를 저지른 금채홍이 밉기는커녕 이렇게나 귀여워 보이니 말이다.

금화를 다섯 냥이나 날려 먹었는데도 스승의 입장에서 제자의 이런 얼뜨기 같은 행동을 보는 것이 재미있고 심지어 유쾌하기까지 하다.

건청도 금채홍도 눈에 넣어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엽다.

그러나 스승의 입장에서는 조금 엄하게 대해야 하는 법.

천일영은 웃음을 지우고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엄살 피우지 말고 어서 저놈들을 현청에 넘기고 오거라.”

“으으으……. 엄살이 아니라 정말로 아픕니다, 공자님.”

금채홍이 머리를 미친 듯이 문지른다.

그냥 꿀밤 같았는데 도무지 통증이 가라앉지 않고 온 뇌까지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공자의 명령이 어떠한 말인가.

애써 고통을 참으며 쓰러진 흑도들을 묶는다.

눈물이 찔끔 나지만 어쩔 수 없다.

“다음에는 꿀밤으로 안 끝난다.”

“에헤헤…… 감사합니다, 공자님.”

공자가 조용히 다가와 때린 부위를 부드럽게 손으로 쓰다듬는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모든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있다.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빨리 다녀오거라. 다 같이 저녁 먹자.”

“네.”

그러나 맞아도 즐거운 금채홍이다.

다음에 또 실수를 해도, 혼이 나고 기가 죽어도 이제 이곳이 집이고 가족이니 말이다.

그 집이 이제 바쁘고 더욱 커진다.

이제 일주일 후에 객잔의 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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