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아아아…… 이를 어째…….”
끝이 보이지 않았다.
금일 개점이라는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이른 아침부터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 모습을 본 천이영이 자신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낸다.
이제 곧 객잔의 개점을 알려야 하는데 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꺼낼 자신이 점점 없어지고 있었다.
객잔 앞에 모인 사람들이 족히 이천 명은 되는 듯하다.
“객잔의 개점을 알리는 말씀을 하시지요.”
건청이 웃으며 문 앞에 섰다.
이제 객잔의 이름이 적힌 현판을 걸며, 소리 높여 객잔의 이름을 공표해야 한다.
그러나 저렇게 많은 인파 앞에서 말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천이영은, 떨리는 손발을 어찌할 줄 모르고 안절부절못했다.
그러자 건청과 단옥이 천이영을 강제로 붙잡고 밖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익.
천이영이 밖으로 나오자 건청과 단옥이 각각 좌우에 섰다.
그리고 그 옆으로 공사장에서 일을 하던 아이들이 고운 비단옷을 입고 천이영의 주변으로 둘러싼다.
아이들은 천이영이 모두 객잔에서 일을 하도록 배려했다.
별채나 10층 고급 객잔의 안내 역할을 할 것이었다.
꿀꺽.
그러나 천이영은 많은 사람들이 곁에서 지켜 주는 데도 눈앞이 캄캄하다.
눈앞에 보이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
그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니 자꾸만 얼굴을 가리고 싶어진다.
자신의 이상한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 자꾸만 도망가고 싶어졌다.
그때 뒤에서 금채홍이 고운 비단옷을 입고 금룡참월하검을 껴안은 채 다가와 천이영에게 조용히 귓속말을 했다.
“공자님께서 ‘내 동생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라고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도 곁에서 지키고 있을 테니까 안심하세요.”
천이영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오라버니의 말을 듣자 왜인지 안심이 된다.
오라버니의 입장에서야 동생이 예뻐 보일지는 모르지만 남들도 그렇지는 않을 터.
그런데도 천이영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눈앞의 사람들이 일제히 조용해진다.
천이영의 웃음이 압도적인 미모를 뿜어내며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결심을 굳힌 천이영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그 자리에 모인 이천여 명의 사람들 사이로 퍼져 나갔다.
귀를 의심하게 만들 만큼 곱고 아름다운 목소리.
“오늘 여기까지 찾아와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객잔의 주인입니다. 낙원촌에서 살다가 아픈 몸으로 오라버니의 품에 안겨 이곳에 있던 객잔으로 왔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아픈 몸도 낫고 또한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여러분들도 저처럼 모두 좋은 일들만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새로 객잔을 지었습니다. 환영합니다. 객잔 별유천지(別有天地)에 어서 오세요.”
“와아아아아!”
이천에 달하는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지르는 가운데, 천이영의 말이 끝나자 건청이 별유천지(別有天地)가 쓰여 있는 현판을 높은 곳에 건다.
천일영이 직접 쓴 글이다.
유려하고 힘 있는 달필에 학당을 운영하는 학사가 그 글을 보고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글 하나만으로도 천하에 이름을 날릴 만큼의 명필.
“다들 어서 오십시오.”
건청의 말에 구름 같은 인파가 객잔 안으로 들어선다.
그러나 점소이로 돌아온 건청은 단옥과 함께 객잔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을 매섭게 살피기 시작했다.
건청과 단옥은 천이영이 전에 객잔으로 오는 길에 폭언과 조롱을 받았던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 천이영이 인사의 말을 할 때 ‘낙원촌에서 아픈 몸으로 오라버니의 품에 안겨 왔다’ 라는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은 사람들을 일일이 기억해 두었다.
그들이 객잔과 거래를 하려거나 인연을 맺으려고 하면 거절할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거대한 객잔은 개점을 하자마자 삽시간에 사람들로 채워졌다.
장평택 목수가 미친 짓이라고 했던 별실은 오전이 지나기도 전에 모두 방이 나갔고, 저녁때쯤에는 예약이 한 달 치나 밀렸다.
처음에는 모두가 별채의 가격에 놀랐으나, 별채를 본 사람들은 말없이 돈을 꺼내어 들었다.
호화롭고 아름다운 것에 넋이 나간 손님들은 귀하고 비싸다는 야명주(夜明珠)가 별채 안과 연못을 밝히자 다시 눈이 휘둥그레지며 박수를 쳤다.
야명주가 비추는 연못 사이를 돌아다니며 반짝이는 비늘을 뽐내는 비단잉어는, 말 그대로 별유천지.
이 세상의 모습이 아니었다.
5층 객잔의 일반 객실이 동전 두 냥이라는 것도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화려하기가 수도 북경에 있는 호화 객잔 별실보다 더했는데, 북경의 호화 객잔이 하루 동전 50냥이 넘는 것과 비교한다면 터무니없이 저렴한 가격이었다.
동전 두 냥의 객실이 이러한데 은자 한 냥의 10층 객잔의 객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그저 눈에 보이는 부분에 불과하다.
음식 역시 천하제일.
황실에서 숙수를 했던 분까지 모셔 온 천이영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손님들은 화려함에 눈길을 빼앗겼지만, 미각까지 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두 음식을 맛보고 별유천지(別有天地)의 이름이 천하에 알려지는 데 부족함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것이 우리가 먹던 동파육(東坡肉)이 맞는가? 다른 유명하다는 집하고도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구만.”
“그것뿐이겠는가? 규화계(叫花鷄)도 대단허이. 거지닭이라고 하지만 황제도 먹는 음식이 아닌가. 유명하다는 집도 많지만 이 집처럼 대단한 곳은 처음이네.”
그때 손님 곁을 지나가던 건청이 한마디 거들고 나선다.
“이 규화계를 만드신 숙수님이 바로 그 황제께서 드시는 음식을 만드시던 분이십니다.”
“뭐! 뭐라! 그것이 정말인가?”
“황실에서 유명했던 분이십니다. 저희가 사정사정해서 모시고 왔지요.”
“허허, 이리 좋은 음식은 술도 좋은 것으로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은 무리를 해서라도 소흥주(紹興酒)를 먹는 게 어떤가?”
음식이 맛있으니 명주가 날개 달린 듯 팔려 나갔다.
사람들이 음식에 걸맞는 술을 찾다 보니 객잔에서 당연히 팔려야 하는 값싼 백건아(白乾兒)나 이과두주(二鍋頭酒)보다 쌍구대곡(雙溝大曲)이나 소흥주(紹興酒) 같은 비싼 명주들을 앞다퉈 주문한 것이었다.
당연히 이윤이 훨씬 더 남았다.
또한 10층 객잔의 꼭대기에서 술과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그 화려한 경관에 모두 탄성을 내질렀다.
객잔의 이름대로 신선이 사는 곳, 별유천지(別有天地) 그 자체인 듯 항주 앞바다에 있는 일천사백여 개의 섬이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마치 신선이 구름 위에서 술을 마시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절경이네그려. 전국 어디에 가도 이런 것은 구경하지 못할 것이네.”
“게다가 음식과 술은 또 어떠한가.”
“아니…… 그것도 그것이지만…… 역시 가장 제일은 그것일세.”
사람들의 눈이 호선을 그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름 아닌 천이영이었다.
항주 제일의 미녀로 불리던 여인들의 꽃 같은 얼굴을, 단번에 산속의 표고버섯으로 만들어 버리는 천이영에게 사람들은 가슴이 설레고 얼굴이 붉어졌다.
기루의 기생들이 절세(絶世)의 미모(美貌)를 지녔다고 말해 왔으나, 천이영 앞에서는 야생초(野生草)나 버섯과 같으니, 진정한 항주 제일의 미녀가 여기에 나타났다고 다들 입을 모아 떠들었다.
침어낙안 폐월수화(沈魚落雁 閉月羞花).
물고기가 가라앉고, 기러기가 절로 떨어지고, 달이 부끄러워하며 숨어 버리고, 꽃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다.
이 말이 천이영에게 부족함이 없었다.
그야말로 절세가인(絶世佳人)이었다.
그러나 천이영의 진면목은 외모만이 아니었다.
찾아오는 사람의 건강이 좋지 못하면 술을 팔지 않고 몸에 좋은 음식만 내왔으며, 과음을 하는 사람에게는 손을 꼭 잡고 더 이상 마시지 말기를 당부하였으니, 거친 뱃사람이라 할지라도 말을 안 듣는 사람이 없었다.
또한 주인이라 하여 거만하지 않고 손님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며 신경을 쓰는 모습에, 돈이 적어 부끄러워하는 손님들까지 당당하게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즐거워하였다.
그뿐이겠는가.
거지가 오면 음식을 내어 주고 빈민가의 아이들이 오면 밥상을 차려 주었다.
밖에 따로 자리를 만들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찾아오면 아낌없이 음식을 내어 주었으니, 그 또한 별유천지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또한 천이영은 객잔의 문을 열고 한 달이 지나자 번 돈의 5할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했다.
낙원촌에서 굶어 죽는 사람과 병으로 죽는 사람들이 사라지게 되었고, 그 소문을 듣고 찾아온 현령은 이제 하루에 한 번씩 식사를 하러 별유천지를 방문했다.
또한 절강성의 도지휘사까지 이틀에 한 번 찾아오는 단골이 되었으니, 별유천지(別有天地)의 명성은 이제 항주뿐만 아니라 절강성에서도 모르는 자가 없게 되었다.
* * *
“후우…….”
객잔 별유천지(別有天地)가 개점을 한 이후 한숨이 늘었다.
객잔 여명(黎明)의 주인 성강춘은 벌써 손님이 안 온 지 한 달이 되어 가는 객잔 안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한숨을 지었다.
전에는 나름 음식 잘하는 객잔으로 이름을 날렸다.
사천(四川) 출신인 그는 대표 요리인 마파두부(麻婆豆腐)로 유명했고, 항주가 바닷가인 이점을 살려 새우 살로 만든 청초하인(淸炒蝦仁)으로도 유명했다.
그러나 별유천지(別有天地)가 개점을 한 이후로 손님의 발길이 점점 줄어들더니 급기야 손님이 아예 안 오게 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손님이 오지 않더라도 재료를 준비하는 일을 빼먹을 수는 없는 일이라 매일같이 장을 보지만, 그 재료들이 모두 손님의 배 속이 아니라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을 생각하자 성강춘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가게를 접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객잔 여명(黎明)은 그의 인생이 모두 담겨 있는 장소인 것을.
“차라리 맛이라도 없으면 자존심이라도 남았을 터인데…….”
성강춘은 별유천지에 몇 번이고 직접 가 보았다.
처음에는 겉만 번지르르하여 얼마 후면 단골손님들이 다시 찾아 줄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별유천지에 가면 갈수록 성강춘은 깊은 절망에 빠져들었다.
청초하인은 물론 자신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마파두부까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끼이이이익.
오랜만에 들리는 반가운 소리.
객잔의 문이 열리고 손님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성강춘은 기쁜 마음으로 허겁지겁 달려 나간다.
검은색 무복을 걸친 일곱 명의 사람들.
언뜻 질이 나빠 보이기는 했지만 그러면 또 어떠하겠는가!
무려 한 달 만의 손님이었다.
“어…… 어서 오십시오.”
땅에 코가 닿을 지경으로 인사를 하는 성강춘을 보자 눈매가 사나운 손님이 웃으며 그만두라는 손짓을 한다.
나머지 사람들도 성강춘을 바라보는 눈길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오죽 장사가 안되면 그러는가 하는 생각들인 모양이다.
“잘하는 음식이 무엇이오?”
“마파두부, 청초하인, 팔진두부하고 궁보계정입니다.”
“하나씩 전부 주시오. 그리고 이과두주 다섯 병하고.”
“네으이.”
주방으로 달려 들어가는 객잔 주인을 바라보던 일곱의 남자들 중 눈매가 사나운 사람이 입을 열었다.
“이곳부터 시작하지.”
“네, 단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장사가 안되는 객잔 중에서 이곳이 가장 심각했습니다.”
“앞으로 삼 일간 이곳에서 저녁을 먹으며 돈을 가진 것이 있는지 살펴보거라. 돈이 있다면 사 일이 되는 날 말을 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단장님께서는 다른 집도 알아보시겠습니까?”
“적어도 객잔 열 군데는 회유를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낙원촌을 접수하는 데 애를 먹는 것이 별유천지 때문이 아니냐. 갑자기 돈을 낙원촌에 퍼부으니 우리 일에 차질이 생겼다.”
“그놈의 별유천지 때문에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속이 뒤집어집니다.”
“객잔 주인들을 설득해서 돈을 받아 내거라. 그 돈으로 살수를 고용하여 별유천지의 주인 계집을 죽일 것이다.”
“우리는 뒤에 숨고요.”
“당연한 것이 아니냐. 일이 실패해도 객잔 주인들이 돈을 거두어 살수를 고용한 것으로 판결이 날 것이다.”
일곱의 남자들은 각기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성강춘은 그러한 사실도 모른 채 자신을 찾아 준 손님을 위해, 태어난 이래로 가장 정성을 들여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