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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31화 (32/270)

31화

단옥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핏덩이와 핏물은 이미 독에 중독되어 시커먼 색이었다.

빗물에 흘러내려 가는 시커먼 핏물이 객잔 앞 돌바닥을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어 버릴 정도. 건청은 허망하게 그것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단옥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린 것에 대한 후회.

그리고 자신의 무능함에 치밀어 오르는 화.

그러나 다 소용없다.

건청이 지금 바라는 것은 단 하나다.

단옥을 살릴 수만 있다면!

“단옥아!”

단옥이 자신에게 품은 마음을 어찌 모를까.

그러나 모른 척을 했다.

너무도 똑똑하고 착한 아이였기 때문에.

자신에게 과분한 이 아이의 마음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자신은 너무 보잘것없었으니까.

“젠장…… 눈 좀 떠 봐라. 단옥아…….”

그러나 마음을 모른 척할 것이 아니었다.

건청은 소용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단옥의 입에서 흐르는 피를 손으로 막았다.

조금만이라도 더 살기를 바랐다.

자신이 단옥의 마음에 대답할 수 있을 만큼만이라도.

그러나 건청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손가락 사이로 계속 피가 솟구친다.

허무하게 손가락 사이로 흘러 나가는 피가 빗물에 떨어지고, 건청의 손이 허망하게 빗물에 흘러가는 핏물을 잡기 위하여 뻗어진다.

소용이 없는 것을 알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기에.

그리고 피가 섞인 검은 빗물이 소용돌이치는 자리.

그곳까지 애타는 심정으로 핏물을 따라 눈길을 돌리던 건청의 눈에 흔들리듯 사람의 신형이 서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자님, 안 오시는 줄 알았습니다.”

“처리할 것이 있었다.”

천일영의 손을 떠난 물체가 허공을 가로지르고 암기술사의 앞에 떨어진다.

툭. 투둑.

거의 찢겨 나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사람의 머리 두 개.

그나마 보이는 것은 반쯤 찢어진 얼굴뿐이다.

그러나 그 얼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눈에 알아차린 암기술사다.

순간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암기술사의 머리가 똑바로 섰다.

“네…… 네놈은 누구냐! 네놈 같은 것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다!”

퓻. 퓻. 퓻. 퓨뷰뷰븃!

양팔을 앞으로 뻗어 내는 암기술사의 몸에서 수십 개의 암기가 천일영을 향해 날아간다.

몸 안에 있는 거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양의 암기다.

자신과 비슷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암기술사와 독술사(毒術師)가 머리만 잘린 채 땅바닥에 던져졌다.

저 둘이 별유천지의 여주인을 암살하기 위하여 산속에 있는 집으로 들어선 지 아직 반 다경도 안 되었거늘, 어찌하여 지금 이 자리에 망자(亡者)가 된 것도 모자라 육신의 조각만을 남긴 채 있는 것인가.

‘망할, 이 정도의 초고수가 있다고는 전해 듣지 못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암기라면 제아무리 초절정 고수라 할지라도 무사하지는 못할 터!’

수십 개의 암기 속에는 눈으로 확인하기도 힘들 만큼 작은 독침을 비롯하여 칼로 베어 내면 폭발을 하며 독무를 뿜어내는 굵은 독침까지 제각각이 섞여 있다.

또한 하나만이라도 몸에 박히는 순간 온몸이 녹아내리는 독도 포함이 되어 있어서, 제아무리 초고수라 할지라도 독침 단 하나만이라도 몸에 박히는 순간 절명(絶命)을 피하지 못할 터.

휘이이잉. 파아아앙!

그러나 순간 암기술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눈앞의 고수가 단 한 번 검을 휘두른 것만으로 모든 암기들이 사방으로 밀려난다.

그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내리고 있던 빗줄기의 방향이 통째로 꺾여 자신에게 밀어닥칠 정도.

그리고 그 힘에 자신의 몸조차 밀려 나갔다.

“이…… 이것이 무슨…….”

오히려 자신의 몸에 꽂혀 있는 수십 개의 암기.

순간 암기술사의 머리에 하나의 상황이 떠오른다.

‘암기는 상대의 눈을 속이고 던져야 하거늘, 마음이 급하여 눈에 너무 보이게 하였구나.’

상대의 신위에 놀라서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고 보니 앞서 죽은 두 사람 역시 상대편의 신위에 놀라서 너무 쉽게 죽임을 당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니다. 이 정도의 신위라면 상대의 눈을 속여도 소용없을 터. 저건 이미 사람의 무공이 아닌 것을.’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피할 수 없는 것.

그것은 자신에게 찾아온 죽음이다.

“젠장…….”

휘이이익. 촤아악. 촤아악. 촤아악, 최아악.

순간 무극지검이 수백 번 허공을 가른다.

암기술사는 허망하게 자신의 종말을 느끼고, 도망을 치기도 전에 수백 조각으로 잘려 허공으로 흩어져 나갔다.

“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온몸에 숨기고 있던 기관 장치가 잘려 나가는 느낌이 선명하게 온몸을 파고들며, 아직 잘리지 않은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믿어지지 않는 일.

자신의 머리만 온전히 남아 있고 몸만 잘려 나가고 있는 것이 어찌 가능한 일인가.

모든 고통이 빠짐없이 머리로 전해진다.

척수가 잘리고 간장이 도려지며 심장이 쪼개지는 느낌.

참을 수 없는 미칠 듯한 소름 끼치는 통증이다.

이 고통이 뇌수를 마비시킬 듯 머릿속을 헤집는 동안 자신의 몸통이 모두 사라져 있음을 알아차린 암기술사.

이제 의식이 사라져 간다.

그러나 그것이 끝일까.

아니다.

아직 시선이 모든 광경을 비추고 있는 순간, 눈앞으로 서늘한 칼날이 날아 들어와 자신의 안구를 자르는 것이 보인다.

소름 끼치는 광경.

그것이 암기술사가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콰직!

머리조차 수백 개로 쪼개지고 갈라져 날아갔다.

바닥에 육신 한 조각 남지 않고 핏물만이 가득 남은 채.

팅. 또르르르르.

검은 이빨 단 한 조각만이 비가 쏟아지는 피 웅덩이에 떨어진다.

그것을 제외하고 더 이상 암기술사의 신형은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건청.

이빨 한 조각만 남은 공자의 신위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러나 떨리는 손이 안고 있는 단옥이 더 급하다.

그 마음을 아는지 천일영도 급히 단옥을 넘겨받는다.

“단옥을 이리 넘기거라.”

“네? 앗, 네네.”

천일영의 손길이 다급하다.

단옥의 몸에 기운을 주입하고 몸 안을 돌고 있는 독을 급히 밖으로 배출하는 모습.

지나칠 정도로 서두르는 모습은 그만큼 단옥에게 죽음이 가깝다는 말.

쉬익.

단옥의 몸에서 희뿌연 연기와 함께 독이 배출되기 시작했다.

천일영은 급한 마음에 더욱 속도를 내었다.

단옥도 문제지만 또 하나의 급한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월영이 죽어 가고 있었다.

* * *

월영은 매일 저녁 시간에 객잔을 찾았다.

일부러 늦은 저녁을 먹고 빈민촌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 위해서였다.

비단옷을 입고 안내를 하는 아이들이 제법 돈을 받고 있다는 소문이 퍼진 이후, 그 돈마저 빼앗으려는 무뢰배들까지 등장했다.

때문에 월영은 아이들을 집까지 데려다주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는 일을 매일같이 반복했다.

“웬 비가 이렇게 오나. 논이고 밭이고 다 떠내려가겠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삼 일 동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유독 심하게 비가 온다.

우의를 입은 것도 소용없었는지, 아이들은 우의 안에 비단옷이 젖자 내일 일할 것을 걱정하며 집으로 들어섰다.

“아저씨, 내일 봐요.”

“옷도, 몸도 잘 말리고 자야 한다.”

“헤헷, 아저씨도요.”

아이들이 무사히 집으로 들어간 것을 두세 번 확인한 월영은 자신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처음에는 별유천지의 공자에게 미안했던 마음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월영 스스로가 나서서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었다.

힘들게 번 돈을 잃고 아이들이 상심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야말로 빨리 가야겠다.”

월영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빗줄기가 더욱 거세지는 것이 빨리 가야 할 듯싶다.

다 쓰러져 가는 집은 어제부터 물이 새기 시작했는데, 오늘 쏟아붓는 비를 보니 집이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급한 마음과는 달리 월영의 발걸음은 천천히 느려졌다.

비로 젖은 질척한 길가 한가운데 두 명의 사내가 칼을 빼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들의 돈을 노린 무뢰배인가?’

그러나 월영은 고개를 저었다.

앞에 서 있는 두 명의 사내는 우의를 입지 않고 있었지만, 옷은 방금 말린 것처럼 젖어 있지 않았다.

온몸을 얇게 덮고 있는 기막이 비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초절정 고수!’

월영의 심장이 얼어붙듯 차가워졌다.

초절정의 고수가 낙원촌을 찾아올 일은 없었다.

분명 저들은 월영 자신을 찾아온 것이었다.

월영은 흑도 조직 미흑천의 초서복을 기억해 내었다.

“앞에 계신 두 분은 혹 나를 찾아온 것이오?”

“그렇소. 나는 사현풍이라고 하오.”

월영의 목울대로 침이 넘어간다.

사현풍이라고 하면 사혈련에 몸을 담았던 고수 중 하나로, 지금은 사혈련를 떠나 살막에 몸을 담았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사현풍이 비록 중원 백대 고수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하여도, 월영이 그 이름을 알 정도로 유명했던 이유는 잔인한 성정 때문이었다.

사혈련조차도 손을 들 만큼 잔악한 성격으로, 사현풍과 칼을 마주했던 사람들은 모두 육체가 걸레처럼 찢겨져 죽었다.

“월영이라는 이름이라고 들었네. 듣자 하니 제법 실력이 좋다고? 부디 나를 즐겁게 해 주길 바라지.”

“젠장!”

휘익!

촤아악!

월영이 칼을 빼 들기도 전에 왼쪽 어깨로 칼날이 박혀 들어왔다.

월영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은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월영은 어깨에 박힌 칼날의 고통보다도, 단번에 자신을 죽일 수 있는데 일부러 어깨에 칼을 꽂는 사현풍의 행동에 소름이 끼쳐 올랐다.

‘망할 새끼, 장난감 취급인 거냐.’

사현풍이 일부러 가지고 놀기 위하여 하는 행동.

이것이 그와 상대한 사람들이 걸레처럼 찢겨 죽는 이유다.

어깨에 박힌 칼을 일부러 돌리며 피가 튀는 것을 보는 사현풍의 얼굴은, 이미 광희(狂喜)에 젖어 사람이기를 포기한 듯 월영의 고통을 즐기고 있었다.

“크으으으윽!”

“피 냄새가 좋구나. 도사의 피는 언제나 각별하지. 매일같이 죽여도 질리지 않을 만큼 말이다.”

챙!

몸을 비틀어 몸을 억지로 빼낸 월영이 칼을 뽑아 사현풍의 정수리로 날린다.

그러나 사현풍의 칼은 정수리로 날아오는 칼날을 가볍게 쳐 냈다.

그리고 즉시 사현풍의 장권이 월영의 찢긴 어깨를 파고들어 상처를 후벼 파고 근육을 찢기 시작했다.

“크아악, 으으으윽!”

“좀 더 비명을 지르려무나. 좀 더 고통에 몸을 비틀 거라. 오랜만에 들어 보는 좋은 소리다.”

“미…… 미친 새끼. 큭!”

월영은 깊이 찢긴 왼쪽 어깨를 쓰지 않고 청운검(淸雲劍)과 태청검법(太淸劍法)의 초식을 이어 붙이며 검격을 거세게 몰아쳤다.

서로 다른 검법의 초식을 이어 붙여 사용하는 것은 월영의 특기.

이것으로 초식에 얽매이지 않고 예측하기 힘든 검술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힘만으로는 월영을 능가했던 초서복을 이기게 만든 것도 바로 이것 때문.

초절정 고수인 사현풍을 상대로 얼마큼의 시간을 벌어 줄지는 모르지만 이대로 죽을 수는 없기 때문에 월영은 몸부림을 쳤다.

챙챙. 채채챙! 휘익! 챙!

월영의 검이 빗줄기를 튕겨 내며 사현풍을 향해 날아갔지만, 애초에 초절정 고수와 일류 고수의 싸움은 일 초식을 넘기기 힘든 법이다.

아니, 초절정 고수의 칼 한 번이면 이미 육신이 반으로 갈라져 죽어야 한다.

그런데도 월영이 버티는 것은 그가 칼을 쓰는 방법만큼은 절정의 고수와 같았기 때문.

순간 죽음을 앞두고 예리해진 감각의 월영이 자신의 앞으로 날아오는 검날을 쳐 낸다.

챙!

사현풍이 월영의 오른쪽 어깨를 향해 날린 검날을 막아 내자 놀랍다는 표정을 짓는다.

“오호, 너는 내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구나. 내 칼을 받아 낸 일류 고수는 네가 처음이다.”

“그딴 병신 같은 검에 내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느냐!”

월영의 검이 재미있는 광경에 놀라서 방심한 사현풍의 얼굴로 찔러 들어간다.

그러나 사현풍은 그것을 보고 웃기만 할 뿐 피하지 않았다.

월영의 칼이 매서운 바람을 일으키며 사현풍의 얼굴에 닿기 직전, 이제 순식간에 사현풍의 눈에 찔러 들어가기 일보 직전이다.

월영은 당황을 하면서도 그래도 움직이지 않는 사현풍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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