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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34화 (35/270)

34화

다음 날.

콰아아아앙!

굳게 걸어 놓은 지회의 문이 마치 벽력탄을 맞은 것과 같은 굉음과 함께 수백 조각으로 날아갔다.

그 소리에 미흑천의 절강성 지회 회주 석태충은 아침 식사를 하다 말고 검을 집어 들었다.

입안에 있던 토끼 다리뼈를 우적거리다 거칠게 내뱉는 모습이 흡사 악살(惡殺)의 기운이 주변에서 떠도는 듯한 모습이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온몸에 멍이 든 채 억지로 울음을 참고 있는 여인이 석태충의 눈길을 애써 피한다.

“기분이 잡치는군.”

휘익! 콰직!

“커헉…….”

석태충은 아침 식사를 망친 것에 기분이 나쁜 듯 어제 잡혀 온 여인의 목을 단칼에 베어 내며 거친 목소리를 토해 냈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마치 바위를 긁는 듯한 목소리.

우람한 뼈대와 덩치에 목소리를 더하니 마치 곰과 같은 모습이다.

“감히 이곳을 건드리는 놈이 있구나. 내가 다녀올 동안 이년의 핏자국과 방을 청소하고 어제 잡아 온 계집 중 하나를 씻겨서 데려다 놓아라.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모두 끝마쳐 놔야 할 것이다.”

“네…… 네에, 알겠습니다.”

석태충의 방 안에 있던 하녀들은 벌벌 떨며 목이 잘린 여인을 바라보았다.

어제 밤새도록 석태충에게 괴롭힘을 당한 것도 모자라,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목이 잘린 나신의 여인.

어제 입고 있던 옷차림으로 보면 꽤나 이름 있는 집 자제인 듯싶은데 산속을 지나간다는 이유만으로 납치되어 이런 끔찍한 일을 당했다.

그러나 하녀들은 이내 고개를 숙였다.

조금이라도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면 그다음에 떨어지는 것은 자신들의 목이었기에.

쿵.

거칠게 방문을 열고 나서는 석태충의 얼굴에 가소로움이 떠오른다.

어떤 미친놈이 감히 미흑천의 지회를 건드린다는 말인가.

미흑천은 보통 흑도 조직이 아니다.

지회조차 절정의 고수인 자신이 있을 만큼 조직원들의 무공이 높은 곳이었다.

그런데 벽력탄 나부랭이를 손에 넣었다고 이곳을 공격해 오다니, 과연 놈들이 제정신인가 싶다.

황실에서 관리하는 화약으로 만드는 벽력탄을 어디에서 손에 넣었는지는 모르지만, 지회 문 하나 날렸다고 의기양양해 있을 놈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 석태충은 몸을 날렸다.

“어떤 미친놈이 아침부터 죽으려고 온 것이냐……?!”

지회의 문 앞으로 달려 나온 석태충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지회의 바닥에는 부하들이 팔다리가 부러진 채 신음을 하며 나뒹굴고 있고, 또 한쪽에는 고운 비단옷을 입은 여인이 웬 휘황찬란한 검을 안고 있는데 이 여자의 곁에는 팔다리가 잘린 부하들이 몸을 비틀고 있었다.

죽은 놈은 없었지만, 이상한 방향으로 꺾인 팔다리와 이리저리 잘려 나간 채 피를 뿜고 있는 사지를 보자니 분명 벽력탄과는 상관이 없어 보이는 상황.

잠시 석태충이 멍하게 상황을 보는 사이 눈앞에 웬 허여멀건 한 남자가 나타난다.

“네놈이 회주인가?”

“뭐? 네놈?”

석태충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눈앞에 보잘것없는 계집 같은 남자 하나가 서 있다.

그러나 석태충은 눈앞의 남자를 보는 순간 바짝 긴장을 했다.

‘분명히 함정이다. 이놈들이 이런 비열한 수작으로 부하들을 해치운 거로군.’

방법은 간단하다.

무공도 없는 놈으로 눈길을 사로잡고, 등 뒤에 서 있는 여자가 암기나 칼을 꽂으려는 수작.

석태충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등 뒤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석태충은 이런 식으로 싸우는 놈들에게 익숙했다.

왜냐하면 석태충 자신도 본인보다 강한 자를 상대할 때 쓰는 수법이니까.

흑도 조직에서 자주 써먹는 방법을 어찌 이놈이 아는지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이미 놈들의 생각을 잘 아는 석태충으로서는 눈앞의 비리비리한 놈에게 눈길을 둘 이유가 없다.

그리고 이내 뒤편에 자리를 잡고 있는 여인에게 눈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빠아아악!

“꿰에에에엑!”

돼지 멱따는 소리와 함께 석태충의 신형이 바닥에 내리꽂히고 또한 그 반동으로 벽에 날아가 처박힌다.

장권 하나에 공중을 세 바퀴 돌고 처박힌 석태충은 당황했다.

적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어 죽을 맛인 것. 도대체 어디에서 주먹이 날아온 것인가?

방금 맞은 장권을 또 한 번 맞으면 영락없이 죽을 것 같다.

석태충은 입안에서 뽑힌 이빨 두 개를 거칠게 내뱉었다.

그런데 그 순간 눈앞에 있는 놈이 약 올리듯 말을 걸어온다.

“이 머저리 같은 놈이 눈앞에 적을 두고 어디를 보느냐?”

“뭣이? 네놈들의 수작을 모를 것 같으냐? 네놈같이 비실거리는 놈이 이런 장권을 날릴 리 없지 않느냐!”

빠아아아악!

“꿰에에에에엑!”

이런 X부럴 젠장이다.

석태충은 눈앞의 허연 남자가 내지르는 장권에 맞아 보니 순간 자신이 바보 같은 짓을 했음을 깨달았다.

분명 아까 맞은 것과 같은 위력의 장권.

엄청난 위력의 장권에 두 번이나 연거푸 맞다 보니 이빨의 절반이 부러져 날아가고, 턱뼈도 빠졌는지 이리저리 돌아가며 덜렁거린다.

“카악, 퉤! 이런 비열한 새끼!”

“여기에 너 빼고 누가 비열한 놈이 있다는 것이냐.”

“시끄럽다. 이 사악한 속임수를 쓰는 놈아!”

눈앞의 허연 놈이 비실거리는 몸에 내공이 조금도 없어서 안심했건만, 기운을 속이는 속임수를 쓰는 것이 분명했다.

최악이라 불리는 흑도 조직의 싸움 방식보다도 훨씬 더럽게 싸우는 치사한 놈일 줄이야.

석태충은 기운을 완전히 갈무리할 수 있는 초고수라는 것은 생각도 못 하고 거칠게 칼을 뽑아 들었다.

한편, 천일영의 입장에서는 하는 짓이 바보 같아서, 귀여운 맛에 봐준 것인데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빠아아악!

“꿰에에에에에에엑!”

석태충의 몸이 허공에서 열 바퀴를 돌며 지회의 문밖으로 날아가 떨어진다.

아까 맞은 장권보다 훨씬 강한 것으로 온몸이 비틀리는 듯 아픔이 엄습해 오는 것은 물론, 속까지 전부 뒤집어져 당장이라도 토할 것만 같다.

“하아……. 으하학!”

온몸의 뼛줄기를 타고 퍼지는 충격.

한참을 날아가던 석태충은 땅바닥을 구르다 겨우 몸을 진정시켰다.

하루에 세 번이나 날아다니니 이것이 무슨 일인가 싶다.

순간 석태충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하나의 생각.

‘도망! 도망을 가야 한다. 이놈들, 보통 놈들이 아니다.’

비록 치사한 속임수를 쓰는 놈이지만 생각보다 상대는 강했다.

그러나 석태충이 빨리 몸을 추슬러서 도망을 가려고 할 때, 석태충은 자신을 둘러싼 현령과 수십 명의 포졸들을 보았다.

“고작 현령 따위가 나를 잡는다? 웃기지 마라!”

석태충은 기운을 일으키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칼도 아직 자신의 손에 들려 있다.

가소로운 현령과 포졸 따위 한 번에 베어 버리고 도망가면 그만인 것.

그러나 석태충의 생각과는 달리 몸은 일으켜지지 않았다.

“응? 몸이 왜 안 움직이지?”

“네놈 뼈 중에 멀쩡한 것이 있느냐.”

“뭣이?”

“네 온몸의 뼈가 장권의 충격으로 가루처럼 부서졌다는 말이다. 지금 네 꼴이 문어와 다를 것이 무엇이냐?”

“으잉? 아니, 이게 무슨?”

주변을 정리하던 건청이 한심한 듯 석태충을 바라본다.

바닥에 처박혀 있는 석태충의 꼴을 보니 어떤 상황인지 한눈에도 알 것 같지만, 이 바보 같은 회주는 자신의 몸이 어떤 상황인지 아직도 파악이 안 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문어처럼 늘어진 석태충의 말에 분노를 불태우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현령.

그는 고작 현령 따위라는 말에 분노가 치솟아 앞으로 나섰다.

평상시라면 감히 꺼낼 수도 없는 말이지만 문어 앞에서 못 할 말이 무엇인가.

“현령 따위라고? 얘들아, 이놈들을 당장 포박하라! 그리고 저 주둥이에 재갈을 물리거라!”

“네!”

“이…… 이놈들! 이거 놔라!”

현령 태문탁의 명령이 떨어지자 포졸들이 일제히 동아줄을 들고 미흑천의 조직원들을 포박한다.

그 모습을 보며 태문탁은 생각에 잠겼다.

아침에 별유천지의 공자가 찾아와서 공을 세우고 싶으면 따라오라고 하여 혹시 하는 마음에 따라온 것이었다.

혹시 하는 생각에 별생각 없이 따라온 것인데 그것이 이렇게 큰일로 연결이 될 줄이야.

태문탁의 목울대로 침이 꼴깍 넘어갔다.

* * *

현령 태문탁은 잘 알고 있었다.

천일영이 별유천지에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아도, 그가 별유천지를 만든 사람이라는 것을.

태문탁은 별유천지의 공사가 워낙에 컸던 터라 일부러 몇 번이고 찾아가 보았었다.

높은 건물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사고의 위험이 있지 않을까 시찰을 나간 것이었다.

그때 천일영을 본 태문탁의 소감은 지나치게 잘생긴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냥 잘생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잘생긴 사람이라는 것이 태문탁의 눈길을 끌었다.

태문탁 자신도 얼굴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천일영을 보고 있자니 솔직히 조금 화가 났다.

너무 심하게 비교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현령 태문탁에게 천일영은 딱 그 정도의 사람이었다.

돈 많은 잘생긴 공자.

너무 잘생겨서 짜증이 치솟아 사실은 말도 섞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딱 그 정도로 생각했던 사람이 오늘 아침 느닷없이 찾아왔다.

공을 세우고 싶으면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조건은 현상금을 전부 달라는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몰수할 재산을 자신에게 달라는 것이었다.

태문탁은 승낙했다.

일단 멋있어 보이고 싶었으니까.

‘저 공자 옆에 있는 소저는 별유천지에서 여주인 다음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가진 사람이지 않은가. 여주인과 비교해도 그 미모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인데!’

가까이에서 보니까 더 아름답다.

별유천지의 여주인과는 다르게 이 소저는 항상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객잔의 안을 살펴보고 있으니 가까이에서 만날 기회가 적었는데, 지금 눈앞에서 보니 숨이 막힐 정도가 아니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이다.

‘공자 혼자서 왔다면 내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지만 소저와 같이 왔다면 말이 달라지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현령 태문탁이 콧수염을 쓰다듬는다.

이 정도의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 있으면 별유천지의 공자와 비교해도 그다지 떨어지지 않을 터다.

태문탁은 웃음을 지으며 별유천지의 공자에게 말을 건넸다.

“앞장서시오. 내 도와드리리다.”

말없이 뒤돌아 길을 걷는 공자 뒤로 점소이 건청이라는 사람이 따라붙는다.

그 모습이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만 현령 자신의 뒤에서 포졸 이십여 명이 따라가니 불안한 일은 벌어지지 않을 터.

상황이 이러하니 공자가 말하는 몰수할 재산이 어떤 것을 말하는지는 모르지만 태문탁은 개의치 않았다.

돈이나 귀중한 물건이라면 도로 빼앗으면 될 일이니까.

일개 객잔 주인과 점소이인 사람일 뿐이니, 혹시라도 허튼소리를 하면 옥에 가둬 버리면 그만이기도 했다.

그리되면 이 소저에게 접근하기도 훨씬 편해지지 않겠는가.

“서둘러라.”

“…….”

그런데 이놈이 잘생긴 것도 짜증이 나는데 아까부터 자꾸 반말질이다.

하지만 태문탁은 꾹 참았다.

항주에 끼치는 별유천지의 영향이 그만큼 대단했기 때문.

그리고 눈앞의 소저가 너무 예뻤다.

태문탁은 얼굴이 빨개지며 헛기침을 두 번 하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항주 외곽으로 가는 것이 아니었나?”

그런데 가는 길이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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