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신귀환기-40화 (41/270)

40화

그 명성만큼이나 눈 깜박할 사이에 귀문살이 자취를 감추자 설려온과 평수찬, 그리고 금채홍과 건청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가 풀린 탓이다.

그러나 몰아치는 한숨과 안도하는 마음도 잠시다.

칼 한번 대지 않고 사귀진을 물러서게 만든 사람.

그 말은 사귀진보다 더 무서운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뜻했다.

설려온은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열었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고…… 공자? 도대체 공자의 정체가 무엇인가?”

“…….”

설려온은 눈을 질끈 감은 채 대답을 기다렸으나 시간이 지나도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역시 쉽게 대답을 해 줄 만큼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설려온은 다시 한번 용기 내어 입을 열었다.

체면은 둘째로 하고 꼭 알아야만 했으니까. 그리고 잠시의 시간이 지난 후 설려온의 용기에 감복했는지 대답이 돌아왔다.

“소저? 이미 공자와 나머지 분들은 아까 전각으로 가셨습니다.”

“뭐…… 뭐라고?”

휘둥그레진 눈으로 눈앞의 전각을 바라보자, 이미 전각의 문이 활짝 열려 있고 공자와 점소이, 그리고 검을 든 예쁜 미친 여자가 흑도들을 날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중에서도 공자의 모습은 그야말로 귀신보다 더한 형상.

뻗어 내는 손길에는 내공이 없어 보이는데, 닿는 대로 흑도들의 단전이 부서지고 깨졌다.

또한 무공의 신위는 어떠한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봉쇄하고 피하지 않는 듯 보이지만 단 한 번도 맞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움직임을 보고 있자니 마치 선녀가 춤을 추는 듯 보이기까지 할 정도.

설려온이 집요한 눈길로 천일영을 쫓는 동안, 입으로는 자신도 모르게 나직한 한숨과 진심이 흘러나와 버린다.

“젠장…… 반해 버리겠네…….”

그리고 이내 또다시 올라오는 진심.

“우웨에에엑.”

검을 든 예쁜 미친 여자가 인정사정없이 흑도들의 팔다리를 잘라 버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구역질이 올라온다.

게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도륙하고 있는지 벌써 진한 피 냄새가 40장의 수중 돌다리를 지나 이곳까지 진동을 하고 있었다.

합을 맞춰 무공을 연습하던 설려온에게는 처음 보는 처참한 광경이다.

그러나 설려온의 여러 의미로 울렁거리는 마음과는 달리 강일택은 허망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최대의 전력이었던 귀문살을 내보낸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들이 갑자기 기생오라비 같은 놈에게 인사를 하고는 가 버린 것이었다.

“저, 저놈들이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미친 것이 아니더냐! 귀문살이라는 놈들이 그냥 물러서다니, 이게 무슨 개 같은 경우란 말이냐!”

강일택이 노기를 뿜으며 귀문살에 대한 악독한 말을 퍼붓는 동안, 노병천의 이마 주름은 더욱 깊어지기만 했다.

무인이 고개를 숙일 때는 자신이 모시는 주인과 실력의 차이가 극명한 자에게뿐. 어지간한 실력 차이는 인정도 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무인이 고개를 숙일 정도면, 그것은 이미 메울 수 없는 넓은 강만큼의 실력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저 기생오라비 같은 자에게서 기운을 느낄 수 없다면 반박귀진…….’

그러나 노병천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말이 좋아 반박귀진이지 그것은 현경이나 화경에 도달해야 가능한 일.

지금 중원에 그런 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도 없다.

천마신교의 천마가 극마의 경지라는 소문이 있기는 하지만 천마가 이곳에 있을 리는 더더욱 만무한 일이다.

그러나 이 상황은 여러모로 기괴하고 불길한 느낌이 든다.

노병천은 조심스레 입을 떼었다.

“천주님, 이 노부가 막아 보겠으나 후일을 생각하여 몸을 피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노병천! 나는 미흑천의 천주다. 그런데 도망을 가라는 것이냐! 이 강일택, 결코 귀문살보다 약하지 않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닥치거라. 누구 앞이라고 망언을 서슴지 않느냐.”

강일택은 사혈련에서 나와 미흑천을 세우고 스스로 천주라 칭했다.

그리고 그 일로 사혈련과 사이가 틀어진 지 오래였다.

때문에 귀문살에게 일을 의뢰한 것도 노병천이 스스로 나선 것이었고, 강일택은 사귀진이 평소의 관계 때문에 일부러 골탕을 먹이고 그냥 간 것으로 생각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저들은 미흑천의 입구를 초토화시키고 있다.

이미 눈 다섯 번 깜박할 시간만 흘렀을 뿐인데 혈향이 이곳까지 진동한다.

그곳에는 무려 초절정 고수와 절정 고수가 지키고 있는데 말이다.

그 무렵.

강일택은 미흑천의 지회를 부수고 다닌 것이 천일영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노병천과 머리를 맞대고 있는 사이.

이미 건청은 절정의 고수를 상대로 세 명이나 사지의 뼈를 으스러트렸고, 금채홍은 일류 고수를 상대로 열 명의 팔다리를 끊어 내고 있었다.

사방으로 피가 진득하게 퍼지고 있다.

미흑천의 무인들은 팔다리가 잘린 채 죽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한 채 바닥을 기고 있었다.

“이놈들 보통이 아니다. 노 대인이 지시한 진을 만들어라.”

“네.”

이 자리에 있는 자들 중 가장 강한 기운을 풍기고 있는 한 남자.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주변에 산개해 있던 초절정 고수 넷이 그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강일택의 명령으로 노병천이 절대 뚫리지 않는 방어책의 하나로, 초절정 고수 다섯으로 하나의 진형을 만드는 것이다.

“꽤나 재미있는 것을 보여 주는구나.”

“놈! 네놈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이것을 당해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눈앞의 기생오라비 같은 놈이 순식간에 절정 고수 셋과 일류 고수 이십의 단전을 박살 내는 것을 보았다.

그러니 아무리 초절정 고수 다섯이 모여 있다 할지라도 중하게 움직여야 하는 법.

특히 천주의 말에 따르면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고수가 올지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준비를 많이 한 모양이니 이쪽도 사양 않고 가겠다.”

“덤비거라!”

다섯의 초절정 고수 중에서 가장 강한 방춘석이 가장 뒤에 자리를 하고 세 명이 앞으로 나선 모습.

그리고 그 중간에 또 한 명의 고수가 대기를 한다.

앞의 셋 중 하나가 무너지면 중간에 있는 초절정 고수가 자리를 메우고, 적이 빈틈을 보이면 방춘석이 즉시 공격을 하는 진형.

간단하지만 효율이 좋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적인 초절정 고수를 상대할 때나 먹이는 진법이다.

파바방. 빠바바박!

순간 방춘석의 눈이 튀어나올 듯 앞으로 쏠렸다.

단 일격에 진의 가장 앞에 서 있던 초절정 고수 셋이 날아가 벽에 처박힌다.

미처 눈으로 보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당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가 너무도 절묘했다.

“서…… 설마 네놈, 그 자리에 기관 장치가 있는 것을 알고 일부러 세 명을 벽에 내다 꽂은 것이냐.”

“너무 눈에 뻔히 보이는 수다. 네놈들의 진형은 공격진이 아니라 방어진이 아니냐. 당연히 네놈들에게 가는 길에 무슨 장치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을. 속임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유치하구나.”

“놈……!”

화살과 독침을 발사하는 기관 장치가 있는 벽면에는 세 명의 초절정 고수들이 각종 암기에 몸이 뚫린 채 늘어져 있다.

무공이 강하기 때문에 죽지는 않은 것 같지만 이미 입에서는 시커먼 피가 흘러내린다.

비참한 그들의 몰골이 가엽기도 하지만, 오히려 더 소름 끼치는 것은 죽지 않은 것이 불행인 듯 입에서는 나오는 작은 신음 소리다.

단 한 수에 온몸이 암기에 꿰뚫린 채 간신히 목숨은 고통스럽게도 이어졌다.

그 모습은 다른 미흑천 흑도들의 얼굴을 새파랗게 질리게 만들었다.

“그렇군. 암기를 발사하는 기관 장치라. 내 제자들이 다칠 수도 있으니 미리 처리를 해 놓을까.”

휘이이잉. 콰과과광!

천일영의 손에서 뽑힌 무극지검이 사방을 향해 허공을 가른다.

그러자 미흑천의 입구에 있는 모든 담벼락의 벽면들이 굉음을 내며 터져 나갔다.

가볍게 휘두른 검에 공간이 갈라지며 벽면이 터지는 모습은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

그러나 오히려 비산하는 돌과 암기들이 하나같이 미흑천의 흑도들에게 날아들자, 검을 들고 있던 흑도들은 적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비산하는 미흑천의 기관 장치를 자신들이 상대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크악!”

“으헉!”

“이런 빌어먹으…… 으윽!”

피하지 못한 자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져 갔다.

그 수가 언뜻 보아도 사십은 되는 듯하다.

그리고 애써 날아오는 돌과 암기를 검으로 쳐 낸 무인들은 자신의 위험이 단지 그것뿐이 아닌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스윽! 서걱.

“끄아아악. 내 팔.”

“아아악. 내…… 내 다리!”

“뒤에 적이 있는 것을 잊은 것이냐.”

낭랑한 목소리의 금채홍이 날아드는 돌과 암기를 피하며 미흑천 흑도들을 신속하게 쓰러뜨려 갔다.

그 동작이 얼마나 신속한지 같은 일류 고수들도 새파랗게 질려 할 말을 잃을 정도다.

그러나 죽이지 않고 사지만 절단 내는 그 모습이 더 무섭다.

이 정도의 무인이 왜 무림에 알려지지 않은 것인지 오히려 궁금할 지경이다.

이런 미친 여자가 칼을 휘두르면 유명해야 하지 않은가.

촤아아앙! 파방! 채채챙!

건청도 조용히 검을 휘두른다. 모처럼 공자가 만들어 준 복수의 자리다.

월영에게서 빌려 온 시장의 제일 싸구려 검이지만, 천성검(天星劍)과 건곤산수(乾坤散手)를 섞어 검과 수공을 동시에 쓰며 독특하게 싸우는 실력은 천하일품이다.

건청이 과거에 이름을 날리게 만든 이유이기도 했다.

‘좋다. 이 느낌, 오랜만이다.’

건청의 마음에 만족감이 차오른다.

마음껏 무공을 사용하고, 그것을 받쳐 주는 내공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러나 건청은 자신이 아끼고 좋아하는 단옥을 죽을 뻔하게 만든 것이 미흑천이라는 것을 절대 잊지 않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세상을 좀먹는 흑도이기도 하지만 또한 원한을 쌓게 만든 놈들이기도 했다.

“절정의 고수는 전부 내가 상대한다. 덤비거라!”

모처럼 건청의 몸에서 기운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중원 백대 고수나 가질 만한 내공을 가지고 있는 그로서는 기운이 떨어질까 걱정하면서 싸우는 것은 하지 않아도 될 터.

그러나 자신감도 잠시, 옆에서 거대한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건청은 머쓱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쿠구궁. 콰앙!

거대한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는 공자가 방춘석의 목줄을 움켜쥐고 있다.

이미 단전이 터져 나가 끔찍한 비명 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내렸다.

거의 대부분의 초절정 고수들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건청아, 채홍아. 먼저 가 있겠다. 남은 놈들은 맡겨도 되겠느냐.”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입니다, 공자님.”

“도움이 필요하면 나를 부르거라.”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믿음직스러운 제자들이군.”

방춘석을 잡고 있던 천일영의 손길이 오른쪽으로 뻗어 나간다.

그러자 그곳에 있던 마지막 초절정 고수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자신에게 날아드는 방춘석의 육신이 자신의 몸에 처박히는 것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악!”

마치 바윗덩어리가 날아와 자신의 육신을 찢어 내는 것 같다.

단지 사람의 육신 하나를 집어 던진 것뿐인데 그것조차 받아 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방춘석의 육신과 함께 초절정 고수는 벽에 처박혔다.

그곳은 입구와 천주가 있는 곳을 가르는 거대한 문에 도달하기 전 마지막 기관 장치가 숨어 있는 곳이었다.

쿠와아앙.

“끄윽…… 네놈…… 또 일부러…….”

“의미 없는 공격은 하지 않는다. 네놈들은 그저 내게는 도구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개…… 개새…….”

그러나 천일영은 겨우 숨만 붙어 있는 놈에게서 등을 돌렸다.

과거에 이미 질릴 정도로 들었던 욕이다.

“흠…… 제법 큰 문이군.”

거대한 문이 천일영을 맞이한다.

그러나 이 문이라고 해서 기관 장치가 없을 리 없다.

괜히 건청과 금채홍이 이쪽으로 신형을 날릴까 걱정이 되어 먼저 이곳으로 온 천일영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