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으윽! 미치겠다, 통증이!’
관절의 뼈는 무인들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곳이다.
팔꿈치 뼈는 구조가 복잡하고 으스러지면 뼛조각들이 구부러지는 관절 부근을 계속 파고들기 때문에 앞으로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더욱 심해질 것이었다.
스으윽.
천일영이 검결을 바꾸었다.
바로 무당파의 검법인 태청검(太淸劍)이다.
조금 전 월영이 썼던 무공이자 그간 천일영이 무당파를 상대하며 완전히 습득한 검법이었다.
휘익! 휘잉! 휘리릭!
“크으윽!”
월영은 순간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몸도 아파 죽겠는데 공자가 난데없이 무당파의 검법을 사용한다.
그런데 그 검법이 너무도 완벽했다.
‘뭐지? 이것은 무당의 장문인보다 더 완벽한 거 아닌가?!’
휘이익! 촤아악!
“으아아악!”
얼떨떨한 마음에 몸의 균형이 깨진 월영은 순간 오른쪽 옆구리를 다시 베였다.
하나같이 검을 휘두를 때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곳.
왼쪽과 오른쪽 옆구리를 모두 베이니 검을 사용할 때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망할, 이렇게 되면 옆구리에 힘을 넣지 못하니 내공을 더 끌어 올려야 하는데!’
그러나 고통스러운 몸의 상태와는 달리 월영의 눈에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무당파의 무인이 무당파의 무공으로 쓰러진다면 그것보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은 없었기에.
또한 도사의 기운이 없는 자가 무당의 무공을 쓴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뿐이다.
‘문파의 사람? 아니, 문파의 원수인 것인가!’
순간 월영의 눈에 살기가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문파의 무공을 외부인이 사용한다는 것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다.
분명 문파의 사람을 잡아서 고문을 한 끝에 탈취를 했거나 과거 무당에 침입하여 무공이 실린 책을 도둑질했을 수도 있다.
“공자님, 어째서 무당의 검법을 알고 계십니까. 대답 여하에 따라서는 조용히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태청검(太淸劍) 말이냐. 이상한 소리를 다 하는구나. 네가 쓰는 것을 보았으니 나도 쓰는 것이다.”
“보아서 쓰는 것이라고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휘이이익! 휘익!
그러나 월영은 눈앞으로 날아오는 공자의 검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조금 전 자신이 사용했던 태청검(太淸劍)과 소청검(少淸劍)을 섞은 초식을 완벽하게 구사했으니까.
월영이 사용했던 검결에서 조금도 틀리지 않고 똑같은 궤도를 그리며 바람을 자르고 날아왔다.
‘망할! 내 검법보다 더 완벽하잖아. 조금의 틈도 없다!’
미칠 듯한 심정.
월영의 얼굴은 새파랗다 못해 흙빛으로 바뀌어 갔다.
그 순간 천일영의 눈이 반짝이며 무당의 것이 아닌 다른 검법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월영은 공자가 쓰는 검법인 천강혈룡검법(天降血龍劍法)을 알아보지 못했다.
천마신교의 검법이지만 밖의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 월영이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다시 반 다경이 지났다.”
휘이익. 뿌드득!
“크아아악!”
월영의 왼쪽 어깨뼈.
그것이 으스러졌다.
조각조각으로 갈라진 뼈들은 이미 근육과 혈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또다시 피를 흘리게 만들었고, 월영은 이제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할 지경.
그러나 천일영은 무표정을 가장한 악귀 같은 형상으로 또다시 검을 부딪쳐 왔다.
“이런 빌어먹을!”
“다음 반 다경까지 버틸 수 있겠느냐. 못 버티면 죽음뿐이다.”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분명 마음만 먹었으면 단 일검에 자신을 죽일 수 있었을 터.
허나 무슨 악한 마음인지 공자는 자신의 검을 하나씩 받아 주며 계속 고통을 이어 나간다.
그러나 월영이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이 있었다.
자신의 손에 있다고 생각했던 주도권이 어느새 천일영에게 넘어가 있음을.
‘아직 멀었다. 이 정도로 깨달음을 얻을 리 없지.’
천일영은 이제 슬슬 월영의 몸을 계획한 대로 움직이게 만들고 있었다.
기가 폭발하기 좋은 자세와 기운을 끌어 올려야 하는 시간.
옆구리를 베어 냄으로써 허리 힘에 의존하지 않는 검의 사용법.
그리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서서히 깨어나는 혈도와 온통 빠르게 기가 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지금의 기도까지.
‘이제 단전에 고정되어 있는 기를 검과 움직임이 심한 쪽으로 보내게 만들어야겠군.’
천일영은 월영의 끊어진 왼쪽 어깨에서 기가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검결을 조절하여 검날을 날렸다.
이것으로 자연스럽게 기가 움직일 것이다.
또한 빠르게 다시 검을 쥐고 있는 월영의 오른손으로 기가 몰려 들어가, 밀려 들어오는 검의 힘을 버티도록 만든다.
그리고 다시 단전으로 기가 돌아가고 원하는 때 원하는 곳으로 기가 다시 퍼지도록 했다.
이것은 월영을 위해 만든 하나의 계책이었다.
절망과 죽음을 목전에 둔 절실한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알아서 몸이 움직이는 것이다.
카앙! 카강!
월영의 손에 들려 있는 무극지검에서 아까와는 다른 둔탁한 음이 퍼졌다.
기가 제대로 순환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소리다.
‘다음은 기가 빠르게 움직이고, 몸을 따라 이동하는 것을 더욱 부드럽게 만들어야겠군.’
순간 천일영의 몸이 월영의 뒤로 튕겨 나가더니 이내 마치 바람처럼 부드럽게 돈다.
월영의 눈에는 마치 그것이 몸을 한 바퀴 돌려 자신의 목으로 검을 날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또한 천일영의 속임수.
천일영의 검은 허공에서 급격히 바닥으로 떨어지며 월영의 오른쪽 발목에 박혀 들어갔다.
뒤꿈치의 힘줄을 모두 끊어 내는 것이었다.
“크아아악!”
“오른쪽 발목의 근육이 다 끊어졌는데 다가오는 반 다경이 멀지 않았다. 이제부터 어쩔 것이냐?”
“으으으악! 공자!”
천일영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물론 월영이 보기에 자신을 고통에 밀어 넣고 좋아하는 미친놈의 얼굴로 보일 테지만, 방금 월영의 발목을 자름으로써 보법을 봉인했기 때문이다.
이제 월영은 오른쪽 발목을 사용하기 위해서라면 검에 모여 있던 기를 빠르게 발목으로 옮기며 싸워야 한다.
이것은 생각으로는 쉬운 일이지만 실상은 정밀한 기의 이동을 요구하는 힘든 일이었다.
‘이제 서서히 깨닫게 되겠지.’
이후 천일영은 검을 힘 있고 길게 내뻗는 대신 짧고 빠르게 월영의 몸을 파고드는 방법으로 검결을 바꿨다.
물론 무당파의 검법을 사용하며 월영의 자존심을 계속 긁어내는 것도 물론이다.
피비비빗! 피빗. 피비빗!
천일영은 일부러 월영의 몸에 작은 상처를 수없이 냈다.
작은 상처가 연속으로 생기고 있지만 그 수가 워낙에 많다 보니 월영의 몸은 금세 피에 젖어 들어갔다.
또한 월영의 표정. 피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고 있는 얼굴은 가엽다 못해 미칠 지경에 몰린 심정을 그대로 내보였다.
옆구리와 오른쪽 발목, 그리고 검에까지 기를 고루 돌리는 것도 돌아버릴 것 같은데, 조금씩 약 올리듯 찔러 들어오는 검을 상대하다 보니 기를 움직이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해야 할 정도로 바쁘게 움직이는 탓이다.
‘이러다가는 공자에게 정말로 죽는다. 젠장, 저 짧게 치고 들어오는 검을 한 방에 쳐 내서 밀어내야 하는데!’
생각으로는 알고 있다.
그러나 온몸으로 파고드는 검의 뾰족한 부분. 그것이 딱 엄지손톱만큼 몸을 파고든 후에 또다시 다른 곳을 찌른다.
조금씩 찔러 들어오는 수백 개의 상처가 미칠 듯한 통증을 온몸에 각인시켰다.
이런 상태에서 한 번에 검을 밀어낼 만큼 기운을 모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또다시 반각이다.”
휘이이익. 빠가가각!
“으흡! 끄아아아악!”
월영의 입에서 미칠 듯한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이 토해졌다.
이윽고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는 통증에 눈이 반쯤 뒤집어져 버린다.
오른쪽 발목의 근육이 다 끊어져 나간 것도 모자라, 왼쪽 발목의 복숭아뼈를 으깨 버리자 통증이 정신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기어이 월영의 눈에 광인의 눈빛이 떠올랐다.
‘죽여 버린다. 공자, 죽인다!’
월영의 몸에서 빠르게 움직이던 기가 단전으로 몰려들고, 이내 폭발하듯 터지며 기가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후우웅! 까아앙! 까아아앙!
월영의 몸에서 기가 폭발하며 터져 나오고 또다시 단전으로 몰려들어 간다.
반드시 몸에 필요한 부분만 기를 터뜨리며 빠르게 순환을 시켰다.
월영이 들고 있는 무극지검에서는 조금 전보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훨씬 강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월영이 기를 움직이기 전에는 바람을 가르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거의 바람을 자르는 수준까지 올라온 것이다.
그리고 월영의 기가 점점 더 빠르게 움직이다가, 이내 월영의 검을 휘두를 때에 맞춰서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 기운은 점점 강해지고 빨라지고 있었다.
카가강! 까아앙! 카가가강!
강해진 검결은 기가 힘을 더하자 천일영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월영은 무려 4개의 검법을 섞기 시작했다.
태극검(太極劍), 태청검(太淸劍), 청운검(淸雲劍), 그리고 대환검(大幻劍).
백 년에 한 명 나올 법한 천재의 소질.
천일영이 자신을 아슬아슬하게 몰아붙이도록 조절을 하는 동안, 월영은 자신이 생각했던 깨달음의 방법을 어이없게도 실현하고 있었다.
이것으로 오십 년 걸릴 깨달음이 사십 년으로 줄였다.
오직 공격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자신도 모르게 무려 4개의 검법을 섞어 새로이 초식을 짜내고 있지만 이것은 깨달음을 얻은 후에 월영에게는 큰 선물이 될 터다.
‘이제 거의 다 됐군.’
휘이잉! 촤아아악!
“끄으으으윽! 끄으으읍!”
천일영의 검이 섬광을 그리며 월영의 오른쪽 허벅지를 베어 내자 월영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신음을 억지로 참았다.
또다시 고통이 찾아왔지만 오직 월영의 생각은 천일영의 몸에 검날을 박아 넣는 것뿐.
그러기 위해서 더욱 빨리 기를 회전하고 순환시키며 거둬들였다.
그리고 기를 폭발시켰다.
그리고 그 순간.
월영의 몸 안에서 응축된 것처럼 거대한 기가 폭발하며 터졌다.
그것이 무극지검에 힘을 가득 싣고 이내 천일영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얼굴에 검날이 닿을 정도로 다가갔다.
월영은 이를 악물고 공자의 꼴 보기 싫은 비릿한 웃음을 보지 않기 위해 더욱 강한 기를 한 번 더 터트렸다.
카아아아앙!
순간 월영의 표정이 급변했다.
눈앞에서 자신의 혼신을 다한 일격이 막혔기 때문이 아니었다.
몸에 찾아온 급격한 변화.
그것이 월영의 반쯤 미친 광인의 정신에서 평소의 월영으로 급히 끌어냈다.
“이것은…….”
“깨달음이다. 어서 운기조식을 하거라.”
“어…… 어라? 네…… 네에.”
두 번 눈을 끔벅인 월영이 급하게 가부좌를 하고 앉아 몸 안에서 솟아오르는 기운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천일영에게 불쾌한 기분이 들게 했다.
월영 정도의 무재를 타고난 사람이 장시간 깨달음을 얻지 못한 것 때문이다.
‘도대체 무당파는 애들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건지. 이렇게 일일이 하나씩 가르쳐 줘야 깨달음의 단초를 얻을 수 있다니 터무니없는 일이다. 이런 식으로 가르침을 받은 무인들이 깨달음을 얻지 못해 얼마나 많은 개죽음을 당한단 말인가.’
과거 무명암살대의 단주로 세월을 살아갈 때, 자신의 단원들이 소모품처럼 죽어 나가는 것이 마땅치 않았기에, 무공의 성취를 이루어 하루라도 더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르치고 이끌었다.
혹여 단원들의 임무가 가혹하고 살아남기 힘든 일이라면 천일영 스스로가 기꺼이 먼저 나섰다.
때문에 천일영은 미흑천의 천주 강일택에게 화가 났었던 것이었고, 혹여 무당파의 장문인이 눈앞에 있었다면 멱살을 잡고 두들겨 팼을지도 모른다.
‘이제 다 되었구나. 이 정도의 가르침을 받았으면 초절정 고수의 단초는 자신이 찾아야 할 터.’
한 시진의 시간이 지난 후.
모든 기운을 흡수한 월영은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의 기운을 내뿜었다.
정체가 길었던 만큼 일류 무인으로 할 수 있는 검법과 기술을 연마한 월영의 시간.
그것이 강대한 힘과 검법을 가진 무인으로 이끌었다.
‘아쉽지만…….’
천일영은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