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천일영은 월영의 몸에 손을 얹고 몸을 고쳤다.
그리고 월영이 모르게 몸 안 구석구석에 여러 가지 선물을 남겨 두었다.
월영을 지켜 주고 초절정 고수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었다.
월영은 자신의 몸이 원래대로 고쳐지자 머리를 숙이고 절을 올렸다.
“감사합니다, 공자님. 깨달음과 치료까지, 또다시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제 생각이 짧아 공자님께서 깨달음을 주시려는 것을 오해하고 실례를 저지른 것을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괜찮다, 너 역시 당황스러웠을 테니.”
월영은 자신의 몸을 더듬으며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 몸에서 넘쳐 흐르는 기운은 건청과 비무를 벌일지라도 결코 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월영의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다.
이제야 공자와 같이 자신도 커다란 공을 세우며, 더욱 큰길을 걸으며 협을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
미흑천의 일에 자신이 함께하지 못한 것을 얼마나 후회하고 절망했던가.
“공자님, 저도 공자님의 손발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수하가 되고 싶습니다.”
“아니, 그것은 안 된다.”
“어…… 어째서입니까? 저도 건청과 금채홍처럼 같이 공자님의 곁에서 큰일을 하고 싶습니다.”
“떠나라.”
“떠…… 떠나라니, 그게 무슨 말씀…….”
천일영의 눈가에 파르르 경련이 일어났다.
월영을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은 그 누구보다 간절했다.
그러나 월영을 위해서 그리해서는 안 된다.
던져 주는 무공을 집어먹고 자란 무인은 크게 성장하지 못하니까.
“이…… 이유라도 알려 주십시오. 건청과 금채홍은 공자님의 곁에 있어도 되고 저는 안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밖의 세상에 있다가 나에게 온 것이다. 그러니 월영아, 너는 지금 밖으로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
“그…… 그런…….”
“세상을 돌면서 많은 것을 배워라. 시장 한 켠에 너의 자리를 만드는 것은 안 된다. 그것은 너를 망치는 길이다.”
“공자님…….”
등을 돌리고 장원으로 들어가는 공자의 뒷모습.
월영은 혼자 남은 연무장의 바닥에 주저앉았다.
스윽.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자신의 싸구려 검. 조금 전까지 자신의 몸을 찌르고 들어오던 검이다.
월영은 떠 있는 보름달의 밝은 달빛에 검날을 비춰 보았다.
“그렇게 대단한 검으로 때렸는데 하나도 날이 상하지 않고 그대로라니……. 검에 흠집을 만들 정도의 실력이 되지 않으면 돌아오지 말라는 말인가.”
달빛이 원망스럽다.
어둡기라도 하면 검날이 보이지 않았을 텐데.
월영은 자신의 검을 소중히 품고 연무장을 떠나 자신의 거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록 시장에서 파는 싸구려 검이지만 월영 에게는 이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검이 되었다.
‘떠나야지. 그리고 빨리 돌아와야지.’
밖의 세상에 나가서 무림의 진정한 모습을 보게 되면, 시장을 주름잡던 자신이 창피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아쉬움이 묻어나는 발걸음.
공자와 같이 있는 건청과 금채홍이 너무도 부러웠다.
서로 믿고 의지하는 그들은 무서울 것이 없어 보였으니까.
“내 마음을 그대로 비추는 저 달빛이 여전히 원망스럽구나.”
월영은 봇짐 하나밖에 안 되는 자신의 짐을 모두 정리하고, 무겁고 슬픈 자신의 얼굴을 비추는 달빛을 피해 숲으로 들어섰다.
* * *
한 달 뒤.
미흑천의 본문을 객잔으로 만드는 작업은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노병천은 아예 정강산으로 몸을 옮겨 장평택과 의견을 나누며 객잔의 공사를 진행 중이었고, 건청과 금채홍도 때마다 공사를 거들기 위하여 별유천지와 정강산을 오갔다.
다만 이번에는 정강산의 공사장에서 더 이상 월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항주 그 어디에서도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대략 한 달 전쯤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는 소문만이 시장에서 웅성거림으로 흘러 다닐 뿐이었다.
“후우…….”
“하아…….”
건청과 금채홍의 한숨이 정강산에 울렸다. 짐작은 갔다.
월영이 연무장을 찾아온 날 장원에 울려 퍼지는 검의 소리를 들었으니까.
그러나 장원으로 돌아온 공자의 얼굴은 어딘지 쓸쓸해 보였고, 월영은 자신의 검을 안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직후에 월영이 모습을 감추었다.
한 가지 이상한 일은 월영이 모습을 감춘 이후 시장에 또다시 삼류 무뢰배들이 등장했지만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공자님 짓이겠지.’
‘건청 오라버니나 나에게 시키시면 될 일을 왜 직접 하시는지. 내가 미덥지 못하다고 느끼시는 걸까. 전에 삼천흑룡의 단주도 잡았는데.’
공자의 영문 모를 행동과 사라진 월영의 일 때문에, 건청과 금채홍은 날마다 한숨을 쉬기는 했지만 그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쓸쓸해 보이는 공자님의 마음에 무거움을 더할 테니.
때가 무르익고 몇 번 꽃의 색이 달라질 때면 이야기를 해 주지 않을까 하여 기다리기로 했다.
그 외에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나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천일영에게 편지가 한 장 날아들었다.
그것은 객잔을 위해 일을 하겠다고 맹세를 했던, 천이영을 죽이려고 했던 객잔 주인 중 한 명의 것으로, 승룡 객잔의 주인 하서량의 편지였다.
[별유천지의 공자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운남성(雲南省)에서 술을 찾다 보니 우연치 않게 명주라 할 만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대대로 가게의 혈통에 의해 비밀리에 주조 방법을 이어 온 곳인데, 그 맛이 천하의 명주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매빙화홍주(梅氷花弘酒)라는 술인데 매화 향이 시원한 느낌과 함께 입안에서 떠나지를 않아, 술 그 자체도 천하제일이지만 향기에 취하는 것이 풍류가 대단하여 꼭 별유천지에 들이고 싶습니다. 그러나 생산에 문제가 있어 제가 결정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공자께서 찾아와 주시면 안 될까 하여 편지를 보냅니다.]
잠시 편지를 읽던 천일영의 손길이 애써 글을 옮긴 사람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곱게 두어 번 접어 서랍 한 켠에 집어넣는다.
월영의 일로 마음이 편치 않을 때 마침 이곳을 떠날 구실이 생긴 것이 반가운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명주를 찾은 것이 기쁜 것인지 중요하지는 않았다.
잠시 쓸쓸함을 벗어나 바쁜 일을 자처하고 싶었다.
‘잠시 이곳을 떠나 산과 들을 보며 머리를 식히는 것도 좋겠지.’
월영이 항주의 시장을 떠나 넓은 중원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막상 떠난 이후 앞서는 걱정이 뒤섞이며 마음을 휘저었다.
만난 지 얼마 안 되고 깊은 마음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돌보지 않고 협을 실천해 가는 월영이 마음에 들었기에, 거친 무림을 견디지 못하고 죽게 되어 다시는 곁으로 돌아오지 못할까 하는 생각으로 꽤나 많은 술병을 비워 왔다.
‘평소라면 술맛을 잘 아는 건청을 보냈겠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다녀오는 것이 좋겠군.’
천일영은 간단한 봇짐을 챙겼다.
그리고 예랑의 콧잔등을 쓰다듬고는 밖으로 나섰다.
“다녀올 테니 잠시 집에 있거라. 돌아오면 또 산책을 나가자.”
“컹컹.”
천일영의 발걸음이 장원 밖으로 향했다.
* * *
천일영은 운남성으로 향하는 길에 정강산에서 진행되는 공사장에 들렀다.
며칠 집을 비우는 동안 걱정할 사람들을 위해 말을 남기기 위함이다.
천이영과 혜령에게 항주를 잠시 떠난다고 하면 분명 걱정이 가득한 얼굴을 보일 터다.
아직은 그것을 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어느새 도착한 정강산 자락을 휘적거리며 들어서니 공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제법 미흑천의 흔적들이 지워져 있었다.
“꽤나 공사가 진행되어 있구나.”
“공자님, 언제 오셨습니까? 에헤헤헤.”
“지나가던 길에 들렀다.”
“지나가던 길이라면 어디 가시는 것입니까? 저도 동행할까요?”
금채홍이 마치 천이영과 같은 얼굴로 걱정이 가득한 눈길을 보낸다.
마음속 깊은 곳까지 자리를 잡은 금채홍의 진심이, 천일영의 마음 한 켠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천일영은 금채홍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강한 햇살에 땀으로 젖어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위험한 곳에 가는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거라. 그리고 이영이와 혜령이에게 며칠 안에 돌아온다고 전해 주고.”
“알겠습니다. 오늘 장원에 돌아가면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채홍이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
금채홍이 눈빛을 반짝이며 바라본다.
무엇을 시킬지 알고 저리 들뜬 표정인지는 모르겠지만, 금채홍은 천일영이 시키는 일이라면 맹목적일 정도로 충실히 해냈다.
그것이 자랑하고픈 마음까지 쏙 들어가게 만드는 잡일이라고 할지라도. 천일영의 눈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하루에 한 번 시장에 들르거라. 혹시라도 상인들을 괴롭히는 놈들이 있으면 다시는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해 주면 좋겠구나.”
“알겠습니다. 공자님의 명대로 시장을 둘러보겠습니다.”
“채홍아.”
“네, 공자님?”
“시장에서 만나는 놈들은 자르지 말아라.”
“아……. 팔다리는 붙여 놓겠습니다. 곱게 묶어서 현령에게 던져 주면 될까요?”
“부탁한다.”
천천히 공사가 진행되는 곳을 둘러보니 앞으로 두 달이면 완성될 듯했다.
이미 20층 전각의 절반 이상이 올라가 있었다.
게다가 장평택 목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높은 건물 옆에 이상한 기관 장치 같은 것들이 달려 있었다.
‘따지고 보면 장평택 목수가 나보다 더 미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멀리 장평택과 소리를 질러 가며 의견을 나누는 노병천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걱정을 하지는 않아도 될 듯싶다.
적어도 노병천은 정도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니까.
장평택이 정말로 미친 짓을 하려 한다면 능숙하게 그것을 피하는 방법을 제시할 것이다.
하지만 순간 미흑천 본문의 원래 모습이 생각났다.
‘설마 노병천이 객잔의 안전을 위한다고 화살을 날리거나 불을 뿜는 기관 장치를 넣지는 않겠지?’
문득 노파심이 든다.
미흑천의 기관 장치도 노병천이 계획하고 사람을 불러 만든 것이라고 하니까.
손님의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화살 따위 보고 싶지 않다.
제발 정상적인 객잔을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믿어 보자. 응, 믿는 거야. 내가 관여를 안 하는 것을 나중에 후회하게 만들지 말아 주길.’
조금은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천일영은 객잔의 모든 일을 맡기기로 한 이상 관여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고자가 된 산적 송여악도 건청이 관리를 하고 있으니 문제 될 것은 없을 터다.
‘괜히 주인이 삐죽거리면서 돌아다니면 일하는 사람들이 불편한 법이지.’
공사장 밖으로 나서며 인근의 산적들을 전부 잡아 나무 심는 일을 돕게 할까 하는 생각에 웃음을 짓고, 운남성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혹여 나무가 다 심어지면 객잔의 옆에서 흐르는 물에 띄울 배라도 만들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