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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54화 (55/270)

54화

“음양쌍녀(陰陽雙女)를 찾아라.”

“공자님? 그놈들은 과거 공자님을 배신한 놈들입니다.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죽을 위기에 처하자 모든 것을 팽개치고 사라진 놈들입니다.”

“배신을 했다고는 하나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어 살기에는 자질이 아까운 것도 사실이다. 다시 한번 만나 보고 따르겠다면 거둘 것이다. 허나 도망을 갔던 이유를 들어 보고 그 이유가 하찮은 것이라면 죽일 것이다.”

“공자님은 사람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구별이 안 갑니다. 그런 하찮은 놈들에게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까? 그냥 죽여 버리면 될 것을 말입니다.”

음양쌍녀. 십일 년 전, 쌍둥이 여자 둘이지만 그들은 무림에서도 가장 기괴하고 이상하다며 소문난 사람들이었다.

한 명은 언제나 남자 옷을 입고 다녔고, 또 한 명은 같은 무늬가 새겨진 여자 옷을 입고 다녔다.

열여섯에 불과한 나이지만 무공은 이미 이류 무인. 상당한 무재가 있었지만 그녀들은 더 이상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

음양쌍녀의 특기는 바로 정보. 세상에 돌아다니는 소문을 취합하고 결과를 도출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작은 장사부터 커다란 상단까지, 손을 대는 일은 모두 큰돈을 벌어들일 정도로 경영에 탁월하기도 했다.

“길에서 죽어 가던 고아 아이들이었습니다. 여덟 살짜리 여아 둘을 공자님께서 거두어 천마신교도 모르게 키웠습니다. 돌봐 줄 사람을 붙여 주고 무공을 가르쳤으며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놈들은 그랬는데도 배신을 했단 말입니다. 놈들이 임부를 팽개치고 도망갔을 당시 공자님의 수하 둘이 죽고 십여 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내가 거둔 아이들이 아니더냐. 그러니 놓아줄 때에도 내가 놓아주어야지.”

“하아……. 하오문의 본문으로 연락을 넣겠습니다. 당최 이런 성품으로 어찌 천마를 하셨는지. 무른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요.”

“나도 신기하기는 하다. 하지만 결국 때려치우지 않았더냐.”

빙긋 웃는 천일영의 얼굴을 보고 윤의강은 손으로 가슴을 쳤다. 답답한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표정에 숨어 있는 과거의 회한을 읽은 탓이다.

일만이 넘는 무인을 도륙한 사람. 더 이상 사람들을 죽이고 싶지 않다는 심정이 묻어 나왔다.

그러니 배신자들에게도 저런 마음을 품는 것이다. 윤의강은 조금의 고민 후에 입을 열었다.

“기왕 오신 거 한 열흘쯤 관광도 하고 노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제가 모시겠습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귀주성에 오래 있고 싶지는 않구나. 또한 볼일이 있어서 지나다 들른 것이다.”

“아직도 십이 년 전의 일을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이만 가 보마. 맡긴 일 잘 처리하거라.”

등을 돌리고 길을 떠나는 천일영의 뒷모습에 윤의강은 마음이 욱신거렸다. 기분이라도 풀어 드리려고 한 것인데 오히려 예전 생각을 나게 해 버린 탓이다.

“하여간에 진짜 바보라니까. 그냥 적당히 살면 될 것을.”

윤의강은 기지개를 한 번 켜고 하오문 지회를 향했다. 저 바보 같은 천마를 위해서라면 어쨌든 힘이 나는 자신을 부정하지 못했기에, 밤을 새운 피곤함을 뒤로하고 분주하게 움직이기 위해 가벼운 척 발걸음을 옮겼다.

* * *

하서량은 기겁을 하며 마치 귀신을 보는 듯한 눈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이곳에 공자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항주부터 아무리 빠른 말을 타고 온다 해도 십수 일이 넘게 걸리는 운남성이다.

“히익! 공자님? 어째서 공자님이 여기에 계십니까?”

“네가 오라고 편지를 보내지 않았느냐?”

“아니, 제가 편지를 보낸 건 맞습니다. 근데 공자님이 여기에 계실 것이 아니라 지금쯤 항주에 편지가 도착해야 할 때입니다. 근데 어째서?”

하서량이 놀랍다는 얼굴 절반,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얼굴 절반으로 천일영을 계속 바라봤다.

‘윤의강의 말대로 한 열흘 정도 관광이나 하다 올 것을 그랬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끈질기게 보내는 하서량은 이유를 묻고 싶지만,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

고용주라는 이유도 있고 잘못을 덮어 준 일도 있기 때문이다.

하서량의 마음을 모르지 않는 천일영은 끈질긴 눈초리가 귀찮아 대충 얼버무렸다.

“어찌하다 보니 근처에 있었다.”

“귀신이 움직여도 이렇게 빨리 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아무튼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운남성은 거하기 힘든 곳이다. 살이 빠진 것이 제법 고생한 모양이구나.”

운남성은 덥기로 유명하고 또한 습하기로 악명이 높다.

오죽하면 나관중이 쓴 역사서인 삼국지연의에서 운남성을 표현하기를 독사가 득실거리고 나무와 덩굴이 빽빽하여 사람이 들어서지 못하는 곳이라고 했을까.

그런데 이런 험난한 곳까지 하서량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찾아온 것이었다.

“자네가 그렇게 극찬한 술을 한번 맛보도록 하지.”

“한번 맛보면 헤어 나오지를 못할 정도입니다. 이리로 오십시오.”

하서량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거대한 산을 등지고 있는 작은 마을로 들어선다.

과연 명주가 있을 법한 그림 같은 마을. 이곳의 경치를 보고 있자니 산과 마을과 숲이 어우러져 제법 절경의 모습을 자아내고 있었다.

또한 흐르는 물조차 예사롭지 않고, 흐르는 수로에서조차 맑은 향이 나는 듯했다.

‘이 정도의 물이라면 술이 맛있을 수밖에 없겠군.’

익숙하지 않은 운남성의 풍경을 바라보며 휘적휘적 걷다 보니 어느새 장원에 도착했다.

그런데 뭔가 조금 이상했다. 장원은 이음새를 남기고 절반 정도가 공터로 남아 있고, 담벼락에는 불에 그을린 흔적이 가득했다.

또한 어두운 그림자가 온통 장원을 떠도는 듯한 느낌이, 활기차게 술을 빚는 사람조차 한 명도 보이지도 않고 주가(酒家)라면 응당 나야 할 누룩을 빚는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주가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조용하구나. 양조장의 이름을 알리는 현판 하나 없는 것이 이상하군.”

“사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술맛은 믿을 만합니다.”

하서량이 장원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술을 팔아 달라고 제법 드나들었는지 거침이 없었다.

반 다경이 지난 후, 하서량은 백발의 노인 한 명과 젊은 남자 한 명을 모시고 방으로 들어섰다.

헌데 천일영이 찾아와서 들뜬 표정을 하고 있는 하서량과는 달리 양조장의 사람들은 어둡고 탐탁지 않아 하는 것이 한눈에 보일 정도였다.

“어서 오시게. 내 이야기는 많이 들었으나 만나는 것은 처음이군.”

“천하에 이름을 떨칠 만한 명주가 있다고 하여 왔습니다.”

“천하라니 과장일세. 나는 팔색(八色) 양조장(釀造場) 주인인 만태륭이라고 하네. 술을 마셔 보면 왜 팔색이라고 하는지 알게 될걸세. 태용아, 매빙화홍주(梅氷花弘酒)를 가져오너라.”

이윽고 젊은 남자의 손에 들려져 나온 술병과 세 개의 잔. 병의 마개가 닫혀 있는데도 불구하고 벌써 향기가 감돌았다.

“과연, 천하제일의 향이라고 할 만합니다.”

“마셔 보면 또한 다를걸세.”

이윽고 술병이 열리자 장원 전체를 감싸는 듯한 향기에 감탄이 토해져 나왔다. 수십 개의 꽃이 뒤섞인 듯한 향.

주르륵.

꽃의 색을 가진 술 줄기가 잔을 가득 채웠다. 백주(白酒)임이 분명하지만 잔을 채우는 선홍색(鮮紅色)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 가치가 천하에 오르내릴 만하다.

이 정도의 술이라면 분명 탐하는 자가 많을 터. 천일영의 눈도 독점을 하고 싶다는 욕심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후륵.

목을 타고 넘어가는 맑은 향기와 깨끗한 맛. 하서량의 말대로 정말 얼음처럼 시원한 느낌이 든다.

백매화, 매화, 그리고 수십 개의 꽃과 곡물의 향기. 처음 입에 들어갔을 때는 분명 수많은 맛이 느껴지는데, 아주 잠시의 시간이 지나니 오직 여덟 가지의 맛만이 오롯이 혀에 남는다.

또한 시원한 향이 팔색과 어울리며 입안 가득 머물렀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은 분명 시원한 맛이 아는 맛인데, 그 맛이 선명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연 정말로 팔색이군요. 헌데 이 시원함을 주는 맛이 또한 신기합니다. 아는 맛이지만 또한 모르는 맛이기도 합니다.”

“대단한 미각이구먼. 자네가 생각하는 것과 같이 이것은 박하(薄荷)가 맞네. 그러나 그냥 박하를 사용하면 그 맛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술맛이 떨어지지. 때문에 우리 선조가 박하를 개량하고 술과 어울리게 만들었다네. 맛을 지우고 시원함과 아주 옅은 향만을 남겼지.”

“그야말로 비전(祕傳)이라 할 만하군요. 이 술을 거래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는 듯하더군요. 말씀해 주시면 제가 해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후우…… 이거 참…….”

만태륭의 한숨이 술 향을 밀어내고 바닥에 내려앉았다. 그 이유라는 것이 보통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허나 기대에 찬 공자의 얼굴을 바라보자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도 없었기에 만태륭은 억지로 입을 열었다.

“양조장을 보았으니 대략 눈치를 채었을 것이네. 팔색 양조장은 지금 술을 생산할 능력이 전무하지. 옆 마을의 양조장에서 무인을 고용하여 술을 만드는 비법을 탈취하려고 했네. 그때 양조장은 불에 타고 일을 하는 자 역시 모두 죽었지. 나와 손주는 겨우 살아남았지만 아내와 아들까지 모두 그때…….”

“어려운 일을 겪으셨습니다. 옆 마을의 양조장이라 하면 혹 같은 술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 술을 베끼려 하고 있네. 매화 양조장이라는 곳인데 제법 큰 곳이지. 현청에 도움을 받아 억울한 일을 갚으려 했지만 증거가 부족해서 결국 우리만 몰락했네.”

“그렇다면 양조장을 새로 지어야 하는 데 드는 돈이 얼마 정도입니까.”

“대략 금화 삼십 냥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네.”

“알겠습니다. 그 돈은 제가 내겠습니다.”

“그…… 그것이 정말인가!”

허나 만태륭은 크게 놀라 기뻐하면서도 여전히 얼굴 한 켠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남아 있었다.

금화 삼십 냥이라는 큰돈이면 양조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터인데 아직도 남아 있는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천일영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금화를 삼십 냥이나 내고도 해결을 못 할 일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다.

“공자, 실은 한 가지 더 문제가 있다네. 사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인데…….”

“저 역시 금화를 삼십 냥이나 내놓는 입장. 모두 다 말해 주십시오.”

“흐음…….”

고심이 깊어지는 얼굴. 만태륭은 입장이 난처했다. 공자에게 해야 할 이야기가 너무도 터무니없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금화를 삼십 냥이나 내놓는다는 사람이 귀한 만큼 만태륭은 어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난감한 마음이었다.

“공자, 믿기지 않는 이야기일지도 모르네. 아니, 믿지 않겠지. 허나 이 이야기를 힘들게 꺼내는 내 입장을 생각해 주기 바라네. 선조로부터 대대로 이어져 온 박하밭과 백매화 나무가 있는 땅이 있지. 술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개량된 박하라네. 그런데 그 밭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네.”

“그 역시 매화 양조장이 꾸민 일입니까.”

“아닐세. 실은 몇 년 전부터 그곳에 괴물이 살고 있네. 현청도, 이름난 사냥꾼도 근처조차 가질 못할 정도로 강하고 추한 괴물이 살고 있다네.”

“괴물?”

천일영의 미간이 구겨졌다.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하여 귀를 의심하기도 했다.

천마가 되기 전까지 세상의 온통 해괴한 일들을 보고 겪으며 살아왔다. 허나 괴물이 있다는 말은 난생처음 듣는다.

그림에서나 있을 법한 존재를 논하는 만태륭에게 거짓의 빛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천일영은 황급히 다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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