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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55화 (56/270)

55화

“산해경(山海經)에 그려져 있는 것과 같은 괴물이 있다는 것입니까.”

“맞네. 오히려 더 추하여 산해경에 그려진 그림이 그나마 나을 정도지.”

산해경은 기서(奇書)다. 그만큼 믿을 수 없다는 사람들도 많은 책.

실제로 산해경에 나오는 괴물을 본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이기에, 증거조차 남지 않는 목격담은 종종 사람들에게 경멸의 대상이 되곤 했다.

허나 그때 만태륭의 손자 만태용이 철관음(鐵觀音)을 내오며 입을 열었다.

“제가 보았습니다. 박하는 채집을 하고 하루가 지나면 바로 시들기 때문에 매일같이 따러 나가야 합니다. 사 년 전 어느 날 박하를 채취하러 나간 길에 이상한 악취가 나는 것을 느꼈지요. 냄새는 일 리가 넘는 곳부터 코를 찔렀고, 박하밭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심해졌습니다.”

“괴물의 냄새?”

“생선이 썩는 냄새 같기도 하고, 코가 마비될 지경이었습니다. 선조의 박하가 있는 곳에서 나면 안 되는 냄새라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시작했지요. 그러다 매화나무 뒤에 숨어 있는 괴물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한심한 이야기지만 너무 놀라서 그대로 줄행랑을 쳤습니다.”

만태용의 떨리는 손에 땀이 차올랐다. 다시 생각해도 그 형상은 꿈에 나올까 두려워할 만큼 흉측한 모습이다.

그러나 공자에게 이야기를 앞두고 눈앞에 떠오른 끔찍한 형상을 자세히 기억하기 위하여 만태용은 눈을 질끈 감았다.

“키는 4척 정도로 왜소해 보이지만, 온몸이 생선 비늘 같은 것으로 덮여 있고, 날카로운 손톱이 약 2치의 길이로 솟아나 있으며, 입 밖으로 튀어나온 이빨 역시 1치 정도에 달했습니다. 또한 위로 솟아 있는 찢어진 눈매에 눈동자는 핏빛이었습니다.”

“그런 괴물이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어야 할 터인데 어째서 박하밭에 있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가는구나.”

“저도 이유나 알았으면 속이라도 편할 것 같습니다. 하필이면 왜 선조님이 물려주신 땅에 있는 것인지.”

기이한 일이라고 하기에 조금은 공교롭다.

매일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오가는 곳. 그곳에 괴물이 숨어 있다는 것은 작은 의심을 품게 만들었다.

천일영은 기이한 일의 원인을 찾기 위하여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 들었다.

“정체를 보인 이후 괴물은 사람이 다가가면 돌을 던지고 몸을 날려 상처를 입히니 현청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포졸은 괴물에게 큰 상처를 입었고 사냥꾼을 고용했지만 어찌나 빠른지 화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괴물은 먼저 사람에게 덤비지는 않지만 또한 다가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니 입장이 곤란한 참입니다.”

“괴물은 박하밭 이외에는 가지 않는 모양이군.”

“박하밭의 바로 뒤에 물가가 있고, 물가 뒤에는 산이 있습니다. 경치도 좋고 물고기도 잡을 수 있으니 그곳을 고집하는 것 같습니다.”

“물가?”

또 하나의 석연치 않은 느낌이 천일영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박하밭, 물가, 그리고 산까지. 모두 하나같이 일관성을 가지는 것들이다.

이것들은 괴물에게만 필요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천일영은 기묘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눈으로 확인해 보아야 답이 나올 것 같구나.”

“안 됩니다!”

만태용이 급히 만류를 하고 나섰다.

다급해진 목소리가 튀어나오기도 전에 만태용은 천일영의 소매를 붙잡고 앞을 가로막았다.

“전에도 있었습니다. 큰돈을 투자하기로 하고, 괴물을 확인하려 했던 사람이 말입니다. 허나 그는 생선이 썩는 것과도 같은 악취를 풍기는 끔찍한 괴물의 모습을 보고 ‘과연 괴물이 있는 곳에서 자란 박하와 매화가 멀쩡하겠는가.’라는 말을 했지요.”

“괴물의 앞에서 이야기를 한 것인가.”

“그렇습니다. 그는 괴물에게 욕을 하고 침을 뱉다가 그만 얼굴에 지워지지 않는 흉터와 장기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겨우 목숨만 건진 채 돌아갔지요.”

“신기한 일이구나. 마치 괴물이 사람의 말을 알아들은 것 같지 않느냐.”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괴물은 욕을 한 사람의 표정과 행동에 화가 났던 듯합니다.”

운남성에는 드넓고 울창한 산림을 자랑하는 산맥이 있다. 무려 운남성의 구 할이 산이다. 그런데 괴물이 한 곳만 고집한다. 분명 이유가 있을 터였다.

허나 사람의 말도 못 하는 괴물이 과연 그 정도까지 생각을 할까. 천일영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지어졌다.

“나머지는 괴물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어 볼까.”

“네에? 뭐라고요?”

천일영이 몸소 괴물을 보기 위하여 몸을 일으키자 만태륭과 그의 손자가 마치 미친놈을 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상한 표정을 짓는 것은 그들뿐이 아니었다. 하서량 역시 제정신인가 하는 표정으로 천일영을 바라보았다.

대답을 하지 못할 괴물에게 질문을 한다고 하니 욕지거리가 입안을 맴돌았지만, 큰돈을 내놓은 사람에게 대놓고 면박을 주지는 못하는 법이다.

세 명의 사람들이 서로 입만 우물거리며 끓어오르는 육두문자를 참는 사이, 밖에서 들려오는 여자아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미묘한 정적을 깨뜨렸다.

“양조장 어르신.”

“옥매가 아니냐? 어찌하여 네가 이곳에 왔느냐.”

“방금 현령께서 괴물 때문에 요청했던 일류 사냥꾼 다섯이 왔다고 합니다. 이미 박하밭으로 사냥꾼들이 떠난 지 반 시진이 되었고, 이제 슬슬 괴물의 퇴치가 끝났을 것이라고 하니, 괴물의 시신을 눈으로 확인하시려면 서둘러 나오시라고 하십니다.”

“현령께서 이 노인의 청을 들어주셨구나. 지금 당장 가겠다고 현령께 말씀을 올리거라.”

“네, 알겠습니다.”

만태륭의 얼굴에서 어두운 기색이 사라지고 환한 웃음의 기색이 돌았다.

하서량 역시 표정이 밝아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공자가 괴물한테 정말로 말을 걸까 조마조마했는데 다행이다. 그런 미친 꼴은 내 생전에 보고 싶지 않으니까.’

기나긴 한숨을 몰아쉬는 하서량. 그런데 이내 하서량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공자의 모습을 보니 아직도 포기하지 않을 듯한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서량이 급히 공자의 입을 막기 위해 다른 질문을 던지려는 찰나, 천일영의 입에서 먼저 다급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박하밭이 어디에 있습니까.”

“마을의 가장 뒤편에 커다란 계곡물이 있고 산이 시작되는 경계 근처네. 헌데 그것은 어찌 묻는지? 같이 가시는 게 아니었나?”

“저는 먼저 가 있겠습니다.”

“공자?”

훅!

눈앞에서 공자가 갑자기 사라졌다. 순간 세 명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서로가 눈만 끔뻑이며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에 심장이 벌렁거리는 사이, 하서량만이 크게 납득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어쩐지 빨리 왔다 했더니…….”

“그것이 무슨 말이오?”

이상한 하서량의 말.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는 못해도, 만태륭과 손자 만태용은 공자가 일을 벌일까 하는 조바심에 서둘러 신발을 신고 박하밭을 향했다. 다 된 일에 재를 뿌리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으니까.

한편.

천지일축공으로 급히 박하밭을 찾아가는 천일영의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추하고 흉포한 괴물이라고 한들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발걸음을 더욱 빨리하게 만들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최소한 확인을 하고 난 이후에 죽여도 된다. 정말로 괴물인 것인가? 괴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사람 같다. 어째서 이것을 빨리 눈치채지 못했는지.’

빠르게 마을의 모습이 지워지고, 산의 경계가 시작되는 지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 두 번 깜박일 시간이 지난 후, 옅은 박하 향이 퍼지는 곳을 통과하기 시작하자 뒤를 이어 백매화의 향기가 공기처럼 퍼졌다.

“양조장 노인, 거짓말을 했군. 박하뿐만이 아니라 매화도 품종을 개량한 것인가. 다른 매화에 비하여 향이 강하구나.”

잠시의 감탄이 천일영의 입에서 흘러나왔지만, 이내 조금 더 나아가니 향기 뒤에 생선이 썩는 것과 비슷한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그 냄새는 단 한 번만 맡아도 헛구역질이 올라올 만큼이나 지독한 냄새였고, 옷에 닿으면 아무리 빨아도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은 악취였다.

그러나 냄새를 맡은 천일영은 오히려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역시 그냥 괴물이 아닌 모양이구나. 박하밭을 고집하는 이유가 이것인가. 매화까지 있으니 마음에 들었던가 보군.”

천일영은 방향을 바꿔 냄새의 흔적을 따라 몸을 날렸다. 찾아가기가 한결 수월하다.

천일영은 냄새를 따라가던 도중, 악취 속에 섞여 들어오는 피 냄새를 맡고 천지일축공의 속도를 더욱 높였다.

내공을 때려 넣고 마구잡이로 속도를 올린 천지일축공에 따라 지축이 뒤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쿠궁. 쿠궁. 쿠궁!

한 사람의 피 냄새가 아니다. 적어도 세 명 이상의 피가 섞인 냄새. 심해지는 악취에 가려져 박하밭의 근처에 와서야 알아차렸지만, 이미 지면을 뒤덮을 만큼의 피가 흐른 것이 느껴졌다.

기감은 아직 죽은 사람이 없다고 천일영의 뇌리에 직접 속삭였다. 하지만 사냥꾼들의 기세 속에 섞인 무인의 기운. 현령은 사냥꾼 외에 무인까지 고용을 한 것이었다.

천일영은 서둘러 땅을 박찼다.

* * *

카앙!

일류 고수 조동모는 밀려 나오는 검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흉악한 기세는 물론이고, 그에 못지않은 힘에 밀려 버린 것이었다.

작은 체구지만 강인한 손톱으로 검을 받아 내고 빠르게 밀어내기까지 하니 그로서도 다가가지 못하고 경계만 하게 되었다. 괴물은 정말로 괴물이었다.

“망할, 다리에 곰덫까지 채워졌는데 어찌 이리 빠른 것인지.”

“방심했다가는 저 이빨에 물려 죽을 것이니 정신 똑바로 차려라.”

조동모의 뒤에서 다섯의 사냥꾼들이 활시위를 당겨 가며 공격 준비를 했다.

이미 베어지고 벗겨진 비늘 사이로, 상당한 양의 피가 흘러넘치는데도 괴물을 쓰러지지 않았다.

그뿐인가. 다리에는 곰덫이 뼈를 파내고, 달린 쇠사슬이 당겨질 때마다 괴물의 입에서 괴성이 쏟아져 나왔다. 헌데도 괴물은 멀쩡했다.

“화살도 다섯 군데나 맞았다. 놈도 슬슬 한계일 터. 이번에는 반드시 쓰러트린다.”

“저는 몸통을 노릴 테니 대장은 머리를 맡으시우.”

“안 그래도 그럴 참이다. 저 괴물 놈의 눈알을 뚫어 버릴 것이다.”

조동모가 쇠사슬을 잡아당겨 괴물의 발목에 걸린 곰덫을 이끌자, 팽팽하게 당겨진 쇠사슬이 철렁하는 소리를 내며 신호를 알렸다. 사냥꾼들은 당겨진 활시위를 손에서 놓았다.

피윳. 피윳. 피피핏.

세 개의 화살이 괴물을 향해 날아갔다. 그중 하나가 괴물의 핏빛 눈을 향해 허공에서 궤도를 그렸다.

잘 갈려진 쇠로 만든 활촉. 그것이 눈언저리에 닿으며 그림자를 만들 때, 괴물의 눈도 커졌다.

“크르르릉!”

“죽어라!”

피해도 머리를 관통할 화살의 궤도는 사냥꾼들의 얼굴에 웃음을 짓게 할 찰나였다.

그러나.

타악!

순간 화살이 멈췄다. 괴물의 눈앞에서 불과 일 치도 안 되는 거리. 허공에 떠 있는 듯했던 화살은 어느새 한 남자의 손에 쥐어져 있었고, 그 모습을 본 사냥꾼 대장의 입에서 나지막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구냐. 사냥을 방해하는 것은 용서하지 못한다.”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산자락을 타고 울렸다. 다 잡은 것을 놓치는 것은 사냥꾼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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