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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56화 (57/270)

56화

‘진짜 괴물이구나. 겉모습만큼은 산해경에 나오는 괴물이 귀여워 보일 지경이군.’

괴물의 형상은 만태용에게 전해 들은 그대로였다. 흉악한 기세는 전승되는 이야기의 사악하고 나쁜 괴물의 모습을 옮긴 듯했다.

허나 괴물의 눈을 들여다본 순간 천일영은 웃음을 지었다.

‘진정 괴물이라면 저런 표정을 짓겠는가.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제대로 아는 눈이구나.’

뚜둑.

천일영은 화살을 꺾어 버렸다. 기운은 흘리지 않았지만 기세가 주변을 압박하자, 사냥꾼들과 무인은 영문을 파악하려고 애를 쓰면서도 온몸이 찌릿거리는 것을 느꼈다.

허나 사냥꾼 중에서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압박하는 기세 따위 우습다는 듯 허세를 부리며 비릿함을 얼굴에 띄었다.

“감히 사냥을 방해하다니 무슨 짓이오. 이 일은 현청의 의뢰로 운남성 승선포정사사가 맡긴 일이외다. 어서 꺼지시오.”

“그런가. 하지만 내 알 바는 아니다.”

“뭐요? 이 작자가 미쳤구먼. 운남성에서 맡긴 일을 방해한다면 당신을 죽여도 우리는 죗값을 치르지 않아도 되오.”

“죽일 수 있으면 죽여 보거라.”

“뭐…… 뭐라고?”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에 얼굴은 터져 나갈 듯이 붉어졌지만, 사냥꾼들은 덤벼들지 못했다. 날아가는 화살을 맨손으로 잡아낸 자가 보통의 인물일 리는 없기 때문이다.

일류 고수 조동모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화살을 잡은 것뿐만 아니라 눈앞의 남자가 다가오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고, 신형 또한 보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화살을 잡고 있는 모습이 보인 것이다.

‘방해꾼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위험한 냄새가 나는군. 이를 어쩐다.’

관무불가침이라고 하지만 관부에서 돈을 주고 무인을 고용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금군을 움직이려면 큰돈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에 보통은 실력 있는 무인을 고용하는 것이 관례인 것이다.

허나 이런 경우에는 반드시 맡은 일을 완수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문파가 비웃음거리가 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때문이었다. 또한 돈줄인 일거리가 끊기는 것도 당연한 일.

조동모는 한 번의 침을 삼키고 발걸음을 디뎠다.

“대협의 무공이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허나 그 무공은 괴물을 살리는 데 쓰여야 할 것이 아니라 죽이는 데 사용하셔야 할 것입니다. 대협이 괴물을 막아선 이유는 알지 못하나 부디 마음을 바꿔 주십시오.”

“크르르릉!”

천일영이 대답을 하기도 전, 뒤에서 괴물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쇠를 긁어내는 듯한 끔찍한 소리.

그러나 경계와 경고의 사이에 있는 듯한 소리는 몸이 다쳐 나오는 소리가 아니다. 비록 몸의 여러 군데에서 비늘이 벗겨지고 피가 흐르지만 천일영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역시 말을 알아듣는구나. 말을 배울 데 없는 괴물이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일 리는 없지.’

순간 천일영의 몸에서 어둠이 토해져 나왔다. 적어도 조동모와 사냥꾼들은 그렇게 느꼈다.

불길한 기운은 햇살을 가로막는 구름처럼 순식간에 주변을 잠식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찢을 듯한 압력이 박하밭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온몸을 짓눌렀다.

“크윽!”

“이 괴물은 내가 처리하지. 네놈들의 실력으로는 겨우 괴물의 비늘이나 긁는 것이 전부다. 공을 빼앗을 생각은 없으니 잠시 땅을 기고 있거라.”

“으으으윽! 으으으!”

쿠우우웅!

더욱 강한 기운이 하늘에서부터 떨어져 내렸다. 온몸이 터져 나갈 듯한 압력이 계속되자 사냥꾼들과 조동모는 이내 바닥으로 쓰려졌다.

뚜드드득.

몸 안에서 뼈들이 비틀리는 소리.

조동모와 사냥꾼들은 살려 달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압력이 너무도 강해서 입조차 벌리지 못했다. 그리고 서서히 눈알까지 앞으로 조금씩 쏠려 나오기 시작했다.

이내 죽기 직전까지 몰렸다고 생각한 순간.

훅!

순간 모든 압력이 사라지며 사냥꾼들의 몸이 풀려났다. 아마 눈 두 번 깜박할 시간 동안 압력에 더 눌려 있었다면 분명 눈알이 전부 터지고 몸이 찌그러져 죽었을 터.

겨우 몸을 일으킨 조동모와 사냥꾼들은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힘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괴물과 남자의 신형이 사라졌던 것이다.

“젠장……. 보통의 고수가 아니구먼. 저런 놈이 괴물 따위를 왜 죽이려는 것인지 이해를 못 하겠네.”

“괴물을 데려가서 해체라도 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가죽을 벗겨 팔기라도 하려는 것인가.”

웅성거림이 계속되는 가운데, 조동모만이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깨닫고 있었다.

무림 고수가 괴물을 데려가는 이유는 하나뿐일 터다.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다.

‘괴물의 몸 안에 있다는 기를 빨아들이려는 것인가. 아니면 괴물의 고기를 먹어서 내공을 쌓으려는 것인가. 여기에서 죽여도 될 것을 굳이 데려갔다면 분명…….’

끼쳐 오르는 소름이 조동모의 몸을 감쌌다. 무인이라면 내공의 증진과 무공이 강해지는 것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 족속이다.

그러니 괴물의 소문을 듣고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 분명해 보였다.

‘문파의 분들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나. 이것 참, 문파의 윗분들도 고기나 뼈를 은근히 기대하는 모양이던데. 망할 놈들.’

바닥에 남아 있는 괴물의 핏자국만이 이곳에 존재하면 안 되는 것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 주듯 선명히 남아 있다.

조동모는 물불을 안 가리고 추악한 짓을 마다치 않는 무림인들의 행태에 울렁거리는 속을 주체하기 힘들어 박하밭 뒤에서 흐르는 계곡물로 향했다.

* * *

휘익. 파방!

천일영은 산속 깊은 곳으로 몸을 날리며 물가가 있는 곳을 찾았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한참 더 깊은 산속을 원했다.

천일영이 신형을 날리고 있는 사이, 천일영의 손에 들려 있는 괴물은 눈만 끔벅이고 있었다.

천일영의 기운에 몸을 꼼짝도 못 하고 공포에 질린 채 눈알만 굴리는 것이 이내 죽는다고 확신한 듯했다.

그러나 괴물은 이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더구나. 이름 같은 것도 있느냐?”

“그릉?”

거친 목소리가 당황스러운 듯 울렸다. 분명 그것은 말을 알아듣는다는 증거.

괴물은 뱀처럼 가느다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바둥거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고작 입과 눈 정도만 움직이는 정도다.

어딘가로 이어지는 길. 불안하다. 보이는 것은 오직 하늘뿐. 이내 괴물은 입을 열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심정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예…… 서란.”

“응?”

“이름. 예서란이다.”

“여자였나? 겉보기에 굉장히 멋있는 이름이 네 입에서 나올 줄 알았다.”

“바…… 바보냐. 여자라서 미안하다.”

괴물의 시선 끝에 조금씩 높은 산자락이 스치듯 지나고, 이내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도 차가워지고 새들의 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는 것이 무척이나 높은 곳까지 온 모양이었다. 서서히 목적지에 도착하는 듯했다.

“이곳이면 괜찮을 듯하구나.”

“아무도 없는 곳인 것 같은데, 어째서 여기에 나를 데리고 온 것이냐.”

“이야기 좀 하고 싶어서?”

“바보. 이야기라니…….”

창피했다. 비록 괴물의 몸이지만 남자에게 안겨서 오는 길은 부끄러움과 숨겨 둔 흉측한 신체를 보인다는 부분에서 죽고 싶을 정도였다.

예서란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부끄러움이 교차했지만, 괴물의 얼굴에는 드러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으로 괴물의 얼굴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오는 동안 편했느냐. 내 제자들이 경공술만 사용하면 토악질을 해서 바꾸었는데 제법 멀쩡해 보이니 괜찮은 모양이구나.”

“경공술?”

“그런 게 있다. 일단 물가에 왔으니 핏자국부터 씻자.”

“내…… 내가 씻겠다. 그 손 저리 치워라.”

“다친 주제에 기세만 좋구나.”

천일영은 바둥거리는 예서란을 안아 들고 물가로 내려가 천천히 핏자국을 씻어 냈다.

허나 예서란은 자신을 씻기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냄새가 심해서 씻기려는 것인지, 아니면 먹기 위해서 씻기는 것인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어지는 공자의 말에 예서란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핏자국은 다 지워졌으니 누워 보거라.”

“누…… 누우라니! 무엇을 하려고 그러는 것이냐.”

“눕지 못하는 이유라도 있는 것이냐.”

“그게…… 내…… 고기는 아마 맛이 없을 거다. 그러니 먹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맛있는 거라면 너 말고도 많이 있을 거다만?”

“한때 소문이 돌았는데 나를 먹으면 불로장생한다는 이야기가…… 헙!”

오랜만에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잠시 긴장이 풀린 모양이다. 예서란은 자신의 입으로 자신을 먹으면 불로장생한다는 이야기를 하던 중 실수를 깨닫고 급히 입을 닫았다.

그런데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공자의 눈빛이 제법 기묘하고 이상하게 변한 탓이다.

“너한테 그런 효능이 있다는 말이냐?”

“아니! 그냥 소문이다.”

“푸하핫! 걱정 말거라. 일단 너는 익히는 데 너무 오래 걸릴 것 같고, 질겨서 먹지 못할 것 같다.”

“네…… 네놈, 알면서도 장난을 친 것이냐.”

왜 발끈하는 마음이 드는지는 모르지만 예서란은 또다시 바둥거려 보았다.

그런데 공자의 힘은 여전히 자신을 놓아주지 않았다. 이내 포기한 예서란은 결국 하늘을 바라보았다. 등 뒤에 뉘어진 풀이 쓰러지며 향긋한 내음을 풍겨 왔다.

‘풀 냄새 정도로는 소용없다. 이제 그 박하밭으로는 돌아가지 못하는 것일까. 내 몸에서 나는 썩은 냄새를 숨기려면 그곳밖에 없는데.’

예서란의 뱀과 같은 눈가에 눈물이 조금씩 차올랐다. 앞으로 어찌 될지는 모른다. 그러나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만은 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슬픈 생각도 잠시다. 느닷없이 자신의 가슴에 올라오는 공자의 손길에 예서란은 소리를 질렀다.

“뭐 하는 짓이냐.”

“아무것도 없는 평지 같은 네 가슴팍에 손을 올리고 있다. 뭐라도 좀 있고 나서 떠들 거라.”

“야! 이 바보 놈이!”

스윽.

순간 공자의 손길을 타고 이상한 느낌의 기운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예서란은 눈앞이 핑 돌았다.

뜨겁기도 하고 기묘한 느낌의 이상한 기운. 그러나 날이 선 기분이 가라앉고 편안함이 온몸을 감쌌다. 기분이 나쁘지 않고 오히려 가슴속에 뭔가가 쌓이는 듯했다.

“이…… 이게 무엇이냐?”

“상처를 치료하는 거다. 어째서 만나는 사람마다 이걸 한 번씩은 해야 하는 건지.”

“치료? 이런 걸로 치료가 된다고?”

여전히 바둥거리는 괴물을 보며 천일영은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금채홍이 생각났다. 닮은 곳 하나 없는 두 사람인데 신기한 일이다.

슈우우욱.

순식간에 상처들이 아물기 시작했다.

예서란은 깜짝 놀라서 멍한 눈으로 천일영을 바라보았다. 약초나 빻아서 몸에 바를 줄 알았는데 몸 안의 끊긴 근육까지 이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서란과는 달리 몸에 진기를 주입할수록 천일영의 얼굴은 점점 굳어 갔다.

‘왜 둘이 비슷한 느낌이 드는가 했더니 이 몸도 채홍이처럼…….’

금채홍과 같이 절맥증은 아니었다. 금채홍처럼 몸 안의 기도와 혈도가 이상하리만치 절묘하게 막히고 온몸에 음기가 쌓이고 있는 형태다.

예서란의 온몸의 9할에 달하는 신체가 음기로 둘러싸여 신체가 변화하는 현상에 시달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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