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몸이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이냐.”
“오 년 전쯤부터다.”
“그전까지는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말이구나.”
“맞다. 그런데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놀라서 의원에게 보였지만 차도가 없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나자 지금 이 모습이 되었지.”
“부모님이 계시면서 어째서 이곳에 있는 것이냐.”
“몸이 이상해지고 일 년이 지나자 부모님도 감당을 못하셨는지 나를 버렸다. 사람을 사서 삼십 일 낮 밤 동안 나를 옮겼지. 그리고 이 근방의 산속에 나를 버리고는 떠났다.”
“그랬군. 그래서 성질이 더러운 것이었나.”
“이 바보가!”
예서란은 짐짓 화난 척을 하였지만 마음은 달랐다. 괴로운 이야기를 웃으며 받아들여 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상처까지 치료해 주었으니 먹으려는 것은 아닌 듯하여 예서란은 또다시 속내를 털어놓았다.
“병 때문에 모습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나는 사람이다. 그러니 슬슬 죽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다. 이제 곧 마음까지 괴물이 될까 걱정이 된다.”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도 여전히 성질이 더러울 것 같은데 어디 시험해 볼까.”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진짜 성질 더러운 것을 보고 싶은 것이냐. 장난 같은 소리는 하지 말아라.”
천일영은 대답 대신 예서란의 몸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마치 온몸을 가르고 직접 눈으로 보는 것과 같이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폈다.
‘온몸을 뒤덮고 있는 비늘은 음기가 몸 안에서 살과 함께 굳어져 밖으로 나온 것. 또한 음기가 너무 강해지니 결정이 생기고 그것이 온몸을 뒤틀었다. 몸의 형상이 찌그러지고 눈매가 변하며 썩은 듯한 냄새가 나는 것도 음기의 결정 때문이다.’
천일영의 오른손이 예서란의 가슴 부위를 지그시 누르고 음기의 기운이 따라올 수 있도록 길을 만들었다. 가장 크고 단단한 기도를 열어 모든 기운이 밖으로 나오도록 한 것이다.
스으윽.
천일영은 왼쪽 손으로 예서란의 배 아래쪽을 눌렀다. 이곳의 단전을 통해서 기운이 온몸으로 돌 수 있도록 양의 기운을 넣으려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음기는 몸 밖으로 뚫어 놓은 기도를 통해 흐를 것이고, 배 아래로는 들어가는 양의 기운이 음기를 밀어내도록 했다.
“으으음!”
“아프고 이상한 느낌이 들겠지만 참거라. 몸을 완전히 고치려면 이 방법뿐이구나.”
“꿈같은 말이다. 전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의원도 포기한 몸인 것을.”
“걱정 말거라. 속 썩이는 놈들이 많아서 사람을 고치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된 지 오래다.”
후화아아악!
천일영이 양기의 기운과 진기를 섞어서 몸 안에 집어넣으니, 가슴에 뚫어 놓은 기도에서 음기가 새하얀 가루가 된 결정과 함께 쏟아져 나왔다.
기운에 형태가 생길 정도라면 얼마큼이나 많은 음기가 모여야 가능한 것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엄청난 냄새군. 음기가 가득 모이면 이런 냄새가 나는 것인가.’
반 시진에 걸쳐 온몸의 음기를 빼내고 나니, 붉었던 눈이 다시 검게 변하고 온몸을 덮은 반짝이던 비늘이 조금씩 빛을 잃어 갔다.
천일영은 음기가 모두 빠져나간 것을 확인하자 이내 사람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진기를 밀어 넣었다.
“으으음! 으윽!”
“조금만 참아라.”
진기가 몸 안으로 들어가자 천일영은 모든 기도에 진기의 기운을 빠르게 돌렸다.
몸 안에서 진기가 응축되기 시작하자, 기도 외에도 몸 구석구석에까지 퍼져 있는 응축된 진기를 몸 밖으로 밀어냈다.
뿌득. 뿌드득.
피부 깊숙이 박혀 있는 비늘이 서서히 밖으로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또한 긴 손톱도 빠지고 흉하게 입을 덮고 있던 이빨도 밀려 나오며 빠졌다.
천일영은 빠져나온 비늘과 이빨이 있던 자리에 진기를 사용하여 빠르게 메우고, 피가 나오는 것을 막아 냈다. 이것으로 이제 몸 안에 있던 음의 기운들과 그 흔적은 전부 사라졌다.
“이…… 이게 도대체…….”
“치료해 준다고 하지 않았더냐.”
“믿기지 않는다. 용하다는 의원들도 전부 포기한 것을 어떻게…….”
“그것은 의원이기 때문에 고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한다.”
천일영은 가슴에 뚫린 기도를 막고 손을 들어 올려 황금빛 진기의 실을 허공에 띄웠다.
금채홍의 몸에 들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300년 치의 진기가 담긴 실.
천일영은 그것을 예서란의 몸 안으로 집어넣어 잘못된 기도와 혈도를 묶어 정상적으로 기운이 흐르도록 하고, 또한 기운이 필요한 몸 구석구석에 매듭을 묶었다.
“다 되었다. 아직 눈매나 거친 부분이 남아 있지만, 이것은 이삼 개월 후에는 알아서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고맙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무엇이든 내가 다 하겠다. 정말로 고맙다.”
예서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동안의 고생이 얼마나 심했던지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괴물에서 사람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서도 포기한 일. 그러나 오늘 꿈보다 더한 일이 벌어졌다.
“딱히 어려웠던 일도 아니다.”
“어렵지 않은 일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천일영에게 큰절을 올리는 예서란.
그러나 절을 올린 이후 예서란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괴물이었을 때는 상관없지만 사람으로 돌아온 지금 자신의 몸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공자? 여…… 여기를 보지 말아라. 차…… 창피하다.”
“뭐가 창피하냐. 이제 한 일곱 살쯤 된 것 같은데, 어린애가 아니더냐.”
그러나 예서란은 물가로 주섬주섬 들어가며 머리만 내민 채 붉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 공자, 나는 일곱 살이 아니라 열일곱 살이다.”
천일영은 정신없이 웃옷을 벗어 예서란의 몸을 덮었다. 4척밖에 되지 않는 키에 가슴도 없어서 영락없이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열일곱이라니.
어쩐지 말하는 게 조숙하다 싶었던 생각에 천일영의 얼굴도 새빨개졌다.
“원래는 몸도 내 나이만큼 성장해 있었다. 그런데 이 병에 걸리고 나서 체구가 작아졌다.”
“그랬구나. 미안했다. 본의 아니게 처녀의 알몸을 봐 버렸구나.”
“아…… 아니다. 내가 입은 은혜가 얼마인데…….”
“정말로 여섯 살이나 일곱 살처럼 보이니 앞으로 잘 먹어야겠다.”
천일영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신형을 숲속으로 날렸다. 그리고 반 다경쯤 지난 이후에 사슴 한 마리를 잡아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예서란은 그 모습을 보고 정말로 공자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사냥꾼도 잡는 데 애를 먹는 사슴이다.
“일단 고기를 구워 먹고 나서 움직이자.”
“고…… 고기! 먹어 본 지 오 년이 넘었다.”
예서란의 입에서 침이 주륵 흐르고, 눈매는 호선을 그리며 웃는다.
찔러 오는 악취를 씻어 내기 위해 물가에서 온몸을 문지르는 동안 어쩌다 하나씩 보이는 물고기로 겨우 연명해 왔다. 그것도 불을 피울 수가 없어서 생으로 뜯어 먹었다.
“흐읍. 마…… 맛있어.”
“많이 먹거라.”
한입 크게 고기를 베어 무는 예서란. 눈물이 핑 돈다. 행복한 마음에 몸이 떨릴 정도다.
그런데 행복에 잠겨 있는 예서란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공자? 애써 잡은 사슴으로 무엇을 하는 것인가?”
“서란아, 아까 너를 데려올 때 사냥꾼들에게 죽이겠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러니 너는 이제 죽어 줘야겠다.”
“이 바보가…….”
흉흉한 눈빛을 빛내는 천일영 앞에서 예서란은 오랜만에 먹는 사슴 고기를 떨어뜨렸다.
* * *
천일영은 괴물을 데리고 사라진 지 두 시진이 지난 후 커다란 포대 자루를 들고 박하밭에 모습을 드러냈다.
피로 얼룩져 있는 포대 자루에서는 생피가 뚝뚝 떨어지고, 천일영의 표정은 냉혹함 그 자체였다.
급히 박하밭으로 나왔던 만태륭과 하서량은 서늘한 기운을 뿜어내는 천일영을 향해 겨우 입을 떼었다.
“고…… 공자,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이오. 괴물을 데리고 갔다는 것이 사실이오?”
“죽이려고 데려간 것뿐이다. 사냥꾼들과 무인이 제법 고생을 하길래 내 손으로 처리했다. 금화를 삼십 냥이나 들이는 일인데 박하밭이 망가지기라도 하면 곤란하지 않겠느냐.”
만태륭과 하서량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그 둘의 뒤에 서 있던 남자가 신형을 드러냈다.
심기가 불편한지 신경질이 가득한 목소리를 내었지만 무공이 강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애써 부드럽게 포장한 말투다.
“나는 현령 신덕원이다. 괴물을 죽였다면 증거 또한 있어야 할 것. 그것을 보이기 전에는 인정할 수 없는 일이다.”
“괴물이라면 여기에 있다. 시신을 가지고 왔다.”
툭.
현령은 천일영이 바닥에 던진 포대 자루에서 한 움큼의 피가 튀어 올라 발치에 떨어지자 기겁한 표정을 지으며 한 발 물러섰다.
“이…… 이것이 무엇인가? 설마 이것이 괴물의 시체인가? 이 피떡이?”
“제법 강한 놈이더군. 죽여도 죽지 않고 끈질기게 덤비는 통에 결국 내공을 터트려 죽였다. 그러다 보니 이 모양이 되었군.”
“공자의 무공이 강하다고 들었는데 이 괴물은 사냥꾼들과 일류 고수가 몰아넣었다고 들었다. 헌데 공자의 신위로도 그렇게 죽이기 힘들었다는 말인가.”
“화살을 그렇게 맞고 검에 베였는데도 멀쩡했다. 그것을 잊지는 않았겠지.”
천일영의 말을 듣자 조동모가 고개를 끄덕인다.
분명 죽을 만큼 몰아넣었다고 생각했지만 괴물은 멀쩡해 보였다. 오히려 사냥꾼들이 지치고 자신도 내공이 바닥을 보이고 있을 때였다.
현령은 의심이 가시지 않았는지 불쾌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괴물의 시체를 확인해 보거라.”
“제가 하겠습니다.”
의심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던 사냥꾼 대장이 이때다 싶어 앞으로 나섰다.
사냥감을 빼앗긴 데 화가 치밀어 있는 상태다. 그는 거침없이 악취가 가득한 포대 자루를 열고 나뭇가지를 주워 피떡을 헤집었다.
“뼈도 얼추 맞추면 괴물에게 들어 있을 법한 양이고, 이빨과 비늘은 확실히 괴물의 것입니다. 게다가 숨길 수 없는 이 악취. 현령님, 이것은 확실히 그 괴물인 듯하군요.”
“알았다. 그렇다면 괴물은 죽은 것으로 처리를 하겠다.”
현령 신덕원은 코를 막은 채 두 걸음 물러나 눈앞의 고깃덩어리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돌렸다.
흉악범들을 고문하고, 때로는 억울하게 죽은 시신들을 보아 온 그조차 고개를 돌릴 만큼의 참혹함이었다.
헌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괴물을 죽인 자에게 줄 현상금을 누구에게 주어야 할지 모호해진 탓이다.
“현상금을 공자가 받겠는가? 하지만 사냥꾼들과 고용한 무인도 고생을 많이 했다.”
“나는 박하밭을 지킨 것만으로 괜찮다. 애를 써 준 사냥꾼들에게 미안하니 그들에게 주는 것이 좋겠군.”
“은자가 사십 냥인데 포기하겠다는 말인가.”
천일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냥꾼들과 조동모의 눈매가 풀어졌다. 최소한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공을 세웠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그들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얼추 불편한 상황이 끝나자 하서량과 만태륭이 안도하는 표정을 짓고 곁에 섰다.
“공자님! 괴물을 데리고 가다니, 이 하서량, 심장이 떨어져 죽을 뻔했습니다.”
“혹시 하는 마음에 고깃덩어리로 만들었다. 다시는 괴물이 나타날 일은 없을 것이다.”
“그…… 그렇다면 혹시 일부러 데려가서 죽인 것입니까?”
“뭐 그런 거라고 해 두지.”
곁에서 대화를 듣던 만태륭과 만태용의 표정이 밝아진다. 공자가 먼저 뛰쳐나간 것이 괴물을 직접 처리하기 위해서라고 오해를 한 듯하다.
천일영은 품을 뒤져 전장의 전표를 꺼내었다.
“금화 삼십 냥이라고 하셨지요. 여기 있습니다. 만금전장의 전표입니다.”
“허허……. 괴물을 직접 죽이고 현청의 포상금도 사냥꾼들에게 주더니만 양조장의 지원금까지 한 번에 주는 것인가. 진정으로 공자는 대협이라고 불려도 될 사람이구먼.”
“모자라면 더 지원하겠습니다. 대신 독점인 것을 잊지 마십시오.”
“물론이네. 이 돈으로 양조장을 짓고, 앞으로 일 년 후부터 매월 오백 병의 술을 납품하지.”
“네?”
천일영은 잠시 귀를 의심했다. 만태륭의 말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일 년 뒤? 겨우 오백 병? 아니, 그걸 왜 지금 말하시는 겁니까!”
순간 천일영의 눈매가 찌푸려졌다.
두 달 후면 개점을 할 별유천지의 분점에 술을 쓰려 했는데, 일 년 후에나 술이 들어온다고 하니 예정이 틀어졌다.
게다가 월 오백 병이면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그러나 잠시의 시간이 지난 후, 천일영의 얼굴에 사악한 웃음이 지어졌다. 생각지도 못한 일에 잠시 당황했지만, 방금 좋은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은 천일영의 전문이었다. 괜히 살수 출신인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