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신귀환기-60화 (61/270)

60화

“으흑흑! 공자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정말로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나를 못 믿는 것이냐?”

“아니 됩니다. 공자님, 이것은 정말로 아니 될 일입니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기분이 좋아질 것인데 거절을 하는 것이냐.”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공자님, 제발 지금 하시려는 행동을 멈추어 주십시오.”

울면서 사정을 하는 예서란에게 천일영은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을 이어 갔다.

천일영의 눈빛은 더 이상 거부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의지가 꺾이지 않을 것처럼 서려 있었다.

“이리 오거라. 정말로 내 말을 안 듣는 것이냐!”

“으흑흑흑. 공자님, 제발 부탁이니 그만둬 주십시오.”

“젠장…… 어쩔 수 없나…….”

천일영은 아쉬움에 가득한 표정을 동시에 지으며 오른손에 들고 있던 닭 다리를 자신의 입에 집어넣고 우물거렸다.

살점이 두툼한 것이 정말로 먹음직한데 이것을 예서란에게 먹이지 못해 안타깝기만 하다.

“딱 이것까지만 먹으면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을 텐데 마지막 하나를 안 먹는구나.”

“공자님, 제 배를 보십시오. 이미 터져 나갔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입니다.”

“많이 먹고 빨리 커야지.”

“너무 많이 먹어서 울음이 나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쳇.”

예서란은 산처럼 솟아올라 온 자신의 배를 바라보며 바닥에 대자로 뻗어 누웠다.

공자와 항주로 떠나기를 닷새째. 오랜만에 산이며 들이며 강을 따라 공자와 같이 여행을 하는 길은 눈물이 나도록 행복하고 재미있었다.

오직 식사 때만 제외하면 말이다.

‘나를 안타까워하셔서 많이 먹이시려는 것은 좋은데, 이러다가는 배가 터져서 먼저 죽지 싶은걸.’

식사 때마다 공자는 한껏 많은 양의 음식을 시키고 배가 터질 때까지 먹기를 바랐으니 그것은 행복하면서도 제법 괴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는 공자의 눈빛을 볼 때마다 예서란은 젓가락을 놓을 때가 되어도 한껏 더 먹는 자신이 있다는 것 역시 부정하지 못했다. 공자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보답을 하고 싶었으니까.

“이제 오 일이 지났을 뿐인데 찌그러진 눈매가 제법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구나.”

“전부 공자님의 은혜 덕분입니다.”

자신을 안아 들고 무릎 위에 앉힌 다음, 얼굴을 가까이 대고 괴물이었던 때의 흔적을 손으로 쓰다듬는 공자의 손길은 무척이나 좋았다.

창피하기도 하지만 열일곱 살의 자신을 공자가 일곱 살쯤 된 어린아이로 바라보는 눈을 하고 있기에, 예서란의 마음은 부끄러운 마음보다 아쉬운 마음이 더했다.

‘빨리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고 싶네. 내일부터는 공자님 말대로 조금 더 먹어 볼까.’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또 하나 창피한 일이 있다.

공자는 오죽하면 걱정이 된다는 이유로 방도 따로 잡지 않고 한방을 썼으며, 심지어 침대도 하나를 같이 쓰고 있었다. 예서란이 벽이 있는 안쪽으로 들어가 잠을 자고, 공자는 바깥쪽에서 등을 돌리고 잠이 든다.

시집을 가도 부족하지 않을 나이에 같은 침대를 쓰니 밤마다 밀려드는 쑥스러움에 한동안 뒤척일 정도였다.

그러나 천일영이 굳이 예서란과 같은 침대를 쓰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예서란은 어려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나이가 역행을 했다.’

처음에는 음기가 응축이 되면서 그릇이 된 몸이 안으로 당기는 힘의 영향을 받아 줄어든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것이 무슨 원리인 것인지. 무공이 극에 달해 반로환동이 이루어지는 것도 밀도가 극으로 높아진 기의 영향을 받는 부분도 있다. 허나 무공을 익히지 않고도 아이의 몸으로 돌아간다?’

천일영이 예서란과 같은 방을 쓰는 이유는 지키기 위해서였다. 음기가 가득 모이는 예서란 같은 몸이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수천 명에 한 명 정도일 터. 이런 귀한 몸을 포기할 리 없었다.

또한 아무런 징조도 없이 갑자기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뭔가 천일영이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손쉽게 저런 몸이 되게 만든다는 말이었다.

‘그냥 자연적으로 생긴 병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되도록 만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저런 몸이 될 수 있게 만드는 것인가.’

매일 밤 계속되는 의문에, 모든 무공의 원리를 꺼내 놓고 밤새 조합을 해 보는 일을 아침 해가 떠오를 때까지 반복했다.

그리고 해가 뜬 후 등 뒤에서 색색거리는 예서란의 숨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지며 잠깐씩 잠이 드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내일도 오랫동안 걸어야 한다. 일찍 자도록 할까.”

“네, 공자님. 근데 오래 걸어도 너무 좋습니다. 요즘 정말로 행복합니다.”

나란히 침대 위에 누우니 예서란은 한껏 졸음이 밀려들었다. 매일같이 오랜 시간 걷기 때문에 힘이 들기도 했지만, 배가 불러 오니 노곤해진 탓이다.

금세 수마에 빠져든 예서란은 잠결에 천일영을 껴안고 더욱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포근한 느낌이 순식간에 따스함으로 밀려들었다. 다 큰 처녀가 남자의 품에 안겨서 잠이 들었지만, 창피함보다 안심되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괜찮지 않을까? 몸은 일곱 살. 아무 생각 없이 안겨도 된다고 꿈결에서 생각했다. 몸이 자라면 더 이상 공자는 안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그날 예서란은 제법 코까지 골며 곯아떨어졌다.

* * *

그러나 행복하게 잠이 든 예서란과는 달리 며칠째 짜증에 섞여 산속을 돌아다니는 여인이 한 명 있었다.

불편하게 산에서 잠을 자는데, 짜증 나는 들짐승의 소리까지 들리니, 여인은 깊게 잠이 들지도 못하고, 이제 건들기만 해도 폭발할 지경이 되어 있었다.

“망할 놈들, 낮에는 뭐 하고 밤마다 울고 지랄이야. 늦어도 내일쯤에는 산을 벗어나야겠다. 하루 정도는 객잔에서 목욕하고 밥도 좀 제대로 먹어야지. 쉬지를 못하니까 미치겠네.”

여인은 자신의 옷깃을 들어 냄새를 맡고는 이내 얼굴을 찌푸렸다. 한때 하루 종일 땀을 흘려도 향기가 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옷깃을 들어 올리자 악취에 가까운 냄새가 훅 올라왔다.

“보름을 옷도 못 갈아입고 제대로 씻지를 못했으니……. 땀 냄새에 몸 냄새까지 환장하겠군.”

여인은 이내 투덜거림을 멈추고 빠르게 산속을 뒤지며 신형을 날리기 시작했다. 투덜거릴 시간에 빠르게 해야 할 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신발을 벗으면 내 발 냄새에 내가 기절을 하겠지. 내일까지 갈 것도 없다. 오늘 전부 끝낸다.”

지면의 작은 흔적 하나도 놓치지 않는 여인의 예리한 눈매가 산 끝 경계선이 시작되는 부근으로 옮겨졌다.

평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던 산이 시작되는 초입에서 이상한 것이 여인의 눈에 보인 탓이었다.

“깊은 산맥으로 이동할 것이라 생각하여 초입은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저것이 무엇이지?”

산의 초입에 나무들이 비어 있는 자리가 보였다. 상당히 넓게 평야가 되어 있어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알아볼 정도. 산속에서 벌목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

헌데 다름 아닌 왕부. 즉 황실의 소유로 되어 있는 산에서 나무들이 통째로 사라져 있다는 것은, 빠르게 베어 내고 빠르게 옮겼다는 이야기. 즉 무림인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일이다.

타다닷!

여인은 평야처럼 변한 곳으로 신형을 날렸다. 나무 밑동이 상당히 얕은 것이 예상대로 나무꾼의 거친 솜씨가 아니었다.

여인은 잘린 나무를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흐응? 이거 신기한걸?”

실눈을 뜨고 나무 밑동을 살펴보는 여인의 얼굴은 꿈에라도 보면 오금을 지릴 정도로 해괴했다.

검은색의 짙은 화장이 눈가를 뒤덮고 눈꼬리를 위로 치켜올린 모습이 서늘함을 풍겼다. 그러나 외모보다 더한 것은 눈빛이었다. 살기가 흐르는 표독스러운 눈빛.

여인은 혀로 새빨갛게 칠해진 입술을 한번 핥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매서운 눈동자에 나무 밑동의 거리를 재는 것이 비쳤다.

“일대의 잘린 나무 밑동이 무려 이십 장이나 같은 높이구나. 이것은 단 한 번에 나무를 잘랐기 때문에 높이가 일정한 것이지. 그리고 도끼가 아닌 검으로 잘랐다. 또한 이것은…….”

여인은 몸을 숙이고 잘린 나무 밑동을 손으로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나무의 결과 베인 흔적을 손으로 느끼기 위한 것이다.

한 번에 잘린 나무의 흔적을 일일이 비교하며 이십 장을 모두 확인한 여인의 입에 웃음이 걸렸다.

“이십 장의 가장 끝부분은 살짝 위로 올려 베였구나. 흔적을 보니 검강으로 자른 게 아니다. 검강보다 더 예리하고 날카로운 흔적. 올려 베인 흔적까지 모두 더하면 이것은 풍압으로 자른 것이다.”

여인은 자리에 서서 직접 손으로 검을 휘두르는 흉내까지 내 보았다. 흔적으로 예상하건대 검강으로는 검로가 나오지 않는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다. 현 무림에 검강을 이십 장의 길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무인은 한 명뿐이다. 또한 풍압을 검강보다 날카롭게 쓸 수 있는 사람은 역시 한 사람뿐.”

여인의 새빨간 입술이 환하게 열리며 나지막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드디어 찾았네요, 천마님.”

독천마왕 서가흔의 딸 서하린이 소름 끼치는 웃음을 지었다.

* * *

‘우와. 정말로 공자님은 사람이 맞는 것일까?’

천지일축공을 사용하는 천일영의 품에 안겨 예서란은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감탄을 토했다.

세상을 둘러보며 항주로 발걸음을 한 지 어느새 보름. 평지가 계속 이어지는 지루한 길은 지금처럼 천지일축공으로 빠르게 지나가고, 경치 좋고 물 좋은 곳은 천천히 구경을 하며 여행을 했는데, 불과 보름 만에 항주에 도착했다.

예서란은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즐거운 한때가 이제 끝나고 있었다.

“벌써 항주입니다.”

“원래는 오늘이 아니라 내일쯤 도착하려 했는데 어찌하다 보니 빨리 왔구나. 서란아, 오는 길은 재미있었느냐.”

“무척이나 재미있었습니다. 병이 생겨서 숨어 살기 전에도 이렇게 밖을 여행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공자님 덕분에 세상을 실컷 볼 수 있었습니다.”

끼익.

천일영이 예서란의 손을 잡고 별유천지의 문을 열었다.

해시(亥時)가 넘은 늦은 시간. 때문에 손님들은 모두 나가고 마지막 정리를 건청과 단옥이 하고 있었다.

옆에는 객잔에 있지 않을 시간인데 금채홍까지 금룡참월하검을 벽에 세워 두고 열심히 일을 돕고 있었다.

금채홍은 언제나 그렇듯이 천일영을 가장 빨리 발견하고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공자님! 다녀오셨어요? 에헤헤헤.”

“얼굴이 제법 탔구나. 공사를 하는 곳에 항상 가 있었던 것이냐.”

“이틀 걸러 하루씩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자님?”

“왜 그러느냐.”

“이 아이는 누구입니까? 설마……?!”

금채홍이 놀란 눈을 끔벅이고 있는 사이, 건청과 단옥도 말소리를 듣고 다가와 예서란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아이를 데려온 것이라면 단 하나의 일만이 떠오르는 것이다.

‘설마 공자님의 아이?’

그러나 서로 눈치만 볼 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순식간에 객잔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