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분명 공자는 이십 대 초반에서 중반 정도로 보인다. 반면 아이는 대략 여섯 살이나 일곱 살 정도 되어 보였다.
‘그렇다면 십 대 중반에? 역시 공자님도 인물값을 하는 건가? 아니, 그래도 너무 빠른 거 아냐?’
비록 아이의 눈매가 위로 찢어져 있기는 하지만 상당히 예쁜 얼굴이었다.
잘생긴 것으로 따지면 아마 항주에서 제일이라고 할 만한 공자의 얼굴에 비견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게다가 공자의 아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보면 볼수록 은근 닮은 곳도 많아 보였다.
끼익.
미묘한 분위기가 객잔을 감돌며 무거움이 더하는 순간, 갑자기 객잔의 문이 열리며 한 여인이 들어섰다.
시커멓게 칠한 눈가의 화장과 살기 섞인 눈빛의 분위기가 너무도 흉악한 탓에, 건청은 과거 찾아왔던 미흑천의 살수를 떠올리며 여인의 앞을 가로막았다.
“오…… 오늘은 영업이 끝났습니다. 죄송하지만 내일 다시 오시겠습니까?”
“영업이 끝난 것은 알아요. 저도 여기에 묶고 있으니까. 저는 저분을 만나러 온 거예요.”
낭랑하고 익숙한 목소리. 천일영은 순간 심장이 덜컥하고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누구인지 너무도 잘 아는 목소리였기에.
순간 천일영의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너는…….”
객잔의 무거운 공기가 터져 나갈 듯 팽팽해졌다. 천일영의 기운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흘러나온 것이다.
건청과 금채홍은 어째서인지 알 것 같았다. 완벽하게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는 공자가 실수로 기운을 흘릴 사람이라면 단 한 사람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여자가 애 엄마다.’
‘순진했던 우리 공자님이 저런 무서운 여자한테 걸렸던 건가.’
상상이 되었다.
얼굴 잘생기고 순진한 공자님이 저런 표독스러운 여자한테 걸려 억지 삶을 이어 가다 끝내 아이를 데리고 가출을 했다.
그러다 여동생을 만나고 객잔을 지었다. 상황이 안정이 되자 아이를 데려왔는데 못된 여인은 끝내 공자를 추적하여 찾아온 것이다.
완벽하게 그동안의 일이 그려졌다. 그리고 못된 여자가 입을 열자 모든 것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저를 버리고 이런 곳에서 잘 살고 계셨네요?”
“그래, 버렸지.”
“오호? 그렇게 쉽게 인정하시니 뭔가 조금 기분이 이상한데요? 그동안 제가 무슨 꼴을 당했는지 아세요?”
객잔에 있는 사람들은 생각했다. 여인은 고생을 해도 싸다고 말이다. 자기가 한 짓은 생각 안 하고 무슨 꼴을 당했는지 아냐고 따지는 모습은 실로 안하무인(眼下無人).
그러나 어머니는 어머니인가 보다. 독한 표정을 잠시 풀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을 보였으니까.
“아유, 이쁘기도 해라. 어쩌면 이렇게 귀여운지.”
“에?”
예서란이 놀란 표정으로 그 자리에 굳어 버리자 객잔에 있는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잠시 어머니로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이의 표정을 보니 그간 어머니로서의 행동을 제대로 못 한 것이 분명했다.
씁쓸한 기분에 잠기는 사이, 순간 건청의 머릿속에 한줄기 번개 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생각해 보니 큰일이구나. 눈물 많고 마음 약한 여주인님이 보시기 전에 데리고 나가야 한다. 으허헉!’
건청은 재빠르게 몸을 움직이다 굳은 채 눈을 질끈 감았다. 뒤에서 볼일을 보던 천이영이 밖으로 나온 것이다.
“오라버니, 언제 오셨어요? 그런데 그 아이와 여자분은……?”
천이영의 얼굴이 굳었다. 표정이 이상한 오라버니가 처음 보는 아이의 손을 잡고 있다. 또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여자. 화장하며, 눈빛이 정상하고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자신의 심증을 굳혀 주는 것. 세 사람을 급히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는 건청의 모습까지. 생각을 정리한 천이영은 머리를 짚으며 뒤로 휘청거렸다.
“우…… 우리 오라버니가 유부남에 저런 아내를……! 아아아…….”
“이영아!”
천이영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오라버니가 장가를 갔든 아이가 있든 상관은 하지 않지만, 최소한 아내는 정상이었으면 했다.
허나 소름 끼치는 화장과 눈빛을 보니 오라버니를 열 번은 잡아먹을 상이었다.
“오라버니…… 흑흑흑.”
천이영이 눈물을 흘렸다. 심지어 딸이라는 아이도 눈매가 위로 찢어진 것이 엄마랑 똑같다. 이것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음기로 인해 찢어져 올라간 눈매였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천이영은 모습이 같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확정 짓고 눈물만 쏟아 냈다.
“어?”
“이영아, 왜 우는 것이냐.”
“제가 뭔가 잘못했나요?”
영문을 알기 힘든 분위기에 예서란과 천일영, 그리고 서하린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눈만 끔벅였다.
상황을 곱씹는 세 사람. 이내 천이영이 말한 것들을 종합해 보고 나서야 이해를 하기 시작했다. 객잔에 세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아니야!”
“아니에요!”
“아니다!”
순간 객잔의 사람들은 모두 눈치만 보았다. 부정할 수 없는 것을 부정당했기에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잠시 후.
서하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죽거리는 듯한 비아냥이 담겨 있는 목소리다.
“여기에서 정체를 숨기시고 잘 지내다니 조금 배신감이 드네요.”
“저기…… 아까부터 알 수 없는 말씀만 하십니다. 소저께서 무슨 꼴을 당했는지 아느냐고 하시고, 버렸다고도 하는데, 공자님께서는 그런 짓을 할 분이 아닙니다.”
건청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천일영을 감싸자 서하린의 눈매가 기분이 상했다는 듯 위로 찢어져 올라갔다.
“이분을 찾기 위해서 귀주성, 호남성, 복건성, 그리고 광동성까지 샅샅이 살폈답니다. 그동안 저는 보름에 한 번 씻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죠. 이것이 제가 당한 꼴이에요. 제 발 냄새에 기절을 할 정도로 말이에요.”
“소저, 그것은 갈아입을 옷을 넣어서 봇짐을 챙기면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어째서 보름 동안 옷을 갈아입지 않은 것입니까?”
“…….”
멍한 눈으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던 서하린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어 갔다.
“그…… 제가 연약해서 봇짐 같은 무거운 것은 들지를 못하는 관계로…….”
객잔에 있는 사람들의 고개가 갸우뚱 옆으로 돌아간다.
‘말을 돌렸다.’
‘저 소저 봇짐을 챙긴다는 생각은 못 한 모양이군.’
‘은근슬쩍 본인이 한 일을 넘기는구나.’
그러나 천이영은 주름이 잔뜩 잡힌 미간인 채였다. 아니라고 해서 ‘아니다’라고 생각할 만큼 천이영은 쉽사리 믿지 못했다. 다름 아닌 소중한 오라버니의 일이었으니 말이다.
“오라버니,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십시오. 아 아이와 소저에 대해서요.”
“이 아이는 예서란이라고 한다. 딸같이 생각은 한다만 내 아이는 아니다. 또한 어려 보이지만 병 때문에 그런 것으로 실제 나이는 열일곱 살이다. 내가 거둔 아이니 잘 대해 주거라.”
“정말로 열일곱 살이니?”
의심이 가득한 천이영의 말에 예서란이 짐짓 어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이의 몸이지만 품행이 이미 아이의 것이 아니었다.
“열일곱 살이 맞습니다. 제가 위기에 처했을 때 공자님께서 거두어 주셨습니다. 의심이 사라지지 않으면 시험을 해 보시지요. 소학(小學)이든, 혹 사서오경(四書五經)이든 질문을 하시면 대답을 하겠습니다. 만약 제가 일곱 살이라면 대답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글공부를 그리도 했다는 말이니?”
“여인의 몸이라 향시(鄕試)를 보고 거인(擧人)이 되는 기회가 오지는 않겠지만 공부를 좋아했기 때문에 결과와는 상관없이 오랜 시간 공부를 했습니다. 어떤 것부터 시험해 보시겠습니까?”
“아니…… 시험은 안 해도 되겠구나. 오히려 말하는 것만으로도 서른쯤 된 것 같다.”
“서른은 너무 과합니다. 열일곱이 딱 좋습니다.”
평생 공부를 하지 못하고 글도 모르는 것이 많은 천이영이었지만 예서란의 말을 듣자니 시험을 할 필요까지도 없었다.
천이영은 예서란의 손을 잡았다.
“믿어 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너도 이제 우리 식구다.”
“역시 공자님만큼 좋은 분이시라고 생각했습니다. 외관이 아름다운 것도 마음이 고운 것도 모두 공자님이랑 같으십니다.”
“정말로 너 서른 아니니?”
“아닙니다. 열일곱입니다.”
천이영의 얼굴에 작은 웃음이 생겼다. 혜령에게 좋은 언니가 생겼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천이영의 표정에 서하린은 가슴 깊은 곳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나는 버리고 갔으면서 다른 아이를 맡았다고?’
자신을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귀여워하고 곁에 있어 주었던 사람이 연락을 끊었을 때, 서하린은 마치 자신이 버림을 받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서하린의 비틀린 입술이 열렸다.
“아무도 정체를 모르나 봐요. 안 그래요?”
“……!”
서하린의 살기 섞인 목소리에 천일영의 표정이 화를 내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쓸쓸한 웃음의 잔상만을 남기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변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천일영이 계속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었다. 지켜보던 천이영이 답답한 마음에 입을 열었다.
“저 소저도 누구인지 말씀을 해 주셔야지요.”
“이 사람은 내 친우의 딸로, 서하린이라고 한다.”
“친우의 딸? 그런데 왜 오라버니의 정체를 이야기하는 것인가요? 오라버니 혹시 나쁜 일에 엮이신 것인가요?”
평소 화를 내지 않는 천이영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객잔 안에 울려 퍼졌다.
모든 것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겠다는 의지는 의자에 앉은 천이영을 일으켜 세웠다. 여동생의 처음 보는 모습에 천일영이 입을 열려고 할 때, 서하린에게서 전음이 날아들었다.
[어째서 저를 버리고 가신 건가요? 아무리 뵈려고 해도 얼굴은 물론이고, 연통에 대한 답장도 받지 못했습니다.]
[서가흔이 죽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무슨 낯으로 너를 본다는 말이냐. 너를 보면 내 죄에 짓눌릴 것 같았다.]
[항상 예전부터 그러셨죠. 살인자 주제에. 천마님의 정체를 폭로하면 제 마음이 조금은 풀릴까요?]
[마음대로 하거라. 나의 업보이다. 내가 감당할 일이다.]
[천마님은 변하시질 않네요. 그래서 저희 아버지도 좋아하셨지만.]
서하린의 비틀린 입이 조금씩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보아 오면서 처음이나 지금이나 참으로 그대로인 사람이다.
바보 같은 점이나 자신이 모두 짊어지려는 것이나 한결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느낀 서하린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서하린은 조금 전과는 달리 상냥한 목소리로 천이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제가 오해를 하게 만들었네요. 공자님의 정체는 저희 아버지와 같이 큰 상단을 하시는 분으로 많은 돈을 버신 분이십니다. 공자님은 객잔을 열면 저희를 부르시기로 했는데, 돈을 전부 저희 아버지 앞으로 남겨 두고 행방이 묘연하니 찾을 수밖에요. 저도, 저희 아버지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답니다.”
“오라버니가 상단을요?”
“이 객잔을 지을 돈이 어디에서 나왔겠어요. 엄청난 돈을 두고 동생분께 가 버리셨으니 저희 일가는 걱정도 되고 서운했습니다. 정말로 공자님에게 버림받은 기분이었답니다.”
“오…… 오라버니? 그럼 저 때문에 돈을 다 버리고?”
큼큼.
천일영은 헛기침과 함께 뒷머리를 슬쩍 긁었다. 예전부터 서하린의 순발력은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한순간에 모든 상황을 정리할 줄은 몰랐다.
그러나 천일영은 마음속에 이상하게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상단이라고? 나중에 어찌 감당하려고 그런 말을 하였느냐.]
[독천마왕 가문의 이름은 제가 물려받았어요. 지금은 독천마왕 서하린입니다. 금화 천 냥, 이천 냥쯤은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지요. 또한 천마신교가 운영하는 상단의 일부에 관여되어 있기도 하고요. 천마님도 십만대산에서 나오실 때 금화 만 냥 정도는 들고나올 수 있었을 텐데 고작 이백 냥이라니 욕심이 없으십니다.]
[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왜 하필 상단이라는 거짓말을…… 설마?!]
순간 천일영은 뒤통수를 맞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조금 전의 서하린이 했던 말들을 정리하다 보니 그 의도가 이제서야 눈에 보인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