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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63화 (64/270)

63화

비록 하나뿐인 아끼는 딸이 개방의 방도와 어깨동무를 하고 다녀도 될 지경이었지만, 급한 마음의 설의룡은 부여했던 임무의 답변을 듣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항주의 군항을 염탐해 보니 어떠하더냐.”

“대형 군함이 오십 척. 그리고 새로 만들고 있는 군함이 열 척이었습니다. 옆에 쌓인 나무의 양을 보니 앞으로도 수십 척의 군함을 만드는 듯했습니다.”

“군함은 우리가 전해 듣던 것과는 달리 충분히 여유가 있었구나.”

“여유가 있을 뿐만 아니라 황실에서 새로 설계한 최신의 군함이었습니다. 최신의 군함 한 척이 구식의 군함 두 척을 상대할 것입니다. 오십 척의 배가 있었으나 능히 백 척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군함은 여유가 있는데, 지원은 거절을 당한다. 이것이 무슨 일인지. 후우…….”

설의룡은 딸 앞에서 원체 강함만을 보여 왔지만,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의 일을 포함해 지금의 해남도는 여러 가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해남파는 여러 문파가 섞여 하나의 문파를 이루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아홉의 장로와 일대 제자가 투표로 문주를 뽑는 방식인데, 지금은 아홉의 장로들 중에서 무려 네 명이 해남파의 일을 팽개치고 등을 돌린 상태였다.

또한 해남도 원주민인 여족들의 반란도 극에 달하고 있었다. 여족은 자신들의 땅을 되찾는다는 이유로 반란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전에는 일 년이나 빨라도 몇 개월에 한 번 반란을 일으켰다면 지금은 한 달에 한 번씩 반란을 일으켰다.

‘거기에 해적들과 왜구들의 침략도 전에 비하면 두 배 이상이나 늘었지.’

왜구들과 해적들의 침입을 막는 것은 원칙적으로 황실에서 해야 하는 일이다.

허나 수백 년 전부터 해남파는 왜구들과 해적들의 침입을 대신 막아 왔고, 군항이 들어선 수십 년 전부터는 군과 함께 해남도를 지켜 왔다.

때문에 해남파가 군에 도움을 요청한다고 해도 거절을 해야 할 이유도 없거니와 이것은 관무불가침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일이었다.

‘해남도 도지휘사 오도문! 분명 일부러 지원을 거절하는 것이렷다.’

기묘하게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으로 해남파의 멸문이 코앞에 다가왔다.

여족은커녕 해적들과 왜구들을 막아 내는 것조차 힘든 상황. 이대로라면 앞으로 반년도 견디기 힘들다.

누군가 해남파를 집어삼키려고 하는가 의심을 해 왔지만 이번 일로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수고했구나. 이제 그만 쉬도록 하거라.”

“한 가지 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상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분은 아버님을 아는 듯했습니다.”

“나를 아는 이상한 사람?”

“그 사람 덕분에 제 무공이 일취월장(日就月將)했고, 큰 도움도 받았습니다.”

“자세히 이야기를 해 보거라.”

설의룡에게 설려온은 그동안 겪었던 일을 상세히 말했다. 설의룡은 산적 이야기가 나오면 분노했고, 미흑천의 이야기가 나오자 손에 땀을 쥐며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딸아이는 제법 큰 경험을 하고 돌아온 것이었다.

“이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데 아버님을 알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또한 무공도 엄청납니다. 혹시 아는 분이신지요? 저는 말하지 않았는데 제가 해남파 문주의 딸인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뭐…… 뭐라고? 너를 안다고?”

순간 설의룡의 눈이 광채를 내면서 떨렸다. 지금까지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보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려…… 려온아! 그 사람, 지금 어디에 있느냐!”

“은퇴한 백수라며 항주에 거한다고 했습니다. 이십 대에 은퇴라니 참으로 이상한 사람입니다.”

‘은퇴한 백수!’

모든 아귀가 맞아떨어졌다. 세상에는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고 하지만 사실은 밖에 나와 있는 것이다.

오래전 만났을 때도 무공의 상승에 대한 욕심은 대단했지만 자리에 대한 욕심은 없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라면 충분히 자신의 자리를 버리고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갈지도 모를 일이다.

“려온아, 지금 당장 짐을 싸거라. 항주에 가서 그분에게 내 편지를 전하거라.”

“네에? 아버님, 저 지금 돌아왔습니다. 씻지도 못하고 옷도 갈아입지 못했습니다. 이미 해가 지고 있는데 지금 나가라고 하시는 것은…….”

“씻는 것은 냇가에서 하고, 잠은 길에서 자거라. 한시가 급하다.”

“아버님…… 길에서 자라니…….”

울먹이는 설려온을 제쳐 두고 설의룡은 급히 편지를 써 내려갔다. 분명 설의룡은 그가 이 편지를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십 년 전, 설의룡 그가 천일영의 목숨을 구해 줬으니까. 남들이 보기에는 정파의 무인이 마교의 인간을 구해 줬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갈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이 편지를 반드시 꼭 전해야 한다. 해남파의 명운이 달린 일이다.”

“아버님, 그분에 대한 것은 저에게도 알려 주십시오. 대체 누구십니까?”

“너무 어렸을 때라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이구나. 제법 너하고 놀아 주기도 했는데.”

“어렸을 때요? 그분은 겨우 이십 대 초중반인데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그때는 절정 고수였다. 하지만 극마의 경지에 오르고 천마가 되신 분이지. 환골탈태로 젊어 보이는 거다.”

“네에? 처…… 천마요?”

설려온은 심장이 얼어붙는 듯했다. 아버지와 딸의 입장이니 숨기지 않고 가르쳐 주신 것일 터지만 설려온은 예고도 없이 그의 정체를 밝힌 아버지의 말에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천마가 어째서…… 그분이 천마라니…….”

“마교나 무림맹이나 본질은 비슷하다. 무림맹에 몇 년간 지원을 요청했으나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있다. 이 아비는 해남파를 살리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그런데 려온아, 편지를 받았는데 왜 아직도 여기에 앉아 있는 것이냐. 매호란과 같이 가거라.”

설의룡은 설려온을 즉시 항주로 보냈다. 전에는 아무도 모르게 설려온에게 임무를 준 것이라 혼자 내보낸 것이지만 이번에는 길잡이를 붙였다. 길을 헤매어 때를 놓치면 안 되니까.

“그가 천일영이 맞다면 하늘이 도우신 것이구나.”

설의룡은 집무실을 나와 여러 겹의 진법이 둘러싸인 장원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고 또 다른 진법으로 숨겨진 방 하나. 그곳을 여니 한 명의 남자가 누워 있었다.

“아직도 눈을 못 뜨는 것인가. 해남도의 도지휘사를 믿지 못해 숨겨 두었지만…….”

한 달 전 군복을 입은 채 해남도까지 떠내려온 남자. 그곳에는 절강성 도지휘사 표호엽이 깊은 잠에 빠진 듯 혼수상태로 누워 있었다.

* * *

설려온이 항주로 발걸음을 한 지 보름째 되던 날.

저녁 늦은 시간, 천일영은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반갑게 맞이했다. 다름 아닌 미흑천의 본문에서 잠시 얼굴을 맞대었던 사혈련 귀문살의 사귀진이었다.

“어서 오거라. 기다리고 있었다.”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그래도 최대한 빨리 온 것이니 역정은 내지 말아 주십시오.”

“이상한 소리를 하는구나. 괜찮다. 헌데 같이 온 사람도 귀문살의 사람이 아니더냐.”

“이놈의 혹덩이 놈을 뿌리치지 못해서 달고 왔습니다.”

사귀진의 옆에 있는 사람은 귀문살에서도 사귀진 다음으로 강하고 잔혹하다는 유향설이었다. 이미 무림에서도 유명한 그녀 역시 중원 백대 고수. 허나 겉모습은 제법 가녀리고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우연치 않게 좋은 술을 준비했다.”

“무슨 술이길래 그러십니까. 기대가 됩니다.”

천일영은 이미 만들어져 있던 매빙화홍주 이백 병 중에서 다섯 병을 가지고 왔다.

아직 판매도 하지 않는 귀한 술. 별유천지의 사람들도 병 위를 맴도는 향기에 궁금증을 견디지 못할 지경이었지만 천일영의 명에 따라 꾹 참고 있는 중이었다.

“마시고 이 술을 얼마에 팔아야 할지 의견을 말해 보거라.”

“향기가 엄청나군요.”

술병이 열리자 객잔 전체에 향기가 퍼져 나갔다. 감히 술에서 나는 향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감로(甘露)와도 같았다.

천일영은 사귀진과 유향설의 잔에 술을 가득 따르고 자신의 잔에도 흐르도록 술을 담았다.

후륵.

사귀진과 유향설은 잔에서 흘러나오는 향기를 한동안 음미하다 한 번에 들이켰다. 그리고 이내 두 사람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그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한 술의 깨끗하고 시원한 맛에 무척이나 놀란 표정이었다.

“한 병에 은자 열 냥입니다.”

“네, 저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이것은 금존청(金尊淸)보다 결코 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이 술이 더 좋습니다.”

천일영은 둘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독점으로 판매하지만 한 달에 천 병밖에는 안 된다. 술값을 올려놓아야 가치가 귀해지고 찾는 사람들의 애가 닳는 법.

“죽엽청(竹葉靑)이나 모태주(茅台酒)를 생각하고 왔는데 엄청난 술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헌데 제가 감히 부탁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옆에 달린 이 혹덩이 놈이 자꾸…… 그 공자님이 누구신지 궁금해해서요.”

“네가 믿는 사람이라면 좋을 대로 하거라.”

“감사합니다.”

사귀진이 전음을 날리자 이내 유향설의 눈이 믿기지 않을 만큼 커졌다.

미흑천에서 공자를 보았을 때 단주 사귀진의 태도가 너무도 이상하여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캐물어도 대답을 듣지 못한 이유를 알 법했다. 유향설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

“전에 알아 뵙지 못하고 실례를 저지를 뻔한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괜찮으니 편하게 대하거라.”

“넓은 마음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인사를 하는 유향설의 모습을 기묘하다는 표정으로 계속 바라보는 건청과 금채홍.

무려 사혈련에 몸을 담고 있는 것도 모자라 중원 백대 고수 집단 귀문살의 단주와 단원이 또다시 공자에게 고개를 숙인다.

“역시 서하린 소저와 상단을 했다는 말은 거짓말이겠죠?”

“그 거짓말에 속는 사람은 아마 단옥과 여주인님뿐일걸? 공자님의 무공이 상상을 초월하는데, 상단을 운영할 시간이 있었겠냐.”

“사혈련의 무인들도 공자님을 아는데, 왜 우리는 공자님에 대해서 하나도 모를까요?”

“글쎄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건청이 말끝을 흐렸다. 한동안 무림에서 칼밥을 먹었기에 잘 안다. 사혈련의 무인은 정파의 무인에게 절대로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는 것을.

무림맹의 맹주가 눈앞에 있어도 이죽거리고 시비를 걸면 모를까 인사를 하는 경우는 없었다.

‘아마 정파의 무인은 아니겠지.’

공자는 일부러 자신의 손님을 소개하는 것만 같았다. 나중에 정체를 알아도 충격을 받지 않도록, 천천히 시간을 들여 자신에 대한 것을 조금씩 알리는 것처럼.

탁탁탁탁.

그때 누군가가 10층 객잔으로 올라오는 소리가 났다.

문을 잠그지는 않았지만, 외부의 불을 끄고 이미 영업을 종료했기 때문에 건청은 올라오는 사람을 돌려보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천일영이 손짓을 하여 건청을 세웠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손님이 많구나. 아는 사람이니 그냥 두거라.”

“네? 이번에도 공자님 손님이십니까?”

“초대를 한 기억은 없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발소리가 나는 가운데 천이영이 마지막으로 팔진두부(八珍豆腐)와 호피첨초(虎皮尖椒)를 들고 나왔다.

마지막 요리가 끝나고 이제 숙수들은 내일을 위해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때문에 천이영도 이 요리를 내놓고 처음으로 오라버니를 찾아온 손님들을 같이 접대할 생각으로 나왔다.

벌컥!

그때 객잔 문이 거칠게 열리고, 그곳에는 거칠게 숨을 토하는 설려온과 매호란이 서 있었다.

천일영은 기감으로 그들이 항주에 오고 자신을 찾는 동선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마중을 나가지는 않았다. 초대한 적은 없었으니까.

타다다닥.

‘드디어 다시 왔다!’

설려온은 보름 만에 항주에 도착하고 공자까지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감격을 했다.

일찍 도착한 만큼 당장 달려가서 아버님의 편지를 전해 주고 싶었지만, 설려온은 주변의 분위기에 잠시 망설였다.

공자의 옆에 미흑천 본문에서 보았던 사귀진과 귀문살의 여인이 있었다. 아무래도 격식이 있는 자리인 듯하여 설려온은 예의를 차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공자 앞에 도착하자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 인사를 했다.

“전에는 제가 알아 뵙지 못하고 결례가 많았습니다. 천마신교의 천마님께 다시 한번 인사 올립니다.”

챙그랑. 투둑.

설려온의 말이 끝난 순간, 유향설은 들고 있던 잔을 떨어뜨리고, 사귀진은 젓가락을 손에서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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