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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71화 (72/270)

71화

유향설은 창피해서 고개를 땅에 처박고 눈물만 흘렸다.

“으흑흑흑.”

“울지 마라. 그럴 수도 있는 것을.”

“하지만 소피 보는 소리를 다 들으셨는데…… 창피해서 죽을 것 같습니다.”

“뭘 그런 것을 가지고 그러느냐. 아까 내가 왔을 때는 정신을 잃은 채 코까지 골고 있던데. 진정 대인배의 모습이었지.”

“꺄악! 제…… 제발 자비를 베풀어서 죽여 주십시오. 이젠 죽는 것뿐…….”

천일영은 유향설의 콧잔등을 손가락으로 한 번 튕기고 당양희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없으니 그만 울음을 그치라는 표현이었다.

“이 여자는 공자님이 잡으신 것입니까?”

“네 뒤를 쫓기 위해 숨어 있더군.”

천일영은 손을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당양희의 몸에 박혀 있는 여덟 개의 비침이 빠졌다.

당양희는 자신의 몸이 움직이자마자 즉시 엎드려 고개를 숙이고 큰절을 올렸다. 적에게는 도무지 하지 않을 이상한 행동이었다.

“살려 달라고 고개를 조아리는 것이냐.”

“아닙니다, 공자님! 제 목숨 따위 상관없습니다. 제발 제 동생을 살려 주십시오.”

“동생?”

유향설과 천일영은 서로 마주 보며 눈을 끔벅였다. 붙잡힌 사람이 하는 말로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조금 전에 공자님께서 몸을 고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게다가 사천당문의 비급 독인 반고일독(反顧一毒)을 몸 안에서 꺼냈습니다. 독은 해독을 하는 것이지 몸 안에서 몸 밖으로 되돌린다는 것은 듣지도 못해 본 것. 공자님이시라면 제 동생의 몸을 고치실 수 있습니다.”

“동생이 병이 나서 나에게 부탁을 하는 것인가? 부탁할 상대가 잘못되었다. 적에게 아량을 베풀 정도로 어설퍼 보였느냐.”

“저를 죽이셔도 좋습니다. 돈을 원하시면 제 몸을 팔아서라도 돈을 마련하겠습니다. 제 동생은 이제 열일곱입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몸 안에 음과 양의 기운이 뒤섞여 몸이 부풀어 오르고 온몸의 뼈마디가 뒤틀려 더 이상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본디 음과 양의 기운이 남자의 몸에서 뒤섞이면 죽어야 마땅하지만 목숨은 부지하면서도 몸만 부풀어 오릅니다.”

“음과 양의 기운이 섞여서 몸이 부풀어 오른다고?”

순간 천일영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금채홍과 예서란, 그 뒤를 이어서 비슷한 증세를 가진 사람이 또 나타난 것이다.

‘세 번이나 비슷한 증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우연이 아니지.’

그러나 이상한 일이 연속으로 일어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도움을 주는 것은 마땅치 않았다. 또한 해남도 사건에 관련된 사천당문의 인간을 도와주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하지만 천일영은 웃음을 지었다. 쓸 만한 두 번째의 패가 손에 쥐어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 아이를 고쳐 준다면 너는 내게 무엇을 해 주겠느냐.”

“가장 먼저 이 일의 배후부터 말씀드릴 것입니다.”

“아는 것을 모두 이야기하거라.”

당양희는 자신이 아는 것을 모두 실토했다.

하지만 사천당문을 배신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최대한 입을 다물었다. 당양희가 말하는 것은 대부분 당추필에 관련된 것이었다.

‘어차피 당추필에게 이용당한 순간부터 죽은 목숨이다. 동생을 위해서라면 목숨 따위!’

당양희가 결심을 굳히는 동안, 천일영은 당양희의 역할에 대한 생각으로 바쁘게 머리를 움직였다. 당양희라면 사천당문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천당문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면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 않은가.

‘사천당문은 종남을 함정에 빠트리고 이번에는 해남파를 건드렸다. 같은 정파에게 계속 이런 짓을 하는 이유가 있을 터. 게다가 천마신교가 한 짓처럼 꾸미고 있으니…….’

사천당문은 천마신교를 끝이 보이지 않는 물속으로 던졌다. 그곳에는 소초련과 도현, 그리고 서하린이 있다. 또한 자신의 휘하에 있던 무명암살대에서 살아남은 수백의 무인도 있다.

천일영은 당양희를 데리고 설의룡의 별채로 발걸음을 돌렸다.

* * *

‘당양희는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았다. 허나 별채로 들어올 때 진협교가 당양희를 보고 죽을상을 지었지. 즉 거짓은 아니되 가려서 말한 것인가.’

당양희가 열쇠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조심히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사천당문의 제일 분가의 딸이라는 위치는 상당히 높은 자리였으니까.

“어머. 당양희 소저의 얼굴에 구멍 나겠어요. 그만 노려보시지요.”

“내가 그렇게 뚫어지게 보고 있었나?”

마침 옷을 갈아입고 나온 유향설이 천일영을 보며 일부러 말을 시켰다.

시침을 뚝 떼며 천일영은 당양희를 유향설에게 건넸다. 자신 같은 남자가 곁에 있는 것보다는 유향설처럼 같은 여자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말실수를 유도하는 것이 좋았으니까.

‘이미 해가 저무는구나. 나도 잠시만 쉬기로 할까.’

차라도 한잔 마시려는 생각으로 천일영이 발걸음을 옮길 때,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드는 한 곳이 발목을 잡았다.

별채에 있는 세 개의 방 가운데, 무엇인가 서늘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반대로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끼지는 곳이 있었다.

‘이중 진인가? 집밖에 진을 설치하고 집 안에 또 다른 진을 설치해 놨군.’

초절정 고수라고 해도 알아차리기 힘든 희미한 기운이 천일영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치 암흑이 빛을 집어삼킨 것과 같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벽. 공간의 이질감이 아지랑이처럼 천일영의 기감을 스쳐 지나갔다.

‘방문인가. 보이지는 않지만 집의 구조로 보면 이 뒤에 공간이 있겠군.’

공간을 왜곡시키는 진법을 힘으로 누르기 시작했다. 다른 진법사가 본다면 진법의 해제가 아니라 힘으로 눌러 부수는 것을 보고 기절할지도 모른다.

천일영은 밖으로 기운이 나가지 않도록 집중시킨 힘을 공간 안으로 밀어 넣었다.

쿠구구궁.

방문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천일영은 거침없이 열고 들어섰다. 그리고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 천일영조차 잠시 발걸음을 멈출 만큼 진기한 신형이 눈에 들어왔다.

“표호엽?”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혀지고 고요히 누워 있는 표호엽을 바라보는 천일영의 입에 작은 경련이 걸렸다.

‘그러고 보니 전에 왜구들과 해적들을 막는다고 출진을 한 이후 군항에 군함이 돌아오는 기척이 없었지. 장기적인 해적 소탕에 나섰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전투에서 지고 이곳까지 떠밀려 온 것인가.’

항주 인근 바다에서 해남도까지는 천 리가 넘지만 표호엽이라면 살아서 떠밀려 오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금군이 배우는 무공과 고위직에 오르면 황실에서 만든 무공을 배운 사람.

천일영은 표호엽의 곁으로 다가가 가슴에 손을 올렸다.

‘또인가? 어째서 만나는 사람마다 전부 이 지경인지…….’

머릿속에 뇌수가 흐르는 곳이 탁했다. 그리고 척수도 어긋나 있어 신경이 모두 죽어 가고 있었다.

순간 천일영의 얼굴에 사악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맛있는 먹이를 발견했을 때의 표정이었다.

‘표호엽을 살려 주고 껍데기까지 벗겨 먹어야겠다. 도지휘사라면 영양가 높은 것을 많이 줄 수 있으니.’

천일영은 이제 화타가 된 기분으로 진기를 밀어 넣었다. 이 정도면 이제 천마가 아니라 의원이라고 해도 좋을 지경이다.

이 각이 지난 후.

“으흡!”

“정신이 드는가.”

“으윽! 내…… 내가 어찌 된 것이지? 아니, 그보다 여기는? 공자가 어째서 이곳에 계시는 것입니까?”

표호엽은 잠시 깨질 듯한 두통을 느끼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기억에 혼란이 오고, 무엇보다 온몸에 갑자기 연결된 신경이 찌릿거리며 번개에 맞은 것처럼 느껴졌다.

천일영은 표호엽의 머리에 손을 얹고 진기를 불어 넣었다.

“분명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이 군함이 폭발하여 바다에 던져진 것까지인데……. 내가 살아 있다니 믿기지가 않는구려.”

“왜구들에게 당한 것인가.”

“아닌 것 같소. 놈들은 내가 타고 있는 지휘선만을 공격했습니다. 그것은 도저히 왜구들의 행동이 아니었지요.”

“왜구가 아니다?”

“혹 내가 출진을 한 이후에 항주 군항에 군함이 돌아왔습니까?”

“돌아오지 않았다. 한 척도.”

표호엽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죽어 가면서도 우려하던 일이다.

놈들이 공격을 한 이유. 돈도 아니고 재물도 아니며 여자조차 아니다.

“놈들의 목적은 황실에서 새로 설계한 군함입니다. 그것을 노리고 지휘선을 타고 있는 저만 공격한 것입니다. 놈들은 죽어 가면서도 저만 공격했습니다. 그것이 왜구일 리가 없을 것입니다.”

“……!”

천일영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생각보다 표호엽의 입에서 나온 말이 중요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군함의 탈취는 대역죄를 물어도 모자라는 일.

순간 천일영의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괜히 살려 줬다. 망했다고 하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지?’

천일영은 자신의 날카로운 감각과 진을 부수는 무공을 잠시 원망했다. 아니, 알아도 모른 척을 하고 그냥 넘어갔어야 하는데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일을 저질러 버렸다. 천일영은 얼른 일을 덮으려고 했다.

“삼 개월 정도 혼수상태였으니 쉬거라. 잠이 안 올 것 같으면 재워 주마.”

“사…… 삼 개월!”

천일영은 표호엽을 삼 개월쯤 더 재울 요량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그러나.

“그런데 깨어났다면 공자님이 저를?”

“응? 맞다. 몸 안에 진기를 넣고 신경을 이었으며 뇌수가 탁해진 것을 없앴다.”

“저 표호엽, 감사의 인사를 공자님께 드립니다. 이 일은 제가 꼭 은혜를 갚겠습니다.”

때마침 표호엽이 눈치를 채고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당연히 표호엽을 치료했다는 것을 유난히 힘을 주어 강조한 천일영은 웃음을 지었다. 이걸로 원하는 것을 얻었다.

‘당연히 은혜를 갚아야지. 이제 제대로 벗겨 먹을 수 있겠다. 조금 전에 군함 탈취는 못 들은 걸로. 골치 아픈 일은 사절이다.’

천일영은 설려온과 매호란에게 표호엽을 챙겨 줄 것을 당부하고 원래의 목적이었던 차를 마시며 내일 맹에서 나온 놈을 만날 생각에 잠겼다.

* * *

다음 날 아침.

설의룡과 당추필이 지도를 보며 여족들의 반란을 진압할 진형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급히 설의룡을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주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이상한 일이구나.”

설의룡이 문을 열고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문 앞에는 금채홍과 천일영이 서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금채홍이 앞에 서 있고 천일영이 뒤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들이 무슨 짓을 하려고…….’

설의룡은 막무가내로 찾아온 것에 황망한 표정을 지을 법도 했지만, 등 뒤에서 바라보고 있는 당추필의 눈길이 느껴졌기에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어서 오시지요.”

“해남도에 온 지 오래됐지만 문주님께 인사를 드리는 것이 늦어졌습니다. 죄송한 마음을 담아 소주(蘇州)의 명차인 호구(虎丘)를 가져왔습니다.”

금채홍은 해남도에서 구입한 싸구려 차를 소주에서 사 왔다며 뻔뻔하게 들이밀었다.

물론 알아보지 못하도록 이것저것 겉모습을 조금 바꾸기는 했지만, 그것을 눈치챈 설의룡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들어 한숨을 내쉬는 일이 잦았다.

‘호구(虎丘)라고? 이놈들이 누구를 호구(虎口)로 아는가.’

설의룡은 화를 삭이며 이를 갈았다. 맹에서 나온 무인을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일단 다른 방에서 기다리시오. 제가 나중에 찾아뵙겠습니다.”

“선객이신가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네요.”

금채홍이 당추필에게 눈을 맞추며 짐짓 요염한 표정을 짓는다. 그 모습을 본 설의룡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손주를 볼 나이인데 금채홍의 미모는 설의룡조차 심장을 멈추게 할 만큼이었다.

그때 설의룡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제부터 계속 문주님과 일을 했더니 저도 조금 쉬고 싶군요. 잠시 손님이 들어오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니, 안 그래도 됩니다. 그냥 가라고 할 참입니다.”

“허허……. 문주님은 농담도 참 재미있게 하십니다.”

당추필은 금채홍이 등을 돌리기 전 얼굴을 보았다.

그동안 살면서 꽤나 미인들과 밀회를 나누기도 했지만 눈앞의 여인은 당추필로서도 처음 보는 미모다. 상나라 때의 달기가 살아 있다면 눈앞의 여인 같은 외모일 터.

‘걸렸구나. 채홍이가 입만 열지 않으면 천하제일의 미모라고 할 만하지.’

천일영은 당추필이 뒤에서 일을 꾸미면서도 당당히 해남파의 정문으로 들어온 것처럼, 마찬가지로 당당히 설의룡의 집무실로 금채홍과 들어섰다.

자고로 무림인들은 미인에 약한 법. 어려서부터 남자들과 무공만 수련한 까닭에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쓴다. 천일영은 맹에서 나온 자가 금채홍의 미모에 취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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