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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73화 (74/270)

73화

다음 날, 오지산 인근의 평야.

이곳에서 설의룡은 아들 설여건을 곁에 두고 반란을 일으킨 여족들 천여 명과 마주했다.

“아버님, 맹의 지원으로 든든합니다. 이제 놈들을 쓸어 버리고 본문까지 오늘 없애 버릴 것입니다.”

“으음……. 여족들도 해남도의 일원이다. 지나친 힘으로 밀어 버리면 원망만이 쌓일 뿐. 미래를 위해서라도 죽는 자가 적도록 하거라.”

설의룡이 원한을 쌓지 않으려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다른 이유가 있기도 했다.

밤사이 계책을 전해 준 천일영을 생각하며 설의룡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것을 억지로 억눌렀다. 사천당문의 계략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의룡은 애써 웃음을 지으며 당추필을 추켜세웠다.

“당 대협이 같이 전장으로 나와 주시니 든든합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고개를 숙이며 겸손을 가장하는 당추필이지만 표정은 어두웠다. 분명 오늘 반란에는 삼천여 명의 여족이 나와야 했을 터다.

그런데 어디에서 연락이 틀어졌는지 계획과 달라져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검을 휘두르며 혼란을 부추겨야 설의룡의 등에 비침을 꽂기 좋을 터인데, 고작 천 명이 반란을 위해 나왔을 뿐이니 임무를 달성하기 힘들어졌다.

당추필은 잠시 고민을 거듭하다 설의룡을 부추겼다.

“문주님, 오늘은 대략 천의 여족들만 있을 뿐입니다. 이대로 치고 들어가면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리하면 반란을 주도하는 핵심 인물들의 거처를 멸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진형을 화살형으로 만들고 적진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 어떠신지요.”

“으음……. 그것은 그만큼 여족들이 죽어야 한다는 것. 내키지 않는구려.”

당추필이 생각하는 것을 간파한 설의룡이 시간을 끌고 여족들과 대치만 하려는 방향으로 계획을 끌고 나갔다.

단호한 얼굴의 설의룡을 마주한 당추필은 작은 곤란을 느끼며 품 안에 든 비침에 손을 얹었다.

‘이 망할 늙은이가 왜 갑자기 신중해지는 것이지?’

당추필은 남몰래 식은땀을 흘렸다. 설의룡이 갑자기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모르지만, 문제를 해결하려면 더 많은 여족이 나와야 했다. 당추필은 발걸음을 뒤로 물러 수하에게 전음을 날렸다.

[지금 당장 전서구를 보내 이천의 여족들을 더 내보낼 수 있게 하라.]

[충.]

작은 맹금류가 떠올라 풀숲을 거쳐 공중으로 비상했다. 그리고 깊은 숲에 숨겨진 듯 가려진 장원에 도달한 새는 어느 한 남자의 손 위에 앉았다. 남자는 즉시 종이를 펼쳤다.

“이천의 여족들을 더 보내라고 합니다.”

“그렇군. 지금 당장 보내거라.”

“네……. 알겠습니다.”

침통한 표정으로 이천의 사람들에게 전서구를 보내는 남자. 벌벌 떨고 있다.

허나 목에 검을 들이댄 자도 무서웠지만, 등 뒤에서 벌어지는 일은 더욱 무서웠다. 남자의 등 뒤에서는 사귀진과 표호엽이 피가 떨어지는 검을 들고 주변을 도륙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여족의 반란을 부추긴 간자 이십여 명과 병법가 열 명, 그리고 해남파를 배신한 네 명의 장로들이 단전이 부서진 채 뒹굴고 있었다.

이곳은 어젯밤 당양희가 실토한 곳. 바로 사천당문이 일을 꾸미는 해남도의 숨겨진 본문이었다.

* * *

이천여 명이 검과 창을 들고 산을 가득 메우며 전진했다. 그들은 평야를 거쳐 이미 모여 있는 천의 여족을 앞지르고 진형의 가장 앞에 우뚝 섰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설의룡의 눈에 한 줄기 섬광 같은 빛줄기가 관통했다.

“이천 정도 되는 여족들이 더 나왔으니 이것은 평화롭게 해결하지 못하겠군요. 이쪽에서 공격을 해야 할 듯합니다.”

“아니, 잠깐만!”

당추필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급히 설의룡을 막아섰다. 눈앞에 새로 등장한 이천여 명의 여족들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어째서 해남도에 침투시킨 간자들이 전장의 가장 앞에 섰다는 말인가! 이게 도대체…….’

사천당문의 직계는 아니다. 그러나 따로 이천의 사람을 모집해 무려 삼 년에 걸쳐 훈련을 시킨 자들이었다.

들어간 돈만 해도 금화가 삼천 냥이 넘고, 한때 사천당문의 기둥뿌리가 뽑힐 정도였다. 이들은 해남도가 사천당문의 수중에 떨어진 이후에도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은 안 되는 일이었다.

“장문인! 수…… 수가 너무 많습니다. 지금은 후퇴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허허……. 맹의 지원을 기대했건만 수가 많다고 퇴각을 말하는 것이오? 됐소이다. 당 대협은 이곳에 계시오. 여건아, 모든 무인들과 함께 공격을 한다.”

“네!”

조금 전과 태도가 달라진 설의룡에게 당추필은 심히 당황했다. 그리고 당추필이 말리기도 전에 설의룡과 첫째 아들 설여건이 수백의 무인들과 함께 신형을 날렸다.

‘모조리 전부 죽여 버린다. 오늘 네놈들의 씨를 말려 버릴 것이다.’

설의룡이 반수검(反手劍)을 펼치며 이천의 간자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수백의 해남파의 무인들도 마찬가지로 유성추월검(流星追月劍)과 비어쾌검(飛魚快劍)을 각기 펼치며 간자들의 목을 날렸다.

간자들은 대부분이 삼류 무인, 실력이 있는 자가 이류 무인지만 그 수가 무척이나 적었다. 해남파 한 사람이 간자 두 명씩만 목을 베어도 이길 수 있는 싸움이다.

“커헉! 이런 망할, 명령과 다르다.”

“왜 우리를 앞에 서게 했나 했더니 써먹고 버리는 것인가! 끄아악!”

간자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설의룡은 그들의 비명을 외면했다.

지금 와서 후회를 한들, 놈들이 죽인 사람의 숫자가 너무도 많았기에.

그리고 멀리서 지켜보던 당추필. 그는 결국 설의룡의 등 뒤로 신형을 날렸다. 가슴에 품은 비침을 떨리는 손에 들고서.

* * *

같은 시각.

유향설과 당양희는 해남도의 항구 해구에서 사천당문이 심어 놓은 첩자들을 찾아냈다.

“너는 이곳에 있거라. 네가 전해 준 정보로 간자들의 본문이 멸(滅)했고 함정이 만들어졌다. 배신한 것이 알려지기 전에 몸을 숨기거라.”

“감사합니다. 그러나 제가 배신을 한 것은 사천당문이 아닙니다. 당추필입니다.”

당양희의 말에 유향설은 웃음을 지었다. 자신도 어렸을 때 사혈련이 정의라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으니까. 아직은 믿고 싶을 것이다. 자신이 속한 곳이 정의라고.

타다닷.

유향설의 신형이 숨어 있는 다섯의 사천당문 무인들을 향해 튀어 나갔다. 검법과 도법이 없는 사천당문을 상대로 하려면 기습이 가장 훌륭한 방책이다. 특히 작은 공간에 몸을 숨기고 있는 적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었다.

피비비빗!

몇 개의 암기가 유향설의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미리 적이 올 것을 대비하여 만들어 놓은 간단한 함정이다.

보통의 무인들이라면 이미 쓰러졌겠지만 백대 무림 고수다. 그리고 귀문살이다. 유향설은 눈을 감고 비침이 날아오는 소리를 들으며 몸을 움직여 피했다.

타다다닷.

기척을 죽이고 뒤로 돌아 들어간 적들의 숨은 자리.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유향설은 순간 자신의 등 뒤로 느껴지는 비침의 소리를 들었다.

‘기척이나 사람을 알아보는 데 특화된 놈들이었지. 이미 들킨 것인가.’

피피빗.

다가오는 비침의 소리. 그러나 유향설은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얼마 전 오지산에서 만난 당추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직선으로 날아들었고 속도도 형편없었다. 오지산에서의 경험은 유향설에게 자신감을 넣어 주었다.

‘스무 개군.’

팅팅. 티팅. 티티팅.

유향설의 검에 스무 개의 비침이 튕겼다. 그리고 비침들은 오히려 던진 사람에게 날아갔다.

비침을 던진 자보다 훨씬 빠른 속도. 내공을 가득 담아 쳐 내니 비침은 사천당문의 일류 고수라고 해도 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푸북!

“크헉! 이런 미친……. 네놈 정도의 실력을 가진 자가 언제 해남도에…….”

“사천당문의 독도 별거 없는 것인가. 비침을 맞고도 말을 하네.”

휘이익. 콰직.

유향설의 검이 비침을 맞고 피를 토하는 무인의 목을 날려 버렸다. 독에 맞고 꿈틀거리며 사지가 뒤틀리는 광경은 그다지 보기 좋은 것이 아니다.

순간 그때를 노린 듯 좌와 우, 그리고 등 뒤, 세 방향에서 일제히 비침이 날아들었다.

“세 명인가.”

파팡!

경공술로 유향설은 등 뒤의 남자에게 허공으로 신형을 날리며 다가갔다. 발치 아래로 지나가는 비침. 방향을 바꾸거나 하는 신위에는 오르지 못한 자다.

촤아아악!

또다시 목을 날려 버린 유향설은 오른쪽과 왼쪽에 있는 무인들을 확인하고 먼저 왼편으로 신형을 날렸다.

피비비빗!

그때 유향설의 움직임을 확인한 오른쪽의 무인이 비침을 날렸다.

유향설은 비침을 던진 남자의 실수를 비웃으며 왼쪽 남자의 등 뒤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왼쪽 남자의 목줄기를 등 뒤에서 잡고 오른쪽 남자가 던진 비침이 오는 방향으로 돌렸다.

푸부북. 푸북.

“커윽!”

순간 비침을 던진 오른쪽 남자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동료를 자신의 손으로 죽인 것을 본 순간, 유향설은 잠시의 때를 놓치지 않고 손으로 쥐어 잡은 남자를 오른쪽 남자에게 집어 던졌다.

그리고 시신의 뒤에 몸을 가리고 경공술로 빠르게 쫓았다. 사람이 날아가는 속도와 같은 속도로 보폭을 맞춘 것이다.

피비비빗. 푸부북!

남자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시신과 유향설을 향해 미친 듯이 비침을 날렸다.

그러나 시신의 등 뒤에 숨은 유향설에게 닿을 리 만무. 시신이 비침을 던지는 남자와 부딪치는 순간, 유향설은 몸을 아래로 숙이고 시신의 밑에서부터 위로 검을 날려 동시에 두 명의 신형을 반으로 갈랐다.

촤아아악.

흩뿌려지는 피가 몇 방울 유향설의 뺨에 튀었다. 그러나 유향설은 핏방울을 그대로 두었다.

등 뒤에 서 있는 남자. 그는 방금 상대한 사천당문의 무인들과는 달랐다.

강한 기를 뿜어내며 일정 거리를 두고 다가오지 않는다. 검에는 간격이라는 것이 있다면 사천당문에는 철저히 지켜야 하는 거리라는 것이 있다. 비침을 효과적으로 날리기 위해서다.

“만살귀정(萬殺鬼淨)의 무인 넷을 죽이는 데 반 다경도 안 걸렸군. 눈 일곱 번 깜박일 사이인가. 네년은 언제 해남도에 들어온 것이지? 분명 이곳을 지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멍청한 놈, 왜 정문만 있다고 생각하느냐. 황궁에는 수십 개의 출입문이 있는 법이다.”

“그렇군. 한 수 배웠다.”

피피핏!

만살귀정의 권석우가 비침을 날렸다. 총 사십 개의 비침. 유향설은 그것을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번 상대했던 사천당문이었기에 그냥 피해서는 당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유향설은 일정한 위치까지 비침이 도달할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비침이 1장 거리에 도달했을 때 순간 땅을 박차고 옆에 있는 나무를 또다시 박차며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역시 이놈도 비침에 비침을 묶어서 날리는구나. 저것을 옆으로 피하려 했다면 분명 당했을 터.’

허공에서 갈라지며 방향을 달리하는 비침의 궤도를 확인한 유향설이 권석우의 위치를 다시 가늠했다.

이대로 허공에 떠 있다가는 또다시 날아오는 비침에 당한다. 때문에 검을 빼어 들고 날아오는 비침을 쳐 내려 준비를 했는데, 순간 도망가는 권석우의 신형이 눈에 들어왔다.

“망할 놈, 절정 고수나 되는 놈이 등을 돌리고 튀어?”

지면에 발을 디딘 유향설이 경공술을 사용하여 권석우의 뒤를 쫓았다.

권석우는 군함과 민간선이 들어차 있는 항구 방향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오른쪽에는 배들이 정박해 있고, 짐을 싣기 위한 큰 공터가 있는 곳에 도달하자 권석우는 경공술을 멈추었다.

“네놈, 이곳으로 도망을 오면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느냐.”

“네년의 실력이 내 생각보다 대단하구나. 그래서 너를 이곳에 데리고 왔다.”

“무슨 개소릴 하는 것이냐!”

피비비빗!

권석우의 손길에서 폭우이화정(暴雨梨花釘)이 터져 나왔다. 수백 개의 비침.

그러나 유향설은 허공으로 날아올라 비침을 피했다. 그리고 권석우가 또다시 비침을 날리기 직전, 유향설은 검강을 1장 길이로 뻗어 내며 권석우의 몸을 반으로 갈랐다.

촤아아악!

오지산에서 죽을 뻔한 이후, 유향설은 비침을 상대하는 방법을 계속 연구했다. 그리고 하나 떠오른 방법은 독침의 간격을 상대하려면 검강을 길게 뻗어 상대의 간격을 빼앗는 것을 생각해 냈다.

유향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검강은 약 2장. 이것이면 허공에서 빈틈이 생겨도 상대를 먼저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당추필, 그놈한테는 안 통하겠지만. 젠장.’

유향설은 항구에 있던 사람들이 자신을 피해 배들의 반대 방향에 있는 벽면으로 몸을 숨기는 것을 보았다.

눈앞에서 사람을 반으로 갈라 죽였으니 무공을 모르는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도망을 가는 것이었다.

사혈련인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하여 유향설이 급히 몸을 피신하려고 하는 순간,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파고드는 것을 느끼고 발걸음을 멈췄다.

드드득.

불길한 마음에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목울대로 침이 넘어갔다. 눈앞에 있는 군함에서 함포를 유향설에게 겨누는 것이 보였다.

‘이 개 놈의 자식이! 이곳으로 유인한 이유가 저것이었나.’

급히 몸을 피신하려고 경공술을 쓰려는 순간, 벽면에 피신해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시 눈에 보였다.

유향설이 그대로 몸을 피신한다면 저들은 모두 함포에 당해 비명횡사할 것이다. 유향설의 입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X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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