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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79화 (80/270)

79화

“정말입니까?”

“저희도 이제 단주님을 도울 수 있는 것이지요? 무르시면 안 됩니다!”

천일영이 걱정했던 대로 안과 혜는 자신들이 일을 돕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심지어 혜는 눈가에 눈물까지 맺혔다.

그러나 천일영은 기뻐하는 아이들에게 웃음을 지어 주지 못했다. 자신이 지옥과도 같은 길로 끌어들인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안과 혜를 만났을 때, 거두는 것이 아니라 키워 줄 다른 누군가를 찾았더라면.’

뒤늦은 후회가 밀려들었다. 안과 혜를 거둘 때, 천일영은 아버지에 팔려 마교로 들어간 자기 일을 떠올리며, 남에게 맡기는 것은 아이들을 버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었다.

허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마교에 몸담은 자신이 이 아이들을 맡는 것만은 피해야 했었다.

천마신교에 사실을 숨기고 평범한 아이들과 같이 키우면 된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안일한 생각이, 아이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무게로 변하여 천일영의 마음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이것을 받거라. 너희들의 목숨을 지켜 줄지도 모르니.”

“검입니까?”

안과 혜는 검을 품고 있는 비단을 벗겨 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비록 어린 나이지만 무공을 익히기도 했고, 또한 정보를 모으면서 검에 대한 지식도 갖추고 있었다.

천일영이 넘겨준 검이 천하에 이름만 말해도 누구나 알 정도의 명검이라는 것을 알아본 안과 혜는 떨리는 눈길을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얼굴에 한가득 웃음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이런 명검을 저희에게 주실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저, 혜 역시 감사드립니다. 단주님께서 주신 이 검,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겠습니다.”

“마음에 드는 모양이구나.”

“네!”

생각보다 훨씬 기뻐하는 안과 혜의 얼굴에 천일영은 잠시 안도하는 마음을 느꼈다. 무명암살대의 일을 허락했던 조금 전과 비교했을 때, 검을 받은 지금 안과 혜가 더욱 기뻐했기 때문이었다.

그토록 바랐던 일을 하게 된 것보다 검을 더 기뻐하니, 마치 무공을 아주 버리지는 않은 듯하여 천일영의 마음에 기대가 자리 잡았다.

‘녀석들, 검을 이렇게나 좋아할 줄이야.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시간에 여유도 생길 것이다. 그동안 아비의 역할도 제대로 못 했으니 무공도 가르치고, 좋은 곳에 가서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여야겠구나. 조금만 고생해다오.’

그러나.

천일영의 생각과는 달리 안과 혜가 기뻐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었다.

‘단주님의 선물이다. 오랜만에 받는 선물이라 너무 행복하다.’

‘단주님. 우리를 생각하셔서 이런 귀한 선물까지 주시다니. 목숨을 살려 주시고 키워 주신 은혜도 갚지 못했는데.’

안과 혜는 천일영의 선물이 검이기 때문에 행복하고 좋은 것이 아니다. 받은 선물이 귀한 보검이 아니고 싸구려 검이라 해도 안과 혜는 똑같이 즐거워하고 행복해했을 것이었다.

아니, 검이 아니고 다른 선물이었어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 이분이 주시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라도 기뻤다.

하지만 말로 꺼내어 천일영의 선물이 기쁘다고 하지 못한 것을 안과 혜는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하게 되었다.

“보름 후부터 도현과 함께 일을 할 것이다. 너무 위험한 일에는 끼지 말거라. 어디까지나 너희의 일은 정보를 알아내는 것뿐이다. 허나 심문과 현장에서 즉시 알아내야 하는 것들이 있으니 밖으로 나갔을 때는 몸을 숨기고 있어야 한다.”

“단주님의 명대로 하겠습니다.”

“또 하나. 너희의 일은 천마신교의 위기가 지나갈 때까지만이다. 이후에는 일에서 손을 떼거라.”

“후훗. 아마 일 년 후에도 계속 일을 해 달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아마도 아이의 고집일 터다. 오랜 시간을 함께해 주지 못하니, 안과 혜가 자꾸 천일영과 함께하려고 일에 끼어드는 것일 터다.

천일영은 도현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같이 있고 싶다는 욕심이 어느새 자만으로 변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을 부정했다. 안과 혜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일이 마무리되면 어디 호숫가로 놀러 가자.”

“정말입니까? 단주님과 놀러 간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정말로 기대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안만 기쁜 것이 아닙니다.”

천일영은 가슴속에 깊이 자리 잡은 불안감이 아이들의 기뻐하는 미소로 슬그머니 사라지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벌어지지 않을 일을 불안해하기보다는 눈앞에서 미소 짓는 아이들을 믿고 싶은 까닭이었다.

그리고 삼 개월 후.

타다다닷!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삼인조가 천마신교의 정문에 있는 도시 귀천명에서 빠르게 지붕을 타고 달렸다. 옷은 이미 찢어지고 속살은 갈라져 피를 뿜어내면서도 삼인조는 내색 한 번을 하지 않은 채 달리고 또 달렸다.

“망할, 천마신교가 휘청거려 정보를 캐기 쉽다고 하던 놈들은 이미 잡혀서 처형당했다. 게다가 놈들에게 정보를 사기로 한 우리까지 휘말렸으니 이게 무슨 지경이냐.”

“이상한 일입니다. 분명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천마신교의 정보를 알아내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었는데 갑자기 돌변했습니다.”

“요 근래 불온한 기운이 있기는 했다. 무림맹에서 특히 정보에 혈안이 되어 있고, 분명 천마신교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아니라면 허술했던 곳이 어찌 이리 변한단 말이냐.”

“젠장, 일단 살고 난 다음에 이야기합시다.”

디디는 발걸음에 기왓장이 부서져 나갈 정도로 내공을 싣고 경공술을 펼치며 도망가는 삼인조를 안과 혜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고 있었다. 모든 것은 예상한 대로의 경로. 안이 입을 열었다.

“도현 님, 저들은 탈출할 곳을 미리 마련했을 것입니다. 아마 숲속에 같은 동행이 있겠지요. 그곳까지 거리를 두고 추적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 또한 15리 앞에 있는 숲에 미리 무명암살대를 파견해 주십시오.”

“알았다.”

도현이 곁에 있는 무명암살대 제5대대 조장에게 이야기를 전달하자 한 무리의 단원들이 신형을 날렸다.

안이 예상한 지점에 미리 도착하여 적의 수를 파악하고 피해가 없을 듯싶으면 먼저 처리하려는 것이었다.

다만 적의 수가 예상을 넘어서면 뒤를 쫓는 무명암살대의 단원과 합류하여 적을 처리할 터였다. 이것으로 쫓는 자들과 기다리는 자들 모두를 처리할 수 있었다.

도현은 십여 수를 미리 보는 안과 혜에게 조금은 공포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대단하다. 불과 두 달하고 보름 사이에 정보를 캐는 놈들의 씨를 말려 버리고 있다. 귀천명 깊숙이 숨어 있는 정보상들을 찾아내는 것은 물론, 현장에서는 적절한 명령으로 가벼운 피해만 보고 적을 처리한다. 타고난 천재의 능력이란 이런 것이었나.’

그러나 도현은 안과 혜의 천진한 얼굴을 보자 이내 공포라는 감정이 수그러든다.

예쁘고 악의라고는 보이지 않는 아이들. 단주가 이 아이들을 그렇게도 예뻐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도현은 손에 힘을 쥐고 자신의 임무에 대한 것을 떠올렸다.

오히려 안과 혜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걱정해야 할 존재가 되어 버린 탓이다.

‘생각보다 빨랐다. 무림맹 놈들.’

무림맹이 혈안이 되어 찾고 있는 정보를 캐내는 과정에서 안과 혜는 무림에 널리 알려져 버렸다.

무림맹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흘러가던 천마신교와 무명암살대가 갑자기 날카로운 검처럼 변해 버린 것을 계기로,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던 누군가가 무명암살대를 지휘하고 있다고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결국 무림맹이 안과 혜를 찾아낸 것이었다.

음양쌍녀.

그것이 무림맹이 안과 혜에게 붙인 이름이었다.

당해 버린 정보상과 무림맹의 간자들을 역추적하여 도달한 곳. 그곳에서 겨우 16살의 여자아이 둘이 정보를 차단하고 간자들을 숙청한 것에 무림맹은 허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안과 혜의 존재는 또 다른 곳에서도 불씨가 되어 타오르려 하고 있었다. 바로 천마신교의 마왕들에게서였다.

‘그 망할 노인네들은 정보를 통제함으로써 무명암살대를 묶으려 했는데 안과 혜가 나타난 지금 불안으로 잠도 못 잘 터다. 허나 그 정도로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무림맹이 죽도록 찾는 정보의 실체를 알아내야 하는데, 마왕 영감탱이들은 오히려 방해만 하고 그 덕에 안과 혜조차도 실마리를 잡지 못하니.’

타타탓.

도현이 불길한 마음을 얼굴에 드러내고 있을 때, 때마침 안과 혜를 지키는 무명암살대 제7대대 조장 창희문이 급히 달려왔다.

무림맹이 음양쌍녀를 무림 공적과 같은 취급을 시작한 이후 언제나 그는 긴장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일이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안과 혜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야 합니다.”

“알았다. 남은 일은 내가 처리하도록 하지.”

안과 혜가 고개를 숙이고 창희문과 같이 자리를 뜨자 도현은 깍지를 낀 손을 펼치며 기지개를 켰다. 안과 혜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하니 요즘은 도무지 직접 나설 일이 없었다.

“어디 금화 한 냥짜리 검의 위력을 보여 주러 가 볼까.”

타다닷.

도현이 귀천명의 높은 지붕, 5층 전각에서 지상으로 몸을 날렸다.

한 달 뒤.

안과 혜는 서로를 바라보며 광희와도 같은 눈동자를 떨었다. 그동안 무림맹이 그토록 찾던 정보. 그것의 실마리가 보였다.

마치 여인에게 구애를 거듭하며 탐닉에 빠져 있던 남자가 드디어 혼약 신청을 하러 오는 느낌. 비유하자면 딱 그런 생각이 드는 절호의 때였다.

“이것 봐, 안. 무림맹이 찾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몰라. 하지만 무림맹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 중 하나가 열 명의 무인들을 데리고 오고 있어.”

“혜, 놈이 나타난 것과 동시에 간자들이 들어온 것 같아. 대략 스물 정도인 것 같은데? 이놈들을 처리할 수만 있다면 분명 무림맹이 찾는 정보가 무엇인지 알게 될 거야.”

“놈이 오기까지 예상 시간은 삼 일, 늦어도 오 일 안에 올 거야.”

“이 일만 실패하게 만들면 당분간 무림맹도 조용하겠지. 그렇다면 단주님도 편해질까?”

“당연하지.”

수천 장의 종이가 쌓인 곳에서 안과 혜는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그동안 흐르는 정보들을 모으다 보니 어느새 무림맹이 목말라 하는 정보를 캐기 위해 직접 부딪쳐 온다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서후량. 단목세가(端木世家)에서 무공을 사사받은 인물. 그러나 묵직한 검을 사용하고 예(禮)를 중시하는 단목세가에서 버린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단목세가의 무공을 사용하기는 하나, 오히려 은밀한 일에 적합한 살수와 같은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서후량은 단목세가에서 버림받고 한동안 무림을 방황하고 다녔다. 하지만 그가 무림을 떠돌며 범상치 않은 무위를 얻은 지 오 년째.

무림맹에서는 그의 능력을 높이 사고 큰돈을 들여 서후량을 거두었다. 그리고 서후량은 무림맹에게 은혜라도 갚듯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일을 여러 차례 성공시켰다.

하지만 너무 많은 일을 잘 해냈기 때문이었을까. 지나치게 이름이 알려진 서후량은 은둔해 있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움직인 것이니 보통의 일은 아니다.

“서후량은 지금 광동성에 있어. 행로를 보면 분명 십만대산으로 향하는 것이 맞아.”

“귀천명으로 오겠지. 개방의 방도들은 귀천명에서 쫓아냈지만 우리가 일부러 잡지 않은 간자들을 이용하자. 일단 서후량이 먼저 잠입시킨 간자 스물이 누구인지 모르니 거짓 정보를 흘려서 발을 묶는 거야. 그렇게 하면 놈들은 우리가 잡지 않고 풀어 둔 간자 중에서 누군가와 접촉하겠지.”

“우리가 두 수 정도 앞을 보겠구나. 빨리 서둘러서 단주님에게 알려야 해.”

안과 혜는 빼곡히 계획을 적은 종이를 들고 천일영을 찾았다. 이미 무명암살대의 본문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안과 혜는 가지 못할 곳이 없었고, 또한 거칠 것도 없었다.

마왕 영감들은 천일영이 힘으로 누르고 있으니 당분간은 별 탈이 없을 터다. 안과 혜가 천일영의 집무실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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