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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80화 (81/270)

80화

쾅!

울화가 가득 실린 손바닥이 탁자를 자를 듯 거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노기가 가득한 천일영의 표정에 안과 혜는 움찔거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단주가 이토록 화내는 것은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안 된다. 너희들이 직접 나서 서후량을 잡겠다는 것이냐! 내가 언제 그런 일까지 너희에게 하라고 하였느냐!”

“하…… 하지만 단주님, 서후량이 천마신교의 누구와 내통하는지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이번 일로 천마신교에서 정보가 누출되는 근원까지 파헤칠 수 있으니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서후량은 너희들이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무림맹의 계획을 실패로 돌리기는 하되, 너희는 모습을 드러내지 말거라. 이 일은 내가 나서서 처리하겠다.”

“하지만 단주님이 모습을 드러내면 서후량은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걸로 된 거다. 안, 그리고 혜야. 너희는 내 딸들이다. 헌데 아비 된 사람으로 너희를 위험한 곳에 내보내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

긴급을 요하는 일임에도 안과 혜는 천일영의 말에 마음이 울컥거리며 철렁 내려앉았다.

단주님이 자신들을 거둔 이후, 처음으로 내 딸들이라고 했다. 안과 혜는 불호령이 떨어지는 가운데서도 기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만든 계획이 적힌 종이를 기어이 탁자 위에 올렸다.

딸이라는 말을 들은 지금, 반드시 이 일만큼은 성공시키고 싶은 욕심이 가슴을 가득 채운 탓이었다.

“이것을 보시고도 저희에게 맡기지 않으신다면 물러서겠습니다.”

“볼 필요도 없다. 너희는 이 일에서 손을 떼거라.”

“알겠습니다.”

안과 혜가 서로를 바라보고 천일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물러나려고 인사를 하려는 줄 알았던 천일영이 노기를 풀려고 할 때.

“읽어 보시면 저희를 다시 부르실 것입니다.”

“안 된다고 했다! 썩 물러가거라!”

“네…… 네!”

극 대로(大怒)한 천일영의 일갈이 방 안을 찢을 듯 울리자 안과 혜가 허둥거리며 밖으로 나섰다.

그 모습을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바라보던 도현은, 손가락에 묻힌 침으로 안과 혜가 남긴 계획서의 종이를 밀어 넘기며 타박하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화가 지나치셨습니다.”

“안다. 하나, 이 정도라도 말을 해야 저 녀석들이 알아들을 것이다.”

“최소한 안과 혜가 가져온 계획서라도 읽어 보시고 화를 내셔야 했습니다.”

“저 아이들 앞에서는 바보가 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냐.”

“잘 아시네요.”

계획서가 한 장씩 넘어갈 때마다 도현의 얼굴도 따라서 점점 굳어졌다.

이미 세간에 알려진 서후량의 습성과 버릇까지 고려하여 만든 완벽에 가까운 계획. 확실히 이 정도면 지나친 무력에 의존하지 않아도 서후량과 간자들을 조용히 처리할 수 있을 터였다.

쌍둥이들의 능력이 새삼스럽게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습성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아까 안과 혜가 말한 것처럼 단주님이 나타나면 서후량은 숨어 버릴 것입니다.”

“그렇겠지. 서후량은 따지고 보면 나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놈이다. 살수의 습성을 가진 놈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고.”

“서후량을 제거하면 무림맹도 다른 뾰족한 수를 내기는 힘들 것입니다. 무림맹이 찾는 정보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아마 천마에 관련된 것일 테죠. 천마의 상태가 나쁘다는 것만 확인되면 무림맹도 천마신교를 무력화시키려 할 테고요.”

“지금의 천마가 마왕들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 알려지면…….”

“이후의 일이 어찌 될지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무거운 공기가 방 안을 짓눌렀다. 천마신교에 조금의 애착도 없는 두 사람이지만, 수많은 목숨이 달린 일에서 등을 돌릴 수도 없는 일이다.

수하들과 십만대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한 것. 도현은 계획서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난 이후, 눈에 보이도록 천일영 앞에 내려놓았다.

“판단은 단주님이 하십시오. 제가 보기엔 이 계획서는 지나칠 정도로 완벽합니다. 오히려 실패하는 것을 상상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계획서의 내용대로 움직이되, 다른 사람을 투입하면 된다. 안과 혜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이 계획은 현장 지휘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돌발 상황에 따라 안과 혜가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대응을 바로 하게 되어 있죠. 안과 혜는 필연적으로 현장에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계획은 폐기다.”

“알겠습니다.”

도현은 잠시 긴 침묵을 이어 갔다. 단주가 하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단주에게는 천마신교보다 안과 혜의 안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러나 여전히 무명암살대의 천 명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이 계획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서후량이 정보를 가져가고 천마신교가 큰 문제에 휘말리게 되면 아마 안과 혜가 가장 슬퍼할 것입니다. 막을 수 있는 일에 실패하고 수천수만의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뼈저리게 아픈 것이니까요. 평생 기억하고 단주님을 설득하지 못한 자신들을 죽을 때까지 탓할 것입니다.”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늦었습니다. 오늘은 술 한잔하시고 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지. 내일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군.”

도현이 밖으로 나서자 천일영은 눈앞의 계획서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잘 알고 있었다. 이 종이를 들고 넘기는 순간 안과 혜의 뜻대로 움직이게 된다는 것을.

“서후량을 그냥 죽여 버리면 무림맹에서 이것을 빌미로 삼아 크게 일을 벌이겠지. 이름값이 높은 놈을 일부러 보내다니, 무림맹도 터무니없는 짓을 하는군.”

무기력했다. 극마의 경지에 올랐어도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렸을 때 보았던 마교는 거대하고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아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세상을 보다 보니 하나의 조직이 쉽사리 무너지는 것도 수없이 보아 왔다.

중원에 이름을 날리고 그 힘이 거대한 용과 같이 천하를 뒤덮는 명문 세가조차 망하는 데 하루면 족하다.

하물며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천마신교는 어떠하겠는가. 무너져 가는 집의 기둥을 뽑아내듯이 누군가 아주 작은 힘만이라도 가한다면.

팔락.

천일영은 안과 혜가 가져온 계획서의 첫 장을 넘겼다.

오 일 후.

천일영이 십만대산 깊은 곳의 무명암살대 집무실에서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 안과 혜는 도현과 무명암살대 제7대대 조장 창희문을 곁에 두고 먼 곳에서 서후량을 지켜보고 있었다.

“생각대로야. 서후량이 보낸 간자 스물의 발을 묶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일부러 잡지 않은 간자들에게 접촉해서 천마신교의 배신자와 연결되었으니.”

“하지만 의외네. 배신자가 저 사람일 줄이야.”

안과 혜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도현이 받은 충격만큼은 아니었다.

도현의 얼굴에서 진땀이 흘러내렸다. 천검마왕 목천향의 제1 수하 추자룡. 천마신교 내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강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배신자의 정체였다.

“천마신교가 무너지고 있다 판단되니 중추부터 배신자가 나오는구나. 망가진 천마신교에 더는 볼일이 없다는 것인가. 안, 혜. 추자룡이 가진 정보의 가치가 얼마만큼 중요한지 알 것이다. 실패하면 안 된다.”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천마에 관련된 정보일 것입니다. 이 정보가 새어 나가면 천마신교는 몇 년 안에 무너질 것입니다.”

안과 혜에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도현은 이상한 위화감에 몸이 떨려 왔다.

밝은 대낮. 아무리 서후량이 데려온 무인들로 경계를 세운다 해도 보통은 이 시간에 밖에서 만남을 가질 리 없다.

늦은 밤 객잔의 별실을 빌려 만나는 것이 보통이니만큼, 서후량과 추자룡의 행동은 이상하기만 했다.

‘저 망할 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군.’

도현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주변으로 무명암살대의 5개 조가 서서히 압박을 가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서후량의 무력을 월등히 넘어서는 힘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는데도 도현은 이상하리만치 떨리는 몸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안. 혜. 나는 서후량의 주위로 이동하겠다.”

“알겠습니다. 이 정도는 상정한 예정 내입니다. 부디 무운을.”

“알겠다.”

도현이 서후량의 기감에 걸리지 않도록 기운을 죽이고 서서히 이동을 하는 동안, 이상한 위화감은 안과 혜도 느끼고 있었다.

서후량이 데려온 무인의 수가 다섯. 대단한 고수들로만 이루어졌다고 할지라도 다섯의 무인만으로 저렇게 대담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또한 나머지 다섯의 무인이 귀천명 여기저기에 퍼져 있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창희문 조장님, 무명암살대 다섯 개 조를 더 투입해 주십시오. 포위진을 이중으로 구성합니다. 그리고 서후량과 떨어져 있는 다섯의 무인들에게도 사람을 보내 주시길.”

“알았다.”

추자룡이 모든 정보를 넘길 때까지는 최소 이 각 이상은 더 걸릴 것이었다. 이중 진을 구성하기에는 충분한 시간. 아직은 모든 것이 예정대로였다.

그때, 안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무엇을 하는 것이지?’

안과 혜가 있는 곳은 5층 전각의 가장 위. 바로 옆의 골목에서 남자 하나가 아이를 끌고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울음을 터트리는 남아의 입을 틀어막고 주변을 돌아보는 남자의 모습은, 아이의 안위를 걱정해야 할 만큼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안은 이를 악물고 눈길을 돌렸다.

‘젠장, 하필이면 지금 이런 일이. 미안하다. 도와주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을 것 같구나.’

안은 눈앞에 집중했다. 도현이 서후량과 추자룡의 주변 약 일 리 근처까지 숨어들어 가는 것이 보였다.

“어…… 안…… 살려…… 아저…….”

입을 틀어막은 억센 손이 조금씩 열릴 때마다, 새어 나오는 아이의 목소리가 안의 귀를 파고들었다.

창희문 제7대대 조장 역시 한쪽 눈썹이 조금씩 흔들린다. 그러나 창희문은 눈앞에 집중했다. 안 역시 눈앞에 집중했다.

그러나.

“안 돼…… 살려 주…… 컥…….”

텁!

순간 안이 비룡맹검을 쥐었다.

‘망할, 아직 서후량과 추자룡은 정보를 교환하는 중이다. 시간은 충분해. 빨리 저놈을 처리하고 와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남자가 아이에게 하려는 짓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목을 통째로 내줘야 할 만큼 나쁜 짓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자신들도 단주에게 거두어지기 전 질릴 정도로 겪어 왔던 일. 그러나 비틀린 입술로 남자를 향해 걸어가는 안의 앞을 창희문이 손을 뻗어 가로막았다.

“눈앞의 일에 집중해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놈을 처리하는 데 눈 세 번 깜박일 시간이면 됩니다.”

“안, 눈앞의 일에 집중해라.”

“하지만!”

혜가 안을 바라보며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전각의 안쪽에 있던 혜에게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눈앞의 일에 집중하고 있는 터라 옆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르고 있었다.

“도현 님도 서후량의 주변에 계시고 제가 자리를 비워도 혜가 있습니다. 금세 놈의 목을 가져오겠습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가야 한다면 내가 간다.”

“삼 장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젠장…….”

창희문의 이마가 일그러졌다.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자신도 저 아이의 나이만큼일 때 납치를 당해 천마신교에 들어왔다.

아이가 봉변을 당하는 것을 외면하는 자신이 한심하고 울화가 가슴속에 쌓이는 것은 당연한 일. 창희문의 입이 조용히 열렸다.

“눈 세 번 깜박할 때까지만이다.”

“감사합니다.”

검이 햇살에 반짝이며 자신의 위치를 적에게 알리지 않도록 안은 신중하게 비룡맹검을 품에 품고 신형을 날렸다.

안이 5층 전각의 튀어나온 부분을 밟고 땅에 내려섰을 때, 골목 안에서 벌어지는 절박한 상황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안의 이가 뿌득 갈렸다.

“아저씨, 저희 엄마가 집에서 기다려요. 제발 가게 해 주세요. 살려 주세요. 네?”

“닥쳐라. 좋은 말로 하니 애새끼가 하고 싶은 말 다 하는군. 입 벌려!”

“시…… 싫어요! 어제도 제 친구가 죽었단 말이에요. 아저씨가 그런 거죠!”

“글쎄? 네 친구라는 놈은 이걸 먹지 않아서 죽었을걸?”

“사…… 살려 주세요!”

안은 작은 몸집에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남자가 아이의 입을 강제로 벌리고 뭔가를 먹이려는 순간 검을 날렸다.

휘익! 촤아악!

남자의 팔이 아이에게 강제로 먹이려던 것과 함께 잘려 허공으로 떴다. 뿜어져 나오는 피를 주체 못 한 남자의 입. 커다란 비명이 터져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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