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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81화 (82/270)

81화

흥건하게 바닥을 적시는 피바다에 물결을 만들 정도의 쇠를 긁는 듯한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크아아악!”

“아이야, 빨리 도망가거라.”

“고…… 고마워요, 형!”

남자의 옷을 입은 안에게 아이는 빠르게 인사를 하고 달려 나갔다. 입언저리가 시커멓게 멍이 들고 고인 침이 흘러내린 옷을 보니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이 날 뻔했을 터다.

안은 서슬 퍼런 표정으로 남자의 잘린 팔에 쥐어져 있는 것을 강제로 꺼내어 들었다.

“약? 환단?”

“크아악! 이 망할 놈이!”

“마취 약인가? 기절을 시키려고 했나 본데 납치범인 모양이구나.”

“네놈 따위가 알 일이 아니다!”

안은 창희문과 약조한 시간이 넘는 것도 잊고 입가에 비웃음을 지었다. 근래에 들어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천마신교에서도 가뜩이나 불안한 시국에 접어들었는데 이 일로 또 다른 세상의 시선이 모일까 신경을 써야 했을 정도. 안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범인을 잡았다는 생각에 남자를 포박하려 했다.

그때였다.

쿠웅!

순간 거대한 소리와 함께 지축이 뒤집히듯 큰 소리가 울렸다. 순간 안은 당황했다. 거대한 소리가 난 것 때문이 아니었다.

이만큼 큰 소란이 일어날 정도의 소리가 났다면 혜가 알려 줬어야 할 상황이다.

“혜? 뭐 하고 있는 거야!”

안이 혜를 부르며 골목에서 큰길가로 뛰쳐나갔다. 왠지 모르게 드는 불안한 느낌. 안이 혜를 한 번 더 부르려고 시선의 끝을 5층 전각의 꼭대기로 두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안은 옆으로 무엇인가 거대한 느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휘이이잉. 콰아앙!

안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섬뜩한 느낌이 안의 등골을 휘저었다.

“거…… 검강?”

초절정 고수라면 일 장에서 이 장 길의 검강을 만들어 낸다. 바로 눈에 스쳐 지나갔다는 것은 바로 옆에 초절정 고수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

안의 목으로 침이 넘어갔다. 온몸이 경직되어 겨우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것조차 힘들었다. 다시 한번 검강이 날아온다면 분명 죽을 터다. 그러나.

쿠우우웅. 투두두둑!

순간 혜가 있는 전각의 꼭대기 층이 터져 나가며 잔해와 핏덩이가 안의 얼굴로 쏟아져 내렸다. 안은 얼굴에 들러붙은 살 조각들을 손으로 치워 내며 떨리는 목소리를 내었다.

“혜?”

심장이 철렁하고 떨어져 내린다. 어떤 힘으로 인해 전각이 터져 나갔는지는 모르지만 혜와 창희문 조장, 그리고 몇 명의 무인들이 있던 곳.

안은 자신의 손에 묻어난 살점을 바라보았다.

혜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안의 얼굴에서 허망함과 눈물이 동시에 배어 나왔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

안은 즉시 신형을 날리려 했다. 혜가 살아 있는지 확인해야 했으니까.

전각을 오르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었다. 순간 안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섬뜩한 느낌에 발을 멈췄다. 그리고 눈앞으로 공간을 가르며 지나가는 서늘한 기운.

한 걸음이라도 더 발걸음을 떼었으면 몸이 반으로 갈라져 조각이 났을 터다.

휘이잉! 콰아앙!

잘려 나간 벽면의 돌덩이가 안의 몸으로 날아와 옷에 작은 구멍들을 내었다.

얼굴에도 맞았는지 뜨끈한 피가 흘러 턱에 고이는 것도 느껴졌다. 안은 그 자리에서 굳은 듯 멈췄다.

혜의 안위를 알아보기 위해 달려가야 하지만 그보다 자신을 누르고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감정.

무서움과 공포.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살기와 압박을 부르는 죽음의 느낌. 안의 발목이 땅에 뿌리를 내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몸이 움직이지 않아. 뱀 앞에서 몸이 굳어 버린 개구리가 바로 나인가.’

안은 이를 악문 채 자신의 위치가 들키지 않도록 소리도 내지 않고 기운을 끌어 올렸다.

기세만으로는 머리 위를 짓누르는 압박과 살기를 벗어날 수 없었다. 한시가 급하다. 나 따위 어찌 되든 혜가 살아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안은 기운을 끌어 올리고 온몸으로 버텼다. 하지만 안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더불어 기나긴 땀줄기가 흘렀다.

‘그…… 글렀다. 발목을 붙잡은 이 기운을 떨칠 수 없어!’

순간 단주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무공을 계속 익혀야 한다고 했던 이야기.

만약 지금 일류 고수 정도의 실력에 근접했더라면 온몸을 억누르는 쇠사슬 같은 압박을 부수고 움직였을 터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자신을 향하는 발소리. 안은 굳은 목을 애써 돌려 발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입안 한가득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는 사람. 검게 죽은 눈 밑의 피부가 피곤해 보였지만, 오히려 그것이 눈 안에 고여 있는 살기를 더욱 눈에 뜨이게 했다.

“서후량!”

“옷차림을 보아하니 네년이 음양쌍녀의 안이군?”

“네놈이 어째서 이곳에?! 벌써 추자룡으로부터 정보를 건네받은 것인가.”

“눈치가 느리구나. 이번 일은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추자룡 본인이 목적인 것을.”

“추자룡이 목적?”

순간 안의 머리가 망치로 맞은 듯한 느낌으로 멍해졌다. 분명 추자룡으로부터 정보를 받아서 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정보를 사는 것이 아니라 추자룡 본인 자체를 무림맹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라니!

‘놈들이 한낮의 골목에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모습을 드러낸 이유가!’

알 수 없었던 이상한 위화감. 그것이 바로 추자룡을 데려가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눈치챈 안의 눈동자가 당황스러움으로 물들었다.

“멍청하구나. 애새끼치고는 머리가 좀 좋았다만 역시 그 정도일 뿐이군. 게다가 네가 나타날 줄 알고 다섯의 무인을 풀어 두었는데 소란을 떨어 찾는 수고까지 덜어 주다니.”

“그…… 그렇다면!”

“이렇게 큰 비명이 들리는데 못 찾는 것이 더 이상한 것 아니냐. 네놈의 실력이 좋았다면 상대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죽여 버렸겠지.”

서후량의 고개가 잘린 팔을 들고 있는 남자에게로 향했다. 고통에 입술을 깨물며 남자는 잘린 팔을 이리저리 끼워 맞춰 보고 있다. 이미 반쯤 정신 나간 상태였다.

“쯧, 무공도 모르는 놈을 겨우 저렇게 만들다니.”

“놈! 아무리 추자룡을 데려가려 해도 네놈들은 무명암살대의 포위망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어야 하는데…….”

“그야 데리고 온 무인들이 보통 문파의 놈들이었다면 지금 이곳에서 너와 이야기를 하고 있지 못하겠지. 하나, 그들은 사천당문의 무인들이다. 기습으로 수천의 비침을 날린다면 쉽게 처리하지 못할 것도 없지.”

“사천당문?! 네…… 네놈들! 무명암살대의 무인들을 수백이나 죽인 것이냐! 천마신교에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허허, 끝까지 대가리가 나쁜 년들이구나. 음양쌍녀의 능력도 떠도는 이야기에 살이 붙여진 흔한 무림의 소문인가? 누가 무명암살대를 죽였다더냐. 마비만 시켰을 뿐이다. 피를 보지 않고 적당한 소란만 일어난다면 아무리 천마신교라고 해도 정마대전을 일으킬 명분까지는 되지 못하지. 그러나 예외도 있다.”

“예외?”

“바로 네년들이다. 음양쌍녀. 네년들만큼은 죽이고 떠난다.”

“……!”

서후량의 기세가 하늘과 땅의 경계를 찢을 듯 허공을 잠식했다. 조금 전 안이 도망가지 못하게 했던 바로 그 기운이다.

안은 서후량의 검에서 뻗어 나오는 검강을 지켜보며 오금을 지릴 정도의 심정이 되었다. 무려 이 장하고 절반에 가까운 검강.

‘소문을 취합하여 서후량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은 자만이었구나. 판단한 것보다 서후량은 훨씬 고수다. 중원 백 대 고수에 들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안이 얼어붙어 있는 사이, 서후량은 뒤를 한 번 흘끔 돌아보았다. 사천당문의 무인들이 주변을 한바탕 비침으로 메운 이후 아직 천마신교의 다른 무인들로 채워지지 않은 빈 곳이다. 서후량의 얼굴에 여유 있는 웃음이 지어졌다.

“네년들로 인해 무림맹이 꽤나 많은 고생을 했으니 조각을 내어 죽여 주마.”

“추자룡을 배신하게 만들어 천마의 정보나 캐내는 것들의 말에 내가 떨기라도 할 것 같으냐!”

“천마에 대한 정보?”

순간 서후량의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지어졌다.

안은 뜻 모를 서후량의 비릿한 웃음의 끝에서, 이내 검강이 서늘하게 감겨 있는 검이 올라오기 전까지 웃음에 대한 의미를 생각했다. 분명 안이 생각지 못한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러나 안은 더는 생각할 수 없었다. 눈앞의 서늘한 검강에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후우웅!

안은 눈앞으로 날아오는 검을 바라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단주님. 아니, 아버지가 말한 대로 무공의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면 도망을 시도했을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아이를 납치하려던 남자를 비명도 없이 죽여 일을 망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무공으로는 일을 망친 것도 모자라 기운에 눌려 발걸음마저 떨어지지 않는다. 무공을 배워야 한다는 말을 무시한 자신의 꼴사나운 모습을 아버지가 보지 못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일까.

후회의 감정 앞에 눈을 감고 눈앞으로 날아오는 검을 외면한 순간.

카아아앙!

순간 서로의 검이 부딪히며 터져 나가는 기의 폭발에 안의 신형이 밀려났다.

“크흑!”

안이 겨우 눈을 떴다. 그곳에는 무명암살대 제7대대 조장 창희문이 한쪽에 혜를 둘러업고 서후량의 검을 막아 내고 있었다.

순간 안의 가슴이 쿵 하고 떨어졌다. 혜가 무사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창희문 조장의 왼쪽 팔이 없었다.

“창희문 조장님! 팔은 어찌 된 것입니까.”

“쿨럭. 알 거 없다. 혜와 함께 도망가라.”

“하지만!”

“크으으. 도망가라는 말이 안 들리더냐!”

창희문이 고통스러운 신음 속에 혜를 땅바닥으로 던졌다. 초절정 고수인 서후량의 온 힘을 다한 검을, 절정 고수의 실력인 창희문이 받아 낸 것만으로도 기도가 뒤틀리고 오장육부에서는 피가 고이고 있을 것이었다.

털썩.

위태롭게 창희문 조장의 어깨에 걸쳐 있던 혜의 신형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안은 혜를 급히 안아 들었다. 분명 오 층 전각이 공격당했을 때 혜의 발걸음이 굳어 도망을 가지 못하고 있으니 창희문 조장이 한쪽 팔을 잃어 가면서 구해 냈을 것이다.

그리고 안 자신도 기운에 눌려 도망가지 못하고 있는 지금, 혜뿐만이 아니라 자신을 구하기 위해 이 사람은 또다시 몸을 적에게 내어 주고 있는 것이었다.

‘나 때문이다. 혜 때문이다. 이렇게 된 것은 우리 때문이다.’

안은 혜를 안고 몸을 돌렸다. 더 이상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자신들의 무력함을 감싸 안고 죽어 가는 사람들을 볼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안은 서둘러 발걸음을 떼려 했다.

그 순간.

쿠웅!

“도망가게 둘 줄 알았느냐.”

“이 개새끼. 서후량!”

서후량이 끌어 올린 기운에 안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그뿐인가. 머리 위를 짓누르는 기운에 다리에서 힘이 풀리며 안은 주저앉았다.

절망적이었다. 초고수를 얕본 대가다. 서후량은 검을 들어 낙성십이검(落星十二劍)을 펼쳤다. 수십 개의 검줄기가 허공에 괘도를 그리는 순간, 창희문의 몸이 수십 조각이 되어 흩어졌다.

촤촤촤촥! 촤아아악!

“크아아악!”

“조장님!”

“음양쌍녀라니, 진짜 우스운 놈들이구나. 제갈세가(諸葛世家)조차 이런 일에 대비하여 자신의 몸을 지키는 무공을 연마하는데, 겨우 기운에 눌려 주저앉는 꼴이라니.”

서후량이 다시 기운을 끌어 올리며 안과 혜에게 다가갔다. 그때 안의 품에 안겨 있던 혜가 천천히 눈을 떴다.

“아까 이상한 일이 있었는데…….”

“혜, 빨리 정신 차려. 서후량이…….”

후우웅!

순간 서후량의 검이 안의 앞으로 날아들었다. 안은 혜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서후량이 입가를 혀로 핥으며 웃음을 가득 지은 순간.

카아앙.

다시 한번 안과 혜의 앞에서 가로막힌 검에 서후량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명암살대 제8대대 조장 금태석. 그가 입술을 굳게 물며 서후량의 검을 막아섰다.

“도망가거라. 그것조차 하지 못하면 너희를 위해 죽은 자들을 볼 면목이 없지 않겠느냐.”

“조장님, 그러나!”

“나는 이미 단주님에게 맡긴 목숨이다. 지금쯤 무명암살대의 살아남은 자들이 신호를 올릴 터이니 너희는 그쪽으로 뛰어라.”

“감사합니다……. 제발, 부디 무운을.”

안은 떨리는 다리를 손으로 짚으며 혜의 손을 끌고 일어섰다. 도망조차 가지 못했던 몸.

그러나 억지로 기운을 끌어 올려 저항하며 일어섰다. 혜도 상황을 모르지만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그리고 금태석이 막고 있는 서후량을 피해 등을 돌리고 뛰기 시작했다.

퍼엉.

일 리쯤 떨어진 곳에서 쏘아 올려진 불꽃이 하늘에서 터졌다. 위급을 알리는 무명암살대의 신호. 안과 혜는 잠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터지는 불꽃의 붉은색이 머리에 그림자를 만들며 골목에서 한 사람의 신형이 나와 안과 혜를 가로막았다.

“어딜 가려고? 너희의 목은 무림맹 맹주에게 주는 선물이다. 잠자코 내놓거라.”

“빌어먹을!”

안과 혜는 또 한 명의 초절정 고수, 추자룡의 앞에서 절망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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