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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89화 (90/270)

89화

열흘 뒤.

금채홍은 천일영과 함께 해가 지며 노을이 뒤덮고 있는 귀천명을 바라보았다.

정파의 무인이라면 응당 모를 리 없는 지명이다. 돈의 망령이 된 자들이 마교에서 나오는 돈을 빨아먹으며 사는 곳이라는 악명으로 가득 찬 귀천명을 어찌 모르겠는가.

하지만 금채홍은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정파인들이 떠들던 이야기와 달리 좋아 보이는 곳이네요.”

“이곳도 정파인들이 사는 곳과 다를 것이 없다.”

“역시 이야기를 듣는 것과 직접 확인해 보는 것은 다릅니다.”

금채홍의 눈길이 귀천명 끝에 높이 올라서 있는 천마신교의 거대한 문으로 옮겨졌다.

귀천명이 예사롭지 않은 크기를 자랑하는 커다란 곳임에도 불구하고, 마을을 집어삼킬 만큼이나 거대한 천마신교의 문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공자님이 바로 저곳의 주인이셨던 거군요.”

“이미 지난 일이다. 나 스스로 버린 곳이기도 하고.”

천일영은 조금은 씁쓸한 듯 고개를 툭 떨어트리며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금채홍은 천일영의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한 듯 팔짱을 끼며 웃음을 지었다.

“어서 안과 혜를 소개해 주세요.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

천일영은 금채홍과 함께 하오문 귀주성 지회로 들어섰다. 이미 제법 발걸음했던 터라 문 앞을 지키는 무인은 천일영을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윤의강에게 언질이 있었는지 깍듯하게 인사까지 했다. 천일영은 안내를 맡은 하녀가 기별을 넣고 돌아가자 문을 열었다.

“오셨습니까?”

“먼 길 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안과 혜가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들려오는 소리.

“크르르르르르릉.”

예랑은 천일영을 한 번 노려보고 금채홍의 곁으로 가 앉았다. 당분간은 말도 걸지 말라는 표정이다.

게다가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운 마음으로 예랑의 털을 쓰다듬는 금채홍의 얼굴을 핥기까지 한다.

그런데 예랑은 금채홍의 얼굴을 핥으면서도 눈동자는 천일영에게 고정되어 있다. 마치 ‘약 오르지.’ 하는 표정이다.

‘삐쳐도 단단히 삐쳤군.’

천일영은 예랑에게 얼굴이 마구 핥아져 침이 흘러내리는 금채홍을 안과 혜에게 소개했다.

“안, 그리고 혜야. 여기에 있는 사람은 금채홍이라고 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너희의 무공을 손봐 줄 것이다.”

“알겠습니다. 천마님께서 모셔 온 분이시니 저희도 열심히 따르겠습니다.”

안과 혜는 금채홍의 미모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태어나서 이 정도로 예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품행이 단정하고 풍겨 오는 면모가 양갓집 규수라 할지라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

하지만 안과 혜는 금채홍에게 간단한 목 인사만을 남기고 천일영에게 달려갔다. 무엇보다도 급한 일이 있었으니까.

“인사는 나중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보다 오늘이 약조한 열흘입니다. 이것을 봐 주십시오”

“오랜 시간 산속에만 있어 실력이 녹슬지 않았을까 했는데 표정을 보아하니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구나.”

천일영은 안과 혜가 넘겨주는 종이를 받아 들었다. 무려 천 장에 가까운 종이. 각각 분류해 놓았지만 그 양이 엄청났다. 천일영은 종이를 넘기며 입을 열었다.

“한동안 방 안에서 일만 했으니 몸이 뻣뻣하겠구나. 지금부터라도 채홍이에게 검을 배우고 오거라.”

“알겠습니다.”

금채홍이 안과 혜를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예랑도 천일영은 한 번 바라보고 콧방귀를 한 번 뀌고는 따라나선다. 천일영은 예랑을 보고는 한 번 웃음을 짓고 안과 혜가 모은 정보를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세 시진 후.

천일영은 안과 혜가 만든 자료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 모든 자료를 읽고 난 천일영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실력이 녹슬지는 않았구나. 이건 타고난 천부적인 자질이라고 해야 할까.”

사천당문.

독을 제조하고 해독하는 데 있어 중원 제일의 가문. 하지만 그 이면에는 대량 살상을 위한 수많은 기술과 비법을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비급 독의 제조법과 대량으로 비침을 날리기 위한 기관 장치의 기술을 보존하기 위해 문주가 주축이 되는 본가와 혈족으로 이루어진 총 열 개의 분가로 구성이 되어 있고, 사천당문의 가장 중요한 비밀은 본가와 일 대, 이 대 분가만이 알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즉 일 대, 이 대 분가는 문주의 직계 혈통. 여동생이나 남동생 같은 가장 가까운 혈족만이 가질 수 있는 자리다.

안과 혜가 알아낸 것은 본가와 분가의 구성. 또한 그들의 이름과 하는 일까지 모두 소상하게 파악이 되어 있었다.

“칠 분가부터 십 분가까지는 실질적으로 해독과 약초로 돈을 벌어들이는 역할인가.”

독과 약은 종이 한 장 차이. 사천당문은 독에 대한 지식이 천하제일인 만큼 약초와 약재에 관해서도 천하제일이라 할 만했다.

무림맹과 연관 지어 일을 하는 본가와 일 분가, 이 분가 외에도 각자 가문을 유지하고 돈을 벌어들이는 구조까지 분가의 역할은 완전하게 분할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십 년 전 천마신교가 알고 있던 정보보다도 오히려 많다.”

완벽하지는 못해도 충분히 깊게 파고들어 갔다. 천일영은 천여 장에 해당하는 종이를 내려놓으며 웃음을 지었다.

사천당문의 내부를 파악하여 약점을 알아내기 위함이었는데, 안과 혜가 알아낸 내용에서 뜻밖의 부분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사천당문 문주 당용택은 해남도의 일 이후로 조용히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당추필을 죽인 자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독에 관해서는 과거 서가흔에게 질릴 정도로 배운 기억이 있다.

살수로 살면서 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던 천일영은 가문의 비전까지 알려 준 서가흔의 극성 때문에, 독을 새롭게 만드는 것까지는 무리라도 성질을 바꾸는 것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또한 단순히 독의 습성을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지금의 천일영은 사람의 몸 안을 마음대로 들여다볼 수 있었기 때문에 유향설의 몸 안에 있던 독의 성질을 바로 알아보고 어렵지 않게 사람이 죽는 기한을 늘린 것이었다.

“아들의 원수를 갚기 위한다는 명분으로는 분명 무림맹에서 당용택의 활동을 허락하지 않을 터. 이것은 독의 바뀐 성질을 알아내려는 목적으로 무림맹이 활동을 허락한 것이라 봐도 좋을 것이다. 여러 가지로 재미있는 짓을 하는군.”

천일영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상대가 먼저 움직여 준다면 적절한 때에 발목을 움켜쥐기 쉬워진다.

“그나저나 안과 혜는 대단하구나. 불과 열흘만 주었을 뿐인데 어찌 이 정도까지.”

그때 방문이 열리며 그 대단한 안과 혜가 들어섰다. 그러나 안과 혜의 얼굴에서는 천일영이 방금까지 생각했던 대단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절박한 표정과 함께 다 죽어 가는 얼굴이었다.

“우…… 우리도 매일같이 죽도록 수련했다고 생각했는데…….”

“저…… 저건 사람이 아니야. 귀신이야.”

안과 혜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천일영이 곁에 있는데도 안과 혜는 미처 예의를 차릴 힘조차도 없는 듯했다.

손과 다리가 부들거리며 떨리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고 있어 말을 하는 것도 힘겨워 보일 정도. 안과 혜의 몸에서 땀 냄새가 훅하고 풍겨 올라왔다.

그때 금채홍이 안과 혜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섰다.

“어머, 겨우 이 정도로 이렇게까지 지쳤다니 큰일이네요. 오늘은 그냥 몸풀기였는데.”

“네…… 네에? 이게 몸풀기라고요?”

기겁하며 움츠러드는 안과 혜의 행동에 금채홍은 금룡참월하검을 껴안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큰 눈에서 눈알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금채홍은 잠시 천장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으음…… 그러네요. 이건 몸풀기라고 하면 안 되겠죠.”

“그…… 그렇죠? 이렇게 힘든데 몸풀기라니,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그게 아니라 정확하게는 몸풀기도 안 된다는 말인데요?”

“네에?”

“그도 그럴 게 저도 똑같이 움직였어요. 하지만 저는 땀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거든요?”

“아…….”

“내일부터는 저도 땀 좀 흘려 보죠. 기대해도 좋을 거예요.”

오랜 시간 동안 과거 천일영이 붙여 주었던 검술 선생님이 가르쳐 주었던 것을 기억만으로 더듬으며 무공을 수련한 안과 혜는 모자란 부분이 많았다. 일류 고수가 되었지만 턱도 없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일찍 잠자리에 들도록 하세요. 내일부터는 오전과 오후에 공자님의 일을 돕고 저녁에는 저와 무공 수련을 해야 하니까요.”

“네.”

안과 혜의 얼굴에 비장한 각오가 떠올랐다. 과거의 잘못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정도 시련은 웃으며 뛰어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하지만 이날 안과 혜는 씻지도 못하고 옷조차 갈아입지 못한 채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

안과 혜는 피곤한 몸을 일찍 일으켜 깨끗이 몸을 씻고 천일영과 함께 방에 앉았다. 금채홍 역시 예랑을 곁에 두고 천일영의 옆에 앉았다.

“너희들이 알아낸 정보는 잘 보았다. 이 정도의 정보를 모으려면 돈이 많이 들었을 터인데 금화 이십 냥으로는 부족하지 않았더냐.”

“딱 이십 냥에 맞췄습니다. 정보를 사는 데 다섯 냥, 소문을 사는 데 열다섯 냥이 들었습니다.”

“어찌 정보보다 소문을 사는 데 더 많은 돈을 쓴 것이냐.”

“정보의 신빙성 때문입니다. 소문을 사서 종합해 보면 정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해 낼 수 있습니다. 이번에 사들인 정보 중에서 세 냥 치는 진짜였고 두 냥 치는 가짜였습니다.”

“알겠다. 이후에는 어찌할지 생각해 두었느냐.”

“물론입니다. 천마님께서 생각하고 계실 것을 예측해 본다면 사천당문과 무림맹의 관계를 끊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정확히 보았구나. 무림맹이 사천당문의 뒤를 봐주지 못하도록 둘의 사이를 완전히 떼어 놓거라. 이 일에는 돈이 얼마가 들겠느냐?”

“돈은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일로 돈을 벌어들일 것입니다. 정보와 소문을 사는 데 들어간 금화 이십 냥을 메우고도 한참 남길 생각입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이냐?”

“이번 일로 한몫 챙길 것입니다.”

천일영은 대답 대신 웃는 얼굴로 안과 혜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본 안과 혜의 가슴이 울컥거리며 깊은 곳에 억지로 숨겼던 감정이 솟아올랐다.

예전에 보여 주었던 인자한 아버지의 얼굴. 안과 혜의 얼굴에 비장함이 떠올랐다.

“저, 안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성공시킬 것입니다.”

“저, 혜도 목숨을 걸고라도 이번 일에서 성과를 보이겠습니다.”

천일영은 부드러운 눈으로 고개를 한 번 끄덕하고는 밖으로 나섰다. 안과 혜가 일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려 밖으로 나온 천일영은 가슴 한 귀퉁이가 제법 아파져 오는 것을 느꼈다.

‘다 자랐구나. 너희들이 커 오는 것을 보고 싶었는데 이미 다 커 버렸으니.’

제법 날씨가 좋아 방 안에만 있기에는 아까운 날.

하지만 날씨와는 반대로 아픈 표정을 보이는 천일영의 곁으로 금채홍이 살며시 다가왔다.

예랑도 천일영의 표정을 보고는 더는 화를 내지 않고 다리에 얼굴을 살그머니 비볐다. 금채홍은 일부러 밝은 웃음을 지으며 천일영의 옆에 바짝 붙었다.

“공자님, 귀천명이 어떤 곳인지 궁금합니다. 함께 나가시지 않겠습니까?”

“녀석, 속이 훤히 보이는구나. 내 표정이 그리도 이상하더냐. 그렇게 마음 쓰지 않아도 괜찮다.”

“마음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제가 나가고 싶어 떼를 쓰는 것입니다.”

금채홍이 조용히 팔짱을 꼈다. 어째서인지 마음 아픈 표정을 하는 이 사람을 그냥 둘 수 없었다. 천일영의 어깨에 고개를 살짝 기댄 금채홍이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내었다.

“안과 혜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려면 맛있는 것을 먹어야 기운이 날 것 같습니다. 또한 안과 혜가 무복이 없습니다. 옷도 한 벌만 가지고 있는 것 같으니 같이 사러 나가시지요. 이것이 제가 공자님에게 쓰는 떼입니다.”

“어느새 그런 것까지 눈여겨보았더냐. 오늘은 채홍이 말대로 밖에서 돌아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구나.”

천일영은 금채홍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섰다. 하오문의 귀주성 지회의 정문을 나서는 길. 어째서인지 천일영의 마음에 이상한 감정이 솟아올랐다.

‘왜인지 마치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자식들의 물건을 사러 나가는 기분이군. 하지만 그럴 리 없지. 채홍이가 안과 혜보다도 어린데.’

천일영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금채홍과 손을 맞잡은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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