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안과 혜는 모으고 분석한 정보를 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정보는 신빙성을 더하기 위하여 소문의 형태가 아닌 판매의 형태로 풀어졌다.
하오문의 각 지부에서 일제히 정보를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정보의 판매가 시작되기 전에 안과 혜는 미리 소문을 내어 두었다. 무림 전체를 뒤집을 만큼이나 충격적이라는 것을 흘려 둔 것이었다.
정보는 날개 돋친 듯 삽시간에 팔려 나갔다.
하오문의 전국 지회에서 일시에 팔리기 시작한 정보는 혀를 내두를 만큼이나 고가였지만 불과 이틀 사이 금화가 삼천 냥이나 쌓일 정도로 팔렸다.
정보의 내용은 고가의 돈을 내고서라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내용이었기에 구파일방과 오대 세가는 금화를 지불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사혈련, 천마신교와 일부 황실의 윗선조차 구매했고, 새외무림(塞外武林)과 혈교, 그리고 백련교와 같은 마교에까지도 삽시간에 팔려 나갔다.
또한 정보를 산 곳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각지에 사람을 파견하고 추가 정보를 사들이기 위하여 줄을 섰으니, 사태는 일파만파(一波萬波)로 퍼져 나갔다.
안과 혜가 판매한 정보는 사천당문의 패악스러운 짓을 무림맹이 명령했다는 것이었다.
과거 귀주성 전투에서 사천당문이 종남파를 공격하기 위하여 썼던 진형과 증거들을 제시했다.
또한 이때의 일로 무림맹이 피해자인 종남파를 무시하고 오히려 사천당문을 감싸고 돌았다는 것을 알렸으며, 이후 해남도에서 이상한 일이 생겼는데 이 일도 사천당문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일이고 사주를 한 머리가 무림맹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열흘 후.
“딱 지금 정도가 추가 정보를 파는 데 적기일 것 같네.”
“어차피 천마님께서 직접 겪으신 일이고 허가도 떨어졌으니 마음껏 팔아 치우자.”
안과 혜는 첫 번째 정보가 전부 팔렸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정보를 사 간 곳에서 진실의 확인까지 끝냈을 시점이 되자, 두 번째 정보를 하오문의 전국 지회에 일제히 돌리고 판매 준비를 끝마쳤다.
파발마를 통해 미리 이야기를 진행해 놓고 있던 터라 시간은 얼마든지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두 번째 정보가 팔리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판매된 정보의 내용은 해남도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상세한 과정이었다.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표호엽 도지휘사와 유의선 승선포정사사가 겪었던 일들과 해남도에서 사천당문 문주의 첫째 아들 당추필이 벌인 일까지 모두 소상한 증거와 함께 팔았다.
유의선과 표호엽은 이름이 쓰여 있지는 않으나 사건을 조사하면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해남파 문주 설의룡이 사실의 여부를 확인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시간을 내어 직접 이야기를 해 주겠다는 조항까지 달려 있었다.
이 일은 그렇지 않아도 곱지 않은 눈으로 무림맹과 사천당문을 바라보고 있던 황실에서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일 만한 일이었다.
무족지언비천리(無足之言飛千里).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는 뜻처럼 정보는 기정사실로 되어 중원 전체에 알려졌고, 무림에 몸을 담은 자 중에서 웬만큼 지위가 있는 자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모두 안과 혜가 계획했던 대로였다.
* * *
하남성(河南省) 무림맹.
콰아아앙!
내공이 가득 실린 남궁천의 주먹이 탁자 위로 떨어지자, 탁자는 물론이고 고가의 돌을 깎아 만든 방바닥까지 깨져 나갔다.
남궁천이 기막으로 방을 감싸고 있어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무림맹에 있는 모든 무인이 뛰쳐 들어올 만큼이나 큰 소리. 남궁천은 살기를 숨기지 않으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도대체 이것이 어찌 된 일이오. 사천당문이 귀주성 전투와 해남도에서 벌인 일이 만천하에 까발려진 것이오! 게다가 그 일을 무림맹에서 사주했다니! 극비의 일이 어찌 손쉽게 팔려 나간 것이란 말이오!”
“그…… 그것이 저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당용택! 당신은 시키는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한 주제에 입단속 하나 제대로 못 한 것이오?”
“비밀은 철저히 지켜졌을 터입니다. 허나 해남도에는 워낙에 많은 인력이 동원된 일인지라 경로를 파악하려면 시간이…….”
“이런 멍청한 새끼! 네놈이 오대 세가의 문주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구나. 당연히 네 아들을 죽인 놈이 이 일을 알린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단 말이냐! 그놈을 빨리 찾으라 했는데 아직 그림자조차 찾지 못했으니 병신 같은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순간 당용택의 입술이 크게 비틀렸다. 아무리 무림맹의 맹주라 하지만 반말과 욕지거리를 입에 담는 것을 그냥 넘어갈 만큼 당용택은 호인이 아니다.
하지만 당용택은 끝내 비틀린 입술 사이로 튀어나오려는 욕지거리를 참으며 입을 다물었다. 누가 보더라도 이번 일이 잘못된 것은 자신의 책임일 테니까.
피식.
남궁천은 주먹을 쥐고 화를 참으려 하는 당용택을 바라보며 비웃음을 지었다.
제아무리 사천당문이 강한 힘을 지니고 있고, 문주 또한 무림에서 손에 꼽을 실력자이지만, 맹주인 자신에게 비하면 한참 떨어지는 존재.
무림 삼대 고수로 가장 강한 사람 중 한 명이라는 평가를 받는 자신의 상대는 아니다. 남궁천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당용택에게 미리 준비한 말을 선고하듯 내뱉었다.
“이후 중원에 알려진 이 소문에 대해서 무림맹은 전부 부정할 것이오. 그러니 사천당문은 알아서 활로를 모색하시오.”
“맹주! 그리되면 사천당문은 존속조차 어려울 지경이 될 것입니다. 어찌 여태까지 비밀을 공유한 사천당문을 버리려 하는 것입니까?”
“사천당문의 존속? 이보시오, 당 문주. 지금 이 일로 인하여 무림맹에 소속되어 있는 구파일방과 오대 세가의 문주들이 대면을 요청한 것이 몇 건인지 아시오? 모두! 전부요! 내일은 소림사. 모레는 종남파. 이후에는 무당파, 개방, 곤륜, 모용세가. 모두가 나를 만나서 사실의 해명을 요구하고 있단 말이오. 그런데 사천당문을 또다시 끼고 돈다? 당신은 무림맹이 뿌리째 흔들리고 세파에 휩쓸려 결국은 사라지길 바라는 것이오?”
“아…… 아니오. 그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입 닥치고 당장 나가시오. 다시는 우리가 얼굴을 볼 일은 없을 것이오. 이후 사천당문은 무림맹에서 탈퇴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십 년 동안 발걸음을 하지 못하도록 하겠소.”
“아…… 알겠소.”
당용택이 떨리는 손으로 탁자를 짚고 몸을 일으켰다. 쿵쾅거리며 뛰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지만 당용택은 억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맹주 남궁천이 하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무림맹에 출입조차 하지 못하고 모든 관계를 끊는다는 것은, 중원 모두가 사천당문을 치려 해도 보호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바람막이조차 구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당용택은 힘겨운 발걸음을 떼어 방문을 열었다. 그때 남궁천의 목소리가 당용택의 귓가에 박혀 들었다.
“제발 부탁이니 아무것도 하지 마시오. 그것이 도와주는 길이오.”
“…….”
당용택이 침음을 흘리며 밖으로 나서자 남궁천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계획은 완벽했을 터다. 적어도 당용택이 종남을 치려 했던 계획과 해남파를 없애려는 책략을 들고 왔을 때, 그것은 남궁천이 보기에도 완벽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디에서부턴가 자꾸만 일이 틀어지고 있었다.
‘전에는 무명암살대의 단주를 우습게 보아서 생긴 일이라 하지만, 이번의 일은 정말로 이해가 안 가는군.’
남궁천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쥐었다. 그때.
“맹주님, 책사 제갈현 님께서 오셨습니다.”
“들어오시라 하여라.”
“네.”
문이 열리고 제갈현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남궁천은 제갈현의 표정을 보고 속으로 혀를 찼다.
제갈현의 표정은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숨길 때 짓는 표정으로, 모호함을 가장할 때 사용하는 것이었다. 제갈현은 표정을 유지한 채 의자에 앉아 단번에 핵심으로 다가가려는 질문을 던졌다.
“맹주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간에 떠도는 말들이 심상치 않습니다. 사천당문이 같은 무림맹의 종남파와 해남파를 치려 했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만, 심지어 무림맹에서 명령했다는 것은 천인공노할 소리입니다. 무림맹이 이 일과 연관이 있다는 말이 사실입니까?”
“아니오.”
남궁천은 당용택을 대할 때와는 달리 인자한 표정을 지었다. 신뢰가 가득하며 협을 삶의 도리로 아는 진정한 무림인의 얼굴. 무림 맹주라는 큰 자리에 어울리는 표정으로 남궁천은 입을 열었다.
“무림맹은 협을 실천하는 곳. 절대 그럴 리가 없소.”
“허나 정보에 적혀 있는 정황과 증거가 너무도 완벽합니다.”
“나도 그 정보를 접했으나 해남도에서 사용된 비침이 천마신교에서 사용한 것과 같다 하지 않았소. 소문에는 무림맹에서 천마신교에게 죄를 뒤집어씌울 요량이라 했지만 반대로 마교에서 우리를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요.”
“맹주님, 사천당문의 사람들이 해남도에 간 것은 사실입니다. 이미 조사가 끝난 일인 것을요.”
“그 점에 대해서는 사천당문의 문주 당용택이 부정만 할 뿐,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구려. 지금 막 사천당문 문주와 이야기를 했지만 끝내 부정만 할 뿐, 자세한 일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었소. 그래서 사천당문은 무림맹에 출입을 금지하고 십 년 동안 모든 지원과 관계를 금한다고 명했소. 책사, 지금은 우리가 나서는 것보다는 사천당문이 스스로 해명해야 할 때요. 무림맹은 사천당문과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지금 우리가 나서면 오히려 사천당문에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씀입니다. 맹주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납득하겠습니다.”
남궁천은 더욱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제갈현을 바라보았다. 당차지만 넓은 도량과 아량을 베풀 줄 아는 얼굴이다.
“책사, 그 누구보다 오랫동안 내 곁에 있어 온 당신이 아니오. 책사가 보기에 내가 그런 짓을 할 사람이오?”
“맹주께서 그럴 분이 아니라는 것은 제가 잘 알지요.”
“그럼 된 것이오. 세상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책사께서 믿어 주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소.”
“괜히 의심하는 듯한 말을 하여 맹주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늦은 밤이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리하시오.”
제갈현이 밖으로 나서자 남궁천은 연달아 한숨을 내리 쉬었다. 미리 대답을 준비했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남궁천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저 뱀 같은 인물을 속이려면 이 정도의 준비는 마땅한 일이다.
‘내일부터 찾아오는 무림의 중진들에게 이 말만 반복하면 되는가. 허나 사천당문이 위기에 몰리면 또다시 나를 물려 할 테지. 미리 손을 쓰는 것이 좋을 것 같군.’
이유 없이 당용택을 곱게 돌려보낸 것은 아니다. 남궁천은 당용택이 생각지도 못한 일을 저지를 것에 대한 대비도 이미 끝마쳤다. 남궁천은 제갈현도 모르게 일을 처리하기 위하여 자신의 첫째 아들 남궁세강을 불렀다.
한편.
무림맹의 정문 앞을 나서는 제갈현의 눈에서 광채가 흘렀다.
‘그렇지. 당신의 말대로 나는 오랫동안 맹주의 가장 가까이에 있었다. 그래서 잘 알지. 당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일부러 모호한 표정을 지은 것은 맹주가 자신의 표정을 알아차리고 연기를 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만약 남궁천이 진실을 이야기했다면 저렇게 술술 막힘없이 말이 나오지는 않았을 터. 오히려 사천당문의 처리를 두고 밤새 상담했을 것이다.
허나 맹주는 빨리 자신이 나가기를 바라는 듯 보이기까지 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차차 알아보도록 하고. 잠시 나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는 것이 좋겠군. 안이 아니라 밖에서 세상을 둘러보며 소문이라도 긁어모아 볼까.’
제갈현은 하남성을 나가기 위하여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