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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92화 (93/270)

92화

쿠웅!

커다란 빛무리가 쏟아져 나오기 직전, 남궁서우는 또다시 신형을 날렸다.

“크흑!”

등 뒤에서 자신을 향해 수백의 파공강침이 서늘한 소리를 내며 피부를 갈기갈기 찢을 듯 날아왔지만, 남궁서우는 경공술을 사용하여 몸을 날리고 눈앞에 보이는 커다란 나무의 뒤로 숨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빠바바박!

비침과는 달리 나무 뒤로 박히는 파공강침의 서늘한 소리. 이어서 나무껍질이 충격에 벗겨지며 송진과 나무 속살의 냄새가 코로 들어왔다. 순간 남궁서우는 이것이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임을 즉시 눈치챘다.

‘천뢰구가 터지며 화약의 연기와 함께 사방의 나무가 갈라지고 마른 나뭇진이 날리는구나. 사방이 자욱한 연기로 가득 찼으니 놈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눈을 감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남궁서우는 수하들에게 전음조차 날리지 않고 기척을 죽인 후에 사천당문의 무인들이 있는 바위 위로 몸을 날렸다. 비록 기감으로 이동하는 것을 사천당문의 무인들이 느끼고 있을 테지만 남궁서우는 개의치 않았다.

조금 전 천뢰구가 터지는 것을 보고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한 수가 있었으니까.

타다다닷!

남궁서우는 연기를 뚫고 산 중턱에 걸려 있는 거대한 바위의 옆을 돌아 사천당문 무인들이 있는 곳으로 뛰쳐나갔다.

순간 신형을 드러낸 남궁서우를 바라보는 이십여 명의 사천당문 무인들의 눈빛에 동정의 시선이 떠올랐다.

남궁서우의 모습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이성을 잃어 적진으로 뛰쳐 들어온 불쌍한 사람에 불과할 뿐이다.

“애써 여기까지 죽으러 왔구나. 멍청하게 검이나 휘두를 줄이나 알지, 적진에 홀로 뛰어드는 바보짓을 하는 것이 남궁세가의 본질인 것이냐!”

“닥쳐라. 숨어서 비침이나 날리는 겁쟁이들이!”

남궁서우의 말에 사천당문의 무인들은 대꾸조차 하지 않고 냉혹한 표정으로 천녀산화(天女散花)를 펼쳤다.

또한 천녀산화를 펼치는 무인들의 후미에 있던 또 다른 자들은 허공으로 몸을 날리며 남궁서우에게 폭우이화정을 또다시 퍼부었다.

피비비빗. 피비비빗.

눈앞으로 날아오는 수천의 비침. 그러나 남궁서우의 얼굴에는 당혹스러움 대신 비릿한 웃음이 걸렸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아낌없이 퍼부어 주는구나. 개자식들.’

순간 남궁서우가 등 뒤에 숨긴 커다란 나무토막을 꺼내 들었다. 이곳으로 올라오기 전에 급히 나무를 잘라 몸에 숨기기 좋도록 만든 것.

사천당문의 무인들이 비침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남궁서우는 나무토막을 허공에 들어 올리고 검에 내공을 실어 내리쳤다.

파가가각! 퍼엉!

순식간에 내공이 가득 든 검으로 나무토막을 내리치는 순간, 검 끝에서 터지는 내공으로 나무토막이 수만 조각으로 터져 나가며 날아오는 비침을 가로막았다.

후두두둑. 후두둑.

수만 개의 조각으로 갈라진 나뭇조각들 사이를 헤집고 날아가던 비침들은 이내 힘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남궁서우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몸을 날려 거대한 나무 뒤로 돌아 들어갔다.

“터트릴 나무가 이렇게나 많은 숲에서 기다리다니! 사천당문의 무인들은 바보만 있다는 세간의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구나.”

“이런 미친놈이!”

퍼엉! 파가각! 퍼엉!

남궁서우는 내공을 가득 실은 검으로 두 개의 나무를 추가로 터트렸다. 아까의 나무토막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나무다.

남궁서우가 터트린 나무는 사천당문의 무인들이 비침을 날리기도 전부터 자욱한 나무 분진을 일으키며 주변을 잠식했다.

허나 남궁서우가 노린 것은 나무 분진이 시야를 가리게 한 것뿐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분진이 되어 버린 나무 말고도 내공이 터지는 힘으로 날아가는 조각에 있었다.

“크아아악! 내 눈!”

“으아아악.”

“커흑, 저 미친놈이!”

거대한 나무를 내공을 실어 터트리자 사방으로 빠르게 퍼져 나간 나뭇조각들이 사천당문 무인들의 눈을 찌르고 파고들었다.

남궁서우의 입에 잔인한 웃음이 걸렸다. 사천당문 무인들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보며 짓는 만족스러운 웃음이었다.

사천당문의 무인들은 눈에서 피를 흘리며 비명을 지르면서도 무릎을 꿇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남궁서우가 보기에는 좋았다. 벌레처럼 바닥을 기는 것들을 죽여 봐야 손맛이 없을 테니까.

‘이것은 큰 깨달음이다. 사천당문을 상대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사천당문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는 생각도 못 한 나무를 이용한 공격.

사천당문은 숲에서도 방향을 비틀어 비침을 날리기 때문에 약점이 없다고 자랑했지만, 실상은 온통 주변에 있는 나무 그 자체가 사천당문의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비록 내공을 검 끝에서 터트릴 수 있는 초절정 고수만이 쓸 수 있는 방법이지만, 이것만으로도 당분간 사천당문은 뾰족한 수가 없이 남궁의 무인들에게 목을 내어 줄 것이었다.

“검법과 도법이 없는 사천당문으로서는 이제 끝이구나. 이 싸움은 내가 이겼다.”

“크흑, 개자식. 네 마음대로 될 듯싶으냐.”

사천당문의 무인 하나가 침음을 흘리며 천뢰구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순간 한 줄기의 빛줄기가 허공을 갈랐다.

휘익.

“크아아악!”

“눈도 보이지 않는 놈들이 별짓을 다 하려 하는구나.”

검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기며 천뢰구를 든 팔이 날아갔다. 날아가는 팔이 서서히 지면을 향하고, 이내 땅에 도달할 때를 맞춰 남궁서우는 입술을 혀로 핥으며 느긋하게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쿠웅. 콰아아앙!

천뢰구가 폭발하며 파공강침이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그러나 이번에 튀어 나간 파공강침은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같은 사천당문 무인들에게 날아간 것.

눈이 보이지 않아 자신과 같은 편의 실수로 죽게 된 것조차 모르는 사천당문 무인들은, 반수 이상이나 파공강침에 몸이 꿰뚫려 허무하게 바닥으로 쓰러졌다.

남궁서우는 같은 편의 무인이 실수로 동료들을 죽이는 바로 그 순간을 만끽하고 싶어 천뢰구가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까지 몸을 피하지 않고 음미했던 것이었다.

“크악.”

“커헉.”

사천당문의 무인들이 쓰러지는 소리가 기분 좋게 남궁서우의 귓가를 울렸다.

이 세상에 이보다 듣기 좋은 소리가 있을까. 남궁서우는 몸을 숨긴 나무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며 검을 들어 올렸다.

“창천 아래 남궁만이 있을 것이니, 너희들은 가장 훌륭하고 고귀한 가문의 검에 죽는 것을 기뻐하거라.”

“개…… 개자식!”

“남궁의 무인은 개자식이 아니다. 허나 세간의 소문을 들었느냐? 사천당문 무인들은 개만도 못하다는 소문 말이다.”

휘이이이익! 휘이잉.

“크흑.”

“크악.”

남궁서우의 손에서 빛나는 검과 함께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이 펼쳐졌다.

순식간에 눈이 보이지 않아 저항조차 못 하고 있던 사천당문 무인들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마음이 꺾이지는 않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사천당문 무인들은 자신의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 소리를 듣고, 땅으로 머리가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의식이 사라져 갔다.

투두둑. 투둑.

남궁서우는 검에 묻은 사천당문 무인들의 피를 털어 냈다. 끈적하고 기분 나쁜 검붉은 피가 마치 사천당문이라는 저열한 가문의 신분이라도 되는 듯 느껴져 피 냄새조차 역겹다는 생각이 든다.

검에 남아 있는 마지막 한 방울의 피마저 모두 털어 낸 남궁서우는 살아남은 수하들을 높은 지형에서 바라보았다. 살아남은 자들이 숨어 있던 나무 뒤에서 한숨을 쉬며 걸어 나오던 참이었다.

“망할 놈들이 열셋이나 되는 고결한 남궁의 무인들을 죽였다. 남은 일곱으로는 사천당문의 문주를 치는 것은 불가능할 터. 남궁세가로 돌아가면 시간이 너무 걸릴 것이고, 무인을 채우려면 사천성을 벗어나 전서구를 보내야겠군.”

남궁서우가 한숨을 내쉬고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핏물을 피해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

남궁서우는 그 순간 숨을 들이켜고 그 자리에 고정된 듯 섰다. 기척을 느끼지도 못했고 기감에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턱 아래로 서늘한 예기를 풍기는 검날이 목을 베일 듯 들이밀어져 있었다.

남궁서우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적을 느끼지 못한 것에 이상함을 느꼈지만, 그보다는 등 뒤를 손쉽게 내주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고 자존심이 뭉개졌다.

남궁서우는 서늘한 기운을 풍기며 씹어뱉듯 입을 열었다.

“누구냐. 감히 나에게 검을 들이밀다니 간이 부었구나. 사천당문의 남아 있는 무인이라면 지금의 싸움을 보았을 터. 너는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사천당문? 사천당문의 무인은 검법과 도법을 쓰지 않는다고 조금 전에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더냐? 네 목을 노리는 것은 비침이 아니라 검이다.”

“사천당문의 무인이 아니라면 정체부터 밝혀라. 이름을 밝힌다면 목숨만은 살려 주지.”

“굳이 알려 줄 만큼의 이름은 아니다. 다만 이야기를 듣자니 사천성을 떠나 모자란 무인을 채운다고 했느냐? 충고하건대 남궁세가로 돌아가거라.”

“남궁세가로 돌아가라고?”

남궁서우는 자신의 목에 대어져 있는 검을 흘끗 바라보았다. 오묘한 빛이 감도는 것이 보통의 검은 분명 아니었다.

낭인 신분의 무인이 가지고 다닐 만한 물건은 절대로 아닌 것. 초절정 고수에 이른 남궁서우 자신조차도 가져 보지 못한 명검이다.

남궁서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침을 삼켰다.

“남궁세가로 돌아간 다음에는?”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

“무엇을 말이냐.”

훅!

순간 목을 노리고 있던 검과 함께 등 뒤를 짓누르던 압박이 사라졌다.

남궁서우는 천천히 등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 자신을 노리고 있던 사람이 있던 자리.

그러나 흥건하게 피가 젖어 들어 젖은 땅임에도 발자국 하나 남아 있지 않다.

남궁서우는 목 뒤를 서서히 타고 오르는 서늘한 감각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명검을 들고 다닐 만큼의 고수 정도는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까닭이다.

‘허나 뜻 모를 소리를 남겼다 하여 내가 네 뜻대로 하겠느냐.’

여전히 깊은 암흑으로 빨려 들어갈 듯한 어두운 느낌이 온몸을 휘어 감았지만, 남궁서우는 수하들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남궁세가의 직계 혈통이 내린 명령은 그 무엇보다도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위험한 놈이 방해하고 협박을 한다 해도 남궁이 가는 길을 방해할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남궁서우는 수하들이 나무 뒤에 숨어 있는 곳으로 가서 결국 목에 검을 들이밀었던 남자가 말하는 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바…… 방금까지 멀쩡하게 살아 있던 남궁의 무인들이…….”

사천당문의 무인들을 처리하고 확인했을 때만 해도 일곱이나 살아 있던 수하들이다.

그러나 남궁서우가 발걸음을 옮긴 지금, 살아남아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것도 모두 사지가 일곱 조각으로 베어져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조각조각 잘려져 있었다.

그 끔찍한 광경에서 조금 전까지 적들의 목을 베어 내던 남궁서우마저 구역질이 올라올 지경이었다.

“망할 놈. 기어이 남궁세가로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냐.”

남궁서우는 수하들의 시신으로 눈을 돌렸다. 차마 계속 보기 힘든 광경이었기에.

수하들이 잘려 나가는 동안 느끼지도 못했고, 심지어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남궁서우는 생각보다 상대가 초고수임을 느꼈다. 하지만 아직도 알 수 없는 한 가지.

“돌아가서 무엇을 보이라는 것인지.”

그 순간이었다.

주륵.

베였는지 느끼지도 못했던 남궁서우의 목에서 한 줄기의 피가 흘러내렸다.

심지어 베인 지 시간이 제법 흐른 지금에서야 살이 벌어지며 피가 흘러내리다니, 아까 흘낏 보았던 검은 역시 예사로운 물건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남궁서우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검만으로 이렇게 예리하게 베일 리가 없지. 전설의 검으로 평가받는 금룡참월하검 정도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것은 검에 아주 얇고 예리한 검강을 두르고 벤 것이다. 이 정도의 실력이 있는 자가 있으니 소란을 일으키지 말라는 것인가. 바로 이것을 보이라는 것이었군.”

남궁서우는 숨을 깊게 들이켜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도 목에 흔적을 남긴 자가 어딘가에서 자신을 지켜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고의 흔적을 가진 자신을 지금 죽이지는 않을 것.

남궁서우는 빠르게 남궁세가가 있는 안휘성(安徽省)으로 향했다. 괴물이 이곳에 있다면 응당 괴물에게 그 존재를 알려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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