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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98화 (99/270)

98화

“이…… 이것이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

천량도사는 사천당문의 문 앞에 서서 침음을 삼켰다. 잠시 자리를 비웠을 뿐이다.

그런데 그사이에 사천당문의 주인이 바뀌어 있었다. 피비린내 대신 독문암기가 날아다니던 반란이 끝난 자리는 생각보다 빠르게 상황이 수습되고 있었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반란이라니! 당용택은 어찌 되었단 말인가.”

천량도사는 급히 사천당문 안으로 들어서려 했다. 이 정도의 사건이라면 무림에 큰 파장을 미칠 것이기에 급한 마음을 숨기지 못한 천량도사는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사천당문의 문이 코앞인 곳에서 천량도사의 앞길은 가로막혔다. 무려 삼십 명이나 되는 무인들이 천량도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이었다.

“지금은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네놈들! 내가 누군지 알고 그러는 것이냐.”

“그 누구인들 못 들어갑니다. 무림맹의 맹주라 할지라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목적한 곳이 눈앞인데 더는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자 천량도사의 몸에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시급을 요하는 일에 기어이 들어가겠다는 일념으로 흘린 기세는 살기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날카로운 예기를 뿜어내는 천량도사의 눈에 광채가 흘렀다.

“네놈들을 전부 죽이고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말이냐.”

“그렇습니다. 새롭게 문주가 되신 분께서 죽음으로라도 모든 사람의 출입을 막으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저희는 그 뜻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새로운 문주?!”

단호함으로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천량도사는 살기를 내뿜으며 문 앞을 가로막은 무인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 면면을 하나씩 들여다보기를 반 각. 천량도사는 이내 한 걸음을 뒤로 물렀다. 그야말로 죽음을 각오한 그들의 굳은 결의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일 분가의 분주 당강용이 형인 당용택보다 낫다는 소문이 허투루 흐른 것만은 아니었던 모양이구먼.’

천량도사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고 고개를 들어 사천당문의 거대한 문을 바라보았다.

지금 막 높은 문 위에 걸린 현판의 주인이 바뀌었다. 새로운 주인이 들어선 이 문을 지금 강제로 비틀어 여는 것은 좋지 못했다. 명분이 없었으니까. 이것은 사천당문 내부의 일이지 무림맹이 관여할 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망할. 도무지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구나.’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오늘 있었던 일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천량도사는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되짚어 나가기 시작했다.

* * *

한 시진 전.

천량도사는 슬프게 울음을 터트리는 여인 둘을 대신하여, 사악한 사혈련의 기운을 느끼고는 화산파 제자 다섯을 데리고 객잔 밖으로 급히 나섰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늘이 네놈들의 제삿날이다. 운 나쁘게도 나 천량도사가 이 자리에 있음을 원망하고 죽을 것이니.’

천량도사는 빠르게 신형을 날렸다. 경공술을 사용하여 순식간에 사혈련 무인을 덮치고, 남은 잔당들의 위치를 파악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천량도사가 기운을 죽이고 반 리쯤 갔을 때, 사혈련의 무인도 자신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는지 사천성 성도의 입구를 향해 신형을 날리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 천량도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천인공노할 놈의 무공이 보통을 한참 넘어서는구나. 기감도 넓고 이리도 빠르게 몸을 날리다니 보통은 아닌 놈이다. 다들 빠르게 따라오거라. 더욱 속도를 높일 것이다.”

“네!”

휘잉. 파방.

천량도사의 신형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제자들의 경공술은 아직 자신의 발걸음을 따라오지 못한다.

눈 다섯 번 깜박일 동안 신형을 날리던 천량도사는 패악스러운 사혈련의 무인을 한 번에 따라붙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천량도사는 이마에 깊은 주름을 남기며 인상이 구겨져 갔다. 거리가 줄기는 했지만 아주 조금뿐이었다.

“놈, 경공술의 속도를 보니 초절정 고수인 듯하구나. 허나 거리가 좁혀진다는 것은 내가 더 빠르다는 것. 네놈을 기어이 잡아 주마.”

무림에서 그 이름이 드높은 천량도사. 그러나 그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한때 화산파를 이끈 주역이었지만 십이 년 전 귀주성 전투에서 독에 당한 이후 자리를 물려주고 무공의 강함을 알리지 않은 채 살아온 세월이 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림에서 천량도사의 무공을 대략 생각건대, 자리를 물려주고 절반의 은퇴를 한 사람이지만 무공의 경지는 아마 전보다 더욱 강해져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타다다닷.

천량도사는 무림의 예상대로 더욱 빠르게 경공술을 펼치며 상대와의 거리를 줄여 나갔다. 그는 사천성의 성도를 빠져나가 인근의 산으로 향했다.

‘그렇군. 놈이 여인들을 겁탈하고 소저들을 잡아 놓은 곳으로 가는가. 분명 그곳에 한패가 있을 터. 허나 수가 많아진다고 이 천량도사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네놈들은 오늘 모두 죽는다.’

천량도사는 산속으로 들어서며 기감을 더욱 넓게 펼쳤다. 적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내 천량도사의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다.

지금 도망가고 있는 자 외에 세 명의 기운. 일류 고수에서 절정 고수 정도일 것이다. 또한 겁탈당한 여인들의 말대로 세 명의 소저들이 있는 것도 느껴졌다.

소저들이 살아 있는 것을 기감으로 확인한 천량도사의 경공이 더욱 빨라졌다.

파바바바방!

천량도사는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를 내었다. 순간 도망가던 사혈련 무인과의 거리가 삽시간에 좁혀졌다.

“놈! 악행을 멈추고 순순히 잡히거라. 그리하면 곱게 죽여 준다고 약속하마.”

천량도사의 내공이 가득 실린 목소리가 야트막한 야산에 울려 퍼졌다. 순간 천량도사는 도망가던 사혈련 무인이 발걸음을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이때를 같이하여 천량도사의 오른발에서 내공이 터졌다.

후웅.

천량도사의 신형이 높이 떠올랐다. 이대로 단칼에 적의 목을 베기 위함이다. 위에서 아래도 내리치는 검술. 육합신검법(六合神劍法)의 한 초식이다.

그러나 급작스러운 기묘한 느낌에 천량도사의 얼굴이 허공에서 굳었다.

파바바바밧. 피잉!

어디에선가 천량도사를 향해 화살이 날아들었다. 무려 백여 개가 넘는 숫자다. 천량도사는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을 살폈다. 분명 아무도 없는 곳. 기감도 그곳에는 산짐승 한 마리 없다고 알려 준다.

‘이미 설치한 장치인가! 소리가 없는 것을 보니 기관 장치는 아니고 대충 나뭇가지로 만든 것이구나.’

휘이이익! 파가가각!

천량도사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이내 화살은 천량도사의 근처에서 모두 산산조각이 나며 흩어졌다. 단 일검에 백 개의 화살이 모두 갈 길을 잃고 반으로 갈라진 것이었다. 천량도사의 입에 비릿한 웃음이 걸렸다.

‘사천당문도 두려워 않고 당당히 성도의 입구로 들어온 것은 이미 이런 일이 생길까 하여 대비한 것이 있기 때문이구먼. 허나 어리석은 짓이다. 이런 비겁한 한 수에 당할 내가 아니다.’

천량도사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화살이 날아온 것은 별것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노여움에 집어삼켜져 주위를 제대로 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천량도사의 발걸음은 조금 전과 달리 신중하게 떼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앞서 잠시 걸음을 멈춘 사혈련 무인이 다시 뛰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천량도사도 다시 빠른 속도로 추적을 시작했지만, 조금 전과는 달리 기감을 더욱 예리하게 다듬고 주변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다닥.

천량도사가 경공술을 펼칠 때 발소리가 바뀌었다. 사방 앞뒤 좌우를 살피며 신형을 날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덜컹!

순간 천량도사의 신형이 밑으로 뚝 떨어졌다. 그리고 땅 아래에 보이는 날카로운 쇠붙이들. 창과 비슷한 것들이 잔뜩 허공을 향해 있는 것을 본 천량도사는 발에 내공을 가득 모았다.

휘잉. 타악!

신형이 날카로운 쇠붙이의 위를 가볍게 밟고,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허공에서 함정을 바라본 천량도사. 입술이 크게 비틀리기 시작했다.

“이런 장난 같은 함정으로 도대체 뭘 하겠다는 것인지. 허나 일류 고수라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타악.

땅으로 내려선 천량도사의 머릿속에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얼마나 시간을 들여 정성껏 함정을 만들었으면 수없이 대결과 전투를 치른 자신의 눈에조차 보이지 않았을까.

나뭇잎으로 덮은 것도 아니고 보통의 땅이었다. 그런데 함정을 파면 응당 생겨야 할 땅과 함정의 경계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봐도 믿기지 않을 만큼 신중하게 만든 함정이었다.

‘크윽, 이 망할 놈.’

게다가 계속 약 올리듯 함정이 발동될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상황을 살피는 사혈련의 무인. 천량도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화를 가라앉히고 신중해지자 생각했지만, 서서히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가라앉히기가 힘들었다.

“내가 함정에 걸려 죽는지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냐! 이 망할 놈들!”

파아아앙.

천량도사의 신형이 튀어 나갔다. 그야말로 이전까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경공술의 속도다.

천량도사의 신형이 빠르게 나아가자 앞서 잠시 걸음을 멈췄던 사혈련의 무인도 더욱 빠른 속도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때 천량도사의 머리에 하나의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잠깐. 뭔가 불길하구나. 이래서야 마치 놈들이 나를 성도 안에서 끌어내기 위해 함정을 준비한 것 같지 않은가?’

천량도사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잠시 시선을 돌렸다. 조금 다른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로 한 것이다.

사천성에 자신이 있으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잠시 생각하던 천량도사의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졌다. 아무래도 생각지 못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일단 저놈들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도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구나. 이래서야 마치 놈들이 원하는 대로 길을 따라가는 것 같지 않은가.’

천량도사는 이내 아예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나 애써 멈춘 발걸음과는 달리 천량도사는 쉽사리 마음의 매듭을 끊고 돌아서지도 못했다.

소저들이 잡혀 있는 곳까지는 불과 반 리 정도의 거리다. 여기까지 와서 소저들을 못 본 채 돌아서기가 쉽지도 않은 것이 사실.

‘함정임을 알면서도 붙잡힌 소저들을 구하기 위해 계속 갈 것인가. 아니면 모질게 마음을 먹고 다시 돌아가야 하는가.’

그때, 앞서 도망가던 사혈련 무인 놈이 남은 세 사람과 합류하는 것을 기감으로 느낀 천량도사가 침음을 삼켰다. 아마도 놈들은 그곳에서 자신이 올 것을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할 터다.

놈들은 앞으로도 아이들을 겁탈하며 즐겁게 지낼 생각에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천량도사는 마음을 굳게 먹고 눈을 질끈 감았다.

‘돌아가자. 함정임을 알고도 가는 것은 안 될 일이다. 소저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운이 좋으면 겁탈만으로 끝나고 목숨은 건질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성도에도 무슨 일이 생길 것이 분명한 지금은 등을 돌려야 할 때이다.’

천량도사는 손을 모아 소저들이 있는 방향으로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를 악물며 등을 돌리는 순간.

“이놈들! 기어코!”

천량도사의 입에서 일갈이 터졌다. 반 리 떨어진 곳에서 급속히 솟아오르는 기운. 그것은 불쌍한 소저들에게 향하는 살기였다.

소저들을 죽이고 자리를 뜨려는 듯, 네 사람 모두에게서 뿜어지는 살기에 순간 천량도사의 발길도 다시 뒤를 돌았다.

파아아아앙.

천량도사의 신형이 튀어 나갔다. 잠시 마음을 돌린 사이 겨우 반 리 떨어진 곳에서 소저들이 개죽음을 당하게 되었으니까.

천량도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이 망설인 탓에 유명을 달리할 소저들의 원망이 들리는 듯했다.

“이 내가 무슨 생각을. 저놈들이 악독한 놈임을 잠시 잊었구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진득하게 진해지는 살기. 천량도사는 오른발에 내공을 싣고 땅을 박차며 신형을 허공으로 날렸다.

삽시간에 네 명의 사혈련 무인들의 근방까지 도달한 천량도사. 이제 겨우 삼십 장 정도의 거리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천량도사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도무지 기감에서 느껴진 상황이 이해가 안 간 것이다.

“이 무슨 해괴한 짓을.”

한자리에 모여 있던 네 명의 사혈련 무인들. 그들이 갑자기 살기를 거두고 찢어졌다. 사혈련 무인 셋이 각각 소저 한 명씩을 안아 들고 각자 다른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천량도사는 못이 박힌 듯 제자리에 서서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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