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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100화 (101/270)

100화

천일영은 천 안에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세 명의 여인을 뒤로하고 사귀진과 귀문살의 무인에게 향했다.

“안과 혜, 그리고 금채홍을 귀천명에서 여기까지 데려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이 녀석들의 경공술이 느려서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했고, 연기까지 잘 해냈으니 더 바랄 것이 없구나.”

“그 누가 왔어도 걸리게 만든 함정인데 천량도사 그놈도 참 운이 없습니다. 하필 그 자리에 있던 게 그놈이었으니. 하지만 덕분에 식은땀 꽤나 흘렸습니다. 저한테 유인하느라 일부러 느리게 경공술을 썼는데 하마터면 잡힐 뻔했지 뭡니까. 헌데 갑자기 비침이 날아와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비침이 날아온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만든 함정이 아닌데요.”

“그건 내가 당왕귀를 상대하다가 비침을 모아 날린 것이다.”

“이십 리 밖에서요?”

“만천뇌우네 뭐네 큰소리를 치길래 비침을 빼앗았는데 마침 기감에 네가 위험한 것이 느껴지더구나. 그래서 날렸다.”

“놈의 엉덩이에 비침이 박힐 때 질렀던 비명을 들으셨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낄낄낄.”

“천량도사와 제자들의 엉덩이에도 각각 천 개씩의 비침을 박아 줬으니 당분간 앉는 것도 못 할 테지. 덕분에 나도 과거 갚고 싶었던 일의 원한을 돌려줬으니 괜찮은 결과구나.”

천일영은 십이 년 전 귀주성 전투에서 천량도사가 나섰던 것을 기억하며 웃음을 지었다.

모세룡과 천량도사 덕분에 죽을 뻔했던 것에 대한 복수로 내공을 가득 실어 최대한 통증을 주도록 비침을 날렸으니 엉덩이가 너덜너덜해졌을 터다.

“수고가 많았구나. 당분간 이 돈으로 쉬도록 하거라. 혜야, 준비한 돈을 드리거라.”

“네.”

혜가 금자가 가득한 주머니를 건네자 사귀진의 얼굴에 난감함이 떠올랐다.

“돈을 받으려고 한 일이 아닙니다.”

“안다. 허나 여기까지 온 세 명의 귀문살 무인에게도 사례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 금화 오십 냥이다.”

“너무 많습니다.”

“괜찮다. 해남도에서도 고생하지 않았느냐.”

“이것 참……. 감사합니다.”

귀문살 무인들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보통 금화 열 냥이 귀문살을 움직일 수 있는 돈이다. 그런데 다섯 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어찌 웃음이 나오지 않겠는가.

“사천성에서 나가는 길에 객잔에서 천량도사를 속인 여인 둘을 데리고 나가거라.”

“하오문에서 제법 연기를 잘하는 여인을 보냈습니다. 이곳에서 여섯 리 떨어진 곳에 있으니 발각되기 전에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훅.

귀문살이 떠나자 안과 혜, 그리고 금채홍이 천일영의 곁에 나란히 섰다.

“모두 마음의 준비는 끝났느냐.”

“네.”

“다음 상대는 무림맹이다. 그곳에서 사라진 사천당문의 자리를 되찾을 것이다.”

그때 금채홍이 조금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천일영을 바라보았다. 오랜 시간 생각해 보고, 심지어 창피함을 무릅쓴 채 안과 혜에게 물어보기까지 했다.

천마신교의 천마였던 사람이 왜 정파의 사천당문을 도와주는 것인지 말이다.

안과 혜는 혹독한 무공 수련을 하는 금채홍에게 작은 앙갚음으로 모른 척을 하고 있었기에 금채홍은 천일영에게 묻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금채홍이 입을 떼려는 순간.

“왜 사천당문을 돕는지 궁금한 것이냐?”

“헙! 마음을 읽지 마십시오. 정말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 눈을 하고 바라보면 뻔하지 않겠느냐. 채홍아, 나는 사천당문을 돕는 것이 아니다.”

“돕는 게 아니라면 무엇입니까?”

“집어삼키려는 것이지.”

“……!”

금채홍은 큰 눈을 끔벅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공자의 큰 뜻을 이제야 눈치챈 것이었다.

금채홍은 웃으며 조용히 천일영에게 팔짱을 끼었다. 천일영은 금채홍의 행동에 너털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녀석, 요즘 내 팔에 자주 매달리는구나.”

“에헤헤. 지금이 기회다 싶어서요.”

금채홍은 천일영의 팔을 꼭 안았다. 금채홍은 배시시 웃으며 안과 혜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부러 보여 주는 것이었다.

금채홍은 안과 혜가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을 죽일 듯 노려보자 만족감에 한 번 더 웃음을 지었다.

‘모른 척하고 나에게 아무 말도 안 해 준 복수다. 에헤헤.’

금채홍의 모습에 안과 혜가 부들부들 떨었다. 자신들조차 단 한 번도 팔짱을 끼어 보지 못한 아버지의 팔.

순간, 눈에 불똥이 튀고 이에서는 뿌득 소리가 났다. 그러나 말은 못 하고 화만 쌓여 가는 안과 혜를 바라보며 금채홍은 더욱 천일영의 팔에 파묻히듯 안겨 들었다.

‘안, 그리고 혜? 이걸로 끝인 것 같지? 무공 수련 때 두고 보자. 지금까지의 두 배로 굴려 줄 테니.’

금채홍은 작은 웃음을 지으며 안과 혜를 향해 혀를 날름 내밀었다.

* * *

하남성(河南省) 무림맹.

지는 해가 무림맹 안에 한가득 붉게 물든 노을을 뿌렸다. 남궁천은 잠시 무림 맹주의 집무실인 8층 전각에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지면을 바라보았다.

사천당문 문주 당용택의 일이 세상에 알려지고 난 이후, 며칠 동안 무림맹에 소속된 구파일방과 세가들이 해명을 요구하는 통에 큰 곤란을 겪었다.

게다가 일부 무림의 어른들이 직접 사천당문으로 찾아가 일의 자초지종을 알아보겠다고 하는 통에 말리기를 수십 번. 허나 천량도사와 같은 일부 인간들은 기어코 사천당문을 찾아갔다.

‘혹 당용택이 입을 잘못 놀릴 리는 없지만…….’

잠시 머릿속에 그려지는 최악의 상황들. 그러나 남궁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당용택이 혹여 입을 열고 무림 맹주인 자신을 물고 늘어질까 하여 이미 자객을 보냈다.

남궁서우.

남궁세가 안에서도 열 번째의 실력을 자랑하는 고수다. 남궁서우가 비록 세가 안에서 최고수는 아니지만, 남궁천이 그를 믿고 자객으로 보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남궁서우의 신중함과 뛰어난 두뇌라면 분명 기회를 만들 터다. 자고로 무인은 무공만 뛰어나다고 강한 것은 아니지. 그런 점에서는 남궁서우의 강함은 남궁세가 안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든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아마도 오늘이나 내일쯤일 것이었다. 남궁서우가 당용택의 목을 베는 것은. 남궁천은 잠시 바라보던 지면이 어둠으로 물들고 붉은색의 노을도 사라지자 방으로 몸을 돌렸다.

지금쯤 무림맹을 잠식해 가는 이 어둠이 당용택이 있는 사천당문에도 드리워질 테고, 이내 노을의 붉은색 대신 검붉은 피가 바닥을 적실 터다.

남궁천은 온종일 시달린 탓에 정신적으로 피곤함을 느끼며 의자에 앉았다. 당용택이 죽으면 모든 일은 비밀에 묻힐 테니 이 피곤한 일도 이제 며칠만 지나면 끝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때였다.

“맹주님, 손님이 드셨습니다.”

“들어오시라 하거라.”

드륵.

남궁천은 그동안 수많은 무림인이 해명을 요구하며 찾아오는 탓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웃음부터 지었다.

이제는 누가 찾아왔다는 이야기만 들으면 알아서 지어지는 웃음이다. 그러나 남궁천은 맹주의 집무실로 들어오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급격하게 표정이 굳었다.

“남궁세강과 남궁서우? 아니! 어째서 네가 여기에 있는 것이냐!”

“죄송합니다. 맡겨 주신 임무에 실패했습니다.”

“뭐라고? 다름 아닌 남궁서우가 임무에 실패했다고?”

남궁천은 화가 나기 이전에 의아한 마음부터 들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남궁서우다. 그는 여태 불가능하다고 일컬어졌던 임무조차 깨끗하게 성공시켜 온 인물. 그가 임무에 실패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자초지종을 말해 보아라.”

“예.”

남궁서우는 그가 겪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소상하게 전달했다. 그리고 보일 것이 있어 남궁세강을 통해 여기까지 급히 왔다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남궁서우는 자신의 목을 들어 남궁천에게 보였다.

“이것은!”

“제가 놈에게 당한 것은 이틀 전입니다. 헌데 아직도…….”

남궁서우가 보인 목은 이틀 전에 베였는데도 지금까지 피가 방울방울 맺히고 있었다.

예리하게 잘린 면은 무공을 아는 사람이라면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이나 깨끗하게 절단되어 있었고, 피는 딱 일정한 만큼만 조금씩 배어 나오는 것이 무림맹의 맹주인 남궁천조차도 섬뜩함을 느낄 정도.

“이틀이나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면 내공이 아직도 목에 남아 있다는 것인가. 하지만 이 정도라면 화경에 이른 무인이어야 가능할 터다. 내공을 밖으로 꺼내어 따로 운용할 수 있는 자가 현 무림에 있겠느냐.”

“천마신교의 천마가 극마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지만 그가 그곳에 나타날 리는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천마라면 사악한 마교의 기운이 느껴져야 할 테지만 그놈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깨끗하고 청명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경지는 초절정 고수인데 무림 최고수의 실력이라는 것이냐. 아니, 아무리 그래도 기운을 따로 운용하지는 못할 터. 분명 우리가 모르는 혈교 같은 곳에서 사용하는 이상한 무공이 아닐까 하는구나.”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정체조차 알 수 없는 무공을 사용하는 놈인지라 전서구도 날리지 않고 급히 온 것입니다. 남궁세강 님이나 맹주님께 전서구를 날렸다가 놈에게 탈취라도 당하는 날에는 큰일이 날 것이었습니다.”

“잘했다. 당황했을 텐데 용케 거기까지 생각했구나.”

남궁천은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남궁서우를 탓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눈앞에 보인 증표만으로는 살아서 돌아온 것만 해도 다행이다.

감당할 수 없는 적을 상대로 실패한 사람에게 화를 내고 책임을 물릴 만큼 남궁천은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놈은 사천당문의 무인들이 전부 남궁서우에게 죽임을 당할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놈은 사천당문의 편도 아니고 무림맹의 편도 아니라는 이야기. 도대체 놈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가 없구나.’

그때였다. 제법 늦은 시간이지만 무림 맹주가 있는 복도를 거칠게 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무림맹의 업무가 끝난 이 시간, 무엇이 저리도 급한 일이 있어 다급히 뛰어오는가. 남궁천이 의아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급작스럽게 맹주의 방문이 거칠게 열렸다.

드륵!

“무슨 일이길래 기별도 없이 문을 여는 것이냐!”

“그…… 그것이 사천당문에서 반란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뭐라고? 그것이 정말이더냐!”

“지금 전서구가 왔습니다.”

“뭐라고 쓰여 있느냐. 자세히 말해 보아라.”

“문주 당용택은 죽음을 맞았고, 아버지 당왕귀 또한 죽었다고 합니다. 오늘 약 한 시진에 걸쳐 반란이 일어났으며 새롭게 문주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일 분가의 분주였던 당강용이라고 합니다.”

“당용택과 당왕귀 둘 다 죽었다는 말이냐!”

순간 남궁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당강용이 당왕귀와 함께 당용택을 문주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면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강용이 당용택과 당왕귀 둘을 모두 상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장 사천당문에 사람을 파견하여 일의 자초지종을 정확하게 알아…… 아니다. 그곳에 천량도사가 있을 것이다. 그에게 전서구를 보내 일이 어찌 된 것인지 답변을 받거라.”

“알겠습니다.”

털썩.

남궁천은 오른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일이 너무 급하게 돌아가서 따라잡지 못할 지경이다. 그때 순간 남궁천의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 일부러 일을 빨리 진행시켜 중요한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는 것 같구나. 내가 신경 쓰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을 노리는 것이지?’

순간 남궁천의 얼굴이 급박하게 변했다.

‘흔적이다. 분명 당용택은 나중을 위하여 내가 준 전장의 전표 기록을 가지고 있을 터. 자금이 움직인 것은 내가 사주했다는 증표가 될 것이니 이것이 당강용의 손에 들어가면 끝장이다.’

남궁천은 남궁서우를 향해 급히 입을 열었다.

“남궁서우는 들어라. 지금 당장 사천당문으로 가서 증거를 지워야 할 것이니 준비를 하거라. 낭인 신분의 무인 일백을 내어 주겠다. 사천당문에 불을 지르고 모두 다 깨끗하게 소멸…….”

순간 말을 하던 남궁천의 얼굴이 굳어졌다.

평소 똑똑하고 눈치 빠른 남궁서우가 멍한 눈을 하고는 허공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피곤함에 지친 것은 아닌가 하여 남궁천은 남궁서우의 얼굴을 자신에게 강제로 잡아 돌렸다.

그리고 그때였다.

주르르륵.

갑자기 남궁서우의 코에서 핏덩이가 흘러내렸다. 아니, 정확하게는 핏덩이에 뇌가 같이 녹아내리는 혼탁한 액체였다. 순간 남궁서우의 입에서 핏덩이가 토해져 나왔다.

“쿠에에에엑!”

“이…… 이게 무슨!”

남궁서우의 눈이 녹아내리며 이내 끈적한 액이 되어 가슴으로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때를 기점으로 온몸에서 뭔가가 비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쩌저적!

남궁서우의 가슴이 반으로 쩍 갈라졌다. 또한 배에도 실선 같은 것이 생기더니 이내 쪼개지기 시작했다.

투두둑. 철퍽. 철퍽.

쏟아지는 내장과 오장육부. 그리고 남궁서우의 입이 고통에 가득 찬 듯 벌어지며 기괴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끄아아아아악.”

그것이 남궁서우의 마지막 말이었다.

퍼억!

남궁서우의 몸이 터져 나갔다. 사방으로 피 안개와 같은 붉은색의 액체를 뿌린 남궁서우가 수십 조각으로 갈라져 무림 맹주의 방 안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순간 남궁천의 입술이 떨리며 열렸다.

“노…… 놈이다. 해남도에서 일을 망치고 당추필을 죽인 바로 그놈이다.”

남궁천은 떨려 오는 몸을 강제로 억눌렀다. 이 정도로 흔들렸다면 애당초 무림 맹주라는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을 터다.

그러나 남궁천은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노을처럼 붉은색은 사천당문 안에서 핏빛으로 물들어야 했거늘, 무림맹에서 혈화(血花)라는 이름의 꽃을 피우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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