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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101화 (102/270)

101화

다루 백향(百香).

천일영은 지금쯤 남궁서우가 죽었을 것으로 생각하며 차 한 모금을 넘겼다.

해남도에서 유향설의 몸에 든 독은 두 방울 분량.

그중 한 방울은 당추필에게 사용했고, 남은 독을 남궁서우에게 사용한 것이었다.

‘당추필에게 사용한 독은 기한만 늘린 것이지만, 이번에 사용한 것은 즉시 효과가 나타나게 손을 보고, 대신 기막으로 독을 싸서 보낸 것이지. 남궁천이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좋은 놈이라면 목의 상처를 본 순간 예측했을 것이다. 눈치 못 챘다면 그 정도의 놈일 뿐이고.’

해남도에서 손에 넣은 독을 전부 다 사용했지만, 딱히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눈앞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저 당강용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고요.”

“여기에 있는 두 아이가 앞으로 사천당문을 이끌 것이다. 안과 혜라고 한다. 또한 금채홍이라는 이 아가씨도 당분간 같이 있을 것이다.”

당강용의 시선이 안과 혜, 그리고 금채홍에게 고정되었다.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어느 정도 예측은 했던바, 당강용은 조금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약속했다만 사천당문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의 절반을 가져갈 것이고, 또한 사천당문이 가야 할 방향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끌 것이다. 그것이 멸문을 막아 주는 조건이었으니.”

“약속을 어찌 잊겠습니까. 그러나 그 이전에 무림맹에서 저희를 가만두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당추필을 죽인 독을 담아 무인 한 명을 남궁천에게 보냈다. 지금쯤 남궁천은 내가 무림맹과 사천당문 모두를 적으로 생각한다고 오해할 것이다. 시간을 벌기 위해 혼란에 빠트린 것이니 당분간 무림맹은 움직이지 못할 터다.”

“하지만 천하의 남궁천입니다. 언제까지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요.”

“걱정하지 말거라. 앞으로도 손을 쓰지 못하도록 계획이 세워져 있다. 안과 혜가 이제부터 사천당문이 다시 무림맹의 품 안으로 들어가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믿고 따르겠습니다.”

천일영의 말이 끝나자 무리한 조건까지 군말 없이 수긍하고 깊게 고개를 숙이는 당강용이다. 천일영은 당강용의 순순한 태도에 한쪽 입꼬리만 올리고는 작은 비웃음을 지었다.

“미리 말해 두마. 순진한 척은 인제 그만하거라.”

“네? 그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알고 있는 당강용은 지금의 너와는 무척 다른 사람이라는 말이다.”

“…….”

“무공의 실력은 형인 당용택보다 한 수 아래지만 머리가 뛰어나고 책략에 능한 사람이라 알고 있다. 알려지기로는 당용택이 아닌 네가 문주의 자리에 올랐어야 했다고들 하지.”

“그것은 과찬입니다.”

“만일 네가 머리가 나쁜 사람이었다면 오히려 내가 하는 말과 일에 일일이 반대를 했을 것이다. 허나 오히려 순순히 나를 따른 것이 반대로 너의 머리가 좋다는 것을 증명했구나.”

“공자님!”

“우리는 이미 같은 배를 탔다. 그러니 순진한 척하기보다는 오히려 네 본성을 보이는 것이 좋다. 더 이상의 바보놀음은 곤란하구나.”

“참 내. 못 당할 분이시군요.”

당강용은 순진했던 표정을 얼굴에서 깨끗이 지우며 더는 부정하지 않았다.

과거 아버지가 형인 당용택에게 문주의 자리를 주었을 때는 기꺼이 양보했지만, 그것은 사천당문을 위해 억지로 뜻을 꺾은 것뿐이었다.

문주의 자리가 어찌 탐나지 않겠는가.

허나 무림의 정세에 비교적 약한 형을 보좌하며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야심을 애써 모른 척한다면 억지로 참아 낼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형은 자신에게 알리지도 않고 기어이 사천당문을 멸문으로 몰아넣었지만.

그러나.

아무리 야심이 있고 불만으로 가득 찬 차남의 인생을 보냈지만, 아버지와 형이 죽는 데 묵묵히 따를 만큼 당강용은 호인도 아니고 바보 또한 아니다.

당강용은 사천당문의 멸문을 막기 위해 바보인 척 입을 다문 것뿐이었다.

‘그리고 딸과 아들의 목숨을 위해 아버지와 형을 버렸지.’

당강용의 눈앞이 잠시 흐려졌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할지라도, 그의 마음이 아무리 잔인하고 가족의 죽음을 허락할 만큼 타락했다 한들 찢기는 마음만은 어찌할 수 없었다.

“너의 소중한 사람들이 내 손에 죽었다. 슬퍼해도 되는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나를 원망해도 상관없다. 원한다면 복수를 해도 괜찮다.”

“공자님을 상대로는 목숨이 열 개가 있어도 모자랍니다. 공자님에게 잘 듣는 새로운 독이라도 만들면 모를까 말입니다.”

“푸훗. 열심히 만들어 보아라. 꼭두각시처럼 고개만 끄덕거리는 것보다는 그것이 낫구나. 야심을 드러내도 좋고, 사천당문이 가야 할 방향이 있다면 원하는 대로 움직여도 될 것이다. 힘을 키우다 보면 언젠가 내 등에 칼을 꽂을 날도 오겠지.”

“덤빌 테면 덤벼 보라는 말씀이군요. 하지만 됐습니다. 아버님과 형님의 원수기도 하지만 자식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도 사실. 하나를 거두어 가시고 하나를 주셨으니 저로서는 처음부터 선택할 수 있는 패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만드신 것은 공자님이시고요.”

“내가 상황을 만든 것까지 알고 있다면 됐다. 그 잘 돌아가는 머리로 일단 천량도사부터 구워삶고 속이거라.”

“허허……. 그러지요.”

천일영은 안과 혜에게 눈짓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신을 두고 가는 것에 삐쳐 입이 나와 있는 금채홍에게는 작은 웃음을 지어 주었다.

방금 지은 이 웃음의 효과가 떨어져 금채홍이 날뛰기 전에 다시 데려오려면 꽤나 바쁘게 움직여야 할 터다.

* * *

열흘 뒤.

가까스로 사천당문을 가로막은 두꺼운 문이 열리자 천량도사는 착잡한 마음으로 당강용 앞에 섰다.

매일같이 찾아왔지만, 도무지 열릴 기미가 없던 문이 이제라도 열린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무림맹에서 날린 전서구에 적힌 대로 사정을 알아보기에는 너무도 많은 시간이 흘러 버렸다.

그간 굳게 문을 닫은 것을 수상하게 느낀 천량도사가 쏘아보듯 눈을 흘기며 당강용을 바라보았다.

“새로이 문주가 된 것을 축하해야겠지만 지금은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소이다.”

“형과 아버지를 밟고 오른 자리. 축하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천량도사님께서는 해야 할 일을 하시지요.”

“분가였던 당 문주가 무공이 드높기로 잘 알려진 당용택과 당왕귀를 어찌 쓰러뜨렸는지 설명을 해 주셔야겠소. 또한 무림맹에서는 사천당문에서 일어난 모든 일의 상세한 경위를 알고 싶어 하오.”

천량도사의 매서운 말투에 당강용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번 일은 무림맹과 별개로 사천당문 내부에서 일어난 것이니 밝혀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당용택 전 문주가 악독한 일을 일으켰으나 저를 비롯하여 도리를 따르는 자들이 힘을 합쳐 패도의 무리를 몰아낸 일입니다. 정도(正道)를 따라 올바름을 세운 사천당문 내부의 일에 관여할 명분이 없음을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크흠. 그것은 그렇지만…….”

“또한 당용택 전 문주와 전전대의 당왕귀 문주를 쓰러트린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두 분을 쓰러트린 방법에 대한 것이라면 사천당문의 비급 무공을 무림맹에서 알아야겠다는 말로 들립니다. 아무리 무림맹이라고 하지만 가문의 비급 무공을 알리라는 것은 도를 넘어선 말입니다.”

“끙. 그것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열흘간의 기다림에 지쳐 가는 와중에, 기세 좋게 열린 문으로 쳐들어온 천량도사의 이마에 작은 땀방울이 맺혔다.

당강용이 한순간에 모든 명분을 전부 다 가져가 버리니 더는 할 말이 없는 것이었다.

무림 맹주 남궁천이 매일같이 전서구로 사천당문에서 벌어진 일을 알아 오라는 통에 기꺼이 나서기는 했지만, 이래서는 사천당문에서 얻는 것도 없고 무림맹에도 할 말이 없어질 터.

천량도사는 증거 같은 것이 남아 있지 않을까 하여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잠깐. 어찌하여 본문의 전각을 다 허문 것인가? 전대 문주가 있던 오 층 전각이 사라졌구먼. 또한 사라진 전각보다 거대한 건물을 짓다니? 사천당문에는 지금 그럴 만한 돈이…….”

“전 문주 당용택이 혼자서 일을 저지른 것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전에는 문주가 혼자 사천당문의 가야 할 방향을 정했다면 이제부터는 각 분가가 전부 힘을 합쳐 일을 처리할 것입니다. 그것을 위한 전각입니다. 이것은 무림맹에 알리셔도 좋습니다. 아니, 꼭 알려 주십시오.”

“뭐…… 뭐라?”

“또한 돈에 대한 것을 물으셨습니다. 비록 지금 사천당문이 힘을 잃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니 본가, 분가 가릴 것 없이 돈을 끌어모아 새로운 사천당문을 짓는 것입니다. 천량도사께서 보시기에 이보다 중요한 일이 있습니까? 이것은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사천당문 내부의 일이지만 기꺼이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미안하네.”

아무리 의심이 가는 일이 있다 해도 함부로 꺼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다급한 마음으로 사천당문의 치부와도 같은 자금의 문제를 섣불리 꺼낸 경솔함에 천량도사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

“천량도사님께서 미안할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무림맹에서 내린 임무를 수행하시는 것뿐인 것을요.”

“아닐세. 이 노부가 나이를 먹더니 입이 주책맞아졌네. 앞으로 모든 분가와 상의를 하여 가문을 이끈다고 하니 전과 같은 일은 없겠구먼. 다행일세.”

천량도사는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공사가 한창이고 아직 반란의 후유증인지 분위기가 어수선하여 더는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 힘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는 관여할 명분 자체가 없었다.

“돌아가서 맹주에게 이 일을 전하도록 하지. 또한 나 역시도 새로운 사천당문에 거는 기대가 크네.”

“알겠습니다. 허나 앞으로 십 년간 사천당문은 무림맹에 관여하지 못하니 천량도사님의 기대가 수포로 돌아가지 않을까 합니다.”

“십 년이라……. 그렇구먼. 내가 그때까지 살아 있을지. 허나 돈 이야기를 꺼냈다고 해서 이 노부에게 빨리 죽으라는 듯 말하는 당 문주도 참……. 이제 속이 시원한가?”

“제가 말이 과했나 봅니다.”

“아닐세.”

아무것도 얻지 못한 천량도사의 발길이 밖으로 향했다.

당강용은 천량도사의 배웅이 끝나자 피식 웃음을 지었다.

천량도사의 상대가 생각보다 너무 쉬운 탓이었다.

‘십 년 후? 그럴 리가 없지. 금세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당강용은 본가가 있던 자리에 짓는 새로운 전각을 바라보았다.

공자가 전각의 오 층을 통째로 날려 버려서 무림맹이 눈치를 챌까 하여 허문 건물이다.

그리고 그 뒤에 또 하나 짓고 있는 전각이 있었으니, 새롭게 짓는 거대한 전각에 가려 천량도사가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친 장원이었다.

‘뒤에 있는 장원이 실제로 사천당문의 모든 일을 처리하는 곳이지. 안과 혜, 그리고 내가 일을 해 나갈 곳이다. 그것도 진법이 열 개나 겹겹으로 설치되어 사천당문의 사람도 들어오지 못하는 곳이지.’

당강용의 급한 발걸음이 공사를 진행하는 곳으로 옮겨졌다.

시간이 촉박했기에. 사천당문 수입의 절반을 가져가지만, 안과 혜라는 소저들이 오히려 그 능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했다.

‘사천당문이 지금까지 벌어 온 돈의 세 배를 벌 것이라 했다. 그리되면 아무리 절반을 가져간다 해도 과거 사천당문이 번 돈보다 오히려 많다. 그것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좋다고 했던가? 소저들과 공자는 참으로 터무니없는 사람들이군. 일은 잘 풀렸다. 다만 한 가지. 딸아이가 너무 보고 싶구나.’

그때였다.

당강용은 자신의 귀에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급히 몸을 돌렸다.

“아버님!”

“야…… 양희야! 어찌 네가 이곳에 있는 것이냐!”

“공자님께서 호위할 사람을 붙여 보내 주셨습니다. 지금쯤 도착하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면서요.”

당양희는 한걸음에 달려와 당강용의 품에 안겼다.

해남도에서 지낸 시간까지 생각하면 얼마 만에 만나는 아버지인지 모른다.

당양희는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의 얼굴을 맞잡았다.

코앞에서 보는 아버지의 얼굴은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많이 상해 있었다.

“아주 돌아온 것이냐.”

“네, 전 문주이신 큰아버지가 계셨을 때는 돌아가면 바로 의심을 사고 죽을 것이라며 못 가게 하셨었습니다. 그런데 열흘 전에 갑자기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정말이었구나. 공자님이 너를 인질로 잡지 않았다는 말이.”

“인질이라뇨. 저는 공자님과 함께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행동에 구속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보다 아버지! 동생은 어찌 되었습니까?”

“당황우 말이냐. 아주 건강하다. 공자님이 병을 고쳐 주신 이후 아주 잘 지내고 있다.”

“빨리 보고 싶습니다.”

“하하하. 같이 가자꾸나. 황우도 네가 와서 좋아할 것이다.”

당강용은 딸의 손을 잡고 일 분가였던 집으로 향했다.

동생을 만난다는 생각에 조금은 흥분했는지 당양희의 손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하지만 따스했다.

‘이제야 가족이 모두 모였구나.’

당강용은 자식들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해 온 것보다 더 악랄한 짓이라도 서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꿈꿔 온 모습이 이뤄진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건대 자신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그렇게 믿어야 했다.

죽어 간 형과 아버지가 자신을 원망하고 저주할지라도.

그렇게 생각하면 견딜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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