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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103화 (104/270)

103화

파바바바밧.

제갈현의 신형은 산적들로부터 등을 돌린 방향이 아닌 정면으로 튀어 나갔다.

‘오히려 등을 보이는 것은 위험하다. 이럴 때는 허를 찌르고 바로 곁을 지나치는 게 정답이지.’

일백의 산적이 나타났을 때부터 제갈현이 지형을 간파하고 유심히 보던 곳.

바로 산적들이 한곳에 뭉쳐 있음에도 몸을 가까이하지 않는 장소가 있었다.

군사이자 책사인 제갈현의 빠른 눈은 단 한 번 훑어본 것만으로 지형을 모두 다 파악하고, 급격하게 경사가 진 곳으로 신형을 날리면 산적들이 빠르게 쫓지 못할 것을 계산하고 있었다.

타다다닷.

“이 망할 놈이 도망을!”

“백 명이나 되는 놈들을 어떻게 감당하냐. 이럴 때는 삼십육계 주위상이 제일이지.”

제갈현이 경사진 곳으로 박차고 오르자 산적 무리가 일제히 몸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갈현처럼 경사가 진 곳을 뛰어오르는 게 차라리 나을지언정, 몸을 옆으로 기울이고 쫓기는 쉽지 않은 일.

몇몇 산적들이 제갈현을 쫓으려다 몸이 미끄러지며 넘어졌다.

타다다닷.

허나 산적들도 바보는 아니다.

무리의 끝줄에 있던 자들은 제갈현이 비탈길을 밟고 뛰쳐 오르자 재빨리 신형을 움직였다.

오히려 제갈현의 앞을 가로막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열 명이 넘는 산적들이 도끼를 들고 제갈현의 정면을 막았다. 그 순간.

파밧.

또다시 제갈현의 소매에 손이 들어간다.

제갈현은 열 명의 산적들을 보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바로 암기를 날려 목숨 줄을 끊어 버리겠다는 것처럼.

그 모습을 본 산적들이 일제히 멈추고 침을 삼켰다.

제갈현은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산적들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암기는 아까 다 썼다. 일부러 자세를 크게 하여 암기술을 날린 것이 적중했군. 놈들은 암기에 대한 공포심이 머리에 박혀 있을 터.’

순간 소매 속에 있던 손이 빠지며 제갈현의 검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일류 고수 제갈현의 검이지만 무공을 모르는 산적들에게는 초절정 고수가 날리는 것보다도 빠르게 느껴질 터다.

검날조차 보지 못한 다섯 산적의 가슴팍에 혈 선이 그어졌다.

촤아악. 촤악!

“크아아악.”

“이런 개새……!”

“커헉. 비겁한 놈!”

제갈현은 산적 다섯을 베고 그 틈 사이로 뛰기 시작했다.

굳이 열 명을 다 벨 만큼의 시간도, 체력도 없다.

‘이걸로 된 건가.’

제갈현은 산적들을 통과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도망가기만 하면 만사 해결이다.

그러나.

“이런 망할.”

안도하는 것도 잠시, 순간 제갈현의 이가 한 번 갈리고 입에서 한탄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이것들이 미쳤구나. 또 산적 백 명이 오고 있다니.”

사람 한 명 잡자고 이게 무슨 낭비인가 싶지만, 순식간에 이백의 산적에게 둘러싸인 제갈현의 눈에 낭패의 빛이 스며들었다.

제갈현은 또 한 번 사레들린 기침을 토했다.

* * *

정강산.

천일영은 높이 솟은 거대한 전각을 올려다보았다.

모든 것을 맡겨 놓은 사이에 만들어진 객잔.

예정한 날짜보다 늦게 지어졌지만 무심하게도 천일영은 그것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완성된 객잔을 보니, 무려 이십 층에 달하는 전각의 아름다운 자태가 천일영의 눈길을 한 번에 빼앗았다.

“정말로 대단하구나. 장 목수가 보통이 아닌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의 실력일 줄이야.”

“그냥 건물만 잘 올린다고 절강성 제일의 목수라는 호칭이 생기는 줄 아는가. 아름답고, 수려하게 만들어야 일류의 이름을 가질 수 있거늘.”

장평택의 제법 거드름을 피운 말투에도 천일영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천하제일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천마신교의 분문 전각과 비교해도 나으면 나았지 절대 뒤처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뿐이랴.

전각 하나만 보더라도 이러할진대 객잔 전체를 놓고 보면 그 아름다움이 한층 더했다.

미흑천의 연병장이 있던 곳에 만들어진 연못과 아름답게 조경된 일대는 감탄을 토하게 했고, 맑은 산수와 구석구석 손질된 풀 한 포기까지 전각과 어우러져 정갈한 분위기를 풍겼다.

또한 수상 전각답게 주변의 호수에는 사십 척이 넘는 배까지 떠 있었다.

객잔에 오는 손님들이 배를 타고 놀든, 낚시를 즐기든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만든 것이었다.

“이십 층에 달하는 전각이 워낙에 크고 무겁다 보니 물아래에서 지지하는 땅이 무너져 내릴까 하여 보강 공사를 하느라 시간이 걸렸소. 하지만 내 장담하건대 앞으로 오백 년이 지나도 무너질 리는 없을 것이오.”

“대단하구나. 그런데 장 목수? 전에도 궁금했던 것이지만 객잔 옆에 있는 저 기관 장치 같은 것은 무엇인가?”

천일영의 눈길이 이십 층에 달하는 전각의 꼭대기를 향했다.

전에 공사가 한창이었을 때도 생각했던 것이지만, 전각과 똑같은 높이의 이상한 장치가 달린 것이 유독 눈길을 사로잡았다.

“저것 때문에 고생 좀 했소. 별유천지 본점이 십 층 아니오? 사람들이 그곳을 오르면서 다리가 아프다고 하더이다. 그런데 여기는 무려 이십 층의 전각이니 사람들이 오르내릴 때 얼마나 힘들겠소? 그래서 오랜 생각 끝에 사람을 위아래로 실어 나르는 장치를 만든 것이오.”

“이십 층까지 걸어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

“그렇소이다. 헌데 혼자 힘으로는 도무지 안 돼서 아는 사람 힘 좀 빌렸소. 기관 장치라면 절강성에서 제일가는 친구가 있는데 그를 불러와서 같이 공사를 했지. 호수 끝에 있는 폭포부터 물을 끌어와서 그 힘으로 물레방아를 돌려 움직일 수 있게 했소.”

“이것 참 대단하군.”

“그리고 공사를 하다 보니 물을 끌어오는 폭포의 경치가 또 천하일품이길래 수상 다리를 만들어 그곳까지 산책도 할 수 있게 만들었지.”

감탄이 토해져 나왔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이런 장치가 있는 아름다운 객잔이라면 전국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 터다.

그때 공교롭게도 때가 맞았는지 노병천이 상담하러 온 사람과 이야기를 끝내고 천일영과 장평택 곁으로 다가왔다.

“방금 재미있는 계약을 하나 했습니다. 아무래도 산속에 있는 객잔이다 보니 이곳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안전이 신경 쓰였는데 때마침 찾아온 사람이 있군요.”

“오호, 무슨 이유로 찾아온 것이냐.”

“표국과 호위를 생업으로 장사를 하는 사람인데 돌로 만들어진 수상 다리 건너편에 자리를 잡고 오가는 손님을 상대로 표국을 운영해도 되냐고 하는군요. 그래서 상담 끝에 수입의 사 할을 받기로 하고 자리를 내어 주기로 했습니다.”

“제법 큰 수익이 되겠구나.”

“저희가 건물을 지어 주기로 했으니 수익이 나오는 것은 조금 나중일 것입니다. 하지만 장래에는 무시 못 할 돈이 되겠지요.”

이로써 객잔의 추가 수입원이 생겼다.

공을 내세우지 않는 노병천의 성격상 표국의 사람이 찾아온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생각해 낸 것일 터다.

‘확실히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는군.’

게다가 산속에 있는 객잔이다 보니 산적 두목 송여악이 눈물을 흘리며 심은 나무 사이로 길을 내고, 우차를 만들어 정강산 초입에 대기시켰다.

오가는 사람들이 편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음……. 하지만 산속에 있는 객잔으로는 지나칠 정도로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처음 생각했던 객잔과 지나치게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노병천의 답변이 걸작이다.

“이곳은 원래 미흑천이 숨어 있을 요량으로 만든 곳이라 솔직히 사람들이 아예 다니지 않는 곳이지요. 그래서 객잔으로는 문제가 있을 것 같아 아예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쉬는 것을 목적으로 했습니다.”

“즉 지나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오는 곳이라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물론 산을 넘는 사람들도 들러야 하지요. 그래서 호북성과 연결되는 길을 이곳으로 이을까 합니다. 허나 워낙에 인력도 많이 동원되고, 돈 역시 한두 푼 드는 것이 아니라 고민이 되기는 합니다. 금화가 백 냥은 넘게 들 터이니 말입니다.”

노병천의 말에 따르면 새로 지은 이십 층 객잔은 하룻밤에 은자 열 냥이다.

그리고 미흑천의 강일택이 본문으로 쓰던 건물은 일반 객잔으로 개조되어 산을 넘는 사람들이 하룻밤을 묶게 될 곳이다.

허나 전국에 악명을 떨치던 흑도 조직인 미흑천의 천주가 거하던 건물이니 그 호화롭기가 대단한데, 겨우 동전 두 냥에 사람들을 받을 것이라니 길을 새로 내는 것도 충분히 승부를 볼 만하다는 것이었다.

“급히 오라 해서 왔기는 했다만 참으로 놀랍구나. 개점일은 언제로 예정되어 있느냐.”

“아!? 편지에 적지 않았나 보군요. 개점은 내일입니다.”

“내일?”

천일영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건물을 올린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개점인가.

“역시 노병천이군.”

“공자님도 오늘은 여기에서 시험 삼아 묵으시지요.”

“그러지.”

그때, 문득 천일영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 하나.

한창 공사를 할 때 문득 들었던 미묘한 불안감이 떠올랐다.

“잠깐, 역시 노병천이니만큼 그냥 지나칠 리가 없겠지. 솔직히 불어라. 몇 개나 만들었느냐.”

“네…… 네엣?”

순간 노병천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더니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노병천이 슬그머니 허공으로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회피하고는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큼큼, 그…… 그게 공자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흐음, 그렇다면 내가 객잔을 뒤져 봐야겠구나.”

“앗! 뒤…… 뒤지시긴 어디를 뒤지신다는 말입니까. 객잔을 뒤져 봐야 아무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과연 그럴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천일영이 일부러 노병천이 보라는 듯 한 번 씨익 웃고는 등을 돌린다.

그때 노병천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졌다.

“세…… 세 개입니다.”

“오호? 세 개? 겨우 그 정도만 만들었다는 말이냐.”

“아…… 아니……. 실은 다섯 개…… 입니다.”

“그렇군. 그럼 지금부터 다섯 개만 있는지 찾아보도록 하지.”

천일영이 다시 한번 웃음을 짓고는 등을 돌리자 노병천은 기절할 것만 같은 표정으로 미칠 듯한 목소리를 토해 냈다.

“고…… 공자님! 실은 열다섯 개…… 입니다.”

노병천의 얼굴에서 이제는 식은땀 정도가 아니라 비라도 맞은 듯 물기가 뚝뚝 떨어진다.

천일영은 노병천의 눈앞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고 악독함이 묻어나는 웃음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몇 개냐.”

“서…… 서른일곱 개입니다.”

“역시 노병천은 노병천인가.”

천일영은 허탈한 듯 고개를 툭 떨구었다.

혹시나 했지만 무려 서른일곱 개나 만들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어찌 보면 노병천의 성격으로는 많이 참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게…… 처음에는 몇 개만 만들려고 했습니다. 해서 장 목수랑 상담했는데 처음엔 반대하더니만 중간부터 의기투합해서 달아오르는 바람에…….”

“오호? 장 목수도 공범인가?”

“쿨럭, 쿨럭.”

노병천의 말에 잠시 방심하던 장평택의 입에서 기침이 토해졌다.

눈길을 회피하고 이때가 지나기만을 기다렸던 장평택에게는 불의의 기습과도 같은 말.

장평택의 기침이 점점 심해졌다.

“콜록, 콜록. 이 망할 영감탱이야, 왜 나를 끌어들여?”

“이 빌어먹을 영감이! 나중에는 네놈이 나보다 더 신나서 난리였잖은가!”

“그…… 그건 네놈이 기녀와 술로 꾀니까 내가 넘어간…… 콜록, 콜록.”

두 사람이 서로에게 멱살을 잡을 듯 목청을 높이는 동안, 천일영의 내공 가득한 눈길이 객잔 구석구석을 향했다.

눈 두 번 깜박일 사이에 객잔을 살펴보던 천일영은 제법 기발하게 숨겨져 있는 기관 장치를 발견하고는 한숨을 지었다.

‘무슨 짓을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은 했다만 설마 객잔을 보호할 요량으로 살생 기관 장치를 서른 개가 넘게 설치할 줄이야.’

천일영은 눈은 웃지 않은 채 입꼬리를 한껏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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