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종류가 무엇이더냐.”
“땅 밑이 꺼지면서 바닥으로 추락하는 장치, 바닥에서 창이 튀어 올라오는 장치,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하기 위한 벽이 돌아가는 장치, 그리고 밖에 있는 화장실에는 바닥이 무너져 분변으로 몸이 처박히게 하는 장치, 바닥으로 기름이 스며 올라와 미끄러지게 만드는 장치. 이…… 이것은 모두 장 목수가 생각해 낸 것입니다.”
노병천의 말에 장평택의 눈에 핏발이 곤두섰다.
이 망할 놈이 기어이 혼자서는 죽지 않으려는 말에 이내 장평택도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했다.
“불을 뿜는 기관 장치하고 독침을 퍼붓는 것, 화살 삼천 개 날아가는 것과 각종 암기가 날아가는 장치, 그리고 살수를 숨길 수 있는 아무도 찾지 못하는 방. 이 악독한 것들은 모두 노병천 영감탱이가 생각한 것입니다.”
두 사람의 열변에 천일영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살생 기관 장치는 몽땅 설치해 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또?”
천일영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노병천과 장평택이 꿀꺽 침을 삼켰다.
그리고 서로 눈치를 보던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불이 나면 즉시 끌 수 있는 장치, 그리고 만약의 일이 생기면 즉시 손님들이 몸을 피신할 수 있는 숨은 복도, 또한 밖으로 피신한 손님들이 몸을 운신할 수 있는 방도 만들었습니다. 또한 빠른 배를 준비하여 물에 빠진 사람을 즉시 건져 올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말을 할수록 노병천과 장평택의 고개가 점점 밑으로 숙여진다.
말이 끝날 때쯤에는 노병천과 장평택 목수의 고개가 바닥을 뚫을 정도.
천일영은 이내 두 사람에게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손님 머리 위로 비침이 날아다니고 엉덩이에 꽂힌 화살 때문에 울부짖는 아녀자를 보고 싶지는 않다. 허나 여러 가지 궁리를 해서 손님들의 안위도 많이 생각했구나. 이 장치는 노병천의 책임하에 안전하게 관리가 되도록 하거라.”
“그…… 그것이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공자님.”
“허나 말도 하지 않고 제멋대로 일을 진행한 것에 대한 벌은 받아야지.”
“버…… 벌이요?”
순간 천일영의 손이 노병천의 허리로 움직이더니, 등부터 꼬리뼈가 있는 곳까지 쓱 훑는다.
노병천은 이것이 무엇인지 잠시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눈 한 번 깜박인 후.
“크윽! 갑자기 고질병인 허리가!”
“당분간은 허리가 안 좋은 상태로 지내거라. 허리가 쌩쌩하니 기운이 넘쳐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으니.”
“고, 공자님? 어째 전에 허리가 아팠을 때보다도 훨씬 안 좋아진 것 같습니다?”
“이전보다 한 세 배 정도 더 아플 것이다. 허리는 나중에 다시 손봐 주마.”
“끄으윽. 아…… 알겠습니다. 근데 저만 아픈 것은 억울합니다. 장 목수는 벌이 없습니까?”
노병천이 허리를 움켜쥐고 은근한 눈길로 장평택을 바라본다.
장평택은 노병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본능적으로 이것이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이 영감탱이야, 나는 왜 물고 늘어져!”
“이 악독한 놈을 보게나. 같이 일을 저지르고는 혼자만 살겠다고?”
노병천의 말에 천일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노병천이야 처음부터 기관 장치의 일을 진행한 죄도 있고, 또한 천일영이 거둔 사람이니 벌을 주는 것도 딱히 문제가 있지는 않다.
허나 장평택은 돈을 받고 일을 하는 사람.
또한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단서까지 달았으니 딱히 벌을 줄 방도가 없다.
‘잠깐, 아까 노병천이 장평택을 데리고 어디를 갔었다고 했지?’
그때, 천일영의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분명 아까 들은 내용이 맞는다면 앞으로 내릴 벌이 장평택에게는 명분도 있고, 제법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은 자명하다.
천일영은 장평택을 보며 은근히 입맛을 다시고는 입을 열었다.
“내일 개점할 때 쓰려고 매빙화홍주라는 환상의 명주를 준비했지. 그것을 장 목수에게는 주지 않는 것으로 벌을 주면 될 것 같구나.”
“환상의 명주요?”
“매화와 백매화의 꽃향기가 어우러지고 그것을 시원한 박하의 맛으로 마무리하여 여덟 가지 맛이 혀끝에 남는 술이지. 내가 먹어 보기로는 중원 제일의 명주 금존청보다도 나았다.”
“매화와 박하? 게다가 그…… 금존청보다 더? 그것이 사실이오, 공자!”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 술을 돌리려 했는데, 아쉽지만 장 목수는 참아 주게.”
노병천이 허망함으로 물들어 가는 장평택을 보고 ‘푸풉’ 소리를 조용히 내며 고개를 돌렸다.
장평택이 보지 못하는 얼굴 반대편으로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털썩.
장평택은 세상이 끝난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눈에는 초점이 점점 없어지고, 심지어 술을 못 마신다는 사실에 눈물까지 글썽이기 시작했다.
이내 장 목수의 애절한 목소리가 천일영의 귓가로 구슬프게 울려 퍼졌다.
“공자! 제발! 차라리 나도 노병천 영감탱이처럼 허리가 아프게 해 주시오. 그러니 제발 그 환상의 명주라는 것만은! 제발!”
“벌은 벌이니 애써 참아 보아라.”
노병천이 술과 기녀로 저 심지 굳은 장평택을 꼬셨다면 그만큼이나 술을 좋아한다는 말.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천일영은 장평택의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를 한 귀로 흘렸다.
그때 맑고 고운 목소리가 천일영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공자님!”
울부짖는 장평택을 등 뒤로 하고 돌아선 천일영에게 금채홍이 꽃 같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옆에는 오랜만에 만나 한동안 금채홍과 이야기를 나누던 건청이 믿음직한 얼굴로 서 있었다.
‘신기하게도 금채홍의 목소리는 유독 잘 들리는구나.’
요즘 들어 생각건대 금채홍의 미소를 볼 때면 괴로운 일이나 힘든 일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천일영은 사천당문에서 이곳 정강산으로 올 때 금채홍을 데리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자님, 건청 오라버니 말로는 객잔으로 올라가는 기관 장치가 있다고 합니다.”
“나도 이야기를 들었다. 그럼 다 같이 올라가 볼까?”
“네, 기대가 많이 됩니다. 에헤헤헤.”
천일영은 금채홍이 잡는 손에 조금 힘을 더하여 맞잡았다.
그 손길에 금채홍은 한 번 미소를 짓고 객잔으로 올라가는 기관 장치에 올라섰다.
“어서 오십시오.”
기관 장치 안에서 꽤 아리따운 소저가 방긋 인사를 하며 세 명의 사람들을 맞이했다.
그녀는 천일영이 객잔의 주인이라는 것도 모른 채 함박웃음을 지었다.
“몇 층으로 가실 것입니까?”
“이십 층 가장 꼭대기가 좋겠구나.”
“알겠습니다.”
소저가 몇 가지의 이상한 막대기를 조작하니 이내 기관 장치가 작동하여 올라가기 시작했다.
드르르륵.
부드럽고 매끄럽게 움직이는 기관 장치 안에서 천일영은 몸이 붕 뜨는 것 같은 기묘한 감각을 느끼며 밖을 내다보았다.
물을 이용하여 움직이는 장치지만 위화감도 없고 오를수록 한눈에 펼쳐지는 정강산의 산세가 진심으로 아름다웠다.
‘장평택이 정말로 걸작을 만들었군.’
기관 장치를 움직이는 소저의 손길이 문을 열자 이십 층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토도도도. 토도도도.
눈앞에는 당황스럽게도 예서란이 작은 몸으로 바쁘게 뛰어다니며 장정들에게 일을 지시하고 있었다.
“내일이 개점입니다. 오늘 식자재 확인 다시 하세요.”
“네!”
“객잔의 오른쪽 구석이 조금 어둡습니다. 그쪽을 좀 더 밝게 하세요. 한 시진 드릴게요.”
“네!”
“공사를 했을 때 쓰던 자재가 남아 있습니다. 얼른 치우세요. 반 시진 드릴게요.”
“네!”
예서란 키의 두세 배는 되는 장정들이 꼼짝도 못 하고 시키는 대로 척척 움직인다.
게다가 일부는 조끄만 아이가 일을 시키는 것을 따스한 눈빛으로 보는 자까지 있다.
아무래도 신통하기도 하고 여러모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예서란은 종이와 붓을 들고 이것저것 쓰기도 하고 지우기도 하며 일에 몰두해 있었다.
건청이 예서란이 기특하다는 눈길로 입을 열었다.
“서란이가 며칠 전부터 평수찬과 함께 객잔의 개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식자재를 공급해 줄 사람부터 식기 하나까지 모두 꼼꼼히 준비했지요. 공자님의 객잔이라 허투루 할 수 없다면서요.”
“마음이 갸륵하구나. 이쯤이 되면 정말로 어른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군.”
그때,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다니던 예서란이 천일영을 발견하고 종종걸음으로 뛰어왔다.
“오셨습니까?”
“그래, 고생이 많구나. 깜짝 놀랐다. 네가 정말로 어른으로 보여서.”
“정말입니까? 어른으로 보였다는 말이 진실로 사실입니까?”
“그래, 정말이다.”
“엣헴! 드디어 인정하셨군요.”
예서란은 짐짓 허리에 손을 올리고 콧김을 뿜었다.
천일영의 말이 굉장히 기뻤는지 예서란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다.
그러나 건청과 금채홍은 예서란의 행동에 웃음을 지었다.
‘바로 그런 부분이 어린애 같은 건데 아직도 눈치를 못 챘구나. 귀여워라. 평생 이대로 있어 주면 좋을 텐데. 크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공자님에게 물어볼까?’
건청과 금채홍이 예서란을 상대로 마음껏 무례한 생각을 머리에 떠올리고 있을 그때, 천일영의 목소리를 듣고 숙수들이 하던 일까지 팽개친 채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모두 천이영을 죽이는 데 가담했던 객잔의 주인들로 천일영에게 목숨을 빚진 사람들.
그중에서도 특히 여명 객잔 성강춘은 천일영을 보고 눈물을 훔쳐 낼 정도로 울먹였다.
“공자님, 기대하십시오. 오늘 저녁에 요리를 드셔 보시면 아마 깜짝 놀라실 것입니다.”
“제법 자신이 있어 보이는 것이 그동안 열심히 배운 모양이구나.”
“비록 스승님 한 분이 이곳에 같이 오셨지만, 저희도 이곳의 음식을 책임지는 사람들입니다. 결코 실망하게 하지 않겠습니다.”
“이름이 성강춘이었지.”
“맞습니다.”
“기대하마.”
두 번 세 번.
계속되는 인사 끝에 주방으로 돌아간 숙수들을 보고 천일영도 마음속에서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그들을 품은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무려 여동생을 죽이려 했던 사람들이다.
천일영은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죄악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픈 마음에 그들을 용서하는 척했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결정은 잘한 일이구나.’
조금은 씁쓸한 천일영의 눈빛을 읽었는지 금채홍이 손을 잡아 온다.
어느새 얼굴에 마음을 드러내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속을 짐작하는 금채홍이다.
“괜찮으십니까? 마음이 요동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녀석, 이제는 속도 들여다보고 제법이구나.”
“그야 저도 공자님처럼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어 열심히 노력했는걸요.”
“푸훗, 네 녀석은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천일영의 손이 아까와 같이 조금 더 힘을 주어 금채홍의 손을 맞잡았다.
* * *
그날 저녁.
천일영은 숙수들이 만든 음식을 먹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야말로 별유천지의 음식과 비교해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건청과 금채홍, 그리고 예서란도 마찬가지로 느끼는 것이었다.
다만 노병천만은 허리를 움켜쥐고 물만 들이켰고, 옆에 앉은 장평택은 음식을 입에 넣으면서도 혼이 빠진 채 ‘환상의 명주’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벌은 벌이니 참아라. 기관 장치가 잘못되어 손님이 다치기라도 하면 삼천 개의 화살이 날아가는 장치 앞에 세우고 작동시킬 테다.”
“끄응, 알겠습니다.”
“환상의 명주~.”
하지만 넋이 나갈 정도로 충격을 받은 두 노인과 다르게 또 한 명의 사람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으니.
‘크윽, 굴욕이다.’
예서란은 눈물을 글썽이며 음식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다름 아닌 공자가 낮에 말한 것처럼 어른으로 대접해 주느라 더는 무릎 위에 앉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 ‘아’ 해야지.”
“끄으윽. 아아아.”
대신 공자는 예서란을 곁에 앉히고 손수 음식을 먹여 주고 있었다.
일일이 입을 벌리라는 말과 시늉까지 하는 것이, 이래서는 차라리 무릎 위가 나을 지경.
그리고 그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히죽히죽 웃으며 바라보는 금채홍과 건청을 본 예서란의 눈에서 다시 한번 눈물이 핑 돌았다.
‘아아악. 이래서는 진보가 아니라 퇴보잖아! 차라리 무릎이 나아!’
마음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버텨 보려 애썼던 예서란이지만, 결국 천일영이 시키는 대로 입을 계속 벌렸다.
그것도 배가 터질 것 같아서 쓰러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