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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109화 (110/270)

109화

천일영은 사천성에 도착하여 서하린이 품 안에 넣은 편지를 열어 보았다.

제법 많은 글자가 종이를 한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 그동안 많은 정보를 모은 듯했다.

천일영은 편지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다 읽었을 때쯤에는 천일영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영약을 모으는 것이 천마신교뿐이 아니라는 말인가. 무림맹에서도 상당량의 영약을 채집하고, 영약 채취꾼들이 어쩌다 판매하는 것이 나오면 그것까지 쓸어 담는다? 갑자기 영약에 왜 이리도 모든 돈을 퍼붓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가는구나. 게다가 이러한 조짐이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니.’

천마신교가 영약을 빼돌리는 이유까지는 알지 못하지만, 같은 짓을 무림맹에서도 한다는 것은 여간 신경이 쓰이는 일이 아니다.

영약이란 원래 무의미하게 사용하지 않을뿐더러 사용 목적이 한정되어 있다.

정확히는 눈이 나올 만큼의 고가이기에 사용처를 제한해 둔다고 보는 것이 옳다.

헌데 그러한 영약이 그만큼 필요할 이유가 무엇일까 싶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것이지? 천마신교도, 무림맹도, 또한 아마 사혈련도…….’

과거 금채홍이 사혈련의 탁문일과 있었던 일을 생각한다면 세 개의 무림 파벌이 모두 영약에 미쳐 있음이 분명하다.

분명 금채홍의 가족은 황산에서 영약을 다뤘던 일족.

하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영약이 나올 선기의 땅까지 굳이 불태워 가며 탈취한 의도가 무엇일까.

‘서가흔, 너는 무엇을 알아냈기에 죽임을 당한 것이냐…….’

천일영은 굳은 얼굴로 서하린의 편지를 불태웠다.

* * *

한 달 뒤.

모용세가(慕容世家)의 문주 모세룡은 차 한잔을 마시며 밖을 내다보았다.

그는 명문 세가의 문주답게 용정차(龍井茶)를 마시고 있지만, 어쩐지 불편한 속은 뒤끝이 깨끗해야 했을 차 맛 대신 텁텁함만을 남겼다.

‘무림맹에 던져진 사천당문이라는 화두로 인해 급히 해독 무인 하나를 빼 왔건만 마음이 편치는 않군.’

십이 년 전 귀주성 전투에서 무명암살대 단주 천일영이 터트린 화골명천(化骨命千)에 당하고 그 누구보다 독의 무서움에 대해 뼈저리게 잘 알고 있는 모세룡이다.

무려 이 년간 정양하고도 독의 영향 탓에 원래 3갑자였던 내공이 1갑자나 줄어들어 그것을 다시 원래대로 돌리는 데 또한 이 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그 때문에 모세룡은 사천당문이 멸문의 길로 들어선다고 판단하자, 즉시 사천당문의 무인 한 명을 빼내었었다. 하지만.

‘무림세가끼리 무인을 빼돌리는 짓은 금기 중의 금기. 이것이 알려지는 날에는 아무리 천하의 모용세가라 해도 큰 문제가 될 터이다. 그 때문에 빼돌린 무인을 모용세가에 들이지는 못하고 장원을 하나 구하여 별도로 지내게 했다.’

모세룡의 눈이 질끈 감겼다.

얼마나 되는 해독 전문 무인들이 사천당문의 품을 나갔는지는 모른다.

겨우 몇 명일 수도 있고, 혹은 몇백 명일 수도 있다.

가문을 배신한 그들을 품은 구파일방이나 무림세가들은 철저히 비밀을 지키고 있기에 자세한 것은 알 길이 없다.

‘겨우 이 정도 일만으로도 알려지는 날에는 가문의 이름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모세룡은 자신의 이름을 떠올렸다.

원래 모용세가는 모용(慕容)이라는 성을 쓰기 때문에 모용세가다.

헌데 어찌하여 문주의 이름은 모세룡인가.

이유는 모용세가의 핏줄이 과거 오호십육국 시대 연나라의 왕이었기에 황실에서 반란을 일으킬까 하여 항상 감시하기 때문이었다.

모세룡은 가문을 지키려고, 압박이 심해져 오는 황실에 충성된 백성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모용의 성 중에서 용을 버리고 모세룡으로 이름을 고쳤다.

가문의 상징과도 같은 성을 뜯어고친 치욕적인 일.

그러나 모세룡의 희생 덕분에 나머지 모용세가 사람들은 아직 모두 모용의 성을 사용하고 있었다.

‘가문을 지켜야 한다. 성을 바꾸든 사천당문의 뒤통수를 때리든.’

비록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지만, 모세룡은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남은 용정차를 입에 가득 머금었다.

타다다다닥.

느닷없는 소란 가득한 발소리가 모세룡의 귓가로 울려 퍼졌다.

모세룡이 용정차를 삼키며 인상을 지을 그때, 모용세가의 문이 활짝 열렸다.

“무슨 일이길래 이리도 시끄러운 것이냐.”

“문주님, 모용세가의 고수 하나가 독에 당했습니다.”

“독? 모용세가가 자리 잡은 요령성(遼寧省)에서 감히 독을 사용하는 자가 있단 말이냐. 상태는 어떠하냐.”

“일류 고수인 모용수가 의식을 잃은 채, 전신에서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전신에서 피라니, 터무니없이 요란스럽게 눈길을 끄는 독을 사용했구나.”

모세룡은 몸을 일으키면서도 이마에 조금 주름이 잡혔다.

일류 고수나 되는 모용수가 독에 당했다.

그것도 모용세가의 본문 근처에서 당한 것이 문제다.

‘지나치게 공교롭구나. 하필 이때.’

그러나 모세룡은 기어이 몸을 일으켰다.

“안내하거라.”

“네.”

모용세가의 무인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 보니 개울가 근처이자 산자락이 시작되는 경계 부근에 피를 토하는 모용수가 있었다.

모세룡이 급히 모용수의 맥을 짚었다.

‘드문 독은 아닌 것 같은데, 허나 틀림없이 십중팔구는 죽음에 이르는 독이다. 사천당문의 해독 전문 무인을 빼돌려 두길 잘했구나.’

모세룡은 모용수를 안아 들고 안내를 했던 무인에게 엄한 목소리를 내었다.

“모용수는 내가 책임지고 돌볼 터이니 너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거라.”

“허나 문주님, 모용의 가문이 다스리는 영토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범인을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이곳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아 범인을 특정하기 곤란하다. 괜히 범인을 잡는다고 소란을 떨고 나서다가 놓친다면 그것이야말로 모용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 모용수가 치료되면 범인을 알려 줄 터이니 그때 잡아도 늦지 않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모세룡은 모용수를 안고 신형을 날렸다.

원래라면 즉시 범인을 찾기 위해 애를 썼을 터.

허나 지금은 사천당문에서 빼낸 무인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에둘러 말을 돌렸다.

모세룡은 한쪽 눈을 찌그러트리며 인상을 지었다.

‘독이라니, 가당치 않은 짓을 하는군. 모용수는 분명 모용세가 본문을 지키는 자기는 하다. 하지만 일류 고수나 되는 모용수가 아랫사람을 시키지 않고 직접 경계를 섰을 리는 없을 터인데.’

조금의 불길함이 모세룡의 가슴을 채운다.

이유를 생각하자면 수없는 가능성이 있을 터다.

하지만 수하들로 감당할 수 없는 자의 흔적을 발견하고 본인이 직접 나섰을 가능성이 제일 높았다.

모세룡은 모용수의 해독을 위해 신형을 날리면서도 뭔가 석연찮은 느낌 때문에 발걸음이 조금 더뎌졌다.

‘설마 그럴 리는…….’

너무도 적절한 때에 모용세가를 노린 독.

마치 사천당문의 무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려는 방편 같았다.

모세룡은 잠시 경공을 멈추었다.

‘내가 사천당문의 무인을 빼돌린 것을 알고 누군가가 함정을 판 것인가? 나 스스로 사천당문의 무인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게 하려고?’

잠시의 망설임이 모세룡의 발걸음을 잡았다.

그사이 모용수의 몸에서 나오는 피는 점점 진득해지며 많은 양이 흐르고 있었다.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 하나.

모세룡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눈 세 번 깜박일 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진정 귀한 사천당문의 해독 전문가다.

당강용이 당용택을 죽이고 새로운 문주의 자리에 올랐다 할지라도 지금의 사천당문에 손길을 내미는 것은 여러모로 곤란했다.

비록 그것이 요령성에 사천당문의 지회로 가는 것이라 할지라도.

무림맹은 향후 십 년 동안 사천당문과의 모든 관계를 끊는다고 했다.

그 말은 무림맹에 소속된 모든 문파와 가문이 사천당문과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나중을 위해 모용수를 버릴 것인가. 아니면 함정인 것을 알면서도 해독을 위해 빼돌린 사천당문 무인을 찾아가야 하는가.’

모세룡은 눈 다섯 번 깜박일 시간 동안 한 번 더 생각했다.

그리고 난 후 모세룡은 이를 악물었다.

‘내키지는 않지만, 이럴 때 쓰려고 빼돌린 사천당문의 무인이다. 함정이라면 발뺌을 할 뿐.’

모세룡은 다시 한번 신형을 날렸다.

그리고 사천당문의 무인이 있는 곳으로 들어서 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 이건!”

방 안은 온통 핏빛이었다.

아니, 그것은 핏빛이 아니라 피 그 자체였다.

원한을 풀기라도 하듯 온몸이 열여덟 조각으로 잘려, 사지를 온 방 안에 뿌려 놓았다.

몸의 조각조각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천장에까지 튀어 올라 방울이 되어 방 안으로 떨어지는 끔찍한 광경.

“다…… 당한 것인가. 여기를 어찌 알고!”

모세룡의 몸이 떨려 왔다.

모세룡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떨림은 근육의 수축이 일어나 전신에서 경련을 일으키는 모용수의 몸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모세룡은 순간 정신을 차리고 모용수를 바라보았다.

경련의 끝에 모용수의 눈이 뒤집히며 혀가 말려 들어간다.

죽음에 이르기 전 경직이 찾아온 것이다.

모세룡은 급히 손가락을 모용수의 입속에 집어넣어 말려 들어가는 혀를 잡아당겼다.

혀가 말려 기도가 막혀 죽게 되는 것만큼은 피해야 했기에.

“젠장, 일단 의원! 의원에게라도 보여야겠다.”

모세룡은 급히 모용세가에서 다섯 리 떨어져 있고, 사천당문의 무인이 죽어 있는 이곳으로부터 십 리 떨어진 의원이 있는 곳으로 신형을 날렸다.

한편.

모세룡이 모용수의 신형을 안고 의원이 있는 방향으로 향하는 것을 사귀진과 유향설이 씁쓸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귀진은 모세룡의 행동을 지켜보는 동안 비틀린 입술에서 튀어나오는 말을 여러 번 집어삼켜야만 했다.

하지만 결국 모세룡의 절박한 표정에 사귀진은 쓰린 말을 토해 냈다.

“사혈련에서 사용하는 독 중에 가장 흔한 싸구려에 정말로 죽게 될 줄이야.”

“모세룡이 고민만 하지 않았다면 분명 저 무인은 살았을 거예요.”

“그러게 말이다. 저 정도의 독은 일반 의원이라 할지라도 해독할 수 있을 만큼 아주 간단한 독이다. 빼돌린 무인이 들통날까 걱정하지 말고 수하부터 살리겠다고 생각했으면 분명 살아났을 것을.”

욕심일까.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가문을 위해서였을까.

그 어떤 이유든 모세룡에게는 전부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정작 지켜야 할 것을 잃는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일까.

사귀진과 유향설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거두어 왔고, 또한 무림에서 일어나는 더러운 일들을 수도 없이 보아 왔다.

‘하지만 지금처럼 속이 뒤틀리는 일은 처음이다.’

어리석음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모세룡은 고민을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급한 것은 자신의 밑에 있는 수하의 목숨이어야만 했다.

무인을 빼돌린 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멸문으로 들어설 만큼 큰일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망설였다.

사람이란 추악한 것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귀진과 유향설이었지만, 지금만큼은 토악질이 나올 것만 같은 마음을 숨기기 힘들었다.

유향설은 쓰린 속을 움켜쥐며 눈을 가늘게 떴다.

“천마님께서 사천당문의 독을 사용하면 증거가 남을 것이고 또한 사용할 필요조차 없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네요.”

“그분은 알고 계셨던 거다. 의원조차 해독할 수 있는 가장 싸구려 독만으로도 사람이 죽어 나가는 이 더러운 광경을.”

“이 모든 것을 예상한 천마님도 정말…….”

유향설은 뒤를 이어 나올 말을 억지로 삼켰다.

말로 꺼내 버리면 뭔가가 가슴속에서 깨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사셨기에…….’

사천당문의 무인을 열여덟 조각으로 잘라 버릴 만큼이나 잔혹한 유향설이지만, 그보다 더 큰 잔혹함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을 보고는 결국 눈을 질끈 감았다.

사귀진은 낙담한 유향설의 모습에, 손을 뻗어 머리 위를 붙잡고 강제로 숲 안의 길로 들어섰다.

“이제 열아홉 명 남았다.”

“네.”

사귀진과 유향설은 숲이 만드는 그림자 사이로 몸을 숨겼다.

뒤따라오는 인간의 추악한 그림자가 자신들마저 덮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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